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5화(15/343)
15.
“그거 들었어? 동화랑 하민이 너희 무대 선공개 됐대.”
작업실에서의 궁상을 관두고 숙소로 돌아오니 류이든이 말했다.
“그렇습… 그래?”
존대로 대답하다 말을 놓기로 했던 걸 떠올린 나는 퍼뜩 말을 바꿨다.
“이야, 우리 동화, 나한테 말도 놔 주고 영광이야.”
반말 듣는 거에 기뻐하시는 이상 취향인 줄 알았으면 초면에 놔 드릴 걸 그랬습니다.
“…이든 형, 살인 계획은 현재 진행형이야.”
“진짜 아쉽게도 별로 무섭지가 않네?”
분하지만 몸으론 이길 자신이 없으니, 작업실에서 생각했던 질문이나 해야겠다.
“…이든 형, 형은 왜 가수가 되기로 했어?”
그러자 류이든은 약간 당황하더니 잠시 멍해진다.
“…그건 왜?”
음, 난감하군. 진실과 거짓을 섞어야겠다.
“내가 기억상실 때문에 왜 연습생을 하기로 했는지 잊었거든.”
“기억상실…?”
류이든은 잠시간 놀라더니 대강 이해가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겠다는 설명이 그렇게 이상하게 들리진 않았나 보다.
“음, 우선 내가 연습생 생활을 10년 전에 시작했어.”
10년? 미친, 이현재도 9년이라더니 아이돌판에선 흔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게 열한 살 때거든? 약간 막연한 꿈 같은 거였지, 처음엔. 춤추는 거 좋아하기도 했고, TV에 나오는 가수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거든. 음, 그래… 동경 때문이었지, 처음엔.”
처음엔?
“그럼 지금은?”
“지금은… 집착에 가까운 것 같네? 음, 10년을 투자한 꿈이잖아. 내 가치가, 데뷔에 달린 것같이 느껴지거든.”
별로 건강하지 못한 자기 인식이군. 존재의 가치는 그런 걸로 정해지지 않는데.
“10년 동안 이 회사에서 데뷔한 팀이 두 팀 정도 되거든. 한 번은 데뷔조까지 갔다가 떨어졌고. 그러다… 스물한 살이 됐고. 지금은 내가 맏형이라 애들 사이 따돌림 같은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했고.”
그렇게 말하는 류이든은 허공을 응시하며 점점 자신의 내면으로 침몰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세상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걸, 조금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긴 해.”
그러니까 류이든은, 지난 10년의 과정이 데뷔라는 결과로 이어져야만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답했다.
“…최소한, 형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진 않을 거야.”
비록 데뷔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은.
내 말을 듣고 류이든은 잠시 당황하더니, 씨익 웃으며 내가 그걸 어찌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류이든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냥 쉽게 하는 말, 아니야.”
근거가 있다. 부담스럽지만, 내가, 그렇게 만들라고 여기에 온 것 같거든.
그때 채하민이 방 안으로 들어와 잠시간 흘렀던 정적을 깬다. 채하민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우릴 보곤 씩 웃더니 한쪽 손을 들어 보인다.
“먹을 거 사 왔다!”
불안한데. 설마 또 역겨운 버섯 돈가스는 아니겠지.
“오, 하민아, 뭐 사 왔어?”
기쁘다는 듯이 말하지 말라고. 아, 류이든은 얘 식성 괴이한 거 모르지.
“비너슈니첼!”
“……!”
왜 이제 왔니, 하민아.
그나저나 얘는 대체 이걸…….
“…어디서 사 왔어?”
“너랑 예전에 갔던 곳!”
“…거기 포장 안 될 텐데?”
“아, 진짜? 어머니한테 부탁한 거라… 어떻게 사 오신 거지?”
‘자본주의가 또.’
인생의 많은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험적 증거가 추가됐다.
“오, 비너슈니첼. 동화 무대 보고 한번 먹어보고 싶었어. 그 후렴 메인 비트 나오기 전에 마이크 깨물 때 진짜 행복해 보였거든.”
