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3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39화(139/343)
139.
연예인의 여행을 촬영하는 프로그램, ‘일상 탈출! 엑시트.’
연예인의 일상은 항상 관심을 받는 주제다. ‘카메라 속에선 나와 달라 보이는 생활을 할 것 같은’ 연예인의 뒷모습을 보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 같다. 그래서 관찰 예능이 흥행하는 것 아닐까.
그런 관찰 예능 중에서도 일상을 벗어나 힐링을 하는 ‘일상’을 촬영한다는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콘셉트를 갖고 있다. 이게 이치에 맞나 싶은데……. 어쨌든 나로서는 때 아닌 호재긴 하다. 바쁜 음방 촬영 일정 사이에 합법적으로 목화와 여행을 갈 수 있었으니까.
“…목화, 갈까.”
“잠깐만, 형! 나 짐 마지막으로 한 번만 확인해 보고!”
카메라 앞에 서서 약간 굳은 듯 보이면서도 내가 말을 걸면 곧장 잊어버리고 원래의 목화로 돌아온다.
“오늘 어디 가는지는 알지.”
“에이, 내가 형만큼은 아니어도 호핀에선 나름 브레인이야.”
“…그래?”
“놀라워? 내가 똑똑한 게? 어? 아주 형이 한국대라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어.”
목화가 장난스레 시비를 걸어온다.
“똑똑하지, 넌.”
내가 본 아이 중에서는 이현재 다음으로 똑똑하다. 그리고, 현명하기는 나보다 현명할지도 모르고.
“아, 진짜 이… 말은 잘해!”
아마도 ‘이’ 뒤에 나오는 건 이빨 까지 말라는 독특한 문장이었겠지. 다행히 갈수록 언어생활이 순화되는 게 눈에 띈다. 연예인이 되는 것의 순기능이군. 입이 험한 아이에게 연예인으로 진로를 추천해 주면 언어생활만큼은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가자! 오늘 당일치기 여행!”
비록 새벽 5시쯤 끝나는 당일치기 여행이긴 하지만.
* * *
이곳은 부산광역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곳이다. 5살 때 들은 이야기라 부정확한 점은 있겠지만, 언덕을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남고와 여고가 있는 곳에서부터 두 분의 사랑이 싹 텄다고 한다.
목화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어서 고른 여행지. 거기에 목화와 바다를 갔던 옛 기억을 되살릴 겸, 한 번쯤은 목화와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다.
“와, 형. 빨리 가서 밥 먹자! 멤버 형한테 물어 봤는데 국밥 꼭 먹어야 한댔어.”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전부 다 하면 돼.”
오늘은 그런 날이다. 여행지를 내가 고르는 대신 목화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마음껏 하는 날.
“좀 설레네. 얼마만이야, 여행.”
“15살, 그러니까 6년 전 인천이 마지막이네.”
“…맞네. 인천. 형이랑 계속 갔었는데.”
목화는 어느새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까먹은 것 같다. 어느새 얼굴에 환한 미소와 아련한 눈빛을 달고는 내 손을 붙잡고 달린다.
“가자, 밥 먹으러, 망할 형아!”
“…목화, 언어생활.”
“형도 맨날 하면서, 뭐.”
…그렇다면 삼단 논법에 의거해서 목화가 저런 말을 입에 올린 건 아버지 덕인가.
그때, 오랜만에 또 알림창이 켜진다. 그래서 그런지 꽤나 반가운 기지생,
[불효입니다! 제 아버지 욕하지 마시길!]…이라고 생각한 내가 문제였군. 내 아버지이기도 한데. 인간적 관념을 많이 되찾았나 봅니다. 부쩍이나 심심해하는 것 같고. 기왕이면 자주 좀 오지 그러십니까.
…기분을 말로 설명하기 묘하다. 자기 자신에게 미안한 거나, 안타까운 건 생에 처음이라. 감정이 미세하게 남는다곤 하지만, 그리고 시간선의 차이일 뿐 저 생명체가 나와 같은 존재라고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미안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많이 외롭지 않습니까.’
