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3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31화(131/343)
131.
예성과의 민망한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오늘 무엇을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아이돌 공작소는 아이돌의 숨어 있는 컨셉을 찾아주는 플랫폼이잖아요?”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예성은 갑자기 들고 온 가방에서 핑크빛 배경에 공주로 추정되는 캐릭터가 그려진 스케치북을 꺼낸다.
“크업.”
“어이구, 우리 준이.”
석준의 벌어지려는 입을 재빠르게 류이든이 막아냈다. 처음 뵙는 분께 저 공룡의 위즈니 덕질 경력을 광고하기엔, 아직 한국은 그리 개방적인 나라가 아닌가 보다.
예성은 그 난리를 보고도 이상한 게 없나 보다. 꺼낸 스케치북의 표지를 한 장 넘기자 그곳엔 동물농장 같은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우리 블로센스는 알아보니까 각기 생김새에 따라 불리는 동물이 있더라고! 맞죠? 제가 큐티뽀짝하긴 한데, 동시에 영하고 와일드하고 프리해서 이런 정보 잘 알거든요.”
……저런, 엄청난 말투를 구사하시는 분이시군.
이번엔 이현재가 약간 고개를 위로 들어올려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초면에 말투가 웃기다고 웃는 건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동물이 컨셉인 아이돌은 어떻죠, 이든 씨?”
“많죠, 선배님.”
진중한 표정으로 미소를 띤 채 싹싹하게 답하는 류이든. 참 대단한 인재다.
“그래서, 동물이 컨셉이라고 하더라도 조금 색다른 동물이 될 필요가 있어요. 고양이나 강아지, 뻔하니까. 뇌리에 안 남아. 스파크가 팍팍 튀어야 하는데.”
“피X츄.”
석준이 기다렸다는 듯 미친 소리를 뱉는다.
옆에 앉은 이현재가 허벅지를 탁 내려쳤지만, 웃음은 여전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동물론 안 돼요! 우리는!”
예성은 다시 종이를 한 장 넘긴다.
“곤충으로 갑니다! 어때요! 벌써부터 스파크가 파지직!”
네, 잘 알겠습니다, 파브르 씨. 곤충기는 나중에 홀로 찍어 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멤버들이 어안이 벙벙해져서 입을 팔딱거렸다. 인간의 광기를 목격하는 순간은 늘 충격을 동반하는 법이다.
차마 류이든도 저 의견에 동의하긴 어려웠는지 미소를 띠고 있으나 안면 근육이 약간 파르르거리는 느낌이다.
“이든 씨, 강하고! 동화 씨 정도는 들어서 바다에 내리꽂을 수도 있고! 장수풍뎅이!”
어울리는군. 찬성합니다.
“동화 씨는 날렵하고 약간 냉한 인상에 잔혹귀족이라는 별명도 있으니까 사마귀!”
미친 소리군. 반대합니다.
이후 예성은 채하민을 잠자리, 이현재를 폭탄먼지벌레, 석준을 벌레잡이통풀에 비유했다. 그런데 계가 다른 생명이 하나 들어 있습니다, 예성 씨. 파브르 곤충기가 아니라 다큐프라임이 목적이십니까.
“와, 씨. 제가 어제 혜성이 형이랑 밤새 고민한 결관데, 마음에 들죠? 우리 파브르 곤충기 한번 찍어 봅시다! 사상 최초 곤충형 아이돌!”
그럼 석준은 블로센스 탈퇴 확정이군. 식물형 아이돌을 만들러 가야 할 테니.
“오… 머, 멋, 지네요!”
채하민은 토끼로서 종적 정체성을 잃은 게 아쉬운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류이든도 대체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오늘 저희 가서 곤충탈 딱 쓰고!”
한 명은 식물이라니까.
“곤충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면 바로 기사에 딱 나오지 않겠어요?”
하긴 기자들은 기괴하고 무서우며 혐오스러운 세상사를 알리는 게 직업이니까 그럴 것 같습니다.
나는 진지한 표정과 기대에 찬 표정으로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예성을 보며 생각했다.
‘…진심은 아닐 테고. 관찰 카메라인가.’
그래, 이상하다 했다. 이 망할 방송국 놈들. 매니저님이 해준 충고에서부터 어느 정도 답이 있었던 거군. 메인 MC가 프로그램 소개를 해주는 것도 그렇고.
‘……류이든도 눈치챈 것 같은데.’
내 쪽을 보며 ‘너도?’라는 뉘앙스의 표정으로 보는 걸 보니 확실하다.
방송을 잘하는 법에 대해선 잘 모르니 류이든이 하는 짓이나 따라 해야겠다.
“오, 그럼 제가 지금 장수풍뎅이로서의 면모를 한번 보여드려야겠는데요?”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류이든이 옆에 앉은 나를…… 뭐 해, 미친놈아.
자유롭게 하늘 위로 날아오른 내 눈이 천장에 달린 조명과 컨택한다.
…밝군.
“이 정도면 장수풍뎅이죠?”
