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4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46화(146/343)
146.
약 30분 전, 나는 채하민과 류이든에게 양쪽 팔을 붙잡힌 채 TV 앞에 앉았다.
“안 도망칠 테니까 놔.”
“에이, 동화 형, 내가 너를 믿을 리가 없잖아.”
“……조심해. 독살당하면 범인 나니까.”
“동화야, 내가 도와줄게!”
…음, 대체 너는 뭘까, 하민. 내가 본 인간 중에서 가장 곱게 미친놈 같아.
“지금부터 단련해서 독도 이겨낼 수 있는 몸을 만들면 되겠다.”
그건 동물의 범주를 넘어선 거잖아.
그렇게 소소하고 화목하게 류이든의 암살 계획에 대해 대화를 하고 있으니 곧 방송이 시작됐다.
오프닝이 지나가고 나서 바로 인터뷰 화면으로 전환된다.
“오, 형님!”
석준이 소리치자 모두의 시선이 TV쪽으로 쏠린다. 우리 멤버들은 왜 항상 가능하면 다 같이 모여 모니터링을 할까. 물론 다른 멤버의 방송을 모니터링하는 것 자체는 불만이 없지만, 나 혼자 나오는 수치스러운 영상까지 같이 보고 싶지는 않은데.
― 아, 지금 말하면 됩니까? 안녕하십니까, 블로센스의 동화라고 합니다.
가끔씩 일상이 지겹지는 않냐는 물음에 TV 속 나는 미소를 짓는다.
― 사실, 방송 취지랑 많이 안 맞지만, 요즘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 (이유가?)
― 동생이랑 멤버들 때문에.
“어어어어! 면전에 대고는 저런 말 한 번도 안 해줬으면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인다. 저 인터뷰가 하필이면 목화와의 여행이 끝났을 때 이뤄진 거라, 저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버렸다.
옆에서 뭐라고 소리치는지 모르겠는 멤버들 사이에서 나는 눈을 감고 천장을 바라본다. 망할, 저게 앞으로 있을 이야기의 예고편이라는 게 제일 문제군.
‘기지생, 나 좀 기절시켜줘.’
[싫습니다. 수치라는 감정의 맛이 너무 달콤합니다! 데자와와 함께 하는 즐거운 드라마 시간입니다!]세상에나, 저렇게 늙진 말아야지. 데자와도 오늘부터 끊어야겠군.
[데자와는 개입니다!]뭐라는 거야, 미친 존재. 혹시 AI 같은 걸로 강아지 한 마리를 만든 건 아니겠지.
TV 속에서 나는 목화의 밥을 챙겨주며 뭐라도 하나 더 먹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우, 눈빛 봐. 꿀이 아주 그냥.”
“형―님, 저도 저―렇게 봐―주십시오.”
목화만큼 귀엽고 나서 얘기해.
― 여기가 아버지, 그 반대편이 어머니가 다니셨던 학교였어, 목화.
― …느낌 이상하다. 여기서 형이랑 내 역사가 시작된 거네?
그러고 나와 목화는 학교 사이에 있는 공원에 간다. 멤버들은 내 입에서 흐르는 부모님 이야기에 모두들 침묵한 채 그저 집중하고만 있다.
공원 정중앙에 있는 텅 빈 정자, 약간은 낡은 곳에 앉아 있는 나와 목화. 따스하고 편안한 음악이 배경을 채워준다.
― 부모님 일기에 적혀 있었던 건데, 여기 있는 정자에서 아버지는 항상 책을 읽으셨고.
나는 정자 반대편에 있는 벤치를 가리킨다.
― 저기 있는 벤치에서 어머니는 명상을 자주 하셨대.
― 명상?
― 응, 어렸을 때라 기억 못 할 수도 있지만, 집에서도 자주 하셨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원에서 얼굴을 마주쳤어.
― 오오, 그럼 어떻게 친해진 거야?
―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읽고 있던 책을 뺏어서.
― 책을 뺏어?
― 책만 보지 말고 대화나 하자고. 자꾸 보이는 아버지가 신경 쓰여서 짜증 나셨거든.
목화가 웃음을 흘린다. 무슨 역사책 읽는 기분이라면서.
―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책만 본 건 아니었다고 대답했대.
― 뭐야, 그거 반쯤 고백 아니야? 나는 너도 봤다!
“로맨틱.”
석준의 짧은 한마디에 내가 웃음을 터뜨린다. 고요한 정적을 다 깨부수면서, 너무 정직한 발음으로 세 글자가 들려서.
― 그렇게 매일 대화를 나누다가, 졸업할 때 아버지가 고백하셨고, 같은 대학에 가서, 28살에 결혼하셨어.
