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5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54화(154/343)
154.
자연대에 도착한 우리는 재빨리 주변을 돌아봤다. 그 누구보다 빨리 내 옆으로 다가온 채하민이 산업 스파이 마냥 철학과 팀에 붙었다.
“…하, 힘들어.”
“업어줘?”
“헛소리 그만.”
물론 퇴근길이었으면 류이든을 시켰겠지만.
잘 가던 채하민이 갑자기 자리에서 우뚝 서더니 내 팔 한쪽을 부여잡으며 흥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기, 고양이가 있어. 동화야”
자연대에서 유명한 고양이 분들이다. 오리 부부처럼 이름이 학과 특성이 반영된 채로 지어졌지만, 귀여워서 정상참작이 된다.
“너랑 동족.”
뭐라는 거야. 동족이라니, 엄연히 영장류인데, 난.
“어? 동화가 고양이야?”
한호 씨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네, 저희가 동물농장이거든요.”
그런 쪽팔린 거 말하지 마, 하민.
“제가 토끼, 동화가 사마귀, 아니 고양이지. 어쨌든. 그리고 이든이 형이 개.”
“저는 농장주입니다.”
“동화 씨가 조금 바쁘네. 고양이에 사마귀에 농장주면.”
아니, 농장주라니까요.
“아니, 근데 진짜 고양이가 있네. 이 학교는 엄청 넓어서 그런가, 별 게 다 나와. 연못에는 오리도 있던데, 여긴 고양이네.”
“저분들은 슈뢰랑 딩거라고 합니다.”
“쟤네 이름이?”
갑작스럽게 한국대 투어 가이드가 되었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슈뢰’랑 ‘딩거’라는 이름은 천체물리학부에서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정작 어느 고양이가 슈뢰고 딩거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양자역학을 반대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양자역학을 대표하는 사고실험에서 따온 이름답게, 한 마리의 고양이가 슈뢰인 동시에 딩거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사고실험을 고양이 이름으로 붙이다니. 동물권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가 없다.
“슈뢰랑 딩거가 뭔지 설명 좀 해줘, 동화야.”
한호 씨께서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확인하면서 물었다.
“…설명 드리는 순간 예능 방송은 끝이 날 자신이 있는데, 괜찮습니까?”
“괜찮아. PD님이 편집해주시겠지.”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은… 양자역학이 뭔지 설명해야 하나.
* * *
“그만. 거기까지.”
한창 설명을 이어나가던 중, 한호 씨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나는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동화야…. 고양이 이름으로 거기까지 가야 하는 게 예능이야?”
“절대 아니지! 예능이 뭔지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저건, 교육 방송 모먼트였다고.”
그때 뒤편에서 경우 씨의 커다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찾았다! 찾았어!”
젠장, 쓸데없이 슈뢰딩거에 꽂혀서. 저 힌트가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많아서 나쁠 리는 없는 건데.
나는 재빨리 채하민을 두고 뛰쳐나가 자연대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자연대에서 일반 선택으로 전공 강의를 들은 적 있으니 숨길 데야 뻔히 보였다.
“와! 동화야, 여기 계단 이상해! 막 각도 따라서 좀 다른데!”
내가 떠난 걸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하민이 뒤에서 나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허공만 헤집을 뿐이었다.
미안, 하민.
* * *
제한 시간이 끝나고 모두들 자연대 앞의 계단에 모였다. 우리 팀이 발견한 힌트의 개수는 총 3개, 나름대로 성공적이다.
“아, 이거 밸런스 문제 있잖아. 이거 동화 씨 있는 팀이 너무 유리해. 지리를 다 아는데!”
“그러게! 내가 한국대 못 간 것 때문에 여기서도 차별을 받아, 아주! 썩은 학벌주의!”
역정을 내는 희희 자매와 해맑은 채하민이 문제를 제기했다. 손에는 두 개의 힌트가 쥐어져 있는데도, 불만이 많으신 분들이다. 경우 씨는 재빨리 PD석을 훑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내 어깨를 부여잡았다.
“분명 사전 인터뷰 때 학교 등교한 적 없다고 했다는데 사실인가요, 동화 씨?”
이미 얼굴에 웃음이 한 가득인 걸 보니, 장난으로 답변해도 괜찮을 것 같다.
