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3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34화(134/343)
134.
어느새 예고 졸업반에 오른 한 고등학생.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인생 현타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 류이든이 부른 ‘절벽과 소년’을 들으며 위로 받고, 난생 처음으로 밥 대신 앨범을 산 데다 현장까지 한 번 뛰어봤다. 심지어 거기서 계를 타기도 했고.
하지만 고3이라는 시기, 그리고 미술 입시의 지옥 같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요즘은 방구석 덕질만으로 모든 것을 해소하고 있는 형국이다.
오늘은 런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예능 ‘일하는 중인데요?’에 출연한다고 한다. 정작 볼 떡밥이 끊기는 일은 없는데도 불구히고, 무대 위의 모습은 결핍으로 남는 기분이다.
‘……형들, 빨리 컴백 하자! 컨셉 필름 개대박이었어!’
이현재는 자기랑 동갑이지만, 원래 아이돌이 자신과 동년배면 한두 살쯤 양심을 속이는 게 관례다.
그때 핸드폰이 짧게 진동하며 미리 맞춰둔 방송 시간을 알린다. 그는 핸드폰을 톡톡 두드려 ‘일하는 중인데요?’의 온에어로 들어가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파스텔톤의 디자인으로 날카롭게 작성된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오늘의 노동자 블로센스’라는 자막과 함께 블로센스 멤버들이 올라와선 멍한 표정으로 동물 생태 연구소를 바라보는 모습이 곧바로 이어진다. 화면이 점점 클로즈업돼 완전히 아득한 세계의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는 듯싶은 지동화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동화/21세/오늘의 아버지 담당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앞에서 갑자기 기린과 고릴라, 코끼리가 보이니까.”
―하민/21세/토끼
“와! 제가 동물들 진짜 좋아하거든요. 처음에는 힐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설렜어요.”
―동화/21세/동물애호가는 아니라고 주장 중
“동물을 평소에 엄청 좋아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대화가 통하질 않으니까.”
지동화와 채하민의 인터뷰 화면 뒤에 직후 ‘이래도? 이래도 그 맘 변치 않을 거야?’라는 자막과 함께 채하민이 토끼 무리에게 밟혀 쓰러지는 장면과, 지동화가 심바의 턱밑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이전의 그 어떤 표정보다 풀려 있는 표정을 짓는 모습이 연달아 등장한다.
방송은 시종일관 긍정적이고 밝으며, 행복한 분위기가 맴 돈다. 물론 그 말이 출연자 또한 그랬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류이든은 코끼리에게 농락당하면서 눈에 승부욕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자기와 비슷한 키의 코끼리가 모자를 어느 쪽으로 흔들지를 예측하고 빼앗는 단순한 게임인데, 류이든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지동화와 류이든이 이 사태에 대해 인터뷰한 것이 교차되어 편집된다.
―동화/21세/만물의 영장
(이든 씨가 코끼리에게 심리전에서 졌다는 얘기가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죄송하지만, 그분이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블로센스는 4인조라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도 있는데, 만일 코끼리에게 졌다면…….”
그리고 지동화는 그저 미소 짓는다.
―이든/22세/어… 만물의… 영장…?
(패배의 소감은?)
“내일은 제가 꼭 이길 거라서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요. 어차피 승자는 류이든!”
(동화 씨가 코끼리한테 지는 인간은 모르고, 블로센스는 4인조라고 하시던데?)
“…어, 이건 좀 상처받는데요! 저 그렇게 멍청하진 않았는데. 그죠? 아니, 저 진짜 만물의 영장 그 자첸데!”
편집으로 인터뷰 사이에 진자 운동하는 코끼리의 코에 따라 몸을 왔다 갔다 하는 류이든의 바보 같은 순간이 삽입된다. 자막으로 ‘…저희는 뭐라고 답할 자신이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류이든의 인터뷰.
(그럼 동화 씨에게 사과와 감사의 마음을 담은 영상 편지 한번?)
“…동화 형, 내가 멍청해도 사랑해 줄 거지?”
전환되는 화면은 다시 지동화의 얼굴을 비춘다.
―동화/“21세-”/고개 젓는 게 단호한 편
(무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다음으로 이현재와 석준 쪽은 이현재의 멍한 표정과 석준의 해맑은 표정이 두세 번 교차 편집되더니 이현재가 인터뷰실에서 한숨을 짓는다. 그 화면에 석준이 거북이(본명 석상이)에게 ‘헤이든!’이라고 외치며 달려가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현재/19세/인생이란 무엇일지 고민 중
(준 씨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하면?)