― …이상해. 너무 어려서 부모님 얼굴은 잘 기억 안 나는데, 따스했던 것만 기억나거든. 그래서 그렇게 따스했던 걸까.
이후 내 인터뷰 장면이 나오고, 부모님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마친 뒤, 바로 바다로 이어진다.
멤버들은 모두 화면에 집중하고 약간 눈물을 글썽인다. 그 모든 것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도망칠 때가 됐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류이든에게 곧바로 제압당했다.
“뭐지? 여기 이 장면에 아기 고양이가 뭘 숨기려고 하는 걸까?”
“제발 그 같잖은 별명 좀 갖다 버리십시오! 수치도 모릅니까!”
W앱 때 미처 표시하지 못한 분노가 심장에서부터 몸 끝까지 달려 나가는 기분이다.
[저는 이제 압니다! 이게 수치입니다!]닥쳐, 기지생. 지금 몹시 모멸감을 느끼는 중이니까. 물론 그렇게 모멸감을 느낀다고 해서 류이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 가만히 있지만.
세상이 끝날 때 내가 널 지켜줄 수 있을까
내 마지막 기억이 우는 네가 짓는 미소일 수 있을까
그래, 망할, 이제 시작됐군.
내 목소리가 들릴 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걸 깨달으며 깔끔하게 체념한다.
“와… 곡 좋아요.”
“이거 완전 처음 듣는다, 동화야.”
멤버들이 웃으며 감상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무표정하다.
마침내 ‘Skyfall’을 부르다 목화가 울고 무대가 중간에 끝나고 나서, 별 의미 없는 몇 개의 장면이 이어진다.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한 장면들, 그에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 (동생과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영상으로 남긴다면?)
TV 속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연다.
― 우선, 목화, 음, 내가 많이 모자란 형이라고 말하면 또 싫어하겠지만, 난 언제나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모든 인간이 부족한 건 당연한 소리인데 뭐라도 된 듯이 지껄이는군. 저 뒤에 뭘 할지 알고 있으니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 부족한 만큼, 그리고 실수한 만큼, 그래서 잃어버린 시간만큼 더 사랑해 주려고 노력할게.
나는 눈을 감는다. 이제 곧이다.
― 그리고 멤버들은… 음, 성격상 말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고마워.
“어?”
“어, 울어?”
나는 다시 일어난다. 놀라움 때문에 근육이 풀린 류이든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감동받은 채하민이 내 허리를 부여잡는 바람에 다시 자리에 앉는다.
― 정말로.
그렇게 짧은 한마디를 뱉고 TV 속 나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울기 시작한다. 당시에 울었던 상황적 요인은,
첫째, 목화랑 같이 있었고, 목화 앞에선 울 수 없기에 감정을 항상 억누르고 있었다.
둘째,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머릿속에서 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으로 가고, 그로 인해 일기를 몇 번씩이나 읽게 된다.
셋째, 망할 멤버들에 대한 고마움이 컸고, 당시가 새벽이었다.
위와 같다.
‘…하, 망할. 몇십 년 억눌린 감정은 참 위험하군.’
피곤하면 감정 제어가 힘들어서 문제다.
“와아아아아아! 동화야, 너 울어?!”
“운다, 지동화가 운다!”
“우리 아기 고양이 왜 울어!”
멤버들은 축제 현장이라도 보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둘러싼 채 흔들어댄다. 류이든은 암살 확률을 또 자신의 입으로 높이는군.
“다, 꺼져.”
“나도 고마워, 동화 형!”
내가 우는 걸 처음 보는 것도 아닌 양반들이 시끄럽다.
“동화야, 내가 더 고마워. 진짜.”
……잠깐, 너 울어, 하민?
고개를 돌려 보니 채하민이 입술을 악물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네가 우는 상황적 요인은 내가 차마 모르겠네.
“너가, 너 덕분에 나도 진짜, 진짜 구원받았어!”
내가 뭘 했길래 ‘네 덕분에 구원받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작 구원은 자기가 했으면서, 어이없군.
다른 멤버들도 당황스러운지 나를 둘러싼 애매한 자세로 멈칫 서 있다.
왜 우는지 설명해달라고는 할 수가 없어서 나는 가만히 채하민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버지 설득해 줘서 고맙고.”
그건 우리 아버지께 고마워할 일이니 패스.
“친구 없었는데 나랑 친구 해줘서 고맙고.”
나도 마찬가지라서 고마워할 일은 아니니 패스.
“내 성격 귀찮을 텐데 잘 받아줘서 고마워!”
이것 역시 나도 마찬가지라 패스.
음, 딱히 크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채하민을 앉히고 같이 옆에 앉았다. 내 앞에 서 있던 석준이 채하민의 눈물에 연쇄 작용을 일으켰는지 울기 직전인 것이 보였다.
