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4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40화(140/343)
140.
나는 늘 갖고 다니는 노트북을 꺼내고, 목화는 자기가 들고 다니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의자 사이 탁자에 설치한다.
내가 대충 프로듀싱한 녹음본이 있으니 그냥 이걸 틀도록 하자.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MR에 완전히 라이브로 노래하기는 좀 뭣하니까. 물론, 모든 음역대는 목화 기준으로 편안하게 부를 수 있는 영역으로 작곡하긴 했지만.
“형, 이거 방송 나가면 꼭 말씀 드려야 하는 거 있잖아.”
“…가사 네가 쓴 거?”
“아니지. 목화네 형이 바로 그 동생을 위해 직접 작곡한 곡이란 걸 말씀드려야지. 그리고 가사 내가 썼다고 하면 사기야, 형. 나는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실제론 형이 내 가사 부분도 다 썼으면서.”
이 정도 사기는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을 텐데, 동화네 동생. 류이든에 따르면 방송에선 과장이 기본 미덕이라 하기도 했고. 거기에 아이디어가 없었으면 내가 가사를 쓰지도 못했을 테니까 목화가 썼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도 이런 논리를 따르는데, 누가 목화가 가사를 쓰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네가 쓴 거.”
“아니… 그래, 어쨌든 우리가 가사 쓰고 형이! 절 위해! 직접 써 준 곡이에요, 여러분! 엄청 멋있지 않습니까!”
벌써 방송에 익숙해졌군. 어딜 가든 사랑받는 데다 똑똑하기까지.
그러고 나서는 생수통을 들어서 목을 축이며 목소리가 잘 나오는지 점검까지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머니의 재능이, 목화를 더 빛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실없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노트북으로 녹음본의 제목을 확인한다.
“목화, 제목 소개해 드려야지.”
이 곡은, 내가 목화와 마지막으로 바다를 갔을 때 노을을 봤던 경험을 떠올리며 쓴 게 원본이다.
“아, 근데 그거 안 바꾸고 그냥 해? 내가 정하긴 했는데 너무 대충 지은 것 같잖아.”
간단히 고개를 젓는다. 누가 뭐래도 최고의 제목이다.
“이 곡 제목은 ‘Skyfall’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처음 작곡할 때는 목화와의 따스하면서도 쌀쌀한 기억을 회상하며 썼던 곡. 그래서 차라리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둘만 살아남은 형제의 이야기에 어울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목화와 대화하며 작업하는 과정에서 비정한 느낌보다는 따스한 느낌이 더 강해졌다. 물론 그런 것 치고 제목은 비참한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최고의 제목이다.
“준비됐어?”
“엉, 틀어 버려. 형이 써준 곡으로 오늘 부산 바다 찢어볼게.”
물을 찢을 거면 분자 수준에서 찢어야 되는데, 자신 있나 보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곡을 재생한다. 최선의 음질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게 흐르는 전주. 피아노 선율이 약간은 비장하게 들린다.
다행히 미리 노래할지도 모른다고 말씀드려서 그런지 마이크 세팅은 걱정 안 해도 되겠지.
나는 박자에 맞춰 입을 연다.
세상이 끝날 때 내가 널 지켜줄 수 있을까
내 마지막 기억이 우는 네가 짓는 미소일 수 있을까
이젠 그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후회 없는 온점을 너와 찍고 싶어
목화를 바라보며 찬찬히 내뱉는다. 어째선지 동생 앞에선 감성적으로 변하고 만다. 곡의 주제는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 낯간지러워 잘 전하지 못한 감정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목화는 그런 나와 눈을 맞추고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 입을 연다.
하늘이 무너질 때 나는 너무 어렸고
너는 작은 몸으로 나를 이미 지켰고
이젠 내가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새로운 반점이 되어 주고 싶어
성격의 차이인지, 나는 마지막 순간에, 목화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가사를 썼다. 형제지만, 부모님의 성격이 극과 극이라 그런가, 이렇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죽 이어 불러도 별로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형제의 이야기를 안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청자는 그렇지 않으실 테니까.