류이든이 핀트가 약간 나갔는지 광기 어린 목소리로 묻자 예성이 처음으로 당황한다. 그러자 류이든이 내게 눈짓한다.
하, 그래, 따라 해 줄게. 망할 장수풍뎅이 놈아.
나는 손날을 들어 류이든의 목을 내리쳤다. ‘커억’하는 소리와 함께 류이든이 무너지고 나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섰다.
잠시간의 고요 후, 나는 조용히 말했다.
“…사마귀는 상대를 찢습니다.”
망할 아이돌, 이 직업은 왜 이리 분자 단위로 쪼개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은지 모르겠군.
그제야 모두들 정신을 차리곤 ‘둘만 죽는 건 좀’이라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맡은 곤충, 과 식물을 연기하기 시작한다.
채하민이 몸을 오므렸다가 펑 소리를 내며 쫙 펴는 꼴이 참 보기 좋았다.
“…오, 그, 그죠? 이게 많이 좋은, 의견일걸요?”
예성은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려는지 박수를 치며 상황을 진정시킨다.
그리고는 스케치북을 재빨리 한 장 더 넘긴다.
“여러분! 열심히 해줬는데 속여서 미안해!”
그 스케치북엔 ‘블로센스 관찰 카메라 ― 혜성 대본 예성 연기’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대기실 한편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있던 남성분이 갑자기 펄떡 뛰어오르더니 모자를 벗으며 달려온다.
“아! 예성아! 얘네 뭔데! 얘네 이상한데! 이걸 어떻게 받을 생, 각, 가하핰, 흐핰!”
숨이 많이 가빠보이신다.
“그니까, 나 진짜 겁나 당황했다고! 형이 백퍼 당황해서 쩔쩔 맬 거라며!”
핑크빛 공주 디자인의 스케치북을 들고 미친 듯이 혜성 씨를 내리치는데도 정작 맞는 당사자는 행복에 미쳐 가고 있었다. 그래, 존중해줄 수 있다.
나와 류이든을 제외한 멤버들은 상황 파악을 하는지 잠시 동식물을 흉내 내는 자세 그대로 멈춰 서 있다.
“동화.”
닥쳐, 이든. 더 말하지 마.
“사마귀는 사람을 찢어.”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는 류이든. 예전에 어떻게든 운동을 시키려 할 때 이후로 가장 짜증 나는 순간이었다. 본인도 이상한 짓거리를 한 건 똑같은데 어쩜 저리 당당할 수 있는지. 자기성찰이 몹시 모자란 풍뎅이다.
“조용히 하십시오, 장수풍뎅이.”
“조용히 할게! 사마귀는 장수풍뎅이 껍질도 찢을 테니까.”
저 망할.
……그래도, 사마귀의 행동 양상 중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으니, 후회하지 않는다.
“자, 잠깐만! 그럼 카메라도 혹시?”
채하민이 보기 어려운 빨간 얼굴로 내게 묻는다. 내가 그걸 어떻게 확신하겠니. 다만.
“…높은 확률로 설치돼 있었겠지.”
“오, 와, 나 펑이라고 입으로, 와, 동화야, 준아, 나, 와아, 어떡해!”
채하민은 몇 초 전의 자신을 숨기고 싶어졌는지 소파에 고개를 파묻는다.
그 와중에 쌍성 씨들은 나를 보며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곤 악수를 청해온다.
“얼음왕자였던 내가 곤충 세계에선 당랑권 고수?”
라는 독특하고 망측한 문장과 함께. 사마귀이면서 왕자인 존재라니, 논리학자들이 개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욕하겠군.
“…감사합니다.”
나는 그 악수를 공손한 자세로 받으며 결정했다.
이번 촬영이 방영되고 나면 한동안 이현재가 여론을 알려줄 때 그 무엇도 듣지 않겠다고.
류이든을 제외한 모두들 정신적인 수치스러움을 느끼고 나서, 정말 이번 방송의 컨셉에 대해 MC분들이 설명해 주셨다.
“이번 건 관찰 카메라 아니니까, 집중해서 들어주세요!”
아까 전에 한껏 딴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괜히 집중했다.
“자아, 우리 예성이랑 저, 쌍성이가 열심히 계획한 거예요! 이게 다섯 분이 나름 다 개성이 강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개성을 극단적으로 살리는 방향으로 해볼까 해요.”
‘극단적으로’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불안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예성 씨가 관찰 카메라에서 완전한 표정 관리로 괴상한 짓을 하는 거나, 그런 괴상한 짓을 대본으로 작성해 준 혜성 씨나 하나 같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당연히 기존처럼 게임이나 인터뷰, 준비해 오셨을 장기자랑 같은 건 다 할 거예요. 그런데 사이사이마다 방금 했던 관찰 카메라처럼 저희가 돌발상황을 일으킬 거고, 곤충의 힘을 보여줬듯 능력을 보여주시면 돼요. 순발력! 그리고 거기서 피어나는 재능! 꽃돌이라는 별명도 있는 여러분들의 예능 완전 적응을 위한 저희의 마스터 플랜! 새로운 팬들이 가장 많이 입덕이 가장 많이 된다는 이곳은!”
