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5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51화(151/343)
151.
“요염이.”
“쉿.”
방콕에서의 음악방송 촬영을 마무리 짓고, 관계자분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서 밴으로 향하는 길. 류이든의 역한 호칭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요즘 현재가 연습이랑 공부만 하다 보니까 너한테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얘기 안 해줬잖아.”
‘나는 대체 이 짐승들한테 어떤 인간으로 보이는 걸까.’
설마, 속세와의 연을 끊고 수행하며 살아가는 도사 정도로 보이는 건가.
“……음.”
내가 알아야 할 일이면 알게 되지 않을까,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참아냈다.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 너는 대체.
“너랑 목화 곡 음원으로 출시해달라는 의견이 엄―청 많아. 엄―청.”
음, 그냥 풀어버릴까. 내가 쓴 곡 내가 무료로 풀겠다는데 회사분들도 뭐라고 못하실……. 아, 목화가 대형 소속이었군, 제길. 목화 목소리가 담겨 있으니 함부로 풀기도 뭣하겠다.
“그 방송, 의외로 보신 분도 많으신가 봐.”
“그래?”
“엉, 이게 당연히 이제 팬분들이 제일 말씀이 많긴 하지만. 내 동생도 곡 달라고 난리를, 난리를.”
“…그건 말하지.”
류이든은 헤헤 하고 한 번 웃더니 장난스럽게 답했다.
“우리 동생도 잠재 고객인데?”
미친 사업가. 자본주의가 정을 죽였네.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우리 차 앞에 누군가 서 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매니저님 실루엣은 아닌데, 뭘까. 경비원분들께서 잠시 한눈을 파셨을까.
다들 보았는지 조금 경직된 걸음으로 다가갈 때, 저편에서 미친놈 웃는 소리까지 울려퍼졌다.
“기다렸어요! 기다렸다고! 거기 있는 동화 씨! 너 나랑 얘기 좀 하자!”
저런, 광증이 도지셨네. 안타까워라. 방콕은 무슨 번호로 연락해야 경찰서로 갈까.
“…예언이 형?”
음, 목소리가 너무 다르지 않아, 현재?
타박타박.
달려오는 소리, 그리고 어둠 속에서 예언의 얼굴이 튀어나와 내 멱살을 부여잡았다.
“와…, 이렇게 행동할 수도 있네.”
죄송하지만, 멱살 잡고 무슨 소리를. 태어날 때부터 미래의 가능성을 읽는다는 것까지는 이해했는데. 나는 예언이 멱살을 놓고 내 어깨를 잡고 머리를 흔드는 걸 지켜봤다.
“그래, 지금도 머리가 팽팽 돌아요. 머릿속에 기억이 자꾸 뒤틀려. 이렇게 뒤틀리면, 없느니만 못하거든요?”
예언은 지나치게 즐거워 보였다. 멱살이 잡혀 있어도 머리는 수시로 예언의 말을 분석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재밌어서. 기지생도 제대로 말 못 하는 비밀이라니, 문장 자체가 설레기 짝이 없다.
“아, 알 것 같다. 지금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고민 중이죠? 저한테 지금 무슨 말을 할지! 제가 맞혀 볼까요? 대략 네 개의 경우의 수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들 당황한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저 친구들은 준성이 형이 아니거든. 내 인생에서, 내 말을 믿어주는 인간은, 준성이 형 한 명이니까. 다들 내 입에서 개소리가 터져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을 걸요? 내일쯤이면 MC로 이름 날렸던 양반이 내연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거예요. 하지만 아무도 믿지 못하죠!”
“음, 오늘 아는 기자분께 말씀드려도 됩니까? 입은 은혜가 있어서 보상해야 하는데.”
류이든의 누님분께 선물로 드리면 그냥 어그로성 예측 기사 하나 띄우고, 내일 뜰 특종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받으면 입지가 좋아지지 않을까.
내 대답에 예언은 어깨에 쥔 손은 그대로 둔 채 제자리에서 미친 듯이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호들갑 섞인 몸짓이었다.
“그래, 이상해. 왜 작곡가님만 믿을까. 원래는 그냥 준성이 형이랑 나랑 사이 좋게 곡 하나씩 받고 끝인 관계였는데, 왜 또 이렇게 얽히지. 세상에, 삼십대에도 만나서 커피 마셔요.”
