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4화(14/343)
14.
서바이벌 2회의 촬영이 끝난 다음 날 처음으로 주어진 공식적인 휴일, 난 침대에 누워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자, 우선 확실해진 사실부터.
첫째, 기지생은 내가 데뷔를 하길 바란다는 게 명확해졌다. 이건 처음부터 얼추 예상하기도 했고.
둘째, 그렇다면 시공간 이동을 한 이유도 내가 데뷔를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몹시 당황스럽고 이해가 어려운 이야기지만, 일단 개연성 있는 추측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가능성의 조각.
“동화야!”
채하민이 나를 부른다. 2층 침대에서 고개만 밑으로 내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에 나도 고개만 돌려 녀석을 바라봤다.
“1차 2차 총합 순위 발표 전까지 뭐 할 거야? 오랜만에 휴일인데.”
“…곡 작업이나 하려고.”
나는 녀석을 보다 똑바로 바라보질 못하겠어서, 잠깐 고개를 숙인다.
채하민은 그런 내가 이상한지 잠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간 다시 씩 웃고는 말했다.
“그럼 나랑 같이 연습실 가자, 동화야!”
젠장, 괜히 그런 걸 사용해서.
* * *
때는 어젯밤, 그러니까 무대 및 기타 촬영을 끝마치고 돌아온 숙소에서 나는 침대에 누워 기지생에게 가능성의 조각이 뭔지 물어봤다.
[가능성의 조각 자체가 무엇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으나, 사용법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가능성의 조각을 사용하겠다는 의사 표시만 하시면 됩니다.]‘그게 어떤 현상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용하라고? 부작용은?’
[주의! 아무런 피해도 없습니다. 다만 순간적으로 과도하게 밀려오는 정보량에 짧은 시간 혼란을 겪을 순 있습니다.]‘하여튼 이걸 쓰면… 시공간 이동의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거지?’
[답이 아닌 단서입니다.]직접 보고 알아서 추론하라는 거군. 한 번에 추측할 수 없으면 또 가능성의 조각을 두고 나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도록 할 거고. 사용하는 술수가 역겹기 그지없는, 추악한 놈이다.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쓰레기 자식.
[주의! 지속적인 모욕적 언사는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진짜 지적 생명체가 맞군. 감정 반응까지 존재할 줄은.
어쨌든 이걸 사용해 보기 전까진 뭘 알 수도 없다는 것 아닌가. 일단 사용해 봐야겠다.
‘가능성의 조각 사용할게.’
그리고 순간적으로 의식이 툭 꺼졌다.
* * *
눈을 뜬 나는 어떤 기사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세상을 3인칭 시점에서 내려다보는 절대자가 된 것만 같았다.
…몹시 당황스럽군.
나는 잠시 어색함을 느끼다가,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보고 있는 모니터가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 기사?
‘God : A 멤버들은 사실 마약 중독?’
기사 제목 꼬라지하고는. 자극적으로 쓰지 못해 안달이 난 꼬라지다. 그나저나 ‘God’이라… 예감이 좋진 않군.
나는 인터넷 기사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 집중한다.
…늙은 채하민이군.
저 토끼 같은 생김새에 순한 인상은 채하민과 그 이목구비가 똑같았지만, 세월의 흐름 탓인지 원숙한 감이 생겼다.
채하민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쉰다. 그의 옆에 놓인 전화기는 계속해서 울려대는 중이다.
그때 한 남자가 나를 관통하듯 지나가더니 채하민의 등 쪽에 선다. 그러더니 채하민의 머리를 세게 후려친다.
천박한 새끼, 감히 내 친구를. 면상이나 한번 보자.
“저거, 시발, 너, 너가 흘린 거지.”
…저놈, 예전 회사에 있던 못생긴 녀석이잖아.
채하민은 다시 한숨을 쉬곤 뒤를 바라본다. 채하민의 눈빛은 날 볼 때의 따스한 기운은 찾아볼 수 없이 한껏 차가워져 있었다.
“응.”
아니, 얘는 또 왜 이럴 때까지 정직해선. 눈치 보니 채하민이 같은 그룹 애들이 마약 복용 중인 거 흘린 것 같은데, 거짓말은 어느 때라도 용납할 수 없다, 이건가? 착한 것도 정도가 있지, 세상에.
