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3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32화(132/343)
132.
처음부터 관찰 카메라로 산만하게 출발한 촬영. 우리는 폐공장의 높낮이가 다른 드럼통 위에 앉아 있었고, MC들은 정비복을 입고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컨셉인 건지 모르겠다.
“이야, 좋습니다. 우선 다들 자리에 앉아서 오늘 공작할 아이돌분들 한 명 한 명 자세히 살펴볼까요! 예성아, 견적서 가져와라.”
견적서라니 본격적인 용어 선택이군.
실제로 서류 봉투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낸 쌍성은 멤버들 한 명 한 명을 짚으며 특징 같은 걸 짚어준다. 확실히 괜히 3년이나 방송된 건 아닌지 조사량이 상당했다. 데뷔 초의 일화까지 언급됐으니까.
“오, 하민 씨가 동화 씨 작업실에 들어갔을 때 화들짝 놀란 일이 있다고요?”
예성 씨가 견적서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토크를 주도하면, 혜성이 리액션과 멤버들의 과장된 연기를 유도한다. 저건 내가 작업하다가 안 풀리면 소파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다는 일화로, 최근까지 버리지 못한 버릇이기도 하다.
예능이 익숙지 않은 우리가 최대한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멤버들 프로필을 읽고 있을 때였다.
“어? 우리 준 씨는 위즈니, 아, 이거 그냥 얘기해도 돼? 저작권으로 고소 먹는 거 아냐?”
“3년하고 그렇게 종영하면 그것도 예능적으론 괜찮을 것 같아.”
“그치? 이만큼 해먹었으면 고소 엔딩도 나쁘진 않다고 봐. 어쨌든 위즈니 오타쿠라고 하는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이 참 자랑, 스럽구나.
“어우, 안 되겠네. 시작!”
혜성이 그렇게 소리치자 딱 1초 정도 피아노 음 하나에 드럼 비트 하나, 그리고 현악기, 아마 바이올린의 짧은 음이 하나 울려 퍼진다.
‘뭔데, 이게.’
그러나 나와 달리 석준은 자리에서 펄떡 일어선다.
“엘리엇 인 새드 랜드, 엘리엇 솔로 곡!”
……와우.
“정답! 다음!”
이번엔 둥― 하는 전자음이 하나 울려 퍼지고.
“아, 프루츠 월드 마녀의 독백 중 작품 중후반부에 나오는 ‘개인적 결함’입니다!”
석준이 한껏 설레고 감동 받은 표정으로 두 손을 가슴 앞에 꼭 모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답한다.
“오늘 봤던 시간 중에 말이 제일 빨라요. 정답! 다음!”
그렇게 5번 정도 더 했는데도 석준은 망설임 없이 정답을 외쳤다. 약간 경이로워질 지경이었다. 류이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박수를 미친 듯이 쳐댔고, 이현재와 채하민은 나처럼 경이에 빠진 표정으로 입을 약간 벌리고 있었다.
“와… 대체 이 정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예성아, 너는 너가 출연한 드라마 OST로 하면 할 자신 있냐?”
“형은 형이 출연한 코너 시작 때 배경음악으로 1초 들려주면 코너 이름 말할 수 있고?”
쌍성은 그렇게 잠시 자신들끼리 싸우다가 석준에게 눈을 돌렸다.
“준 씨, 이거 시청자분들한테 말해 줘야 돼. 저희가 뭐 사전에 준비해 오라고 한 적 있나요?”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위―즈니 보―고 노력하시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모두 위즈니를 보시―고 구원 받으세요!”
그건 사이비 교주가 할 만한 소리잖아, 준. 저게 홍보인지 위즈니를 보지 말라는 경고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혹시 블로센스 위즈니한테 광고라도 받았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 * *
“자, 다음은 동화 씨 차롄데…… 세상에나 만상에나 천상에나 지상에나! H대 재학생이라고요?”
“…맞습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연습생 기간은 어떻게 보내신 거예요.”
저도 모릅니다. AI가 열심히 했나 봅니다.
“동화가 기억력이 진짜 좋아요.”
류이든이 팔불출 아버님마냥 박수 치며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저희가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까 아는 게 엄청 많아 보이더라고요. 막 철학자 얘기도 엄청 다 알고 계시고 논리적으로 대답하는 모습도 자주 보이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지동화의!”
