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4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48화(148/343)
148.
준성은 눈앞에서 물을 미친 듯이 마셔대는 지동화를 보고 있었다. 격한 기침과 함께 이현재의 보필을 받고 있다.
“워우, 격해라.”
잠깐만,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지.
준성은 웃음을 흘리며 지동화의 고통을 바라보고 있는 예언을 곁눈질했다.
‘…아니, 뭔데. 말로 듣긴 했지만 눈앞에서 들으니 기분이.’
정작 예언과 15년을 본 사이인 자신도 예언의 말에 선뜻 믿음이 가질 않는데, 무슨 만난 지 1년도 채 안 된 사람이.
‘뭐지, 약간 부러운데.’
자신도 예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었다. 노력도 엄청 했는데, 왜 자신은 저런 은총을 받지 못하고 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곡가님이 받는지. 기묘하다, 아주.
준성의 시선을 느낀 예언이 개구진 표정이 되어선 입모양으로 말했다.
‘내 말 맞지. 쩔지. 형이랑은 다르지.’
“예언아, 약간 서운해.”
“형도 입 모양으로 말해야지.”
“내가 그래도, 어?”
“알아, 나도. 형 아니었으면 진즉에 자결했지.”
“아, 제발 그런 말 좀.”
“근데… 신기하지 않아?”
예언은 자연스럽게 똠얌꿍을 한 숟가락 집어먹고, 맛있다는 듯이 오물댔다. 기침하던 지동화가 순간 어떻게 인류가 저런 음식을 개발하고 향유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으로 예언을 바라보다가 다시 이현재의 보필을 받았다.
예언은 그렇게 향긋한 고수와 진득한 토마토,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열렬히 내보이는 요리를 맛나게 먹으며 준성에게 귓속말했다.
“어떻게, 내 말을 믿지?”
다시 한 모금. 질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계속 먹었다. 동남아 음식 처돌이인 예언다운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집도 예언의 취향에 따라 찾아낸 현지 맛집이었지.
그리고는 다시 귓속말.
‘…고수 냄새.’
“내가 말하는 예언을, 어떻게?”
너무 신나 보이는 예언의 표정에 준성은 그 말에 결국에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 이거 안 되겠다. 배워야 해. 어떻게든 선생님으로 모셔서 신뢰하는 방법 배우고 만다, 내가.’
준성은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는 앞으로 선생님이 되어줄 지동화가 류이든의 입에 강제로 똠얌꿍을 집어넣고 있었다.
“‘아’ 해.”
“아니, 동화 형, 너가 그렇게 먹는 걸 보고 어떻게 먹으라고!”
“모든 건 경험하기 전까지 불확실한 사실에 불과해, 이든.”
“아니, 간접 경험이라는 것도 있잖아!”
“간접 경험만으로는 불충분하니까.”
“나, 나는 커리 먹을 건데.”
지동화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형이랑 같은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래.”
“야, 그, 그렇게 감동적인 멘트를 하면!”
류이든은 눈을 질끈 감고 지동화가 먹여주는 똠얌꿍을 한 입 먹었다.
“……아?”
국물을 마시고, 천천히 음미하던 류이든은 질끈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다.
“동화 형, 이거 맛있는데?”
“세상에나.”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은 지동화지만, 이 순간만큼은 분명히 ‘아쉽다’라는 뉘앙스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러고는 커리를 자신의 앞접시에 덜며 ‘혓바닥에 뭘 기르는… 하긴 생물학적으로 종이 다르니까…….’라고 말하고 있었다.
‘대체 뭐하는 거지, 우리 후배들.’
하지만 이제 곧 선생님이 될 분을 속으로라도 욕을 할 수는 없는 법. 준성도 말없이 얌점히 팟타이를 앞접시에 덜었다.
* * *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지…….”
나는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비법 좀 알려줘, 다른 사람을 믿는 법.”
준성은 눈앞에서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말 같지도 않은 부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타인을 믿는 게 아니라 말의 합리성을 따지는 법은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을 잘 안 믿습니다, 선배님.
“사실, 예언이가 이름값을 좀 못하는 애거든?”
그렇군. 체육대회에서 들었던 이름 목록은 기억에서 삭제해야겠다.
“…근데, 이름값을 해.”
나는 말없이 준성의 얼굴을 바라봤다.
