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3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38화(138/343)
138.
MMS 연예부 소속 신민수 기자. 블로센스의 데뷔 이후 블로센스 관련 활동에 대한 기사를 주로 써온 이다.
“이번에도 조회수 좀 나오겠구만.”
처음에는 신인 취재를 나온다고 했을 때 약간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신인상 수상 이후로 라이징 단계에 들어선 아이돌 중 하나니까. 게다가 니체 엔터에서 이 그룹을 담당하는 기획팀이나 매니지먼트팀이 인맥이 나쁘지 않은지 새로운 프로그램에도 자주 얼굴을 비췄다.
“성장 속도가 좀 이상해……. 드라마 출연은 아무리 석류 뭐시기가 저예산이었어도 신인이 출연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고.”
드라마에는 디텍션에서 연을 맺은 제인이 강력하게 추천한 덕분이라는 소문도 들었으나, 그것만으로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1군은 아니고, 2군까지는 올해 무난하게 들어오겠네.”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노트북을 만지작대고 있을 때, 옆에 앉은 기자들의 대화가 들려온다.
“이번에도 뮤비에 돈 좀 넣은 것 같던데.”
“니체가 그런 쪽 일은 항상 잘 했잖아. 이슈 대응 느린 게 문제였지.”
“근데 그것도 가수들 의견 전적으로 따라서 그런 거라는 소문도 있긴 하던데.”
“하, 얘네는 뭐 하나 안 터지나. 불화설이나 열애설 하나만 터져도 꽤 짭짤하게 빨릴 텐데.”
신 기자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꾸역꾸역 참아낸다. 자신도 이슈가 터지면 빠르게 달려들어야 하는 기자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런 식으로 남의 불행을 바라는 게 옳은 일은 아니니까.
“불화설은… 은근 찌라시는 있는 것 같던데.”
쫑긋, 귀가 세워진다. 어쩔 수 없는 기자의 본능에 가까웠다.
“여기 그룹에 리더랑 작곡하는 애가 주도권 싸움한다는 얘기 정도?”
…그건 조별 과제할 때도 생기는 건데. 신 기자는 곧 관심을 끊었다. 불화가 아니라 사소한 다툼 정도로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빨리 무대나 보고 싶네. 뮤직 비디오 보니까 곡 퀄리티 괜찮던데.’
실제로 쇼케이스장에도 ‘흥’이라는 곡의 후렴부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기자들도 있었다.
‘차트 인은 무조건 할 것 같고……. 그러고 나면 대중픽도 받을 수 있으려나.’
앞에 두 곡도 좋은 곡이었지만, 클라우디 블루 때에는 대중성은 좋았으나 신인이라 파워가 밀렸고, 마지막 시작은 음악성과 무대에 치중한 탓에 대중성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번 곡은 음악적으로 좋은 건 분명한데… 막귀에도 좋게 들리니까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며 이미 기사 초안을 작성하고 있는 신 기자였다.
* * *
기자 쇼케이스가 무난하게 끝나고 팬 쇼케이스의 시작을 앞둘 무렵, 야외에 있는 쇼케이스 대기 장소에서는 커피차에서 쇼케이스 입장권을 보여주면 아이스 커피와 쿠키를 제공하는 이벤트가 한창이었다.
커피차에는 ‘아들이 속한 블로센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라는 문구가 서예로 써진 간판이 매달려 있었다. 아들이 컴백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채두식 어르신의 개인 통장이 절로 열린 결과였다.
지동화의 팬 역시 그 커피를 마시며 쿠키를 씹으며 전의를 불태우는 중이었다.
‘쇼케이스, 티켓팅, 성공적.’
봄이 무르익은 계절. 중간시험 결과가 나왔기에 평소라면 우울함이 맥스를 찍어도 모자랐지만, 지금은 다르다. 블로센스의 컴백으로 인해 올라간 아드레날린 수치는 마약 같은 효과를 내고 있었다.
핸드폰 알림을 보니, 채하민의 팬이 쇼케이스 후기를 주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서 목을 조를 거라는 협박성 DM이 하나 와 있었다. 토톡, 핸드폰을 두드려 하나의 문장을 완성해 답변한다. ‘나노 단위로 쓸 준비 만반.’
어젯밤에 나온 뮤직 비디오는 이미 밤새서 돌려 보고 오는 길. 아침 강의는 가뿐히 수면 시간으로 대체됐고 그렇기에, 지금은 컨디션이 훌륭하다.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아올 테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지동화가 내 인생 반쯤 조진 거 같은데.”
그녀는 합리적인 인간이기에 알고 있었다. 지동화가 자신의 미래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지동화도 말하지 않았는가. 모든 걸 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내 성적이 몰락한 것도, 아름답다!
이렇게라도 너와 지독하게 얽히고 싶은 마음은 비정상일까, 그녀는 야무지게 쿠키를 베어 물면서 생각했다.
‘비정상일 리가.’
내가 알바해서 번 돈으로 내 돌 덕질하겠다는데 누가 건방지게 손가락질 하냐. 비켜라, 덕후 나가신다.
