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4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44화(144/343)
144.
“와, 요즘 문자로만 대화하다가 얼굴로 보니까 좋네. 잘 지냈어?”
문자로도 물어봤으면서 또 묻는 건 왜일까.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윤성호는 딸기잼 쿠키를 몇 개 내밀며 내 앞에 앉는다. 매점에서 대화하는 것도 오랜만이군.
“어떻게 된 거야?”
“바로 그 얘기야?”
윤성호는 너털웃음을 흘린다. 윤성호가 권력을 잡았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저렇게 급변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어…,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까.”
윤성호는 천장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고문.”
그런데 정작 대답은 뒤에서 갑자기 불쑥 나타난 호연의 입에서 나왔다.
“고문했어. 전부.”
그렇군. 공포정치가 해법이었다니. 거기에 당근을 주기 쉬운 성격인 윤성호니까 완급 조절만 잘했다면 일인 독재 체제를 효과적으로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 철학적으로 대단하다. 독재정의 가장 기본을 충실히 지켰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주고 싶다.
“호연아! 제발! 오해할 소리 좀 하지 마!”
나는 가만히 윤성호를 바라본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 말고, 너도!”
아니, 너무 그럴듯한데.
“그게 아니라… 그냥 한 사람씩 불러서 대화한 거지. 막 고문을 하고 그런 게 아니라. 나 엄청 평화적인 사람이라고!”
“6시간씩.”
세상에나.
“제발, 가만히 있어, 연아.”
“뭔가 잘못할 때마다 계속, 6시간씩.”
맙소사.
“어떨 때는, 애가 말을 잘 안 들으니까 가만히 앉혀 놓고, 14시간 동안.”
경악스럽군. 어떤 인간이 14시간 연속으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당해 봤는데.”
호연, 너는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내가 아무 말을 안 해도 계속, 딴짓 하는 것도 안 돼서, 가만히 앉아서 얘기만 들어야 해. 잘못한 일이 뭔지, 그게 자기한테 얼마나 마음 아픈 건지, 앞으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계속, 끊임없이.”
호연은 끔찍한 기억을 회상하듯이 미간을 찌푸린다.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긴 문장인 걸 보, 그만큼이나 끔찍한 기억이었던 것 같다.
“그냥 1시간 얘기한 건데, 너랑은!”
그걸 듣고 있던 윤성호가 얼굴이 약간 붉어져선 소리친다. 그러니까 집중해야만 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시간이 늘어나는 인권 교육 시간을 고문의 소재로 활용한 거군. 비폭력주의의 정점이다.
“…고생이 많네, 성호.”
윤성호는 뭐가 부끄러운지 모르겠지만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다시 들어올렸을 떄는 평소의 웃는 표정으로 돌아온다.
“행복해, 요즘.”
대화 맥락이 그렇게 흐르는 게 맞나 싶다. 아마도 없었던 이야기인 셈 치려는 것 같으니 따라야겠다.
“…그래?”
“너 덕분이야.”
뭐가, 망할 놈아. 아무리 들어도 네가 고생해서 얻어낸 행복이잖아. 윤성호가 얽힌 이야기를 알 리는 없고, 안다고 하더라도 이건 윤성호의 성공 신화다,
“나 솔직히 조금 많이 ‘아… 그냥 연이랑 둘이 나가서 듀엣하고 싶다.’라고 생각을 엄청 했던 때도 있었거든.”
“난 지금이라도 좋아.”
윤성호는 옆에서 사족을 다는 호연을 깔끔하게 무시한다.
“그럴 때마다 네가 문자를 툭툭 보내는데, 엄청… 위로가 됐거든.”
“성호, 난.”
“너는 당연하고, 연아. 어쨌든 고마워. 덕분에 여기까지 잘 버텼어! 너희 둘 아니었으면, 아마도 난 못했을 거야.”
왜 선한 인간들은 자신이 잘한 일을 타인의 덕으로 돌릴까. 악한 것들은 그와 정반대로 행동하는데 말이다. 윤성호는 생각을 고쳐먹을 필요가 있다. 즉, 타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전에, 자신의 대단함을 먼저 칭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쌀맛이 나는 음료를 한 병 윤성호 쪽으로 내민다. 내가 마시려고 사둔 거지만 일단 줄 게 당장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네가 잘한 거고, 네가 대단한 거야, 성호.”
“맞아. 대단해.”
윤성호는 자기 앞에 놓인 쌀맛 음료를 가만히 바라본다.