“아무 말 타임!”
……그게 무슨 아무 말입니까.
“지금부터 10분 동안 동화 씨는 말을 할 때 이치에 맞지 않는 말만 해주셔야 합니다.”
“뭔가 ‘어, 이건 좀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대담만 해주시면 됩니다. 너무 이치에 맞게 말하시면 애교를 하셔야 하죠.”
……그래, 수용.
“아, 또 우리 동화 씨가 애교 부리는 걸 보고 싶은데, 대화 주제는 뭐로 할까요. 우리 멤버분들도 자유롭게 말을 걸어주시면 됩니다.”
멤버들까지 공식적으로 나를 골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동화는 이든이가 귀엽지?”
류이든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아니.”
무의식에 가까운 반응이 나왔다. 평소에도 류이든이 헛소리를 할 때마다 곧바로 반응하던 습관.
대답하는 순간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광적으로 날뛰었다. 플라톤이 말한 엔투시아스모스를 이렇게 확인할 줄이야.
“그건 이치에 맞죠! 전혀 안 이상한데요!”
“애교! 애교! 얼음왕자였던 쟤가 사르르 녹아 버려!”
미친 인간들.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든 형은 귀엽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이치란 논리 형식에 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진리 판단의 영역에서도 논할 수 있으니까, 이치에 맞는 말이다.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에이, 얘가 어디가 귀여워.”
예성이 곧바로 반박했고,
“맞아요! 이든 형은 애교하면 징그럽다구요!”
이현재가 곧바로 말을 이어받는다.
“맞지, 맞지. 저건 귀엽지는 않지. 잘생긴 건 맞아도 저 덩치에 애교는 조금 받아들이기 힘들지!”
혜성까지 반박하자 분위기가 기묘하게 돌아갔다.
“귀여움은 아기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합니다. 제 눈엔 이든 형이 충분히 아기처럼 보입니다.”
논쟁에서는 진실보다 승리가 중요할 때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질렀고.
“아니! 저 덩치가 아기로 보일 수가 없지!”
“덩치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제 눈에 이든 형은 한 줌으로 보일 정도고, 충분히 귀엽, 습니다. 또한 ‘아기 같음’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상황에, 보편적 주관을 확인하기 위한 충분한 논의도 진행되지 않았으니 ‘류이든은, 귀엽다’라는, 하, 제 주관적 판단은 틀릴 근거가 없습니다.”
이든을 제외한 멤버들과 MC가 한마음 한뜻으로 류이든의 징그러움, 전혀 귀엽지 않음을 주장했고, 나 홀로 외로이 류이든이 귀엽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풍경.
그 사이에서 류이든은 멍청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중얼거렸다,
“…어, 이거 뭔가 기분이 좀 이상한데.”
하지만 우리는 그 반응을 완전히 무시할 뿐이었다.
“팬분들께선 이든 형은 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를 부정하는 것은 우리를 응원해 주시는 루미너스의 안목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팬분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 고작 안목 없는 인간으로 치부하는 것이라면 그건 배은망덕한 짓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건 우린 모르겠고! 저걸 봐! 귀엽냐고! 양심에 손을 얹어 봐요, 동화 씨! 눈 딱 뜨고 봐봐! 귀여워?”
그렇게 격렬한 논쟁 끝에, 결국 민주주의의 폐단인 다수의 의견에 따라 ‘류이든은 어느 구석을 보나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인간’으로 결정됐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승복하자 멤버들과 MC는 류이든에게 달려가서 귀엽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한다. 류이든은 이기고 감사 인사를 받아 기분이 좋아야 할지, 아니면 결론의 내용에 기분이 나빠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류이든에게 다가가 손날로 목을 툭 치며 한마디를 짧게 남겼다. 물론 입을 열기 전 MC쪽에서 ‘사마귀는 풍뎅이를 찢어.’라는 말이 들려오긴 했다.
“형이 조금만 더 귀여웠으면 제가 이겼을 겁니다.”
차마 귀엽지 않다고는 내가 앞서 한 말이 있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류이든은 이에 한껏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이게 다 자기가 가르친 예능 특강 때문이니까 탓할 순 없을 거다.
