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4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42화(142/343)
142.
프루츠 월드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주로 판매가 되지만, 동시에 성인들도 즐겨 보는 콘텐츠라고 한다. 물론 석준은 전자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석준이 그렇게 울 정도로 간절히 바랐던 꿈을 이루게 됐다는 것도 충분히 흡족한 일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납득할 수 있다. 석준의 울음도, 프루츠 월드의 세계관도.
다만, 의문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 정도 아닐까.
이곳은 영화 유통사인 CK의 회의실. 나는 옆에서 울먹이며 헤실대는 오묘한 표정의 석준 옆에 가만히 앉아 앞에 앉은 분의 말을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프루츠 월드: 바나나 마이크’의 유통, 홍보 등 잡무를 담당하게 된 김유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제 저도 제가 왜 이곳에 붙들려 왔는지 여쭙고 싶은데요. 나는 성우 역을 맡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오셔야 할 분이 한 분 더 계셔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 말과 동시에, 약간은 거칠게 문이 열렸다.
“공주, 등장!”
…무슨, 인사말이. 거기에 부피가 큰 천 조각이 비벼지며 나는 소음까지.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대사, 그리고 익숙한 옷의 소리.
이런 사람은 내가 아는 이 중엔 네스퀵 씨밖에 없다.
“오랜만이에요, 우리 블로센스 여러분!”
나와 석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네스퀵 씨에게 인사를 드렸다. 지난번보다 훨씬 더 화려한 옷차림. 보랏빛 드레스를 일상에서 입고 다닐 수 있는 용기는 존경할 만한 부분이다.
“그보다 준아!”
“네스퀵 씨!”
“우리의 꿈이! 우리의 꿈이 드디어 X발!”
맥락상 욕할 수 있는 분위기였나. 감격에 차서 내뱉은 것이니 받아들일 수도 있을까. 한 서적에 따르면 욕과 같은 단어는 언어를 담당하는 상위 뇌가 아니라 변연계에 저장된다고 하니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겠지.
작곡 여행부터 익숙해져 있던 나는 괜찮다. 게다가 두 명 다 같은 영화를 보고 래퍼가 되기로 결정했고, 그 영화의 후속작에 성우로 참여할 기회를 얻었으니 욕이 튀어 나올 정도로 감격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역시 네스퀵 씨도!”
“미친! 제가 작업실에서 캐스팅 소식 듣고 진짜, 겁나 미칠 뻔한 거 아냐고!”
다만.
“워, 에너제틱.”
제작진 분께서는 당황하시잖아.
“작곡 여행에서 봤던 대로, 대단하네요. 동화 씨는 저런 분들과 어떻게 작업을 하셨어요.”
김유나 씨께서 감탄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이젠 본인도 함께 작업해야 할 텐데.
“혹시 작곡 여행 보고 캐스팅 해주셨습니까.”
“네, 뭐 그런 셈이죠. 나름대로 그 무대가 인기도 끌었으니까. 게다가 이렇게 캐스팅 해보려 한다고 계획서 내보니까 높으신 분들도 나빠하지 않으신 것 같고.”
높으신 분들이 우리를 알기나 할까.
“어쨌든, 반가워요, 네스퀵 씨! 김유나라고 합니다.”
김유나 씨가 일어나 네스퀵 씨에게 손을 건넸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제가 많이 존경해요, 유나 씨!”
“저희 초면인데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네스퀵과 석준의 덕후결의가 있고 나서, 대충 분위기가 진정되자 김유나 씨는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두 분은 메인 캐릭터는 아니지만, 초반부에 나오는 배역을 드리려고 하거든요. 주인공에게 바나나 마이크 이야기를 전해 주면서 힙합의 힘을 설명하는 역할이에요.”
진짜 죄송한데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세상에! 그럼 바나나 마이크가 실존하는 거였습니까!”
“와, 진짜! 위즈니 놈들! 4년 전부터 떡밥을!”
어떻게 알아듣는 건데. 바나나 마이크는 또 뭔데. 석준에게 세계관 강의는 받은 적이 있지만 바나나 마이크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어쨌든, 바나나 마이크의 수호자이자, 짧게 한 곡만 하는 배역이라 연기 부담은 거의 없을 거예요. 다만 문제는 처음에 나오는 곡이라, 홍보 때도 써야 되는 부분이라는 점이죠. 되도록이면 귀에 촥 감기게 만들고 싶어요.”
김유나 씨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연기에 대한 부담은 적지만, 곡이 좋지 않다면 집중력부터 시작해서 문제가 될 거라는 이야기군.