[정신 차려, 지동화! 나 좋아하지 마! 너 그런 애 아니잖아!]대체, 말투가, 왜. 나는 정말 그런 인간이 아닌데. 혼자 지낸 세월이 사람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너무 그렇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미세하게 남은 감정 덕분에 요즘 혼자 의자에 누워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느껴지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연습도 하고 있고 말입니다.]……더 미안한데, 망할 생명체.
“형, 빨리 와 봐봐. 오늘 하루 종일 내가 형 지갑 털어 먹을 테니까.”
기지생과 잠시 대화하는 동안 걸음이 늦어졌는지 목화가 나를 부른다. 자연스레 미소가 흘러나온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행복이라고 명명하면 되는 겁니까?]‘…그래, 기지생.’
혹시 기지생이 내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딴 게 있겠습니까? 당신보다 훨씬 똑똑한 제가 하는 말이니 믿으십시오!]…내가 그곳으로 가면 지금 시공간 좌표계의 당신을 다시 이 가능성 속으로 불러드릴 방법을 개발해 드리겠습니다, 망할 기지생.
[가능성 개변을 개발하는 데에만 지구 시간 개념 기준 7,862,074년이 걸렸습니다!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어떻게든 내가 이기고 만다, 망할 놈. 승부욕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기지생 한정으로는 강렬한 승부욕이 머릿속을 지배해 버리고 만다.
“형, 형, 오늘 밥 먹고 바로 바다 가자.”
“그래, 목화.”
은혜를 입고 무시하는 성격은 못되니까, 딱 기다려라, 망할 생명체. 우주의 나이만큼 시간이 지나서라도 성공해 보일 테니.
* * *
식사와 몇몇 장소의 관광이 끝나고, 우리는 바닷가 근처에 설치된 세트장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봄과 여름의 경계에 서 있지만, 바닷가라 그런지 약간은 쌀쌀해 모닥불까지 타오르고 있었다. 따스한 모닥불 앞에는 두 개의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게다가 카메라 스태프님조차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자유롭게 대화하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캠핑 시간.
물론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우리를 촬영하고 있지만, 나도 어느덧 아이돌 활동 1년 차 정도라, 신경 쓰지 않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목화는 아직 낯선지 조금 얼굴이 경직된 것이 보였다. 여기서도 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형. 이렇게 오니까 좋다. 엄청 오랜만이야.”
나는 웃음이 터졌다. 왜 이렇게 어색한지.
우리 그룹과 호핀의 활동 때문에 방송국에서 마주친 게 전부라 이렇게 둘이서 모인 건 오랜만이긴 하다.
“형, 나 진짜 낯선데 좀 도와주라. 방송은 어떻게 하는 거야.”
목화가 몸을 약간 떤다. 무대에 서고 싶었던 아이가 방송에 출연하려니 당황스러운가 보다. 목화가 도움을 요청해줬지만, 방송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류이든을 데려와야 했군.
“활동이나 방송해 보니까 어때. 조금씩 바빠질 텐데.“
“솔직히, 재밌어, 형.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이었잖아. 그리고… 형이랑 다시 만난 계기도 아이돌이었고.”
시작부터 그 얘기로 들어가면 내가 많이 불리한데, 목화야.
“어쨌든 무대 위에서는 신나고, 좋아. 방송은 아직 배워야 할 것투성이고. 바쁜 거는 아직 잘… 모르겠어. 형은 엄청 바빠 보였으니까 걱정도 했거든. 맨날 전화하면 작업실, 연습하다 쉴 때 전화하면 작업실, 자기 전에 뭐하냐고 물어보면 작업 중, 거의 항상 작업실에서만 있었고. 그러면 걱정이 되니까 선배님들한테 여쭤보면 그렇게 작업만 하는 사람 드물다고 하셔. 그러면 이 형은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하나… 싶고 그랬지.”
입이 열리기 시작하자 목화는 언제 낯설어했냐는 듯이 청산유수로 툭툭 말을 던진다. 전화 때마다 작업실에 있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현저히 낮지. 나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에 관한 고민 같은 분위기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내가 혼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스케쥴도 많아서 나랑 자주 못 만나고, 그랬으니까. 생일도 당일에는 영상으로만 축하했었잖아.”