“…혹시 비속어 약간 섞여도 되나요?”
(일단 말해보시겠어요?)
그리고 이현재가 입을 여는 순간에 컷이 편집되며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대체 저 어린 아이의 입에선 무슨 말이 나왔기에 모두 편집됐을까.
―석준/20세/헤이든집착남
(석상이랑 지낸 첫날은 어떠셨나요?)
“헤이든이랑 재회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재회요?)
“넵!”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프루(삐-)에서 나오는 거대 거북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현재와 석준이 열심히 일하면서도 헤이든을 찾아다니는 석준과, 그에 한숨 쉬면서도 석준에게 은근히 맞춰 주는 이현재의 모습이 이어진다,
―이든/22세/길수에게 연전연패 중
“준이랑 현재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데 연습생 때부터 베프였어요.”
그리고 화면이 전환되고 석준이 이현재에게 장난스레 물을 뿌리자 굳은 표정으로 물뿌리개를 부여잡는 이현재의 모습이 잠시 나온다. ‘꽃에 물 주는 중’이라는 되도 않는
―이든/22세/정직한 편
“준이는 별로 생각이 없고, 현재는 생각이 많은 편이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거든요?”
다시 화면 전환.
“현-재야, 자, 잠깐!”
이현재는 물뿌리개를 휘저으며 석준에게 물결의 호흡을 한껏 느끼게 해 주었다.
“형, 제가 오늘 헤이든 곁으로 보내드릴게요.”
“헤이든은 여깄는걸!”
“그만! 걔는 석상이라니까!”
“헤이든은 여전히 내 품 안에 있어!”
“그러면 헤이든은 죽은 거잖아요! 언제는 살아 있다며!”
“이든 형님도 살아 있잖아!”
“아무 상관없는 개소리 그만!”
이상하게 이어지는 대화, 쏟아지는 물이 난무하는 화면. 그리고 그 화면 아래 자막에 광기, 단 두 글자만이 단호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 광기는 따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채하민은 시종일관 토끼의 몸통 박치기를 당하면서도 맑게 웃으며 ‘이 정도까지 가까이 와줬다니 고마워!’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반드시 너희들한테 동족으로 인정받을, 커헉.”
말하는 와중에도 다리를 쾅 쳐대는 공격적인 토끼에 채하민은 비틀거리면서도 절대로 굴하지 않는다. 마치…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동료를 위해 절대 굴하지 않는 것처럼.
“자! 여기 너희가 좋아하는 이갈이용 풀이 왔어요!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어, 루시! 너무 많이 들고 갔, 크억.”
사육사도 가끔 헷갈리는 이름을 정확하게 부른다고 한들 토끼는 절대로 거슬림을 참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된 채하민의 인터뷰 장면. 해맑게 웃고 있지만 가릴 수 없는 피로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하민/21세/토끼부족장
“오늘은 제 곁에 가까이 와 주는 친구들이 늘었어요. 루시도 그렇고, 캐디도 그렇고. 이러다 보면 언젠가 한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좋은 건가요?)
“가족이 되면 기쁠 것 같아요. 저렇게 작은 아이들이 훨씬 큰 저한테 마음을 열어주는 거잖아요?”
(……본인이 사람이라는 자각은?)
인터뷰어의 질문에 채하민은 다시 웃는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어김없이 등장한 지동화의 인터뷰 장면.
―동화/21세/호랑이부족장
(하민 씨가 인간이길 포기했던데.)
“…네?”
지동화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 담담한 표정이 어째선지 웃음을 유발했다.
여기까지의 방송을 보던 예고생은 입을 꾹 막으며 웃음을 참으려 노력한다. 이 고시원의 벽은 좀 지나치게 얇은 편이라 크게 웃으면 곧바로 피드백이 돌아올 정도였으니까.
잘못하면 지루한 다큐멘터리가 될 법한 컨셉의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편집과 멤버들의 표정 및 멘트가 적절히 어우러져 꽤나 웃긴 방송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자 방송의 백미이자, 가장 힐링스러운 분위기는 지동화 파트였다. 심바를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무뚝뚝한 인간과, 그런 지동화를 왠지 사육사보다도 가까이 여기는 심바의 케미는 보는 사람의 심장을 괴롭게 했다.
‘와……. 우리 부모님이 나 보시는 눈빛이 딱 저런 느낌인데.’