“누가 옆에서 도와줬든 네가 해낸 거야. 나였으면 진즉에 탈퇴했어.”
“나는 너 보고 탈퇴 안 했어.”
“나한테 고마워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도리어 너를 칭찬하고 싶은데.”
“맞아.”
나는 옆에서 계속 한마디씩 덧붙이는 호연에 웃음을 흘린다. 말수가 적은 줄 알았는데.
“성호, 너도 그랬으면 좋겠고.”
윤성호는 천천히 고개를 푹 숙이다가 심호흡을 몇 번 한다. 그러고는 약간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보며 웃는다.
“아… 진짜 우리 그룹으로 납치하고 싶다.”
이런 순간에서조차 윤성호는 서바이벌에서 탈락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그룹을 얼마나 아끼는지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어쩌면 호연에 대한 정일 수도 있고.
“난 반대.”
왜, 망할 호랑이. 나 정도면 좋은 멤버인데.
“성호 리더 좋아.”
……음, 이해가 어렵군. 아직 호연의 화법에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한 것 같다.
“동화 들어와도 내가 리더하면 되지, 연아.”
“내가 해.”
무슨 말인데, 이번에는. 나는 자연스럽게 윤성호 쪽을 바라본다.
“에이, 당연히 너도 이미 충분히 힘이 되고 있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동화도 있으면 좋겠다, 그런 거지.”
뭐 해, 미친 것들아. 환웅과 호랑이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는 우매한 인간이 된 기분이다. 왜 나만 이해가 안 될까. 살면서 몇 번 해본 적 없는 경험이라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그렇게 멍하니 둘의 대화―혹은 암호―를 듣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뒤로 확 잡아당긴다.
“짜잔, 아쉽지만 동화는 우리 거랍니다!”
강아지 놈이었군.
“산업 스파이 윤성호 씨는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동화 의견도 들어봐야지, 형. 우리 갓에이 지금 나쁘지 않다? 팬분들이 요즘 애들 무대 엄청 열심히 한다고 좋아해 주신다?”
나는 갑갑하게 목을 감싸고 있는 류이든의 손을 떼어내며 윤성호에게 물었다.
“…성호, 너랑 이든이 형 교환 가능할까.”
“안 돼!”
“안 돼!”
그러자 류이든과 호연이 이구동성으로 비명을 질렀다.
“미안해, 연이가 너무 싫어하네. 우리 그룹에도 정도 들었고.”
“…알겠어.”
옆에서 류이든의 비명이 들리지만, 일단 무시해 보도록 하자.
* * *
윤성호와 헤어지고 다시 대기실로 가는 길, 류이든이 입을 열었다.
“동화 형, 방금 그거 진심은 아니지?”
말꼬리를 늘리며 장난스레 말하는 류이든. 나는 류이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당연히, 진심 아니야.”
“어우, 식겁했네.”
손으로 흘리지도 않은 땀을 닦아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류이든.
그러고 보면, 아무리 장난이었어도 그런 말을 한 건 잘못 아니었을까. 친한 사이일수록 조금 더 조심해야 하는데. …속죄할 겸 본심을 말하는 벌을 받도록 하자.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형이랑 같은 멤버인 게 자랑스러운데.”
류이든은 내 어깨를 붙잡아 돌리고는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요즘 왜 이렇게 나한테 감동적인 말 자주 해주지. 혹시 어디 아픈가?”
나는 깔끔히 손을 쳐내고 다시 갈 길을 걷는다.
“시끄러워, 이든 형.”
“자랑스러운 멤버랑 같이 가야지, 동화야―”
“그만, 형.”
귀여운 척하며 말꼬리 늘리는 건 목화 말고는 누구에게도 허락할 수 없다.
나는 치대는 류이든을 멀찍이 떨어뜨리고, 다시 대기실로 향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동화야.”
류이든쪽을 흘깃 바라본다.
“회사에서 너 말투 한 번 개조해 보자는 말이 나왔더라고?”
…음? 그게 무슨 말이지. 내가 윤성호는 아니라 개조에는 일가견이 없는데.
“나는 일단 아무 말 안 하고 나오긴 했는데, 너무 격식 차리는 것보다 약간 낮추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어.”
그렇군.
“솔직히 나는 뭐, 그런 것까지 고쳐야 하나 싶긴 한데. 어쨌든 그런 제안 정도가 흐르더라, 라는 얘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십 년째 붙은 말투를 고치는 건 너무 힘들 테니, 만일 회사가 원한다면 굉장히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되겠군.
“그러고 보면 왜 극존칭 써?”
