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3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35화(135/343)
135.
채하민의 아버지, 채두식은 오늘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섰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내를 잠시 내려다보고, 새삼스레 감상에 젖고 만다.
어쩌다가 자신이 사장이라 불리는 자리까지 올라왔는지, 하나하나 회상하고 만다.
“여보, 깼어?”
“응, 더 자. 커피는 내가 챙겨 먹고 나갈게.”
지금은 집안일의 많은 부분을 사용인을 고용해 해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침 커피만큼은 직접 내려 주려는 아내의 습관을 알기에, 채두식은 이렇게 말한다.
“에이, 그래도.”
아내는 꼭 일어나선 기지개를 한 번 켠다. 채두식 역시 아내를 따라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상쾌한 하루다.
“여보, 그나저나 하민이랑은 대체 언제 화해하게요?”
채두식은 아들의 이름이 들리자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진다.
“…아무리 그래도 사업은 이어받아야 되는데.”
“어우, 또 그 얘기. 서바이벌 끝날 때는 허락해 줬으면서.”
“젊을 때 딴일 하는 거야 뭐, 그리 큰 문제 아니니까 그런 거지. 그렇게 진심일 줄 내 알았나. 데뷔한다 그랬을 때도… 워낙에 내가 그쪽은 잘 모르니까는……. 게다가 하민이가 속한 팀이 그렇게 잘 될 거라고 생각도 않았어. 데뷔해도 잘 안 되거나, 아니면 뭔가, 사건 같은 게 터지든가.”
“살면서 한 번도 손 안 댔으면서.”
“그건… 나도 참 그래요.”
그는 그깟 회사라는 말에 순간 욱했던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애초에 사업을 했던 이유가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주객이 전도돼도 정도가 지나치긴 했다.
“그 스승님이라는 분께서 보시면 잘도 좋아하시겠어요, 그죠? 너무 그러지 말고 적당히 허락해 줘요.”
그러게. 그 친구라면 이 이야기를 듣고는 그저 웃겠지.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자신의 뜻을 자신에게 말해 줄 것이다. 번호조차 몰랐지만, 게다가 지금은 만날 수도 없는 사이지만, 그럼에도 여태껏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사람.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구만. 왠지 내 감이, 하민이가 회사를 이어야 모든 게 바람직할 것만 같아서 그래.”
“…정말? 그 ‘감’이에요? 아니면 그냥 하는 말로 감이야.”
“……그 ‘감’이 맞아. 그래서 문제라는 거야. 내 감이 틀린 적이 잘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물론 사업 초반에는 감이 아직 발달하지 못해서 그런지 위태로웠던 적도 있지만, 채두식은 알고 있으며, 또 믿고 있었다. 자신의 감을 따랐기에 현재의 회사가 있을 수 있었다고.
“모르겠어.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은데, 이게…….”
그의 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슬슬 채하민이 아이돌 생활을 그만 두고 일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마치 그것 말고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말라는 듯이 강렬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차라리 이미 한 번 보고 온 미래에 가까운, 일종의 데자뷰가 다가오는 것처럼.
사업을 성공하며 생긴 고집. 자신이 옳을 것이라는 확신. 이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아들과의 다툼을 질질 끌게 만들고 있다.
“하민이가 그렇게 화내는 거 본 적 없잖아요.”
“……아는데, 하, 차라리 그 팀이 망해 버리면.”
사업가로서의 의식과 아버지로서의 의식이 이렇게 상충하면,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지 채두식은 배운 바가 없었다. 그런 서투름은 결국 거친 표현으로 발현된다.
“여보.”
아내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곤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간다.
차라리 이럴 바에 내 감도 지키고, 가정의 화목도… 아니지, 꿈을 포기한 아들을 앞으로 어떻게 본단 말인가……. 아니지, 그래도.
채두식의 아침은 그렇게 복잡하게 시작된다.
* * *
어느날, 퇴근하고 드라마를 보려고 TV 앞 소파에 앉은 채두식. 회사 일이 바빠 본방을 볼 수는 없기에 유료 서비스로 다시 보기를 시작했다. ‘석류꽃은 다시 활짝 필 테니’라는 감각적인 제목. 동양의 분위기.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는 한 사생아의 이야기. 그 모든 것이 채두식의 감성을 자극했기에,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드라마에 빠지게 된 이유는, 과거의 회상. 내 옛 모습을 조금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미 식은 가슴을 어떻게든 태울 수 있기 때문에.
늙은 가슴은 어째서 이리도 쉽게 공허해지는지 모를 일이다.
연령 고지 이후 시작되는 드라마. 50대의 중년은 그렇게 오늘도 삶의 이유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드라마에 이입해서 한 장면씩 곱씹고 있던 중, 익숙한 얼굴이 나타난다. 자신의 아들. 순간 리모컨을 들 뻔했지만, 장성한 아들이 내가 보는 드라마에 짧게라도 출연하고 있다는 게 놀라운 기분이었다.
