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5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52화(152/343)
152.
아, 망할, 죄책감.
예언에게 ‘예언’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잘난 듯이 굴었다. 나는 머릿속 예언 서고에 그대로 불을 질렀다. 내가 저지른 무례한 짓만 남겨두고.
‘…이걸 가르쳐 줄까. 기억의 형태면 제어할 수도 있을 텐데.’
[되겠냐?]‘말투가 한껏 저렴해졌네, 기지생. 정말 본받고 싶어.’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한 사람에게 존재한다면, 자유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겠지. 미리 정해진 행동을 그저 실행할 뿐이니까.
기지생, 질문. 가능성은 다 뒤틀렸다며. 그렇다면 예언 머릿속에 있는 가능성은 뭔데.
답이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나는 혀를 찼다. …세 치 혀로 잘도 거짓을.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일단 유보.
“도와드리는 대가는, 이것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눈앞의 예언에게 답하는 게 우선이다. 간절한 표정을 더 봐주고 있기에는 답이 정해져 있었다.
“…와, 세상에.”
예언은 머리를 다시 부여잡았다. 내 대답으로 다시 가능성이 개변하고 있나 보다.
[당신은 잘 설계된 게임 시스템의 버그 같은 존재입니다! 저는 버그 유포자고.]자랑이다, 망할 것아.
“잠깐…. 뭐야. 이런 건 또 처음이네.”
예언은 정색했다. 그리고는 웃었다.
“머릿속에 기억이 빈 부분이 있어요.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겠네.”
점차 더욱더 활짝. 그 미소를 보니 조금 전 멤버들과 있을 때의 예언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다시 광증이 도질 기세길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짝 뒤로 걸음을 물렸다.
그보다도, 여태껏 잘 보이던 가능성이 왜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 걸까. 내가 그만큼이나 작지만 성능은 확실한 버그 같은 건가.
[이거 제가 아니라 다른 늙은이였으면 난리가 났겠습니다!]“아… 아으, 윽.”
예언은 두통이 점점 심해지는지 몸을 웅크린 채 앓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여서 예언의 몸을 부축해 줬다.
“…괜찮습…….”
“쉿. 지금 살면서 제일 기쁜 순간이거든요. 미안하지만 잠시만.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떨림이 이런 거구나.”
그런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아, 이거 장난 아니네. 돌아가자마자 준성이 형한테 기억 안 나는 부분 예언해 버려야지.”
“그러면, 믿겠죠.”
“네, 네. 바로 그거죠. 상상만 해도 짜릿할 것 같아. 딱 기다려, 이준성.”
세상에, 성씨가 이 씨였군. 처음 알았네.
* * *
예언과 나는 잠시 앉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일지 여러 가설을 세워 보았다. 정황상 내가 미래를 보이지 않게 한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일지.
기지생이 준 정보와 예언이 준 정보를 종합해보며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아… 내가 진짜 성능이 확실한 버그, 이 세계의 작은 역병 같은 거군.’
가능성이라는 규칙으로 미리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시간으로 계산되는데, 왠지 모르겠지만―사실 알 것 같지만― 적어도 나는 가능성이 제대로 집계되지 않아 오류의 가능성이 있고, 그 오류가 예언의 두통으로 이어지는…….
“아니지, 그렇게 가면 네가 나한테 뭐 잘못한 것 같잖아.”
기나긴 대화 중에 예언과 나는 말을 놨다.
“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닥쳐. 그건 내가 결정해. 괜한 일로 죄책감 가지는 건 더럽게 미련하잖아.”
“……원래 그런 성격.”
“준성이 형만 알고 있는 내 본모습이지.”
무슨 말끝마다 준성, 준성, 아주 귀가 아프다.
“애초에 네가 내 상황을 어떻게 알아? 나였어도 호기심 생기겠다.”
“…아무리 몰랐어도.”
“내가 모모지 그거 지나치게 철학적일 때 알아봤지. 그것도 과하고, 죄책감 가지는 포인트도 과하고. 아주 그냥.”
모모지는… 꽤 재밌었…….
“미리 대답할게. 아니었어.”
저런. 이건 또 정확하게 집계되는군. 아주 그냥 제멋대로인 규칙이다.
[세상이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증거입니다! 물론 저희가 만든 비합리성이지만.]칸트가 얼마나 슬퍼할지 모를 일이다. 합리성의 아버지, 당신은 틀렸습니다.