예언은 눈을 감았지만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증언했다. 마치 감은 눈 너머로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을 직접 보고 묘사하는 느낌이었다.
“어? 갑자기 커피는 안 마시네요. 거리 두지 마요! 불렀는데 왜 안 와.”
세상에. 마음 먹은 일이 바로 피드백이 될 줄은.
“이번엔 또 오네. 차암 갈대 같은 사람.”
예언은 능글맞게 웃으면서도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대고 있었다.
놀랍게도 멤버들은 이 답 없는 대화를 듣고도 예언이 어디 아픈 건 아닌지를 의심하고 있었다. 합리적인 짐승이라면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없고, 진심으로 그런 것이었다면 짐승으로서도 낙제생인 셈이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감도 안 오는군.’
왜 예언이 이 염병을 떠는지 모르겠다. 나는 예언을 진정시키고 오겠다는 명목으로 인적이 드문 곳에 찾아갔다.
“와아아, 설레라아. 준성이 형 말고는 처음이네. 어때요, 얘기할 준비됐어요오?”
평소에도 말을 늘이는 버릇이 있었던 예언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더 심했다.
“…어머, 어머. 저를 두고 그런 실험을 했군요?”
아직 아무 얘기 안 했는데.
“하하, 당연하죠. 이거 잘만 사용하면 독심술처럼 사용도 가능하다고요. 미래는 보통 한 번 정해지면 잘 안 바뀌거든.”
예언은 길거리에 풀썩 주저앉더니 머리를 두 손으로 꽉 부여잡았다.
“…하. 이제 기억 살펴보는 것도 힘들어서 안 되겠네. 머리 아파라.”
예언을 따라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니까, 예언이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는 방식은.
“기억입니까?”
“맞아요, 작곡가 님.”
헤실거리며 웃는 소리.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머리가 크고 기억을 살펴볼 때쯤에, 나는 내가 어떻게 죽는지도 대강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예언은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 * *
열네 살 때 예언은 1년 후 어머니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 모든 기억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기억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었고,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뇌가 빠릿하게 기능하지도 않아서, 참 새삼스럽게도.
어머니의 사인은 너무 뻔했다. 암. 초기에 발견했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예언은 그 사실을 어머니의 사후, 아버지가 술을 마시며 혼잣말을 할 때 들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예언은 설렜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쯤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다름이 문제가 되는 줄 모르는 유년기에 정신 상담을 받은 일 이후로,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내 본 적도 없다.
다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슬픈 미래를 바꿀 수 있으니까.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주인공은 못 되더라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게, 첫 번째 시도예요.”
“…첫 번째요?”
“네! 미래를 바꾸려는 개 같은 시도.”
예언은 어머니에게 병원에 가야한다고 소리쳤다. 아들이 어머니 건강이 걱정되니 병원에 가서 반드시 검사받아야 한다고 소리치면, 그렇게 떼를 쓰면, 못 이긴 척 가 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
“맞아요. 당연히 안 가시더라고요. 그때 기억이 나더라고요. X발. 내가 어머니 돌아가신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그 앞의 기억을 안 살폈다는 게.”
예언은 그리 말하면서도 미소 짓고 있었다. 동시에 눈은 짙은 무력감과 슬픔이 묻어나왔다. 마치 미소 짓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 따위는 모르는 사람 같았다.
“…음.”
“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덤덤해서 다행이에요. 준성이 형은 아주 엉엉 울더라! 그게… 진짜 말이 안 돼. 그 형은 동화 씨랑은 다르거든. 억누르는 거예요, 거부감을.”
예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지동화는 그런 예언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운 얼굴을 잠시 했다. 아무래도 예언의 고통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제 어머니가 아들한테도 못했던 일을 어떻게. ……어쨌든 그게 첫 번째.”
두 번째는 가출하려는 친구를 말리는 것. 가출해서 탈선의 길을 걷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기는 힘들었던 탓이었다.
이번에는 교훈이 있으니까. 다른 방식을 생각하려고 기억을 찬찬히 되짚은 결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답니다. 저는 기억 속에서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썼거든요. 놀랍죠? 제 머릿속 기억은 그런 식이에요. 이미 제가 할 모든 일을 정해놓은 듯이!”
그래서 예언은 그 모든 일을 하지 않아 보기로 했다. 기억과는 다르게 가출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보려고 했다.
