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5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53화(153/343)
153.
촬영 시간보다 약 한 시간이나 일찍 출근한 덕분에 우리는 여유롭게 자하연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하, 평화롭다.
“동화야, 저기 오리 있다. 오리.”
어느 날부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못에 자리를 잡은 오리 부부. 이름은 오리스토텔레스랑 키르케고오리다.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대단하다.
“운치 있고 좋다.”
“오리는 왜 있는 걸까. 얘들이 알아서 온 건 아닐 텐데.”
“관상용 아닐까? 보면 딱 운치 있고 좋잖아.”
인간을 너무 미적인 존재로 보는구나, 이든.
“…여기 잉어 개체 수가 감당이 안 돼서, 맛있게 잡수시라고.”
인간은 훨씬 더 실용적이고 자연을 활용하는 데 도가 텄어. 물론 처음 오리가 들어왔을 때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는데, 그중 ‘중문과에서 베이징덕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뭣같은 설도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 인류애가 사라지는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내 무심한 말에 류이든과 채하민은 표정을 굳혔다. 저런, 동심이 또 하나 부서졌군.
채하민은 입을 오, 아, 거리면서 뭐라 말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꿈틀댔다. 그래, 안타깝게도 어른의 사정은 잔혹한 법이란다.
“근데, 지도에 그런 것도 나와 있어?”
류이든이 합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래, 이런 것도 아는 게 의아하다 싶겠지. 하지만 나는 우리 멤버들에게 변명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
“찾아서 외워왔어.”
보통 이러면 넘어가 주더라. 나를 무슨 암기 기계로 보는 건지, 뭔지. 하여튼 정상은 아닌 멤버 놈들.
* * *
한창 오프닝이 진행 중인 자하연 연못 앞. 자하연 앞의 이곳은 종교 동아리가 대뜸 찬송가를 부르는 장소로도 유명한데, 오늘은 방송국 놈들이 선점했다.
“자, 우리 진짜 요즘 핫한 분들 모셨죠.”
“올드해라…. 핫하대.”
“너는 날씨도 추운데 입술 좀 잘 여미고.”
메인 MC로서 정중한 신사 같은 이미지가 강한 경우 씨와 옆에서 끼어드는 진화 놈의 진행을 들으며 우리는 스탠바이에 들어갔다.
심호흡하는 류이든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긴장 안 할 것 같이 생겼으면서, 이렇게 전부가 아니라 일부, 혹은 혼자서 나오면 저렇게 긴장했다.
“네, 블로센스의 세 분 모셨습니다!”
박수 소리를 들으며 걸어나가는 와중에 서있는 분들을 한 명씩 관찰했다. 아이돌 출신의 도희 씨와 본업은 가수임이 분명하지만 예능인 이미지가 강하게 달라붙은 강희 씨. 둘은 ‘도망쳐!’에서 희희 남매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불리곤 한다. 네스퀵 씨가 본명이 춘희니까 모이면 희희희가 되겠군.
‘그 둘은 괜찮아. 적어도 내가 죽기 전까지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거든요. 개인적으로 봤을 때도, 한 3개월 후에 만나는 거긴 한데, 성격 괜찮아 보였어.’
그리고 경우 씨와 진화 놈을 지나쳐 인생에 회한이 많아 보이는 한호 씨. 몸이 전체적으로 가늘어, 조금 밥을 해 드리고 싶어지는 분이다.
‘얇고 길게 가는 인생의 스승 삼을 만한 사람이지. 몸조심 하나는 엄청 잘하거든. 진화 씨랑 거리를 뒀다고 한 2년 후에 얘기하셨어.’
마지막으로 박소영 배우님. 잘 모르는 분이다. 작품명만 혹시 몰라서 외워왔다.
‘…그분은 일은 잘하시는데 성격이 좀. 제인 누나랑 정반대야. 자기 인생에 도움 된다 싶으면 칼같이 챙기는 분이니까 잘해줄 때 뼛속까지 빨아먹으면 돼. 형이 말해 주는 인생의 조언이야.’
외워 온 정보가 인물 한 분 한 분을 뵐 때마다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어우, 대학교에 있으니까 훈훈한 학생 같으시네요.”
“그럼 우린 만학도네?”
환영 인사를 들으며 나는 얼굴에 미소를 끌어올렸다. 오늘 제발, 표정 관리에 실수하지 않기를.
별 시답잖은 의례적 소개 인사와 서로의 업적을 칭송해주는 절차를 거치고 나서 잠시 이어지는 자유 토크 시간.