“…어렸을 때 예의 없단 소리 듣기 싫어서 버릇됐어.”
원래 부모님이 없이 자라는 아이는 말투 행동 하나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한 부모 욕을 듣기 마련이고, 나는, 싫었으니까.
류이든은 자세히 말하지도 않고 단 한마디 안에 함축된 과거사를 이해했는지 당황한 듯 입술을 오물거린다.
저런, 채하민한테 옮았군.
“어, 그게, 음.”
왜 류이든의 사회성은 이런 상황에선 작동을 멈추는지. 나는 약간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괜찮아.”
정말로, 내 손에 아버님이 쓴 책과 어머님이 쓴 악보가 있는 한, 괜찮다. 말할 수 있는 건, 더는 트라우마가 되지 못한다.
* * *
기습적으로 공개된 팬송은 블로센스판의 중심화제가 되었다. 솔직히 아이돌의 의례나 관습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그게 자신의 본진이 부른 곡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이다.
“아니, 이거 합법이야?”
음방을 같이 뛴 채하민의 팬과 카페로 가 음원을 들으며 지동화의 팬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위험한 살상용 무기를 그냥 이렇게 배포해도 되나? 정부에서 압수하는 거 아니야?”
채하민의 팬은 육성으로 듣는 주접에 고막이 아파 옴을 느끼면서도 동감한다. 그만큼이나 파괴력 있는 음원이니까.
“내가 작곡 배우는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클래식이 베이스가 됐다더라고. 동화 혹시 클래식 작곡도 공부하나?”
지동화가 어머니의 아직 발표된 적 없던 짧은 멜로디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곡이라 클래식 베이스가 된 것이지만, 지동화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확실히 동화는 미친 사람이 분명한 것 같긴 해.”
자신의 돌이 본업에 충실한 모습을 보는 것만큼 만족스러운 일도 덕질 인생에서는 별로 없다.
“…잠깐, X발, 이거 뭐야.”
팬 커뮤니티와 SNS를 보던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욕을 중얼거린다.
“…왜, 뭐 터졌어?”
아이돌 덕질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병크가 터진 건가, 채하민의 팬은 순간적으로 굳는다.
“아니… X나 너무 개소리인 게 사실처럼 적혀 있어서?”
그녀는 보고 있던 노트북을 반대쪽으로 돌려준다. 거기엔 [화제의 그룹 블로센스, 내부 불화설 정황 공개?!]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가 있었다.
“뭐야, 찌라시잖아. 망할 것아! 식겁했네, 진짜.”
영상의 내용은 단순했다. 지동화와 류이든이 내부 권력을 두고 기싸움이 대단하다는 내용. 거기에 증거 자료 중 하나라고 공개된 게 백스테이지에서 지동화가 류이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카메라의 구도 등으로 보아, 몰래 촬영한 것으로 보였다.
“근데 동화가 이든이 붙잡고 흔드는 건 가끔 있는 일 아니야?”
“겁나 흔한 일이지. 흔들어지지도 않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잔인한 사실을 내뱉는 지동화의 팬은 진지한 표정으로 화면을 살펴본다.
“…아, 씨, 또 해충 몰리겠네.”
“원래 뜨는 애들 머리 잡는 게 이 판 규칙이잖아.”
약간 판매가 부진하면 ‘하락세’, 조금이라도 잘 나간다 싶으면 ‘주작’. 일부 악질들이 만들어낸 돌판의 유구한 문화적 유산이다.
“…결국 고통받는 건 우리란 말이지, 망할.”
“너 말투 옮았네.”
커피를 호로록 마시는 소리. 뉴미디어의 발달은 모든 기술이 그렇듯 양면성을 지니는 법이다. 망할 X튜브.
* * *
우연이 이렇게 겹치기도 하는군. 나와 류이든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오늘따라 분탕종자들이 활개를 치는 댓글창을 바라본다.
오늘은 정기적인 W앱. 나와 류이든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 그리고 하필이면 오늘 우리의 불화설 루머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한다.
나와 류이든은 늘 그렇듯 눈빛과 책상 아래 수신호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꺼?’
‘말도 안 되지. 루머 인정하는 걸로 오해할걸.’
앞에 앉은 회사 직원 분은 빠르게 스케치북을 들어올린다.
― 오늘은 사이좋은 모습 좀 많이 보여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 강아지랑 말씀입니까? 나는 차오르려는 한숨을 힘겹게 억누른다. 망할, 인터넷. 애초에 군용 기계로 개발된 덕인지 공격 성능은 참 대단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