[니체 어르신이 옆방에서 기뻐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아도르노 씨도 같이 술 마시는 중입니다!]친구 있는 척하지 마, 기지생. 그러지 않아도 안쓰러우니까.
[짜증은 당신 도움 없이도 느낄 수 있답니다, 망할 지동화!]“…어쨌든, 고마워.”
기지생과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와중에 대뜸 들리는 감사 인사. 부담스럽다.
“…딱히 한 게 없어.”
감사 인사가 뿌듯하려면 뭔가 한 게 있어야 할 텐데, 한 거라고는 실험한다고 헛짓거리 한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가 없어, 그냥 존재 자체가 고마운 거라. 아직도,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래.”
그렇게 말하고서는 예어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딱 한 번만 바꿔줘. 지금은 내 머릿속에서도 기억이 사라지긴 했지만.”
나는 그 손을 잡고 함께 일어났다. 그래서, 뭘 바꿔줘야 하는 걸까. 애초에 내가 바꿀 수 없는 영역이라면 어떡한담. 희망은 희망대로 주고, 정작 이뤄줄 수는 없는 사태는 피하고 싶은데.
“그래서, 뭐를 바꿔야 해.”
“흐하, 인생에서 딱 한 번 쓸 수 있는 찬스라 말하는 것도 설레라.”
별 게 다 설레는군. 아주 그냥 심장이 남아나지 않겠어.
“내가, 준성이 형이랑 헤어지는 걸 막아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보다 준성 한 명이 더 소중한 인생이라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굴 사랑해 본 적 없어서 연애 고민은 해결할 능력이 없는데.”
내가 연애 상담을 하면 결론의 팔 할은 ‘헤어져라’라고 떨어질 테니까.
“어?”
당황한 예언의 표정. 세상은 넓고 인간은 태생이 홀로인데, 뭐가 그리 신기해.
“…아니, 내가 말을 이상하게 하긴 했는데. 그런 의미의 헤어짐이 아니야.”
“아, 그래?”
“……어. 내가 TOT 나가는 것만 좀 막아줘.”
음, 살다가 이런 부탁을 들어볼 줄은 몰랐는데. 어떤 사람에겐 단순한 선택조차 인생의 소원일 수 있다니.
“……알겠어. 꼭 도와줄게.”
예언은 입술을 짓이기듯 씹고는 힘겹게 미소 지었다. 느낌이 묘한가 보다. 누군가에겐 당연히 보장된 자유를 달라고 소리치는 사람이니까.
“그래. 나중에 봐, 우리 작곡가 님.”
나는 예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신없어.’
무대하러 왔다가 한 사람의 내밀한 비밀까지 알게 되다니, 평화로운 일상이 몹시 그리워진다.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가로등 불빛이 왜 이리 밝은지 찬찬히 고민하며 걸어갈 때였다. 누군가 가로등 뒤쪽 가장 어두운 곳에서 대뜸 튀어나왔다.
“동화야!”
내 어깨를 부여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채하민. 토끼답게 땅굴을 파고 숨어 있다가 등장한 것 같다.
“…하아, 다행이다. 어디 다치진 않았구나.”
이건 또 무슨 토끼 소리일까. 망할 하민아. 내 추궁의 눈빛을 가장 잘 아는 채하민답게 바로 설명에 들어간다.
“걱정되잖아. 혹시 어디 다쳐서 오면 어떡해.”
“…그래.”
중간 사고 과정은 전부 생략돼 있지만 왠지 알 것 같다. 예언이… 반쯤 미쳐 보였던 거겠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니까.
“가자.”
“정말 얘기만 나눴어?”
대체 뭘 예상했길래 이런 반응일까.
“응.”
“나는 어디 한군데 무조건 다쳐서 올 줄 알았어. 엄청 걱정했다고. 예언 형 표정이 약간 미친 사람 같았어서.”
“……류이든은, 대체 뭐했어.”
내가 없을 때 채하민이 땅굴 못 파게 귀 잡고 끌어당겼어야지.
* * *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숙소,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 하므로, 나는 빠르게 침대에 누웠다. 옆 침대에 누운 채하민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알아내려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답해줄 수는 없지만.
“서운하다! 아주 서운해! 제일 친한 친구한테!”
“프라이버시.”
“마법의 단어야, 아주 그냥!”
나는 자는 척 침대에 누웠다. 채하민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띠링―!
[자니?]닥쳐. 어디서 전 애인이 할 법한 대사를.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많이 외롭나 보군. 안타깝다.