“짜잔, 그러면 놀랍게도 시간이 흐르지 않는답니다! 신기하죠? 의식은 깨어있는데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세상은 멈추고!”
예언은 미소 지으면서 울고 있었다.
세상에 홀로 던져져서 여러 생각들을 하고 있으면, 그때마다 지독한 두통이 찾아왔다. 분명히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 감각도 없는데, 고통은 의식 차원에서 벌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래도 정신 차리지 않냐는 듯이, 세상이 자신을 밀어내듯이.
지동화가 들었다면 ‘고통은 신경 섬유의 활성화 이상에 무언가가 있었구나.’라는 짧은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몰랐다.
“이야, 진짜. 놀랍지 않아요? 미래를 다아 아는데, 못 바꿔요. 적어도 그 미래대로 ‘하지 않을’ 권리는 있을 줄 알았는데, 짜잔! 없었답니다아! 그래서 그냥, 생각 없는 열차가 되기로 했어요. 정해진 선로를 잘 달려가다가, 그냥 죽으려고 했죠.”
이번엔 말을 하던 예언이 자리에 드러누웠다. 노숙자처럼.
“그런데, 그런데, 사 년 전에 한 번. 그리고 오늘 한 번. 미래가 바뀌었어요.”
예언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다 기침을 몇 번 하고 다시 죽을 듯이 웃었다. 차츰 웃음이 잦아들고 표정이 허무해졌다.
“당신이죠.”
세상에 대해서 어떤 기대도 없는 목소리. 생기 넘쳤던 이전의 모습들이 연기인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이 바꾼 거잖아요?”
실제로 준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있을 때의 예언은, 머릿속 대본을 연기하는 연기자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확신하기에는.”
“아니, 확실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할 수가 없잖아?”
예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진다.
“원망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에요. 왜 이제 나타났냐 같은 개소리를 담고 싶지도 않고. 다만, 단지…….”
예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눈물을 흘렸다. 이번에는 미소도 없이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딱 한 번 정도는… 나한테 그런 기회를 줬어도……, 어머니를 살리거나.”
예언은 눈을 감고 다시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한 번 정도는, 준성이 형이 거부감 없이, 나를, 받아들여 주거나.”
그러나 잘 안 되는 듯,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딱 한 번 정도는, 그래도, 괜찮은데. 한 번만…….”
울음이 차츰 거세졌다.
“제발…….”
* * *
큰일 났군. 이 정도의 일에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뛰어들었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무지함이 이래서 위험한 법이다.
‘…잠깐, 그럼 예언 씨 입장에서는 내가 무슨 마지막 희망 같은.’
세상에나. 한 사람의 마지막 희망이라니, 내가 만일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잎새였다면 이런 기분일까. 지금 같은 엑스트라1 정도로도 충분한데.
내가 번뇌하는 사이 예언은 감정이 추슬러졌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딱 한 번.”
그러고는 나를 정면에서 마주보며 단호하게 내뱉었다.
“딱 한 번, 제가 미래를 바꾸는 걸 도와줄래요. 염치없이 계속 제 옆에 있어 달라고는 안 해요. 더럽게 바꾸고 싶은 게 하나 있거든.”
예언은 심호흡을 한 번 깊게 내쉬었다.
“대신에, 자유이용권을 드릴게요.”
…자유이용권?
“예로부터 예언은 귀했다고요? 약간 사이비 냄새가 진하긴 해도, 아폴론 신전 이야기도 유명하잖아요. 물론 저는 제가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 볼 일이 아니면 알지는 못하지만. 연예계를 헤쳐 나가기엔 이걸로도 충분할걸요.”
음, 거래의 공정성이 없지 않습니까. 수지타산이 뭔지도 모르는 인간 같으니라고. 이래서야 역겨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그리고 당신은 차라리 카산드라가 더 잘 어울립니다.
“고민 돼죠? 그럼 선입금.”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돌아가면 블로센스 앞으로 예능 섭외가 올 거예요. 그런데, 그 방송 고정 출연진 중 한 분 더러운 사생활이 터질 예정이랍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멤버들 중에 사회성이 좋은 한 분이 때마침 그분이랑 몇 번 사적으로 만나고 다니시네요?”
…수지타산이 안 맞다니까.
“이름, 궁금하죠?”
예언은 다시 헤실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너머로 간절함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걸 티낼 정도로 어수룩한 인간은 아니었다.
“거래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