당연히 그렇게 보이지. 생각만 해도 행복한 게 비너슈니첼이니까.
나는 걸터앉아 있던 침대에서 일어났다.
“바로 먹으러 가자.”
“동화, 너는 가끔 이상한 데서 열정 불태우더라?”
“그치, 형? 비너슈니첼만 나오면 말 많아진다?”
다 조용히 해라, 슈니첼 식는다.
“근데 하민, 갑자기 비너슈니첼은 왜 사 온 거야.”
“음, 우리 할머니가 사주라셨어.”
…제발 남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해, 하민.
“…그랬군.”
* * *
“흐흐흐, 허헝, 흐하하하.”
장해진 팀장은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선공개 영상의 반응이 좋았다. 계획보다 훨씬 더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도 있겠군.
물론… 5명은 안타깝지만.
갑자기 우울한 생각이 든 그녀는 잠시 머리가 띵해진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커뮤니티와 SNS 반응을 확인했다. 서서히 선공개 영상 이야기가 올라오고, 간간이 첫 번째 방청 무대 후기도 함께 올라오기 시작한다.
[더넥니 선공개 영상 뜬 거 봤다](채하민 무대 선공개 영상)
슨스에서 더넥니 뜰 때 뭔 또 서바이벌이냐 욕했는데 채하민 보고 서바이벌의 장점 실감했다 토끼 자식… 내 인생에 이렇게 무단침입 하다니… 요오망한 놈
댓글
―시발… 하민아… 하… 진짜… 소개 영상 이후에 비하인드 컷으로 착즙했던 지난날이 이 영상을 보기 위해서였나 봐…
―아 놔 봐요 판사님 진짜 저 토끼 놈이 먼저 유혹한 거라니까요? 얘가 먼저 절 똑바로 보고 머릴 쓸어넘겼다고요.
―판사 : 솔직히 저도 보고 혹했습니다.
―으 치명적인 척 에바
―니 새끼 보필하러 꺼지세요~ 여긴 토끼 사육장입니다~
―사육…?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는데 참았다… 이런 나 제법 참을성 있어요.
―신고했어요~ (사유 : 변태)
―하민아… 진짜 순한 맛인 줄 알았는데, 마라탕이었구나… 내가 마라탕 중독자인 건 어케 알고 또
[더넥니 지동화 자작곡 실화냐](지동화 ‘비너슈니첼’ 무대 영상)
가사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다고요? 닥치고 들으세요. 한국대생이 쓴 가사입니다.
댓글
―?????? 지동화 한국대였음?
―ㅇㅇ 이번 무대 비하인드 선공개에서 나왔어 (비하인드 영상 링크)
―오 작곡과?
―철학과
―???????????????? 아니 왜
―그러게 왜일까… 동화야… 나 자괴감 들려고 해…
―그냥 팝송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정식 음원 나오기만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22222
―아니 그래서 비너슈니첼이 무슨 맛인데 ㅋㅋㅌㅋㅋㅋ 지동화 비너슈니첼 말할 때 왜 이렇게 행복해 보이냐고 ㅋㅋㅋㅋㅋ
나 : 야 이거 봐봐
친구 : (보는 중)
나 : 가사 무슨 소리야? 너 철학과잖아
친구 : 나 이제 학식 1년 차야 망할년아
댓글
―ㅋㅋㅋㅋㅌㅋㅋㅋㅋㅋ 철학과생도 모를 가사 ㅅㅂㅋㅌㅋㅋㅋㅋㅋㅌㅋ
―동화야… 대체 어떤 공부를 해온 거니
―니체 전공하는 대학원생에게 문의한 결과 : 니체 이론을 이렇게 쉽고 재밌게 전달할 수 있을지 몰랐다 (해맑게 웃으며)
―쉽다의 기준이 너무 낮습니다 선생님
―그래서 무슨 소리래?