책상다리하고 앉은 지동화는 그 위에 고개를 비비고 있는 심바를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혹여 불편한 곳은 없는지 살피며 밥을 먹이고 있다.
게다가 방송 뒷부분에 등장한 지동화가 밤을 새우며, 책을 읽고, 사이사이 심바를 바라보는 눈까지 합쳐지자 어렸을 때 부모님이 아픈 자신을 위해 뜬눈으로 지새운 밤이 상기될 정도다.
서울에 홀로 살며 고시원에 눌러앉은 그는 어째서인지 슬퍼지면서 훈훈해진다. 왜 호랑이를 돌보는 모습에서 부모님이 떠오르고 난리야.
그는 방송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서글픈 마음으로 또렷이 지켜보다가, 야작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심바를 안고 있는 지동화를 그릴 예정이다.
‘원래, 덕심은 창작의 원천이니까…….’
한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덕후들의 테제를 명확히 이해하게 된 그였다.
* * *
‘일하는 중인데요?’의 방영 이후 방송 클립이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다고 한다. 이현재가 최근 쉬는 시간이나 비는 시간마다 수시로 공부하느라 많은 정보를 요약하진 못했지만, 우리 멤버들에게 동향을 수시로 알려주는 것 자체가 본받을 만한 태도다.
“아, 동화는 고양이냐 호랑이냐.”
류이든은 연습실에서 춤을 추다 말고 갑자기 내 생물학적 출신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놓았다. 어제 프로그램을 보고는 감명이 깊었나 보다. 미친 강아지.
멤버들은 그에 달라붙어서는 다 함께 나를 고양이와 호랑이 중 무엇으로 규정할지 고민하고 있다. 아쉽지만 나는 인간이다.
어쨌든 이제 곧 컴백, 이제 컨셉 필름과 공개 컨셉 포토, 멤버별 티저가 순차적으로 공개되고 곧 컴백까지 쭉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컴백도 잘해보자, 얘들아.”
류이든의 감성이 샘솟았는지 진지한 한마디를 던진다. 아까 전만 해도 내가 고양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우리, 왠지 모르게 계속 운수 좋은 일이 터져 주잖아. 대박 내자, 대박.”
그래, 대박이 아닌 중박이라도 내기 위해서는 한 번 더 예언이 말해 준 피해야 할 연예인 목록을 떠올릴 필요가 있겠다.
“아, 이번에 호핀 분들 후속곡 기간 우리랑 겹친다더라.”
채하민은 방금 떠올렸다는 듯이 박수를 한 번 크게 친다.
“드디어 목화랑 동화가 같이 한 화면에 출연하겠네.”
“…어디서 불러줘야 같이 출연하든지 하지.”
“에이, 형제 모두 아이돌인 집안이 어디 흔한가?”
류이든은 손사래를 치며 무조건 부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걱정이 아니라, 목화랑 같이 어디 나가면 긴장될 것 같아서 그러는 거다.
그리고, 살펴보면 아이돌 같은 연예인이 되는 데 유전의 영향이 큰지 가족끼리 연예인인 경우도 흔한 편이니 많진 않더라도 없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불리진 않겠지.
내일은 데뷔 임박 주간이 오기 전 마지막 휴식. 아무런 일정도 잡지 않았으니 숙소에서 하루 종일 쉴 예정이니까, 오늘의 에너지 소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신나는 음으로 구성된 통화 멜로디가 큼직하게 울린다. 음, 채하민 것이군. 내가 핸드폰을 모든 경우에서 무음으로 해두는 것과는 달리, 방송이나 수면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항상 소리를 켜 두는 채하민 덕분에 자연스레 암기됐다.
핸드폰의 화면을 확인한 채하민은 표정이 순식간에 굳더니 재빨리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오우,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류이든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너무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 싶었지. 아마도 채하민의 아버지겠지. 고작 드라마에 출연했다고 부자 갈등이 해결된다면, 부모와 절연하는 자식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다.
그리고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채하민이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오늘 연습 여기까지! 동화랑 하민이가 연습실 청소 좀 하고 들어오자!”
사회성 수치가 극에 달한 인간답게 재빨리 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류이든.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청소를 자연스레 맡긴 것을 따져야 할지 모르겠군.
혼자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한 석준이 자기도 돕겠다고 나섰지만, 이현재 선에서 자연스레 정리가 되고, 연습실에 둘만 남자 채하민이 조심스레 내 옆에 앉는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가…….”
역시 예상대로다.
“너를 좀 보고 싶으시다는데.”
……그건, 정말 예상 밖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