손과 몸에 힘을 빼고, 아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자 이어서 또 익숙한 얼굴이 하나 나타난다.
‘저 아이는… 동화라고 했지.’
처음 봤을 때부터, 참 똑똑한 아이라는 게 티가 났다. 눈빛은 나이답지 않은 원숙함이 은근히 보였다. 적어도 젊음의 치기는 씻겨 내려간 30대처럼 보이던 아이. 과거 그 친구와 비슷한 생김새라 더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니, 더 닮았구만. 아주 총명한 기운이 쏙 빼닮았어.”
그렇게 혼잣말을 주절거리고 있던 때, 제인과 지동화의 대화가 차근차근 격정으로 치닫는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걸 잡지 못해 평생을 후회할 것 같다면, 모든 것을 걸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뛰어들라는 말. 그럴 수 있다면 추락조차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억을 자꾸만 자극한다.
‘모든 게 정해져 있어서, 실패로 달려가는 인간이 있다면, 안타까울까.’
채두식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찬찬히 TV 속 얼굴에 집중한다. 한 번, 자신의 선택으로 첫 회사가 무너져 내렸던 때 찾아갔던 한강에서 만난 사내의 얼굴과 기묘하게 겹친다.
“닮았네. 확실히… 닮았어.”
‘실패할 게 분명한데도 모든 걸 거는 인간은, 도박꾼일까. 아니지, 도박꾼은 낮은 확률에 거는 거니까, 확률이 없으면 멍청이일려나.’
강물이 흐르는 걸 보며 사업을 포기할까, 아니면 차라리 콱 강물로 미친 척 뛰어들어 볼까 한껏 고민했을 때.
‘근데, 내 생각에, 남들이 멍청하다고 아무리 손가락질해도 말야.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 바보 같다고 생각할지라도 말이지.’
한강을 앞에 둔 그 친구는 느긋한 미소를 입에 걸고는 말했지.
‘그건 어쩔 수 없지 않겠나? 일단, 받아들여야지. 그렇게 타오르면 후회조차 같이 타오를 테니까.’
그때 이후로 아무런 약속도 없이 한강에서 잠시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저 아이의 얼굴에서, 말투에서, 그리고 말의 내용에서 점점 더 강렬하게 뇌를 지배했다.
채두식은 그에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잠시 친정에 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통화음이 울리는 와중에도 채두식의 감은 갈수록 그 날을 날카롭게 세운다.
―어 여보, 어쩐 일이에요. 혹시 드라마라도 봤나~?
아내는 알고 있었구만. 그러면서 나한테는 보라고 일언반구도 없고.
“그래, 그, 하민이한테, 동화라는 아이 사인 좀 받아달라고 할 수 있는가?”
―직접 말해! 그리고 겸사겸사 화해도 하고! 우리 하민이 쪽에 지원 좀 해줄 래도 눈치가 보여서 못 하잖아! 도시락도 보내고, 어? 우리 애 잘 찍어주는 분들한테 커피도 좀 보내주고! 우리 애 좋아해주는 분들한테도 뭐 좀 쥐여 주고! 그렇고 싶어도 아주 그냥!
“……알겠어, 내 직접 말할게.”
몇 년이 지나도 아내의 말발에는 질 수밖에 없다.
* * *
채하민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조용한 연습실에서 채하민이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가, 나한테 거짓말하는 스타일은 아니긴 한데, 동화 너랑 만나고 나면 다 이해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셔서. 아무리 봐도 믿기 어렵잖아.”
채하민은 그렇게 어물거리며 말한다.
“아무래도 너한테 뭔가 나쁜 말을 하시려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막 너를 이용해서 내 꿈 포기시키려는 건가 생각도 들고.”
나 역시 채하민과 마찬가지로 이게 대체 무슨 맥락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나와의 만남이 채하민과의 화해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어째서 나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지도 역시 모르겠고.
다만 사업하는 분이 한 번 뱉은 말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리는 없으니, 만남으로써 채하민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면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인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그래?”
“그래서, 일단 너랑 관련된 얘기라 하기는 하는데 막 나 때문에 너가 고생할 필요는 없고, 사실 굳이 따지면, 어, 내가 아버지랑 다투는 게 배부른 고민인 것도 알고 있고, 또…….”
말이 길다. 채하민은 자신의 일로 내가 고생하는 게 싫은 것 같지만, 아버님을 한 번 뵙는 것 자체는 아무런 고생도 되지 않는다. 실제로 채하민의 어머니와도 따로 만나 뵌 적 있으니까. 겪을 고통이라고는 고작 해봐야 어색함이 싫은 수준 아닐까.
“하민.”
그렇기에 비록 예의는 아닐지라도 나는 채하민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냈다. 예의를 지키는 것보다 이 토끼 놈이 안정을 되찾는 게 우선일 것 같다.
“아버님이랑 뵙는 거, 나는 괜찮은데.”
“…어?”
“만나 봬도 괜찮아.”
“…진짜?”
“응. 아버님이 약속을 어기는 분은 아니라며. 그럼 만나 뵙는 게 훨씬 합리적이야.”