그녀는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핸드폰으로는 발매된 음반을 무음으로 스트리밍하며, 챙겨온 가방에는 공식 혹은 비공식 굿즈를 가득 채운 채 쇼케이스장에 들어섰다.
* * *
쇼케이스장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운트다운이 화면에 떠오른다.
10에서 시작된, 궁서체의 숫자가 1로 다가가고 나서, 쇼케이스를 위해 촬영된 VCR이 재생된다.
은발의 지동화가 등장하자마자 아직 부족한 면역력 때문에 숨을 참은 그녀는 찬찬히 화면의 색채에 눈을 돌린다. 이현재가 완벽한 폐허 앞에서 눈을 몇 번 깜빡인다. 그러다 완전히 눈을 감은 채 잠에 빠져든다. 다시 눈을 뜨자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동양 느낌이 물씬 나는 가옥 안으로.
‘…아 씨, 세계관 어려워 죽겠네. 뭔데 저게.’
세계관에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덕력은 그런 세부적인 디테일을 놓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지금까지의 정설은 이현재의 꿈과 무의식의 세계 속을, 지동화가 방문했다는 것. 이현재는 꿈을 꿈으로써 하나의 세상을 열고, 지동화는 그곳에 방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은 이현재와 어떤 깊은 관계를 맺어 무의식에서 항상 등장한다는 것 정도다.
그러니까, 저곳은 일종의 또 다른 세계일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동양적인 공간이 무의식 속에 등장한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골머리가 아프다. 덕질의 역사에서 세계관은 알아내는 맛을 던져주지만, 동시에 진을 빼게 만들기도 하니까. 하지만, 재빠른 머리는 SNS에 어떻게 정리해서 올릴지를 체크하고 있었다.
눈을 뜬 이현재는 아련한 표정으로 가옥 밖을 나가 망설임 없이 어딘가로 달려 나간다.
―형.
그리고 마침내 언덕 위 나무 아래서 우울하게 앉아 있는 류이든의 앞에 도착해 이름을 부른다.
―현재, 왔어?
애써 미소 짓는 류이든은 다시 우울해진다.
그 짧은 만남 이후로 VCR은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과거에 계속해서 떨어지는 류이든을 위로하기 위해 동네의 도령들이 모두 모여 밤거리를 거닌다. 류이든은 멤버들과 놀며 조금씩 기운을 차리지만, 문득문득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이든 형. 지금만 생각해, 지금은!
그런 류이든을 채하민이 등짝을 강하게 내리치며 일깨운다. ‘오늘 하루만 한량이다!’라는 채하민의 말, 그리고 그에 다시 웃는 류이든의 모습이 비춰진다.
그리고, 그걸 아련하게 바라보는 이현재와, 그런 이현재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지동화, 아무 생각 없이 리듬을 타고 있는 석준의 모습이 비춰진다.
달빛이 은은하게 차오른 언덕 위, 멤버들은 풀길 사이를 걸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어제 뮤직 비디오에서 들었던 주선율이다. 그리고 찬찬히 울리는 거문고 소리. VCR이 멈춘다. 이제 곧 무대가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녀는 VCR의 내용을 정리하는 걸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과호흡으로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만 같았으니까. 은발 지동화 실물을 볼 수 있다니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거문고 소리와 함께 켜지는 조명, 그녀는 반쯤 기절할 것만 같았다.
단지, 여기, 순간, 흥.
짧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흥겨운 리듬. 그리고 그 아래서 무표정하게 무대를 바라보는 은발의 지동화. 검정색 도포 비슷한 것을 입은 모습에, 숨이, 가, 빠진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무대가 끝날 때까지 숨죽여서, 어떤 비명도 지르지 않으려고 꿋꿋이 참으며-지동화가 귀엽게 독무를 할 때는 미쳐 날 뛸 뻔했다.- 무대 위의 모습을 눈에 담아낸 그녀는, 무대가 끝나자마자 미칠 듯한 포효를 내질렀다.
‘이게 돈의 올바른 사용처고, 이게 복지고, 이게 유토피아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찾아 헤맨 신의 국가가 이곳이다!’
지동화 때문에 철학 공부도 시작한 그녀의 리액션은, 지동화가 보면 흐뭇하게 미소 지을 종류였다.
* * *
오랜만에 올라오니, 더욱 정겨운 기분이다. 우리의 결과물을 좋아해 주는 분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돌이 가지는 특권 중 하나 아닐까.
나는 거친 안무 때문에 달아오른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숨을 골랐다.
간단한 토크와 수록곡 무대 등 몇 가지 이벤트가 남았지만, 가장 중요한 무대를 실수 없이 마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다.
“인사 드리겠습니다, 둘, 셋.”
“To be bloomig, 블로센스입니다!”
그와 동시에 팬분들의 환호성이 나온다. 저분들에게 우리는 대체 어떤 모습으로 보이며, 어떤 존재일까. 우리의 성공이 저분들에겐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이렇게 ‘사랑’을 받는 순간이면 해소할 수 없는 의문이 따라오곤 한다. 아직도 배워야할 것은 너무 많이 남았다.