바닷소리 사이에 얽혀 흘러들어오는 피아노 선율과 현악기 소리. 그리고 그 위에 얹힌 목화의 목소리. 나보다 조금 톤이 높은데, 그게 불편하지 않은 편안한 목소리다.
나는 목화의 끝에 맞춰 입을 연다.
후회할 선택 속에서도 난 너를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고
이번엔 목화가 뒤이어 입을 연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네가 내 곁에 있기를 간절히 원했어
그리고 함께 화음을 맞춰 후렴구를 부른다. 첫 두 마디는 내가, 나머지 두 마디는 목화가 하고 싶은 말이다.
시간의 흐름 그 속에서 네가 바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고 바라고 또 바랐어
무너진 하늘 그 속에서 네가 내 구원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고 또 원했어
혼자서 보낸 시간, 나 혹은 기지생이 견뎠을 시간 속에서, 네가 머릿속에서 바래지 않기를 바랐다. 떠올리기 괴로워서, 떠올리면 바로 눈물이 흘러 억눌렀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독주를 궤짝 채로 사 놓고 마시며 너를 되새겼다. 그때 내 술버릇은, 아마 너일 거다.
혼자서 보낸 시간, 너는 내가 네게 구원으로 남을 수 있기를 갈망했다. 늘 내가 왜 그랬을지, 그걸 알고 나서는 내가 왜 그래야 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곁에 내가 있기만을 원했다. 그때 네 생활은, 내 생각이 늘 쉼표가 되는 일의 연속일 거다.
그 모든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놓은 가사. 가사를 쓸 때 나눈 대화 덕에 너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도.
하지만 우리는 노래로 부름으로써 털어내기로 했다. 서로에게 남은 후회와 원망을 모두 묶어 그저 간절한 소망으로 남기기로 했다. 나는 내가 죽는 순간 병실에 네가 곁에 있기를, 너는 내가 죽기 전까지 내 방파제가 될 수 있기를.
만일, 내가 제목을 지었다면 ‘Skyfall’이 아니라 아무런 재미도 없게 그저 ‘소망’이라는 두 글자만 달아뒀을지도 모르겠다. 목화가 달아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간주가 흐르며 현악기 선율이 고조될 때 목화는 문득 눈물을 흘린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닦아낸다.
“…가사, 너무 슬프잖아, 망할 형.”
“네가 쓴 건데, 목화.”
그리고 내 말투 닮아가지 말고, 망할 동생.
“하, 씨, 진짜. 만약에 또 그러면 난 평생 형 뒤꽁무니만 쫓아다닐 거야. 조심해, 평생 따라다니는 스토커 하나 예약이야.”
너는 다시 떠나지 않더라도 평생 그러던데, 목화. 나는 평생 머저리인 채로 남았고.
목화는 점점 크게 울음이 번지더니 엉엉 소리를 낼 정도로 운다.
나는 현악기 소리를 배경으로 목화를 끌어안아 등을 토닥인다. 그러고 보면, 목화는 단 한 번도 이렇게 크게 우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울더라도 숨죽인 소리로 훌쩍이는 정도였지.
어쩌면, 이 노래는 목화가 과거의 자신을 위해 잠시 우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 * *
개인 인터뷰를 딴 후,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 오른 게 새벽 5시경. 예정보단 일찍 끝났다.
목화는 울다가 진이 조금 빠졌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곯아 떨어졌다.
‘기지생, 혹시 대화 가능합니까.’
[대화 거는 거 불허라고 해도 들어먹질 않으니 기지생은 슬픕니다! 아무리 시공간에 가해지는 부담을 제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술을 끌어올렸다고 하더라도!]‘사설은 됐고, 저는 언제 그쪽으로 끌려갈 예정인지, 알 수 있습니까.’
[예정대로라면 40대 후반입니다. 지난 번 가능성 조각에서 보신 게 그거였습니다.]‘…그러고 보면, 그건 아무리 봐도 50대 후반의 낯짝이었는데.’