내 단호한 말에 채하민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지 멍한 표정이 된다.
“그래서, 언제 뵙자고 하시는데?”
“…내일.”
저런, 오늘 밤에 준비해야 할 게 많을 것 같군. 아이돌 활동이 어째서 무역 회사의 경영권을 승계하고 난 후에 도움이 되는지에 관해서 PPT라도 하나 만들어야겠다.
* * *
채하민은, 항상 모든 걸 긍정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오늘 일은 어째선지 그렇게 되질 않았다.
“…동화야, 진짜 괜찮아? 내가 너무 미안한데……. 솔직히 무슨 얘기 들을지도 모르고.”
“너도 내 일로 같이 고민해 주고 했으니, 미약한 보답이지.”
“나는 진짜 한 게 없는데.”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무슨 말이야.”
“나도 하는 거 없다고.”
그러고 나서 지동화는 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청소용구를 꺼내든다. ‘망할 강아지 놈.’이라는 작은 중얼거림도 섞여 있었다.
‘…진짜 착해, 동화.’
지동화가 들었으면 코웃음 치며 자신은 그렇게 착한 인간은 못 된다는 답변을 들었겠지만, 채하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유년기 시절부터 아버지의 사업이 승승장구한 덕분에 항상 지갑이 두툼했던 채하민은, 모자람이 거의 없었지만, 단 하나, 친구가 적었다. 그러니까, 쉽게 열리는 지갑. 그게 채하민이 친구가 적은 원인 중 하나였다.
부유한 재력과 타고난 호구력, 그리고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의 조합은 얄궂게도 이기적인 인간의 눈에는 좋은 먹잇감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정작 채하민은 그런 사람들을 이용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계산적인 성격이 아니었기에, 늘 믿음과 배신이 교차하고 말았다.
친구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꼬여 밥이나 선물을 받아먹고 나서, 정작 뒤에서는 자신을 욕하는 걸 들어 상처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그런 모든 과정을 거쳐도 여전히 머릿속이 꽃밭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건 아마도 동물을 기르며 정을 주는 버릇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채하민에게, 거의 처음으로 생긴 친구와 형, 그리고 동생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은 너무 소중했다. 나름대로 존경하고 있던 아버지와 연을 끊는 한이 있더라도 지키고 싶을 정도로.
“동화야, 내가 어떻게든 보답할게!”
채하민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렇게 소리쳤다.
“……빨리 청소해.”
지동화는 큰 소리에 시끄러운지 표정을 찌푸리며 그렇게 답할 뿐이었다.
매사에 긍정적이어서 친구가 적은 인간과 매사에 부정적이어서 친구가 적은 인간. 둘은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상대방이 자신에게 고마워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 * *
여기까지 모니터로 화면을 확인하던 기지생은 모니터를 끄고 의자에 몸을 누였다.
가능성이라는 녀석은 더럽게 예민해서 원래 정해진 대로 실현되지 않으면 어떻게든 꿈틀꿈틀 일어나 실현되려고 노력하는 개 같은 놈이다. 하드 모드로 진입했던 것은 그런 가능성이 대강 잠잠해진 것 같아서, 완전한 자유를 선물해 주기 위함이었고.
그 덕분일까. 이런 식으로 가능성이 연결되는군. 애초에 채하민이 있던 연습실에 지동화를 투입했던 것은 지동화를 오디션장으로 끌고 나오려는 속셈이었지만, 동시에 이전 생에 이어질 수도 있었던 가능성을 고려한 선택이기도 했다.
즉, 지동화와 채하민은 이전 생에도 연결될 가능성이 존재했다. 나머지 모든 멤버들도, 그렇게 연결될 가능성만을 지닌 채 무너져 내린 이들이고.
참 기묘한 개념이다, 가능성이라는 것은. 인간은 대체 얼마나 무지하게, 서로가 서로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될 가능성을 놓치며 살아가는 건지. 그러니까 자신은, 얼마나 멍청하게 그 모든 인연을 포기하고 연구만 하며 살았던 건지.
“자와, 이리 와 봐.”
최근 혼자 있기 심심해진 기지생은 AI로 반려 강아지를 한 마리 만들었다. 풀네임은 데자와. 대화하기에는 크로노스 영감보다야 자와가 낫다. 개만도 못한 늙은이.
“멍?”
“책 한 권만 가져와 줘.”
데자와는 자신에게 전송된 데이터를 확인한다. 그리고 공간의 틈새 안쪽으로 머리를 비집어넣은 뒤, 책을 한 권 물어온다.
“잘했어, 자와.”
책을 건네준 자와는 기지생의 무릎에 뛰어올라 고개를 비빈다. 기지생은 맨들맨들한 기계 머리를 미소 지으며 쓰다듬어 주고, 책을 들어올린다.
“망할 인생, 그리고 망할 철학.”
책의 제목을 읽으며 한 번 쓸어보는 기지생은, 아주 조금이지만 되살아난 인간의 감정을 토대로,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