“아, 진짜 오랜만인 것 같아요, 루미너스.”
이번의 짤막한 토크는 시간이 길게 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류이든의 주도로 우선 진행된다. 최대한 많은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다는 우리의 의사가 반영된 결정이다.
“흥겨운 무대였나요?”
“네-!”
마이크도 없이 저 정도의 성량이라니, 역시 자랑스러운 팬분들이다.
“역시, 무대 위에서 여러분들이 환호해 주시는 걸 듣고 있어야, 진짜 무대에 선 것 같아요. 저까지 흥겹고, 막.”
채하민이 이어받은 마이크.
“맞-습니다! 동화 형-님도 아이돌 공-작소에서, 읍.”
한 치도 방심할 수 없구나, 준. 아직 예고도 뜨지 않았는데 말하면 대형 스포일러잖아.
다행히 내가 석준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입을 가로막았지만, 우리의 모든 말에 한껏 집중해 주시고 있는 팬분들이 알아듣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비밀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나의 짧은 말에 팬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흘러 나왔다. 스태프 석에서도 약간씩 난리가 난 것이 보였다. 아직까지 내 손에 입이 막혀 있던 석준이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침울해했다.
“…준이가 여러분들께 미리 알려 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랬나 봅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았으니, 대강 이 정도의 말로 마무리 짓도록 하자.
그렇게 난리가 난 상태에서 시작된 토크쇼. 과연 잘 마무리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 * *
음악 방송 1주 차, 나는 장해진 팀장님의 호출을 받아 회의실에 참석했다.
“음, 일단 게스트 섭외가 와서 불렀거든요?”
요즘 따라 일이 많아진 건지 얼굴이 퀭한 장해진 팀장님의 말.
“…혼자 말입니까?”
“네, 혼자. 어으, 근데 이게 약간… 되게 특이하고 어쩌면 동화, 너한텐 약간 예민한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출연 여부는 전적으로 동화 씨 뜻을 고려할게요. 다만 이번에 하민이나 이든이가 인터뷰 라디오나 동영상 콘텐츠 같은 곳에 출연했으니까 동화 씨도 하나 하면 좋을 것도 같아요.”
상당히 피곤한지 공적 모드에서의 존댓말과 사적 모드에서의 반말이 섞여 기묘한 반존대가 만들어졌다. 멋지군.
장해진 팀장님은 천천히 계획서를 하나 내민다. ‘일상 탈출! 엑시트!’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여기서 동생인 목화 씨랑 같이 캐스팅이 왔어요. 사실 제가 아는 PD들 우리 애가 나갈 만한 곳 없냐고 닦달한 결과긴 한데, 동생이랑 같이 출연하는 조건일 줄은 몰랐네요.”
장해진은 잠시 한숨을 쉰다.
“거기 기획사에서 리얼리티를 진행했는데, 어버이날 에피소드에서 목화 씨가 거의 분량이 0이었다고 합니다. 그룹 내에서 나름 입지가 있는 편이라 팬들도 약간 화딱지가 났어요. 우리랑 달리 거긴 개인팬 문화가 조금 더 빡세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었던 게 양부모님은 사정상 출연 못하고… 동화 씨는 아이돌이잖아요?”
음, 역시 모든 직업은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군. 우리 동생 기 살려주러 리얼리티 출연도 못 하고, 한스러울 따름이다.
“아무래도, 타사 아이돌이 자사 아이돌 리얼리티에 나온다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고, 도박수긴 하잖아요? 그쪽 기획사 분들도 일단 편집하긴 했는데, 미안해서 죽으려고 그러고. 아마 대형 기획사의 로비 실력까지 더해져서 요런 캐스팅 제의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자사 리얼리티에서 보여주는 건 좀 그래도, 외부 방송에서 다른 그룹 멤버와 함께 나오는 건 큰 문젠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아이돌이라는 사업 영역으로 따지면 경쟁자에 드는 셈이고, 리얼리티는 그 그룹의 팬들만을 위해 제작되는 건데 거기에 경쟁자가 나온다면 그것도 문제가 되겠지.
“어쨌든, 둘 다 활동기라 일정이 조금은 빡빡해질 수도 있는 거 고려하고 결정하면 됩니다!”
장해진 팀장님은 이후 몇 마디를 추가로 얹고 나서 자리를 떴다. 나는 곧바로 목화쪽으로 전화를 걸었다.
―형, 혹시 들었어?
“너 일정 과하게 바쁜 거 아니면,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형, 나야 신인이라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걸. 형이 괜찮겠어? 형, 엄청 바쁘잖아, 요즘.
“너랑 놀러 가는 기회비용이면 뭐든 감당 가능해.”
비용이 얼마가 들든 효용을 따라올 수가 없으니까.
―오, 좀 감동인데? 아주 동생 없이 못 사는 바보네!
…바보라니,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데. 천재까진 아니어도 바보도 아닌 평범한 축에 들 텐데.
“바보 맞으니, 나가자.”
―…어우, 씨, 입은 아주! 딱 기다려, 내가 형 등골 빼먹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