―ㅊㄱㅍ
―내가 들은 해석에서 개소리 다 빼고 일상어로 번역한 결과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이 순간을 만끽하며 힘차게 살아가겠다’라는 뜻이래 ㅋㅋㅋㄴㅋㄴㄴㅋㅋㅋㅋ
―동화야 ㅅㅂ 이 쉬운 걸 왜 ㅋㅋㅌㅋㅋㅋㅌㅋㅋㅋㅋㅌㅌㅋㅋ
―한국대는… 다르다…
[더넥니 지동화 개발리는 포인트 정리]1. 차가운 인상의 상처 받은 길고양이 느낌
2. 근데 웃으면 세상 따스한 철학과 선배 느낌
3. 그런데 너드라 공부밖에 모르는 느낌
4. ㅅㅂ 근데 무대를 왜 잘하죠? (작사는… 다른 사람한테 맡기자!)
(지동화 마이크 물어뜯는 부분에 비너슈니첼 합성한 움짤)
댓글
―기억났다… 학생회장 동화… 내 첫사랑이었구나…? 수학의 정석 들고 가서 가르쳐달라고 했지……
―왜 일반인으로도 성공할 애가 서바이벌에 나와서 다른 애들 데뷔 기회를 뺐냐
―응 꺼져~
―어그로 끌지 마~
―니가 빠는 애는 한국대 안 나왔나 보다~ 아쉬워서 어쩐담~
‘핫하다! 핫해!’
장해진은 과열되는 커뮤니티 분위기에 쾌재를 지른다. 이 분위기가 심해지면 문제가 되겠지만, 당장은 좋은 신호다.
* * *
짧은 휴식이 끝나고 연습실에 모두 모인 나를 포함한 열 명의 연습생은 장해진에게 일정 공지를 들었다.
“다 아시겠지만, 내일 최초 탈락자가 발생합니다. 4일 만에 편집해서 방영될 예정이고요. 다들 아시겠지만, 점수는 20% 1차·2차 경연의 심사위원 점수, 40% 개인 영상 조회 수, 40%는 2차 경연 현장 관객 투표로 계산해서 최하위 두 명 퇴출입니다.”
흐음, 이젠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데뷔하면 하는 거고, 말면 마는 거다. 예전엔 도망칠까 생각도 했다지만… 애초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 게 나니까 누굴 탓하기도 뭣하다.
…아니지, 나에겐 언제나 기지생을 탓할 권한이 있었군. 하는 일마다 제대로 안 되길 바란다, 기지생 이 망할 놈아.
[주의!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지동화에게 피해가 갑니다.]그런다고 내가 생각을 고쳐먹을 리가 없잖나.
하여튼 두 명 탈락이라, 누가 탈락하려나.
대강의 공지를 듣고 빠져나가려는 나를 이현재가 붙잡는다.
“형, 잠깐, 대화 가능해요?”
얘는 늘 갑작스럽게 대화를 신청하는군.
“…오늘 빌려둔 작업실 있어.”
“형은… 맨날 작업실에 사는 것 같아요.”
곡 작업이 나름 책 읽는 것만큼이나 흥겨워서 취미로 하는 건데, 무슨 워커홀릭 보듯 보지 말아주렴.
* * *
작업실에 들어선 우리는 언제나처럼 이현재가 소파에, 내가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 잠시 적막함을 즐기기 시작한다. 얘가 고민 상담을 하러 올 때면 처음에는 늘 이런 식으로 시간을 약간 흘려보냈다.
그러다 이현재가 적막을 먼저 깬다.
“형.”
나는 이현재를 바라본다.
“부모님이 저 유학 보낸대요.”
음, 예상보다 사안이 중하군. 나 같은 놈을 고민 상담 상대로 삼아도 괜찮은 거니.
“어쩌죠. 저… 진짜 어쩌죠.”
“…유학 보내시는 이유는 알아?”
“예전에 말했죠? 저희 부모님 교수거든요, 둘 다.”
“응.”
“그래서 그런지, 교육열이 심하셔서…….”
아니, 부모가 자기 좋자고 애 인생 목표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단 말인가. 나라면 상상도 못 할 만행이다.
그런 분들이 잘도 얘가 연습생 하는 걸 허락해 주셨군.