“그래서 랩을 하시는 분들을 이렇게 캐스팅한 거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사 같은 것도 최대한 본인들이 부르기 편하게 번역을 해야 해요.”
“죄송합니다. 저 영어를 잘 못합니다!”
“제기랄, 저돈데.”
석준과 네스퀵이 깔끔하게 말을 잇는다. 기본적인 번역이야 제작진 분들이 해주실 텐데 뭐가 걱정이람.
“그거야 당연히 저희가 해드리죠. 어쨌든 동화 씨까지 부른 이유는, 블로센스에서 자체 제작의 중심을 맡고 있는 걸 많이 봐서요. 준 씨가 가사 쓰는 걸 도와주셨으면 해서 말이죠. 오늘 한 번 뵙고 꼭 들어갈 설정 같은 걸 말씀 드리려고 했습니다.”
저런, 석준을 믿지 않다니. 저래 뵈도 가사는 잘 쓰는 편인데.
“형님! 저 잘 도와주십시오! 막 혼내셔도 됩니다! 저 이번에 정말 잘 하고 싶습니다!”
앨범 만들 때도 그 정도 열정을 보여 주진 않은 것 같은데, 망할 놈아.
“그럼 지금부터 프레젠테이션 시작할게요. 프루츠 월드 : 바나나 마이크의 줄거리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대강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나서, CK에서 제공한 회의실에 우리는 잠시 남아 대화를 나눴다.
“아까 보셨습니까! 초반부 분위기! 완전 포근한 분위기! 프루츠 월드에서 보기 힘든 색채였습니다!”
“게다가 그 강렬한 비트! 어렸을 때 봤던 장면이 막 머릿속에서 떠올랐어요! X발! 내가 이걸 살아생전 다시 볼 순간이 오다니! 미친!”
프레젠테이션 말미에 영화의 초반부를 잠시 맛 뵈기로 보고 나서부터 계속 저런 대화가 오갔다. 한 분야에 깊이 빠진 인간이 둘 이상 모이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시끄러워지는군.
둘의 고성방가를 들으며 나는 시놉시스를 찬찬히 훑어봤다. ‘바나나 마이크’가 대체 뭔지 이제는 알겠다. 그냥 현실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한 무한 동력 장치였군.
이번 작의 세계관은 대단히 이상했다. 음악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세상이 돌아갔으니까. 세계 단일 정부는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을 위해 락 음악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금지했다. 자유롭게 음악을 들을 권리를 빼앗긴 시민들 사이에선 이러한 정부의 독재에 맞서 음악 레지스탕스를 구성했으며, 락 음악에 맞서 힙합을 통해 승리한다는, 조금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줄거리였다.
대충 뭐를 은유한 줄거리인지는 뻔히 보인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원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이겠지.
그걸 토대로 화려한 색채와 네온사인이 번지는 분위기 등, 시각적으로도 엄청 화려했다.
그중에서 석준과 네스퀵은 레지스탕스의 수장으로, 주인공이 어렸을 때 업어 키워 준 부부 역할을 맡았다.
“저희가 반란군 수장 역할, 엄청 설렙니다. 진짜, 진짜 여기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니.”
“초반부에 붙잡혔다가 엔딩 때 구출되는 역이지만.”
“그래도 형님, 나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입니다.”
그건 알겠으니까 조금 천천히 말해주면 안 될까. 평범했을 때의 너랑 대화할 때 익숙해진 게 있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어 가사 부분과 번역본을 확인했다. 정말 완전히 직역을 해 뒀군. 이걸 토대로 가사를 쓰라는 걸까.
“준, 가사 2주 후까진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나는 너 혼자서도 충분히 잘 쓸 것 같은데.”
내 말에 석준이 감동받은 표정을 짓는다. 뭘 봐.
“형님! 저를 그렇게 봐주시다니!”
객관적인 평가였을 뿐 내가 너를 특별히 아끼는 게 아니란다, 준아.
“오랜만에 봐도 여전히 친절하고 다정하네.”
그건 됐고, 춘광 씨께서는 왜 저희에게 광고를 꽂아 주지 않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녹음본 아직 소장 중인데.
“작곡 여행 이후에 일이 엄청 잘 풀리고 있어서 내가 얼마나 요즘 살맛나는지 몰라.”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자신의 안부를 말하기 시작하는 네스퀵. 아마도 의식의 흐름이 그렇게 이어졌나 보다.
“그날 이후에 춘광이랑 사이가 좋아져서 같이 아버지 머리채도 한 번 잡으러 갔거든.”
대단합니다. 불법을 저지르셨군요.