“한국대 교정을 밟으니까 옛 추억이 막 새록새록하네. 나 학창 시절에 공부 좀 했거든.”
진화 놈의 소리에도 나는 가뿐히 미소 지었다.
“형이 무슨 공부를 잘해. 우리 상식 퀴즈했을 때 무슨.”
“그치. 맞지. 사실 우리 중에서 제일 텅텅 소리나는 사람 중 하나잖아.”
희희 남매께서 진화 놈의 미간에 정조준을 해서 팩트를 날렸다. 그걸 듣고 있던 경우 씨께서 자연스럽게 우리쪽으로 공을 넘겼다.
“반면에, 여기 우리 블로센스 세 분은 다들 공부를 잘하셨다면서요.”
다만 던진 공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사실 멤버들 성적을 내가 모르니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당연하죠. 저희가 사실 서바이벌로 데뷔했는데, 서바이벌 사전 오디션 기준이 성적이었어요.”
그래, 예능의 팔 할은 선동과 날조랬다. 류이든의 입술에 침 바를 시간조차 모자란 숨가쁜 거짓말에 채하민이 당황하다가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
“어, 하민 씨는 조금 당황한 것 같은데.”
얇지만 길게 살아가려면 눈치가 필수라 그런지 한호 씨가 곧바로 이어나갔다. 채하민은 해맑은 미소를 곧바로 얼굴에 끌어올렸다.
“에이, 그럴 리가요. 제가 사실 똑똑하기로는 팀 내 한, 2위 정도?”
“어, 그럼 1위는?”
“당연히 저죠!”
류이든 역시 곧바로 치고 나갔다. …그럼 내가 최소 3위군. 오케이.
“어, 그럼 동화 씨는 몇 위예요?”
“저는 5위입니다.”
사실, 사전에 대화를 나눠서 모두들 알고 있었다. 내가 한국대생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런지 희희 남매는 토크에 끼어들지는 못하지만 뭐라도 태클을 걸고 싶은지 웃음을 꾹 참으며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왜죠?”
경우 씨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과장된 표정이 우스웠다.
“저는 제가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내가 가장 지혜로운 거란다, 망할 멤버들아.
인생의 깊이를 아는 한호 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류이든과 채하민이 배신당한 표정으로 가운데에 선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지만, 가뿐히 무시했다.
“이렇게 물을 먹이네. 조금 치는데?”
“사실 여기 동화 씨가 한국대생이거든요.”
“하지만, 여긴 ‘도망쳐!’지. 추잡한 짓거리에는 우리가 더 일가견 있어.”
박소영 배우님이 눈을 반짝이면서 장난스럽게 경고했다. …근데, 그걸 자랑스러워하는 게 맞는 걸까. 교도소에서 저지른 범죄로 서열 가리는 느낌이다.
“그래, 뭐 너만 학벌 있어? 나도, 어? 고졸이야! 딱 기다려. 고등 교육 과정으로 내가 한국대생 떡발라 준다.”
강희 씨의 당당한 외침에 건너편에서 관망하던 한호 씨가 피식 웃었다.
“중졸 무시하지 마. 나도 한 지성 해.”
“…형은 그냥 피부가 지성,”
세상에, 강희 씨, 그런 개그를.
“예, 그럼 오늘 저희 어디로 도망치면 되나요?”
경우 씨가 도저히 못 참겠는지, 강희 씨의 말을 중간에 끊고 곧바로 진행했다. 좋다. PD님도 이 방향이 낫다고 느꼈는지 곧바로 응했다.
“오늘은 ‘도망쳐!’ 여러분들께 학생다운 복장으로 입어달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내가 오늘 되도 않는 멜빵을 입은 거였군. 대체 몇 살짜리 학생을 원하시는 걸까, 우리 스타일리스트 분들은.
“한국대를 배경으로 펼쳐질 오늘의 도망극은, ‘도망쳐! 기말고사!’입니다.”
* * *
‘도망쳐!’의 핵심은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규칙에서 언급되지 않았다면 뭘 하든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라는 것.
“사기 같은?”
“사기는 기본 베이스로 깔고 가는 거고. 규칙 해석도 이상하게 해서 상대방한테 불리하게 만들거나, 뭐 그런 더러운 짓은 다 해도 돼. 일단 하면 내가 뭐든 이유를 대줄게.”