뭐라는 거야. 모순율을 왜 깔끔하게 무시해, 양자역학 같은 인간.
머릿속으로는 무수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고전논리학이 저 준성을 배제할 것이다.
“…잘 들었습니다.”
그럼 저는 현재가 걱정돼서 이만. 류이든과 예언 사이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여우가 고통 받을까 몹시 심려스럽다.
“잠깐만, 이게 네 귀에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거 이해하는데, 여기엔 사정이 있어.”
준성은 한숨을 쉬면서 태국산 탄산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니까, 예언을 하고 적중률도 엄청 좋은데, 예언으로서 기능을 못 하거든.”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방콕의 밤 한가운데에 왜 있는지 모를 식탁에 다시 앉았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 줄게.”
* * *
준성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예언이 자신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을.
지금보다는 확연히 어렸던 자신과, 자신보다 조금 늦게 연습생으로 들어왔던 10살의 예언의 첫 만남. 그때 예언은 준성의 얼굴을 처음 보자마자.
‘와, 데뷔하겠다, 형은.’
하고 말했다.
“…그건 그냥 잘생겼단 뜻 아닐까요.”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이상했거든.”
준성은 그 말을 듣자마자, 분노했다. 왜 그렇게 중요한 걸로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냐고. 썩은 음식 냄새를 맡았을 때 즉각적으로 표정이 찌푸려지듯, 반사적으로.
‘…거짓말 아닌데.’
‘하, 저리 비켜.’
데뷔가 몹시 간절해지기 시작했을 무력의 13살이었던 준성은 그렇게 첫 만남부터 예언과 틀어졌다.
“…뭐, 거짓말로 들렸으면 그랬을 수도.”
준성은 지동화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단순히 ‘거짓말로 들렸다’ 같은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순한 의심의 수준이 아니라, 확신. 저 입에서 나온 말이 그대로 실현될 수 없으리라는 믿음이었다.
“무슨 개소… 계속 들려주십시오.”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 후배님. 나도 개소리처럼 들리는 거 아니까. 근데… 더 개소리는 말이지.”
놀랍게도 예언은 준성에게만 ‘데뷔하겠다’ 같은 천진난만한 소리를 한 게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정확히 TOT 멤버가 될, 자신을 제외한 여섯 명의 멤버 전원에게, 똑같은 소리를 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은.”
“낮지. 그것도 더럽게 낮아. 걔가 무슨 연예계 미다스의 손이라 진주 찾는 능력이 발군인 기획자도 아니고.”
그러나 예언이 데뷔할 여섯 명을 정확히 고른 것만큼이나 이상한 일이 있었다. 그 여섯 명은 모두 준성처럼 예민한 문제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며 불같이 화를 낸 것이다.
성격이 모두 다른데도 불구하고, 온화하건 불같건 상관없이 모두.
준성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쉬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방콕의 불빛이 너무 밝하 별빛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그것 말고도 많아. 너도 짚이는 데가 있지 않아?”
지동화는 고개를 끄덕이고 짤막하게 답했다.
“드라마의 성공.”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들었던 예언의 말 중 가장 최근에 했던 예언, 블로센스가 카메오로 출연하는 드라마가 같은 시간대에서 가장 인기를 끌 것이라고 했던 말.
“왜 동화 후배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믿을 수 있을까 궁금하고, 또 부러워. 그러니까, 조금만 가르쳐주라.”
준성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전히 자신은 예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결국엔 예언이 맞으리라고 어련히 짐작하면서도 불신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준성은 지동화의 얼굴을 바라보며 간절히 부탁하고 있었다.
* * *
나는 어이가 없어 표정이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걸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카산드라도 아니고 무슨.’
애초에 합리적인 인간은 근거가 부족한 예언을 들었을 때 반감을 갖는 게 정상이다. 게다가 연습생에게 데뷔는 첫 번째 목표로 몹시 예민한 문제다. 그러니 마땅히 근거도 없이 말하는 예언에게 화를 낸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더욱이, 나는 예언의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 반감이 들지도 않던데, 성급한 일반화 아닐까.
…라고 말하기엔 내가 지금 성급한 일반화를 하고 있는 셈이군. 준성 쪽이 경험적 자료는 훨씬 많을 테고, 나 혼자 반감을 갖지 않는 걸 수도 있으니. 취소.