현장이 수습되고, 이제는 내가 벌칙을 받을 차례가 됐다. 모두들 드럼통이나 바닥에 앉아 있는데 나만 중간에 딱 서 있으려니, 삶에 대한 회의감이 샘솟는다.
“우리 동화 씨는 애교보다는 다정한 말 뭐 그런 게 훨씬 더 많이 서치되던데. 오늘 블로센스의 역사에 한 획을 그어 봅시다!”
멤버들은 환호를 지르며 호응한다. 누군가를 나락으로 밀어 보낼 때만큼은 결속되는 점은 참 아름답지 않나 싶다. 망할 곤충과 식물 놈들.
“동화야, 이렇게 하자, 이렇게!”
그중에서도 늘 나를 놀리는 데 진심인 류이든이 종이에 대본을 써선 나에게 건네준다.
“……형, 집 가면 개인적으로 대화 좀 할까.”
“우웅, 이든이는 동화가 귀여워하는 아기인데두?”
정말, 표정 관리하기 힘들군. 나는 모든 것에 환멸이 나서 손에 있는 종이를 차근차근 읽었다. 망할, 이게 뭐람.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얼마나 고된 일이란 말인가. 어째서 이 일에 그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거는 걸까. 그러나 이런 의문조차 그들에겐 배부른 무언가로 보이지는 않을까. 무수히 많은 의문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자, 그럼 오늘! 블로센스의 역사가 새로 써집니다. 본인 스스로도 얼음왕자라고 부를 정도인!”
스스로가 아니다. 자발적인 행위는 더더욱 아니었고.
“동화 씨가 사르르 녹는 날! 아이돌 공작소가 드디어 완성한 애교 만능 천재 아이돌! 지금 바로 보여주세요!”
나는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두 주먹을 볼에 가져다 댔다.
“동화는, 너랑 같이 있고 싶은데, 냥.”
냥 소리와 함께 오른쪽 주먹을 꺾어 내리며 볼에 한 번 비빈다.
망할, 인생.
“아아! 아아아아아!”
류이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른다. 채하민은 공감성 수치가 오는지 비명을 지르면서도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류이든이 준 대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겠지.
“밖에 나갈 때… 데려가 주면 안 될까?”
그리고 손을 원으로 만들어 앙 하고 베어 무는 시늉을 한 뒤 하트 모양으로 바꾼다.
“어떡해. 세상에.”
이현재의 단말마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아직 마지막 음절이 남아 있다.
“냥.”
나는 거기까지 뱉고 나서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차마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을 수가 없어서.
목화에게, 심바에게 이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날로 내 생을 마감하고 싶어질지도 모르니, 보지 말라고 말해 두어야겠다.
“와아아아아, 동화 귀여워!”
류이든이 미친놈 아니랄까 봐 다시 달려와선 나를 단숨에 들어 올린다. 예능의 기본은 반복이라는 류이든의 말이 떠올라 재빨리 손날로 놈의 목을 내리쳤다.
“내려놔, 망할 풍뎅이.”
이전보다 훨씬 더 힘이 실린 것은 기분 탓이다.
“와! 사마귀가 공작소를 찢어 놓으셨다!”
예성은 거기까지 보고는 감동 받은 듯 격앙된 목소리로 박수를 쳐댔다.
쓰러진 류이든 옆에 우뚝 선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다시 얼굴을 숨긴 뒤 드럼통 위로 들어갔다.
더는 그 무엇도 보고 싶지 않다. 닫힌 방 속에서 무수히 많은 타인의 시선을 받고 있자니 이곳이 지옥인가 싶은 생각이 차올랐다.
“이야, 좋았습니다. 모든 게 저희의 각본대로 되는 것 같아 기쁘네요, 예성 씨.”
“사실 뭘 말하든 이치에 맞다고 우길 예정이었잖아, 우리.”
쌍성은 즐겁다는 듯 서로 손을 맞대 박수를 짝짝 쳐대고 있었다. 그래, 저건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 괜찮고, 또한 상관없다.
하지만.
“오늘부터 동화한테 말 걸 땐 다 끝에 냥 붙여.”
“그래, 무조건이지, 형.”
“저도 시행할게요. 과외할 때도 붙일 거예요.”
“냥.”
이든, 하민, 현재, 준 순으로 이어진 대화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수치스럽군. 작업실에 가서 은거하고 싶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