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4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47화(147/343)
147.
“그래서, 무슨 일이었어?”
화장실에서 돌아온 류이든은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 표정으로 걱정 섞인 목소리를 냈다. 어깨동무하는 포즈와 표정만 보면 그냥 친근해 보이지만, 그 속에 이현재에 대한 걱정이 깊게 담겨 있는 게 보였다. 정말, 연예인.
“…내가 말해도 되는 문제인지 헷갈려.”
이런 문제를 함부로 떠들고 다니는 건 문제니까.
“그래? 조금 예민할 수 있나 보네.”
류이든은 순간 표정 관리에 실패했는지 잠시 얼굴에 걱정이 번졌다.
“걔는 진짜 걱정돼 죽겠어.”
“…그래?”
“어, 멘탈이 조금 약했거든.”
끄덕, 절로 수긍이 된다. 이현재는 의외로 정신적으로 유약한 편이지. 최근에야 조금 단단해진 것 같지만.
“어으, 어쨌든, 나는 현재랑 얘기 좀 해 볼게.”
그렇게 떠나간 류이든은 비행기에 타기 직전 내게 다시 귓속말했다. 그 짧은 시간에 이현재의 입을 열다니, 대단한 수완이군.
“내가 이걸 회사에 말해야 할까, 말까. 의견 좀 여쭐게요, 형님.”
“…어려운 문제네.”
회사도 이현재의 상황에 대해 이해할 필요는 분명히 존재한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게끔 관리도 해야 할 테고. 물론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만일 아니라면 그것도 큰 문제니까.
“말하는 게 맞다는 건 알겠거든? 리더로서도 그게 맞다 싶고. 근데, 그걸…… 현재가 딱히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야.”
어려워, 망할. 뭐라 쉽게 답하지 못하겠다. 애초에 윤리적 딜레마의 영역이잖아. 이현재의 의사를 따라 말하지 않았을 때, 추후 상황이 심해지면 결과론적으로 잘못된 짓이다. 그 반대 역시 상황에 따라 옳지 않을 수 있으니 마찬가지다. 이렇게 결과를 고려할 때 딜레마가 발생한다면 그 이전 과정이 도덕적이냐를 검토하는 게 적절하겠지만….
“…모르겠는데.”
류이든은 약간 흠칫한다.
“네 입에서 모른다는 말 나오는 게 왜 이렇게 어색하냐.”
예전에 아이돌 문화 모를 때도 자주 말했는데.
“…그럼 일단, 너랑 나,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현재 옆에 있어 주는 걸로. 말할지 말지는 현재랑 같이 한 번 고민해 보는 걸로.”
“오케이. 수용했어.”
오늘 저녁은 다른 나라로 간 기념으로 자유시간이라고 하니까 이야기할 시간이 많겠지.
* * *
비행기로 향하는 통로에서 나는 이현재의 옆에 꼭 붙어 서 있었다. 조금이라도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면 붙잡아 주려고.
“형, 과보호.”
“조용.”
이현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싫은 기색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데, 순간 걸음을 멈춘 이현재가 어느 한 곳에 시선이 꽂혀 있었다.
“…저, 저기도 카메라 드신 분이 계시네요.”
이현재의 시야 끝에는 평범한 여행객으로 보이는 분이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보고 있었다. 저런, 하필이면.
“천천히, 다른 걸 바라봐. 비행기 활주로도 좋고, 내 낯짝도 괜찮아.”
이현재는 내 말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면서 천천히 숨을 쉰다.
“…하. 이거 엄청 개같아요.”
이현재는 귓속말로 자신의 소감을 전달한다. 대단히 진솔하고, 나한테 배운 학생답지 않은 저렴한 소감이구나, 현재.
“진짜로. 몸이 제 의지대로 잘 안 움직여 주는 기분이에요.”
“그래.”
나는 별말 없이 이현재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말로 하는 응원은 내 경험상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아니, 왜 지랄일까요, 저는…….”
저런, 점점 더 언어가 거칠어지네. 네스퀵 씨 옆에는 절대 두면 안 되겠다.
“내 생각엔, 네 탓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하는데.”
“…근데.”
“따지고 보면, 문제 일으킨 내 잘못이지. 나 때문에 그런 일 벌어지고, 그래서 이 사단이 난 셈이잖아.”
이현재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황급히 손을 휘저었다.