그러자 못생긴 그 녀석은 가만히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채하민의 멱살을 부여잡곤 옆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러곤 녀석은 채하민을 발로 짓밟으려는 듯 무릎을 들어 올린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내게 허락된 건 그저 바라보는 것뿐인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의식이 암전되듯 꺼진다.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땐 병원 안이었다. 채하민은 여러 곳에 깁스를 한 채로 누워있다. 그리고 아마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침대 옆에 앉아있다.
채하민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이 채하민을 내려다보더니 말한다.
“차라리 잘됐다. 더 크게 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리 부서져 춤도 다시 추긴 힘들다니,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후계자 준비나 하거라.”
흠, 생각보다 더 좋지 않은 어른이군.
채하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가족들이 나가고 채하민만 남은 1인 병실, 채하민은 서럽다는 듯 눈물 흘리기 시작한다. 그 울음소리를 나는 한참 듣다가 다시 의식이 암전됐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는, 어느새 오늘의 아침이 밝아있었다.
* * *
도대체가 이건 뭘까. 나는 채하민과 함께 연습실로 가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해 무엇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겠다. 채하민을 보면 아까의 그 우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다.
“동화야.”
대체 뭘까. 기지생 이 미친 존재는 왜 나한테 이딴 걸 보여준 걸까.
“음, 동화야?”
이게 나의 시공간 이동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혹시…….
순간 채하민이 내 어깨를 약하게 부여잡는다. 나는 놀란 표정을 애써 숨기며 채하민을 바라본다.
“동화야! 너 괜찮은 거야?”
“…음, 왜?”
“아니, 오늘 아침부터 조금, 혹시 내가 뭐 잘못했어?”
…이건 내 잘못이군.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 내가, 그, 기운이 좀 없어서.”
답지 않게 횡설수설하는 내 꼴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던 녀석은 곧 수긍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이든 형이 너 편곡하느라 밤 엄청 새웠다고 뭐라 하더라. 건강 걱정된다고. 내가 보기에도… 조금 무리하는 것 같았어.”
채하민은 그 말을 하곤 잠시 나를 바라보다 소리치듯 말했다.
“오늘 연습하지 말고 같이 힐링하러 가자! 우리 서바이벌 시작하고 지금까지 제대로 쉰 적 없잖아. 너 엄청 지친 것 같으니까, 오늘은 내가 억지로라도 데려가야겠다.”
“…지친 것 같다고?”
“응, 솔직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회사에서 쓰러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달리기만 했잖아.”
그래, 인정하자. 나는 지쳤다.
알게 모르게 자꾸만 낯선 상황이 펼쳐지는 것에 스트레스받고, 내가 겪고 있는 현상이 무엇인지 조금도 알 수 없어 답답하다.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한 채 지금까지 달렸지만, 지금 당장은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가능성의 조각을 확인한 것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나는, 지쳤나 보다.
“어디로 데려갈 건데?”
녀석은 내가 긍정적인 투로 답하자 그럴 줄 몰랐다는 듯 놀라더니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나랑 애니멀 테라피 하러 가자!”
과학적으로 검증된 걸 말하다니, 힐링이라는 말에 반박할 수가 없군.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그래, 그러자.”
* * *
채하민은 미친놈이다.
“하민.”
“응?”
“…애니멀 테라피 하자며.”
“응, 여기 있잖아, 애니멀. 엄청 귀엽지?”
채하민은 자기 목에 감싸고 있는 보아뱀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말한다.
애니멀 테라피라는 건 보통 개나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아닌가. 하다못해 토끼처럼 일반적으로 귀엽다고 여겨지는 동물과 지내는 것 아니냔 말이다. 이런 뭔, 비상식적인.
여긴 택시를 타고 시간이 조금 걸려 도착한 파충류 체험장, 애니멀 테라피는 무슨, 정신이 확 드는데.
나는 거대한 토끼가 뱀을 목에 감싸고 해맑게 웃고 있는 진풍경을 내버려 두고 천천히 사육장 속의 뱀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약간 힐링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뱀이 무슨 종인지는 모르겠는데 무늬가 알록달록해 보기에 좋았다.
“뱀도 귀엽지?”
“…귀엽다기보단 아름다운데.”
“내가 뱀 엄청 좋아하거든. 친구랑 같이 뱀 보러 온 건 처음인데 자주 오고 싶다.”
“…나 말고 다른 사람 데려올 땐 먼저 무슨 동물 보러 가는지 얘기해 주는 게 좋겠다.”
녀석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은 듯싶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얘도 친구가 많진 않을 거다,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그렇게 채하민과 여러 종류의 뱀을 돌아보고 갈 때가 돼 아쉬워하는 채하민을 끌고 나왔다.