목화는 그 얘기를 하면서 아주 약간 부루퉁해 보인다. 서운함이 약간은 쌓였나 보다. 어른스럽게 철든 성격 탓에 직접 표를 내진 않지만.
“게다가! 현재랑은 과외까지 하잖아? 나는 공부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내 손에서 자랄 때부터 감정을 표하는 데 익숙해진 덕분일까, 조금을 부끄러울 법한데 자연스럽게 관심을 유도한다. 아마도 정말 공부를 가르쳐 달라는 의미는 아닐 거다. 어렸을 때 내가 학문을 가르치려 하면 경기를 일으켰으니까.
혹시 생각이 바뀌기라도 했을까. 그렇다면 화상으로라도…….
“공부하고 싶어?”
목화는 그에 고개를 젓는다.
“책 읽는 건 나도 좋은데, 학교 공부는 그렇게 하기가 싫더라. 그냥 질투해 본 거지, 뭐. 형 관심 좀 받고 싶은 소박한 욕심!”
나는 또 웃음이 샌다. 귀엽다, 심바만큼. 나와는 달리 어딜 가서도 사랑받을 성격, 미움 받지 못할 성격이다.
“나는, 형이 내 부모님이었잖아.”
나는 호흡을 삼킨다.
“원래 부모님은,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 기억이 나도 약간 짤막한 토막 같고. 내가 기억하는 어렸을 적의 대부분은 항상 형이 보호자고 내 울타리였어. 진짜 고맙고… 또 고마워.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내가 이렇게 잘 성장한 거 8할은 형 덕분이야. 형 아니었으면 나 비행 청소년 같은 거 됐을걸.”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야 모든 기억 앞에 떳떳하진 않더라도 고작 서 있는 게 전부인 내겐 너무 벅차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내가 더 나은.”
“형은.”
목화는 내 뒷말을 예상한 듯이 빠르게 허리를 자른다. 단호한 표정이다.
“형은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내가 형이고, 형이 동생이었으면, 난 8년 가까이 혼자서 못 버텼을 거야.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한 달 내내 알바를 하고, 어떻게 동생 학원은 꼬박꼬박 보내줘. 내가 시간만 거스를 수 있으면 그때 내 머리 콱 쥐어박은 다음에 정신 차리라고 소리칠 거야.”
그러고 나서 목화는 웃는다.
“나는 성공해서, 나중에 형 먹여 살리는 게 목표야. 어렸을 때 했듯이, 형이 일 안 해도 내 지갑이 해결해 주는!”
세상에, 기분이 이상하다. 언제나 보호받아야 할 것처럼 보였던 목화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정말 낯설다. 언제 저런 생각을 할 정도로 큰 건지. 내 머릿속 목화는 유년에서 멈춰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동화네 동생’으로 불리지만, 딱 기다려. 5년 안에 형이 ‘목화네 형’으로 불리게 만들어 줄 거니까.”
그거, 참 기대되는 미래다. 세상 모두 내가 목화의 형이라는 걸 알아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다. 거기에 자신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목화가 새삼 얼마나 컸는지까지 알 수 있어서 감동적일 지경이다. 하지만.
“나는 네가 내 동생이라고 불리는 것도 좋은데.”
인간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는 법이다.
“어른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야, 형.”
그러니까 순순히 목화 형으로 불릴 준비나 하라는 뜻이군.
“…그래, 열심히 해, 동화네 동생.”
“몇 년 안 남았어, 목화네 형.”
정말 따스한 형제 사이군.
* * *
그렇게 여러 고민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문득 지금 바다 앞에서 목화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졌다.
“목화, 우리 지난번에 녹음한 거 지금 불러 볼래?”
“형, 나 목 상태 자신 없는데 괜찮을까?”
“…음, 정 문제가 심하면 편집해 주지 않으실까.”
그러자 목화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에 손을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방송국 분들 믿어도 돼?”
분명한 건 그게 마이크로 다 들어갔다는 거겠지, 목화. 방송국 놈들이라고 안 한 게 어딘가 싶지만.
“너희 소속사를 믿으면 돼.”
“…오케이, 나 부르고 개판 나면 바로 매니저 님 콜하면 되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국 놈들은 못 믿어도 소속사 분들은 믿을 만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