“그때 공식적으로 집에서 내놓은 자식으로 인정받았어. X나 행복해.”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른 거니까. 버려져도 행복할 수도 있지.
“이거 곡 유명해져서 나중에 같이 무대도 한 번 더 하고 그러면 개좋겠다!”
욕설은 사회에 대한 반역의 정신을 기본으로 한다던데, 레지스탕스에 참 잘 어울린다.
“…가사에 욕 쓰면 안 됩니다.”
“나도 그 정돈 알아요. 위즈니 보는 우리 애기들 동심 지켜 줘야지.”
하지만 실시간으로 석준의 동심은 부서지고 있다. 얘도 아직 애라서요, 네스퀵 씨.
“어쨌든, 나중에 한 번 시간 좀 내줘, 동화 씨. 비대면으로도 괜찮고. 나도 가사 검사 좀 받자, 방송 가능한지.”
그걸 검사 받아야 하는 시점에 문제가 심각한 것 같은데.
* * *
흥 활동의 막바지. 이어질 후속곡 활동을 위해 연습실에서 안무를 맞추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후속곡의 제목은 ‘루미너스’로, 말 그대로의 의미인 팬송이다. 가사도 멤버들과 함께, 작곡도 멤버들과 함께, 편곡은 내 손으로, 마무리 작업도 내 손으로 했으니, 완전히 가내 수공업으로 완성한 곡이기도 하다.
“어우, 하민이 형이 짠 안무 너무 빡세요.”
이현재의 말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채하민과 류이든이 함께 짠 안무인데 욕심이 많았던 걸로 보인다.
그러니까 순전히 팬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손으로 만든 무대. 경제적으로는 큰 이득을 남기기 어렵겠지만, 그런 의도의 무대는 아니니 괜찮을 것이다.
“형-님, 가사 한 번 봐-주십시오. 저는 괜찮-은 거 같은데.”
석준은 그 사이사이에 가사를 내게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다. 말투도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와서 다행인 일이다.
“…좋은데. 확실히 가사 잘 써.”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난번에 보여준 것에 비해 확실히 좋았다. 대사의 맥락, 캐릭터의 움직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티도 나고.
일례로 원어에서 직역했을 때 ‘거짓말만 해, 점점 더 위태로워져’라고 적혀 있던 부분을 ‘걔네 입에서는 악취, 무기를 들 타임(Time)’이라고 번역했다. 실제 장면에서 캐릭터가 표정을 찌푸리며 코 앞쪽으로 손을 몇 번 흔든 뒤, 삽을 들어 올리는 걸 고려한 것 같다.
“으아아악! 성공했다!”
대답을 듣는 순간 석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환호를 질렀다. 꿈을 이룬 사람의 광기는 점점 번져 나가선, 이윽고 연습실을 미친 듯이 달려댔다.
저렇게 기쁠까. 참 순수한 인간이다.
“형, 동화가 우리 아버지 같은 표정을 짓는데.”
“준이 보는 표정이 거의 뭐 부모님 급이네.”
“현재 과외할 때 표정도 약간 그런 느낌이던데.”
거기까지 말한 채하민은 잠시 말을 멈추고 뭔가 골똘히 생각한다. 하민, 너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면 항상 이상한 결론을 내서 무서워.
“…잠깐만, 왜 나는 그렇게 안 봐 줘, 동화야.”
뭐라는 거야, 미친 토끼야. 친구를 아들처럼 보는 게 더 이상한 거잖아, 하민.
“나도 아들 할래!”
내가 네 아버님도 뵙고 온 몸이라 그건 좀 무리일 것 같은데. 어머님이랑은 단 둘이 차까지 마셨어.
류이든도 흥미가 동했는지 한 마디 얹는다.
“그럼 나도 아들 하자, 동화 형. 블로센스 공식 엄마인 걸로.”
…그, 내가 일단 생물학적 성별이 남성인데, 이든 형. 언어의 사회성을 고려하면 안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아버지라고 불리기보다는 팬분들이 붙여준 블로센스 공식 사육사로 불리고 싶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현재가 살풋 웃는다.
“동화 형은 그러면 무성생식한 거네요.”
무슨 아메바 같은 소리를.
“앞으로 저를 레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저는 석레이입니다!”
그 와중에도 석준은 연습실을 뛰어다니길 멈추지 않는다. 레이는 이번에 맡은 역할의 이름인데, 과감한 결단이 돋보인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기왕이면 잘 되면 좋겠다, 그치?”
너도 부모님 같은 표정이잖아, 하민.
나는 채하민의 흐뭇한 표정을 보며 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