“왜 형 탓을 하구 그래요, 형! 그건 그 사진 몰래 촬영한 사람이 잘못한 건데.”
“그러게. 너는 왜 네 탓을 할까, 현재.”
통로에는 사람들이 내는 소음과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리만 울렸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면, 오해받아도 돼.”
이현재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가고 있었다. 하, 내가 이렇게 어린 사람한테 정서적으로 나약하군.
“…그럴까요?”
“애초에 모든 사람한테 사랑받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네가 죄지은 거라면 나나 다른 멤버들이 얘기해 줄 테니, 나머진 다 무시해도 돼.”
이번에는 이현재가 별말 없이 그저 내 옷자락을 강하게 쥐었다.
“…아빠라고 불러도 돼요?”
무슨 개소리야, 현재야. 왜 류이든을 닮아가.
“…안 돼.”
“아쉬워라.”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이현재의 얼굴엔 아주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다행이군.
* * *
방콕. 끄룽 텝(원래의 명칭은 훨씬 길지만 모두 말하기엔 페르마처럼 여백이 부족하다.)이라는 정식 명칭이 있지만, 다른 국가가 본래의 수도를 부르던 이름인 방콕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굳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역사적인 이유 역시 존재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현재는 내 팔을 꼭 붙잡고 따라다니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공부해 오길 잘했군. 방콕 여행은 처음이라 사전 정보가 없었지만, 이렇게 현장 체험학습을 시켜 줄 수 있으니 만족스럽다.
“그럼, 여기 아시아티크는 어떤 곳이에요?”
“…자본주의라는 종교의 성지?”
“와, 더 들으면 사회에 대한 믿음이 무너질 거라는 확신은 드네요.”
“그러게 말이야. 우리 동화는 못 하는 말이 없어! 이 젊음의 거리에!”
가만히 듣고 있던 류이든이 이현재에게 반대쪽 팔이 붙잡힌 채 답했다. 이현재가 밖을 다니면서 공포를 이겨내 보겠다고 말해서 나와 류이든이 따라붙었다. 채하민은 현재 시차 적응으로 방안에서 요양 중이고, 석준은 더빙 연습 중이다.
“와, 형, 형들, 저거 먹어봐두 돼요?”
“여기 돈.”
“저도 돈 있는데.”
“사줄 때 먹어.”
“동화 형, 저도 혹시 하나?”
“네가 안 먹을 게 불 보듯 뻔한데.”
“세상에, 동화 형, 드디어 나를 동생으로 인정해 줬구나. 고마워.”
정신 차려, 미친개.
이현재는 내가 준 돈을 손에 꼭 쥐고 주변을 조심스레 둘러보며 가 닭꼬치를 하나 사 왔다. 저런, 귀여워. 류이든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것도 사 오지 않았다. 건강 생각해서 먹지도 않을 거, 말만.
…근데 저 정도 식단 관리면 건강에 좋은지 아닌지 헷갈리는군.
위잉.
내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이 사람이 왜 전화를.’
“여보세요.”
― 청혼하면 받아주나요?
미친 선배. 그런 구린 멘트를.
“……아니요.”
예언의 목소리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에이, 미간 찌푸리기 금지입니다, 후배님.
보이고 있나. 나는 닭꼬치를 먹고 있는 이현재를 류이든과 나 사이에 끼고 주변을 둘러본다.
― 그렇게 자식 지키는 황제펭귄처럼 있는 이유가 뭐예요. 저 상처받아요.
“…어쩐 일이십니까.”
― 아아니이, 그게 아니라! 세상에나, 만상에나, 10초 후에 교통사고가 일어난대요! 주의!
그건 또 무슨 류이든 같은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예언의 카운트다운. 망할, 분명 비합리적인데.
나는 류이든과 이현재를 내 뒤쪽으로 넣었다. 방향을 모르지만, 자동차가 올 방향은 도로쪽인 게 정상이니까. 가장 확률이 높은 곳에 내가 섰다.
“어, 어, 왜 동화야, 뭐라도 있어?”
류이든의 말에 답하기도 전에, 카운트다운이 끝을 향한다.
― 이, 일. 빰!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달려와 내게 숄더 태클을, 컥.
“도, 동화 형!”
갑작스러운 충격에 나는 몸을 웅크렸다. 뭔데, 망할.
“짜잔! 교통사고처럼 등장한 저랍니다!”