[햇빛도 보지 않고 밤샘만 죽어라 하면 인간은 쉽게 노화합니다. 당신도 29세 때 서서히 그 기미가 보였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나는 깊게 한숨을 내쉰다. 예상이야 했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은 거랑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상태를 직접 확인받으니 착잡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래, 모든 것엔 마지막이 있는 법이다. 항상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게 삶의 본질이기도 하고. 그러니 너무 좌절하지 말고, 그 전까지 목화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걸 선물해 주자.
‘알겠습니다. 대화를 걸어도 반응하지 않겠다는 규칙, 어겨 줘서 고맙습니다.’
바꿀 수 없다면, 수용하는 게 나으니까. 짧은 생이라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괜찮을 것이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원래’라고 한 거 안 보셨습니까. 목화만 관련되면 사고에 약간 문제가 생기시는 것 같습니다!]나는 이어질 알림창의 내용을 기다린다. 물론 ‘자기도 그러면서 무슨.’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주, 저를 우습게봅니다! 제가 감정이 없을 때도 제 지성을 무시당하는 건 기분이 더러웠습니다! 벌레가 덤빌 때 너무 같잖아서 비합리적으로 느껴지는 것!]…그래, 그거야 알고 있지, 망할 기지생. 그러니까 네 눈엔 내가 벌레로 보인다 이거군.
비교해 보면 분명히 내가 아는 게 적으니 이것도 수용. 벌레도 나쁘지 않지. 사마귀도 잠시 해본 경험자다.
[제가 다 수를 써두었습니다. 시간 개념이 모자란 늙은이들 엿 먹이는 법을 이곳에서 저만큼 잘 아는 존재가 있을 것 같습니까?]…내가 반드시,
[제 수명만큼 살다 오십시오. 참고로 수명은 알려드리기 좀 그렇습니다. 천기누설하면 또 감금당해야 해서!]이 가능성을 체험하도록 만들 거다. 뒤얽힌 시간선을 뒤집고 또 뒤집어서, 반드시.
[엿이나 드십시오! 시공간 이해의 기초 정도만 알고 있는 주제에!]뭐라고 지껄이든, 반드시.
* * *
“목화, 네 숙소 도착했어. 일어나.”
“5분만…….”
5분이 지나면 우리 숙소로 가는데, 목화.
“일어나, 동화네 동생. 너도 오늘 스케쥴 있다며. 침대에서 쉬어.”
스케쥴이란 단어를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목화가 벌떡 일어난다.
“아, 목화네 형, 즐거웠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기 직전 목화가 활짝 웃는 소리에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후 도착한 숙소, 나는 매니저님께 인사를 드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음, 1시간 정도 자면 많이 자는 거겠군.
문을 열자 안에는 류이든이 철봉에 매달린 채로 인사한다.
“왔냐, 동화야.”
“어.”
저 정도로 부지런하면 인간 영역은 아득하게 벗어난 게 확실하다.
철봉에서 내려온 류이든이 핸드폰을 내 눈앞에 들이민다.
’28위 흥-블로센스’
단순한 캡처본이었지만, 뭘 전달하려는 지는 분명하다.
“와, 음원 순위 진짜 이게 말이 되나 싶어. 요즘 음원 순위는 팬분들만으로는 많이 벅차다던데. 어디서 알고 들으시는지.”
내 작업물이 인정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언젠가 저 앞 글자를 1로 바꿔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욕심이라니, 참 낯선 말 아닐까.
“…언젠가 1위하겠지.”
“어우, 우리 작곡가님 내가 진짜 사랑하는 거 알지? 나중에 시간 흘러서 부자 돼도 나 잊으면 안 돼.”
안타깝지만, 기지생을 보면 나는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인연을 포기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 같다. 잊기는 무슨,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갈 거다.
그러다 류이든은 시계를 설핏 보고는 내 등을 부여잡고 방으로 밀어 넣는다.
“많이 피곤하지? 들어가서 자. 나갈 때 깨워줄게.”
말은 권유지만 행동은 강제다. 독재자 놈.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기 전 나는 빠르게 한 마디만을 남긴다.
“…형이나 잊지 마.”
죽기 전까지 기억하지 않으면 시공간 공부를 끝마치고 처절히 복수할 예정이니까.
닫힌 방문 뒤로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무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