어쨌든, 지금도 말할 수 없을까. 사실 절반 정도의 답에는 도달한 것 같은데.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그렇게 암흑 속에서 뭐라고 꿍얼대는 채하민에게 익숙한 대로 무의미한 맞장구를 조금 쳐 주고 있을 때였다.
[안 된답니다. 노인정 최연소라 그런지 참 안 맞습니다. 확실히 해 두고 싶은 건, 이 쓰레기들의 치부지, 제 실수는 아니랍니다!]…하, 예상되는군. 관리하는 것들이 가능성의 작용을 실험하겠다면서 심어둔 인체 실험의 현장이겠지. 그러면 카산드라도 실제 사실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망할 놈들.
[침묵.]그걸 메시지로 보낸 순간 침묵이 아니지. 국어사전 통독하도록.
예언은, 그러면 평생을 저런 상태로 보내야 하는 건가. 쓸모없는 잡생각이 다시 무럭무럭 자라나는 기분이다.
…일단,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도움이 필요한 때가 온다면, 예언이 직접 도움을 요청하겠지.
차라리 지금은 그 망할 세 글자를 외우는 게 낫겠군. 사회성 좋은 강아지 놈을 구설수에 올릴 이름.
* * *
“안녕하세요, 김진화입니다! 이야, TV에서 보던 것보다 실물이 훨씬 잘생겼네.”
저 망할 놈이, 우리 강아지를 모욕하는 녀석이군. 편견에 휨싸이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는지 의문이다.
“블로센스입니다!”
나는 인사를 하며 옆에서 인상 좋게 웃고 있는 류이든과 채하민을 흘깃 쳐다봤다.
강아지는 생존을 높이기 위해 인류 친화적인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하는데, 이게 이렇게 발목을 잡다니.
‘도망쳐!’라는 근본 없는 제목의 예능. 하지만 나름대로 공중파 방송에, 고정 시청자층도 꽤 있는 편이라고 한다. 원래는 우리 컴백 시기에 출연을 논의 중이었지만, 방송사 놈들의 사정―동의어로 ‘횡포’가 있다―으로 뒤로 밀렸다고 한다.
촬영 전, 돌아다니며 인사를 드린 뒤 나는 자리에 풀썩 앉았다.
“와, 여기 분들 다들 착하시다.”
아니야. 저기 있는 진화라는 인간은 너를 루머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예정이란다. 그런데, 애초에 류이든이 그런 인간을 분별 못 할 정도면, 저 인간은 얼마나 열심히 사생활을 뒤로 숨기고 사시는 걸까. 그 노력으로 방송을 하셨으면 메인 MC 자리도 쉽게 차지하실 텐데.
“확실히 셋이나 되니까 조금 힘이 나네. 예전에 라디오 혼자 나갔을 때는 죽고 싶었는데.”
“맞아. 게다가 촬영 장소도 마치 고향에 온 기분.”
무슨 개소리니.
나는 채하민의 말에 웃으며 저 건너편을 바라봤다. …망할 정문. 셔틀버스를 타고 저 정문을 지나치는 생활을 꽤 했다 보니 지겨워 죽겠다.
“한국대에서 촬영이라니. 동화야, 대학 온 기분 좀 말해 봐봐.”
아쉽게도 전혀 반갑지 않답니다. 현재 온라인 강의로만 아침 수업을 몇 개 듣고 있어서 이 녀석들은 학교에 오는 게 처음이라고 알고 있지만.
“일단… 가자. 인문대신양으로.”
“어? 거기가 어딘데?”
“……커피 파는 곳.”
사실 다양한 목적이 있는 건물이지만, 커피를 제외하곤 별로 의미가 없는 건물이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오늘 하루, 굉장히 피곤할 예정이니까, 커피부터 한 잔 마셔야겠다.
“근데, 동화, 너 학교 직접 오는 건 처음 아니야?”
“지도 외웠어.”
그것도 약 10년 전에. 이전 삶의 지식을 이렇게 활용해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안 그런 척해도 학교 온다니까 기대 좀 했나 보네, 동화 형.”
나는 류이든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시선을 옆으로 약간 돌렸다.
…망할 연못. 오리 부부는 잘 지내고 계시려나. 이름도 철학과에서 지어줬는데.
“오리스토텔레스 씨.”
무심결에 그리운 이름 하나를 부르고 말았다. 강의 시간이 빌 때는 저기 벤치에 앉아서 쉬는 게 낙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