“나도 왔다!”
예언과 준성의 목소리. 저 미친놈들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언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지 의문이 들어서 옆에 있던 류이든의 멱살을 잡았다.
“아, 아니, 왜? 왜 난데! 장난친 건 예언이 형인데!”
“내 통화를 듣지도 않고 그걸 아는 순간 같이 공작질 한 셈 아닐까, 망할 형.”
“헤헤, 이걸 이렇게 들키네.”
장난스럽게 웃는 류이든의 얼굴을 옆으로 치우고 예언과 준성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흠칫하는 둘.
“…그, 죄송해요, 동화 씨?”
“괜찮…습니다.”
하, 수치스럽군. 왜 그런 비합리적인 소리를 믿어서는.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숙소에 돌아가면 기초 논리학부터 다시 공부해야겠군.
“어우, 역시 우리 후배님, 관대해라! 내가 맛있는 방콕 맛집 아는데, 같이 가시죠, 동화 님!”
과장된 목소리로 우리를 잡아끄는 준성.
“동화야, 내가 준성이 형한테 방콕 맛집 좀 소개해달라고 했거든. 근데 예언이 형이 꼭 장난 한 번만 쳐 보고 싶다고 그래서!”
닥쳐, 이든. 해명하지 마, 망할 인간아. 내가 더 비합리적인 짓을 한 것 같잖아.
“…현재, 너도 알았어?”
나는 류이든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이현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세상에 대한 불신이 가득히 차오르는군. 이젠 정말 채하민 말고 믿을 인간이 없다. 나중에 사업을 한다면 채하민과 해야겠어.
“사실, 형이 믿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해서……. 헛소리하지 말라고 예언이 형한테 욕하는 거 듣고 싶었거든요……. 죄송해요, 형.”
나도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의아하긴 한데, 아마 너희들 목숨 걸렸다고 생각하니까 그랬나 보지, 망할 것들아.
나는 최대한 침착해지려 노력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너는 미안할 일이 아니야 현재.”
“…잠깐, 동화 형. 나는? 왜 ‘너는’ 미안할 일이 아닌 건데!”
“빨리 가자, 배고파, 배고파.”
준성이 헤실거리며 내 어깨를 밀었다. 자연스레 무시당한 류이든의 어깨를 이현재가 조심스레 톡톡 두드려줬다. 장한 제자.
그래, 헛소리를 믿은 내 잘못이지.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수용했다.
* * *
식당에 들어선 우리는 준성의 주도하에 메뉴를 주문했다. 똠얌꿍, 살면서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데, 괜찮을까.
“내가 현지에 사는 친구한테 들은 최고 맛집이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여행에 오면 여행객이 아니라 현지인에게 인기가 있는 음식점을 가라던데, 그런 건가 보다.
나는 물을 한 잔 마셨다. 물맛이… 다르군. 어째선지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여행 온 기분이 들었다.
“TOT도 이번 특별편 출연하는 거 듣고 놀랐어요, 형들.”
“아아, 우리 투어 전에 마지막으로.”
오, 투어. 아이돌 문화에 무지한 나도 뭔지 알고 있다. 순회공연의 있어 보이는 표현.
“너희도 조금만 더 성장하면 콘서트는 열지 않을까?”
“에이, 예언이 형은 또 설레발이야. 우리 그 정도 급은 아니지.”
예언은 흐―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내 쪽으로 눈을 돌린다.
“동화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설레발 같아?”
이게 그 반존대라고 부르는 거군.
“…가능하지 않을까요.”
콘서트 규모가 크진 않을 수 있겠지만, ‘더 성장하면’ 콘서트 여는 거야 당연한 수순인데, 설레발일 것까지야.
예언은 당황한 듯 잠시 움찔하다가 씩 웃고는 준성을 바라봤다. 반면에 준성은 약간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진행되고 있잖아.
그때 때마침 나오는 음식. 똠얌꿍부터 시작해서 뿌 팟퐁 커리 등, 태국을 대표하는 몇몇 음식들이 올라왔다.
세상에나, 무슨 향기가. 온갖 향신료가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동화 형, 저 약간 두려워지는데 괜찮을까요?”
이현재의 말에 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기야 하겠어.”
나는 용기를 내서 숟가락을 들었다. 똠얌꿍의 붉은 국물을 한 모금 마신다.
세상에, 이게 무슨 맛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