…갑자기?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있던 대기실에서 스태프분들이 한꺼번에 초라한 생일용 폭죽을 터뜨린다. 하찮은 종이의 나약한 세례 아래서 쌍성이 소파 위로 튀어 오르더니, 만세 포즈를 취하며 외친다.
“아이돌 공작소!”
정신 없는 오프닝 씬.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쌍성은 미칠 듯이 웃고 나선 우리 한 명 한 명의 손을 꼬옥 붙잡아주었다.
“어으, 리더가 이든 씨죠. 눈치 엄청 빠르네. 동화 씨도 바로 보조 맞춰 주고. 팀합이 좋네요. 어떻게 거기서, 그, 그런.”
혜성 씨가 류이든과 내 손을 번갈아 잡다가 아까 전의 그 혼돈이 다시 떠올랐는지 다시 웃으신다. 아무래도, 힘든 시간이 되지 않을까.
* * *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장소를 옮겼다. ‘공작소’라는 이름에 맞춰서 폐공장 느낌으로 꾸며진 세트장이 눈에 띄었다.
한창 멘트를 치고 있는 쌍성이 우리를 호명하기 전까지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이현재와 석준이 서로 손을 꼬옥 부여잡고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상대적으로 어린 녀석들이 부담감에 떨고 있는 걸 보니 약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 이번에 강렬한 흥으로 돌아온, 블로센스입니다!”
부름에 맞춰 들어가, 류이든의 신호를 따라 인사를 하고 나자 쌍성은 맛있는 먹잇감을 보는 짐승의 입 모양으로 웃고 있었다.
“오우, 다들 조금 긴장한 것 같아요, 우리 블로센스.”
“아니, 편집 순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아까 전에 관찰 카메라 할 때도 긴장한 것 같던데.”
“그런데, 딱 한 분! 전혀 긴장하지 않은 분이 보이는데, 동화 씨!”
갑작스런 호명, 대본에도 없던 부름이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망할 인간들아.
“네, 동화입니다.”
“어우, 역시, 간결한 인사말이에요. 블로센스에서 가장 침착한 멤버라던데 맞나요?”
“맞습니다.”
“어우, 그렇군요.”
바로 그때 폐공장 드럼통에서 괴성과 함께 아마도 무서워 보이려고 한 듯한 분장의 사내가 뛰쳐나와서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그에 다른 멤버들이 급한 비명을 지르며 내 뒤쪽으로 옹기종기 모여 숨었다.
…아, 이게 그 갑작스러운 상황이군. 내가 극단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건 침착함인 거고. 과제가 주어지면 제대로 해내야 하는 법이다.
어느새 내 앞까지 도착한 괴생명체를 연기한 분을 위해 고개 숙여 인사부터 드렸다.
“…안녕하십니까. 블로센스의 동화입니다.”
그분은 잠시 멈칫했지만, 직업 정신이 투철하신지 당황하지 않고 다시 내 얼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뒤에 서 있던 멤버들이 ‘힉’ 하고 짧은 비명을 지르곤 몇 발자국씩 물러났다. 마침내 정면에서 20센티미터 간격을 두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을 때였다. 자세히 보니 얼굴 곳곳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대기를 하신 걸까.
침묵 속에서 나나 저분이나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분은 당황한 표정,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표정, 망설이는 표정이 순차적으로 얼굴에 나타나더니, 대뜸 수치스럽다는 듯 얼굴을 푹 숙이곤 뒤로 몇 걸음 걷더니 후다닥 달려 나가셨다.
“뭐, 뭔, 크핰, 표정으로 지금 무찌른, 흐하핳, 거야?”
나를 숨죽이고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리는 혜성 씨. 예성도 박수를 치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와, 침착함 잘 봤습니다. 저분이랑 약속했거든요. 더 뭘 해도 아무 소용 없겠다 싶을 때쯤 도망쳐 주시면 된다고. 얼굴 딱 4초 마주했는데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나 봐요.”
“아니, 그나저나 이든 씨, 리더면서 동생 뒤로 숨는 건 좀!”
류이든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원래 자리로 나온다.
“에이, 다 방송이니까 그렇게 했죠. 우리 동화 돋보였으면 해서 안 무섭고 안 놀랐는데도….”
라고 변명을 장전하고 있을 때 아까 전 도망치신 그분이 괴성과 함께 이쪽으로 달려오신다. 류이든은 자동 반사처럼 튀어 오르더니 내 뒤쪽에 안착했다.
깊은 고요가 잠시 맴돌고, 분장하신 분이 기분 좋다는 듯 다시 촬영장을 나가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컨셉 아니네!”
“거의 뭐 반응속도가 운동선순데!”
쌍성이 건수를 잡았다는 듯 류이든을 때려잡는 걸 보면서 나는 느꼈다. 오늘 촬영은 더럽게 정신없을 거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