“원래 연습생 하는 조건이 전교 석차 40등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거거든요.”
“…응.”
“근데 지난 학기에 너무 힘들어서 63등을 해서… 한국에서 연습생 하면서 있어 봤자 공부에 제대로 집중도 못 할 거라고…….”
…예상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분들이군.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측면에서 과하긴 해도 악한 방식은 아니다.
이러면 채하민처럼 단순히 반항했다가는 역효과만 일으킬 거다. 교수들은 논리적 설명 없이는 어떤 반박도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니.
“…어디로 유학 보내신대?”
내 질문에 이현재는 그딴 게 뭐가 중요하냐는 표정을 잠시 지었지만 성실하게 답해준다.
“미국이요.”
하, 진짜. 어쩌면 이현재도 퀘스트 수행 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군. 여우 같은 놈, 자기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줄지도 모를 때를 노려서 나타나다니.
나는 잠시 여러 수를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나한테 딱 세 시간만 줘.”
“…네?”
“미국 유학의 예상되는 문제점과 한국에서 교육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 그리고 연습생 생활을 계속할 때 얻는 자아 만족도와 학업 성취도 사이의 관계에 대해 보고서로 작성해서 줄게.”
이현재는 다시 그게 뭔 개소리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별 선택지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건지 곧 고개를 끄덕인다.
* * *
세 시간 후, 나는 대체 내가 왜 이현재를 위해 이 고생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은 채로 2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 작성을 끝냈다.
참고 문헌 책 두 권, 논문 열두 편, 인용이 자주 된 논문으로 꽉꽉 채워 넣었고, 각주 근거 확실히 달아뒀고, 논리적 오류 없는 거 점검했고. 다 했군.
교육이랑 심리학 관련 분야 책을 이전 세상에서 많이 읽어둔 덕분에 예상보다는 수월했다.
물론, 오랜만에 이성적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서 사용했더니 머리가 띵하며 아파 오긴 한다.
약속대로 세 시간 뒤에 날 찾아온 이현재에게 메신저로 파일을 보낸 뒤 말했다.
“넌 이 보고서를 부모님께 읽어보시라고 전해드려.”
“…네?”
“그러면 부모님이 이걸 누가 썼냐고 물어보실 거야.”
하기야 누가 자기 아들 연습생 계속하라고 20페이지 분량의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글을 써줬는데 누군지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지.
“…네.”
“그럼 같은 연습생인데, 이번에 같이 데뷔하면 과외 해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해. 10등 안으로 끌어올려 줄 자신 있다고.”
여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네?”
“참고로 수능 만점자라는 것도 덧붙여 주고. 전교 1등으로 졸업했다는 것도.”
“…네?! 형 진짜예요?”
기지생, 제대로 동기화해 둔 거 맞겠지?
[맞습니다.]“응, 성적표 사본이라도 보내줄까?”
“형은… 아니, 대체 왜… 저한테는 또… 왜…….”
이현재는 어안이 벙벙한지 뜨문뜨문 한마디씩 툭툭 뱉더니 나를 두려움과 경외 그 중간쯤 어딘가의 감정으로 쳐다본다.
하, 이게 절반쯤은 채하민 때문이다. 채하민이 그렇게 울어댔는데, 9년이나 한 연습생 생활을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한 채로 꿈을 박탈당하면 얼마나 상실감이 크겠는가.
‘원래라면 남 일이라고 내버려 뒀겠지만.’
그러자니 남보다는 정서적으로 가까운 녀석이다.
…하필 나이도 그 아이랑 비슷하군.
* * *
그날 잠들기에는 이른 애매한 밤. 이현재가 3인 룸으로 오더니 소리쳤다.
“형! 부모님이 유학 얘기 취소하셨어요!”
통했군. 역시 이 전략으로 나가는 게 맞았다. 약간 도박수였으나 마땅한 방법이 없었으니, 일단 성공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한번 밥 먹으러 오라시는데, 언제가 좋아요, 동화 형?”
…젠장, 그건 예상 못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