정말 분하지만 이 바보 자식의 말마따나 힐링이 된 건지 머리가 차분해진 기분이다.
지금이라면, 가능성의 조각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물어보자. 얘 삼촌이 그 회사에서 한자리 하고 있으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 혹시 하민.”
나는 뱀으로 된 인형을 사서 만족스럽다는 듯 웃는 채하민에게 물었다.
“우리 만약에 전 회사에서 데뷔하면, 무슨 이름으로 데뷔할 예정이었는지 알아?”
그러자 채하민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일단은 성실하게 답해줬다.
“후보가 여러 개 있었는데 대강 결정된 상태긴 했대. 삼촌이 말해준 거긴 한데, 내부에선 갓에이였나? 하여튼 그런 비슷한 이름으로 결정됐다더라. 근데 그건 왜?”
…젠장할. 설마설마했는데 맞나 보군.
* * *
채하민과 간단하게 밥을 먹고 들어온 뒤, 나는 작업실을 한 곳 빌려 틀어박혔다. 혼자 있을 만한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
그러니까 가능성의 조각이라는 건, 내가 아이돌 연습생이 아니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추측된다.
내가 그때 쓰러지지 않았으면, 아니 내가 기존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았으면, 그러니까 내가 없었다면, 채하민은 삼촌을 생각해서라도 그곳에서 데뷔하려 했다고 말했으니까.
즉, 내가 원래대로 소설가로 살아갔다면 절대로 벌어지지 않았을 사건이 채하민의 서바이벌 참여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떨어진다.
채하민은 기존 회사에서 데뷔해 멤버들이 마약을 한다는 사실을 어떤 이유에선지 폭로한 뒤 그 결과 아이돌 생활을 더는 못 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었는데, 나의 개입으로 인해 채하민이 그 가능성을 피해 가게 된 것이다.
그래, 좋다. 어느 정도 파악됐다.
내가 이 사태를 겪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채하민이 아마 원래 세계에서 겪었을 그 비극을 겪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겠지.
물론 내가 개입함으로써 채하민이 그런 경험을 겪지 않았다는 건 꽤, 만족감이 느껴지긴 한다. 실제로 지금 상당히 안도하는 중이니까. 아마도 꽤나 정이 쌓였나 보다.
그리고 그런 채하민이, 지금은 사라진 메인 퀘스트인 친밀도 쌓기의 대상이었으니, 어쩌면 류이든도… 나로 인해 어떤 가능성을 겪지 않을 수도 있을 거다. 그렇다면 그것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한 가지.
‘대체 왜 나여야 했을까.’
도대체 왜 내가 다른 이들의 인생이 망가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그 중대한 역할을 맡았단 말인가.
나처럼 무능한 인간이, 대체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그 아이 하나도 제대로 책임지기 힘들었던 천애 고아인 내가 무슨…….
나는 작업실 책상에 고개를 파묻었다.
부담스러워서 죽겠군. 정말로… 부담스러워.
* * *
채하민은 연습실에서 춤을 연습하다가 오늘따라 동화가 이상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동화가, 확실히 이상했어.’
비록 자신이 눈치가 없는 편이지만, 오늘의 동화는 지나치게 멍했다. 평소에도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유독 심했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그때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핸드폰을 들어 올리자 보이는 ‘할머니’라는 글자.
“할머니, 오랜만이에요!”
―그래, 하민이. 귀인은 만났어?
“…귀인이요?”
채하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소리가 좋은 걸 보면 만난 것 같구나. 못 만났으면 이렇게 좋은 목소리일 리도 없으니 말이다.
그제야 채하민은 과거 할머니가 봐주셨다는 사주를 떠올린다. 그나저나 귀인을 만난 것 같다니,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정말 동화를 말하는 건가?
“음, 최근에 친해진 친구가 있긴 해요!”
―하민아, 잘 듣거라. 이미 만난 것만으로도 큰 은혜를 입은 셈이니, 그 친구한테 성심껏 잘해줘야 한다.
“에이, 저 친구들한테 잘하는 거 아시면서.”
―네 사주는 친구 많을 팔자가 아니다. 어쨌든, 원래라면 입을 큰 해를 피한 거니, 꼭 잘해주거라, 알겠니?
할머니의 진지한 목소리에 덩달아 진지해진 채하민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할머니.”
―그래. 만난 거 확인했으면 됐다. 이만 끊으마.
“잘 들어가세요, 할머니!”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보며 채하민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동화한테 버섯 수프라도 만들어서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