제길, 회의 끝나고 바로 도망쳤어야 했는데.
* * *
공항, 온갖 사람들의 활력이 집중된 곳이다. 세계의 체감 규모를 줄여 버린 발명품이다. 기차가 근대에 탄생해서, 일평생 태어난 마을 정도로 제한된 한 개인의 세계관을 확장했듯이.
“비행기 탈 때 느낌 어때요, 형.”
이현재는 설렘과 긴장 사이 어딘가에 있는 표정으로 자기 심장을 마사지하다가, 채하민과 지동화를 찾아 가 같은 질문을 했다.
“처음 탈 땐 엄청 설레, 형. 막 새처럼 하늘을 나는 거잖아? 가슴 뛰고, 막, 막.”
채하민.
“개념적으로 알고 있던 ‘공간’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될걸.”
지동화.
채하민과 지동화의 대답을 연달아 듣고 이현재는 어쩜 저렇게 다른 두 명이 절친해질 수 있는지 의아해지곤 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타는 비행기, 서로 멀리 떨어진 두 공간을 기존엔 연결할 수 없던 방식으로 연결하는 발명품. 이현재는 어제 지동화와 대화를 나누며 했던 생각을 정리하듯 되새겼다.
‘…성층권을 가르면서, 인류의 한계를 뛰어넘고.’
그러다 공항에 내리고 대포 카메라를 든 팬분들 사이를 걸어갈 때였다. 무수히 많은 카메라가 자신을 지켜보고, 일거수일투족이 촬영되고, 언제든 도마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온다.
호흡이, 약간, 가빠져, 가는 걸, 느낀다. 마치 무서운, 영화를, 볼 때처럼, 호흡이.
그때 순간적으로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는다.
“침착.”
지동화의 목소리.
“숨 쉬어.”
그제야 멈추고 있던 숨이 느껴진다. 이현재는 힘겹게 한 모금 숨을 내뱉는다.
“다리에 힘주고, 늘 걷던 대로.”
다리가 말에 따라 다시 움직인다. 누가 보면 범인이 인질을 끌고 가는 듯싶은 모습이었다.
“사진 한 장을 보고 누군가 함부로 너를 예단한다고 해도.”
이현재의 호흡이 잠시 멈칫했다가 천천히 재개된다. 지동화는 이현재의 양어깨를 꼭 붙잡고 계속해서 속삭인다.
“네가 떳떳하다면 당당하게 걸어가도 돼.”
말을 멈추고 이현재는 의식적으로 숨을 쉬고, 의식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며 걸어간다.
마침내 공항 안에 들어가고, 의자가 보였을 때, 이현재는 그 앞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지동화가 옆에 같이 앉아 이현재와 눈높이를 맞춰 주고 있는 게 보인다.
“…고마워요, 형.”
“무시해도 돼. 네가 잘못한 게 아닌 이상.”
어떻게 눈치챈 거지. 자신 스스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형, 무서워요.”
“그럴 수 있지.”
‘아니, 형이 무섭다구요. 어떻게 알았는데요.’
지동화와 류이든의 사태가 있고 나서 서서히 커지던 불안이 오늘 유독 극성맞게 난리를 피운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알았어요?”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어.”
공포는 본인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새 육체적 반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너, 스케줄 갈 때 방송용 아닌 카메라 보면 흠칫했거든.”
“하…, 진짜, 순간 죽는 줄 알았어요.”
지동화와 이현재는 그렇게 한참이나 옆에 정상적인 의자를 두고 공항 바닥에 앉아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뭔가 둘이 대화할 게 있다는 걸 눈치챈 류이든이 화장실로 데려갔기에, 둘만 조용히 앉아 있었다.
“…형, 이거 심해지면 어쩌죠?”
“상담받으러 다녀야지.”
“이거 때문에 다른 멤버들 민폐 끼치긴 싫은데….”
“민폐라고 생각하는 멤버들은 아마 없겠지만, 있으면 내 손으로 처리할게. 4명이 되면 조금 휑해 보이긴 하겠네.”
“하, 망할.”
이현재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는다.
“형은 진짜 멋있어요. 꼭 내가 닮구 만다.”
“……그거, 좋은 생각일지는 모르겠네.”
이현재는 웃음을 흘리다가 한숨을 쉰다.
“지금 당장 치료받을 수는 없으니까, 예방법 하나만 좀 알려줄 수 있어요, 형?”
“흠.”
지동화는 미간을 찌푸린다.
“전문가가 아니라 함부로 말할 수가 없어. 심리는 꽤 미묘한 분야라서.”
하지만 지동화는 곧 이현재를 선명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옆에 있는 건 전문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어.”
이현재는 고개를 끄덕인다. 방송용 카메라에도 이러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지동화가 자신의 선생님이라 다행이라고, 이현재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