나는 철학과 로고가 박힌 야구 점퍼를 입으며 한호 씨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철학과, 류이든이 체육학과, 그리고 채하민이 무용과 대표라는 컨셉이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철학과로 배정받으신 사람은 한호 씨와,
“희희 것들이 제일 문제예요. 걔네는 잔머리가 조금 과하게 비상해서. 본인들 입으로 텅텅이라고는 하는데, 도저히 믿을 게 못 돼요.”
경우 씨. 여기까지 예언이랑 똑같군. 체육학과에 이든, 진화 놈, 박소영 배우님이 들어간 것도. 하, 망할, 차라리 물가에 애를 내놓지. 어떻게 될지 감조차 오지 않는군.
옷을 다 입고 우리에게 배정된 1동 207호에 들어가는 순간, 트레이닝복에 야구 점퍼를 입은 이든이 시시껄렁한 자세로 나를 맞이했다.
“어디서 책 냄새가 나네.”
체육학과 무시하지 마, 미친 인간아. 그분들도 책 더럽게 많이 보셨어.
“예체능 아닌 사람들이랑은 상종을 못 한다니까, 그렇죠?”
무용과 점퍼를 입은 도희 씨까지 가세했다.
“죄송합니다. 땀냄새 때문에 못 들었습니다.”
예의 바르게 대답하자, 뒤에서 경우 씨와 한호 씨가 달려들었다.
“그러게. 데오드란트가 뭔지도 몰라요? 무례한 분들?”
“하긴 예의의 정의가 뭔지나 알까. 아니, 정의가 뭔지는 알아요? 저스티스.”
그 정의 아닙니다, 한호 씨. 역시 철학과라 그런지 그 정의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이든 씨, 저 철학과 놈들 오늘 같이 때려 부숴 버리죠?”
“어우, 태어날 때부터 무용과랑 한 배를 타고 싶었답니다.”
…잠깐, 이게 과연 좋은 구도가 맞나. 이 2 대 1의 구도가. 게임의 기본은 정치라 이렇게 편을 일찍 가를 수는 없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무용과에서 가장 공략하기 쉬운 채하민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민 씨, 지난번 공연 잘 봤습니다. 춤선이 아름다웠습니다.”
뒤에서 ‘잘한다, 과대!’라는 경우 씨의 외침이 들렸지만, 부끄러워서 못 들은 척했다.
“응? 고, 고마워, 동화야. 감동이야.”
채하민은 진짜로 감동한 듯 표정이 약간 녹아 내렸다. 뭐해, 토끼 놈. 이거 예능이야. 어제 류이든의 예능 특강 들은 건 다 어디로 간 거야.
“어딜 줄을 대려고! 속지 마요, 하민 씨! 도망쳐에 들어온 이상 다 적이야. 저 운동밖에 모르는 것들도 믿지 마!”
저런, 아쉬워라. 채하민은 강희 씨의 말에 눈을 또렷이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목화한테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가르칠 때 딱 저런 느낌이었는데.
“자, 여러분, 다 모이셨나요? 그럼 여기 교수님이 보내준 영상 메시지를 함께 보도록 할까요?”
어느 교수님이 기말고사 예고를 영상 메시지로 하셔. 기침이나 안 하시면 다행인데.
앞에 설치된 거대 모니터에서는, 대체.
― 아, 아, 이번 ‘도망학개론’ 기말고사 공지입니다.
…대체, 어느 교수님이 그 영상 메시지를 가면을 쓰고 천을 둘러싼 뒤 음성 변조까지 먹여서 하셔.
― 여러분들이 시험을 치는 도중 사용할 수 있는 힌트권을 자연대 근처에 뿌려놨습니다.
그래, 그냥 수용하는 게 편하겠군. 그러니까 오픈 페이퍼 테스트인데, 가져올 수 있는 페이퍼를 게임으로 찾아오라는 거군.
― A+이 함께하길.
미친 교수.
그리고 뚝 하고 끊기는 영상. 다들 약간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자연대가 어딘데.”
류이든의 중얼거림을 듣고 나는 재빠르게 뒤로 슬며시 빠져나왔다.
눈치를 보던 다른 철학과생들도 따라오더니 점차 걸음이 빨라졌다.
“과대님! 어딘지 아세요!”
“지도 외웠습니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해요!”
“신인, 패기 무섭네.”
뒤를 잠시 보니 채하민이 나를 발견하고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 이렇게 이기려고 득달같이 구는 건 내 취향 아닌데, 망할. 이게 다 저 망할 강아지 때문이다.
‘내 생각엔, 너희 팀이나, 하민이 팀이 1등하면 돼.’
나는 예언의 말을 곱씹으며, 달렸다. 아, 더럽게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