나는 짤막하게 내 의견을 말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인간은 마땅히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많은 법이다.
“그치? 나도 그게 궁금하다, 미치겠어, 진짜.”
“…그냥 믿을 수가 없는 겁니까?”
“어. 안 돼. 그냥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거든.”
이건 진짜 모르겠군. 도저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내가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감각이라, 역시 간접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니까, 내가 보고 배우게 해줘.”
“뭐를…….”
“어떻게 남을 믿는지.”
“…믿는 게 아니라 따지는 겁니다. 저 말에 근거가 있나, 아니면 그런 말을 할 만큼의 경험이 있나 같은 것들을. 그냥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3요소 중 로고스랑 에토스를 중심으로 따지는 겁니다.”
로고스와 에토스, 즉 논리와 성품, 이 두 가지 요소로 상대방이 한 말이 합리적인지 가늠하는 건 상당히 당연하고 직관적인 일이다. 누가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체득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준성이 ‘남을 못 믿어서’ 저런 사태가 벌어진 게 아니라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도 있다. 준성보다는, 예언 쪽에 해결법이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준성은 내 설명을 듣고 나서, 착잡해진 듯싶었다.
“…나도 알지. 아는데.”
하아, 하는 깊은 한숨 소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예언이를 바꿀 수는 없을 것 같거든.”
* * *
지동화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준성의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떠올라 날카롭게 박히고 있었다.
‘너 한 마디만 더 해봐. 내가 진짜.’
‘쟤는 이런 상황에서 저런 빈말을 하냐. 기분 나쁘게.’
데뷔곡이 망하고 나서 ‘우리는 잘 될 거예요.’라고 확신에 차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멤버들은 막내의 애교 섞인 응원이 아니라 불쾌한 빈말로 받아들였다. 준성 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그들과 같았다.
예언은 그게 익숙하다는 듯이 울지도 않았다. 그저 평온하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울해 보이는 표정이, 여전히 준성에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 예언과 자신을 강렬하게 묶고 있는 감정선은 죄책감. 여전히 예언을 어려워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자신만이라도 그를 이해하고 싶다는 속죄 심리. 착한 동생을 믿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
괴로워하는 준성의 얼굴을 지동화는 눈에 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선배님께 받은 게 많으니, 뭔가 도와드리고 싶지만.”
지동화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무겁게 들렸다.
“선배님께 중요한 문제에, 제가 돌팔이 약장수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 그래. 맞아.”
준성은 막막한 마음에 마스크를 쓴 얼굴을 이리저리 쓸었다.
“곧 재계약 시즌이거든, 우리.”
그리고는 한숨.
“……예언이가 남아 있으면 해서 그래. 다른 멤버들도, 그렇고.”
자신은 훌륭한 리더니까, 그 둘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예언의 상처를 어느 정도 이해한 유일한 멤버니까.
그렇게 잠시 정적이 흐를 때, 저편에서 이현재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하아, 이제 좀 안정이 되네요.”
달려온 이현재는 지동화의 옆 의자에 앉아 숨을 푹 내쉬었다.
“거의 뭐, 동화 씨 옆이 보금자리네요. 예상 밖이야.”
뒤따라온 예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준성은 그 말에 흠칫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예상 밖’이라는 단어가 예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었으니.
“아, 맞다. 동화 씨, 어제, 아, 내일 비가 올 것 같아요.”
예언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에이, 이렇게 날이 맑은데 무슨 비야.”
예언의 뒤편에서 걸어오던 류이든이 헤실거리며 말했다. 그걸 본 지동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준성쪽으로 고개를 돌려 ‘이겁니까’라고 입모양으로 조용히 물어온다. 지금 당장 준성조차도 내일 비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든 형, 일기예보나 확인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핸드폰을 몇 번 톡톡 두드린 류이든은 강우 확률 30%라고 적힌 화면을 모두에게 보여줬다.
“뭐, 30%면 안 오지 않을까?”
“……신기하네.”
조용히 중얼거린 지동화가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준성은 예언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우산, 챙길게.”
격렬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준성은 알러지처럼 올라오는 거부반응을 꾸역꾸역 눌러대면서 말을 건넸다.
“…고마울 거야.”
예언은 언제나 그렇듯 감동받은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