“…진실만을 말하라는 규칙은 없었습니다.”
그 순간 한호 씨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박수를 쳤다.
“잘 배웠어. 내 과대. 게임에서 이기려고 사전 인터뷰부터 거짓말을 하는 치밀함, 아주 좋았어.”
“봐라, 것들아! 이게 한국대의 추잡함이다! 배운 추잡함!”
나는 미소 지으며 체육학과 쪽을 잠시 살펴봤다. 류이든이 미친 듯이 뛰어다닌 결과 봉투 하나를 발견했나 보다.
‘진짜야?’
류이든의 깜짝 놀란 표정과 입모양.
‘응’이라는 시그널로 눈썹을 한 번 끌어올렸다.
“저, 저, 우리를 지금 도발했어. 딱 기다려, 가방끈.”
진화 놈이 내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무례해라, 예의의 정의가 뭔지는 아십니까.
* * *
잠시 뛰었으니 쉬어가는 겸, 다음 촬영 장소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나는 류이든을 끌고 와서 경우 씨에게 예능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야, 열심히 하려는 모습 너무 보기 좋아요, 여러분.”
경우 씨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신사다운 말투로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진화 놈에게서 떨어뜨려 놓는 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접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렇게 예능 특강을 듣던 중, 의외로 류이든과 경우 씨가 쿵짝이 잘 맞아서 나는 점차 뒤떨어졌다. 어차피 나는 예능형 인재는 못 되니까 류이든이 듣는 게 낫겠지.
한호 씨가 내게 슬며시 다가와서는 사람 좋게 웃으며 복화술을 시전했다.
“동화야, 왜 힌트, 하민 씨한테 줬어.”
어우, 들켰군. 몰래 준다고 노력했는데.
“…밸런스를 위해.”
“아, 이 불쌍한 인간을 어떻게 한담. 여기가 그렇게 쉬운 곳이 아니라구?”
한호 씨는 갑갑함에 몸을 뒤틀면서 웅얼댔다. 그러고 보니, 한호 씨는 늘 당하는 입장이었지.
“괜찮습니다. 하민이랑 약속 하나를 했거든요.”
“뭔데?”
“체육학과랑 할 때만 쓰기로.”
부디, 나락에 빠져서 우리의 발판이 되어주길.
“오… 근데.”
한호 씨는 코를 긁적이며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봤다.
“혹시 리더랑 사이가 안 좋다거나?”
하긴, 누가 봐도 체육학과가 지기를 바라는 짓이니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다.
“사이가 너무 좋아서 패배에 몸부림치는 걸 한번 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소문은 믿을 게 못 돼. 요즘 하도 주변에 들리는 소문이 수상한 게 많아. 누가 유포하는 건지.”
저런, 여기에 가짜 뉴스의 피해를 보신 분이 계셨군.
“제가 듣는 귀가 넓거든요. 연예계 생존에서 제일 중요한 게 그거라. 잘 배워둬요. 사람들 약점은 다다익선이거든.”
한호 씨는 계속 웃는 낯이었으나, 목소리는 약간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연예계는 대체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무슨 마피아 생존 비법 같은 느낌인걸.
“그러니까, 진화 씨 조심하고.”
한호 씨는 내게 어깨동무하며 마저 웃었다.
“입은 가볍지 않을 거라고 믿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대화가 복화술로 이뤄져서. 나중에 꼭 배워보고 싶군.
* * *
이번에 할 게임은 교수님이 내신 ‘기말 과제 1번’이라는 이름으로, 대체 뭘 배우는 강의인지 모르겠지만, 상대편이 설명하는 인물의 이름을 맞히는 게임이다.
“여러분, 규칙 설명 드릴게요! 거짓말하시면 안 됩니다! 사실과 다른 정보인 게 밝혀지면 무조건 탈락! 그리고 인물 이름에 관해 직접적인 정보를 물어보셔도 안 돼요. 상대방의 질문에는 진실되게 답해 주셔야 해요.”
머리를 굴려 보자. 규칙에만 저촉되지 않으면 무슨 헛짓거리를 해도 허용이라고 했으니까.
어떤 게임인지 연습 게임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결론을 내렸다.
“어떤 게임인지 알겠어요, 동화 씨?”
나는 경우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류이든이 서로가 설명해 줘야 할 인물이 든 카드를 들고 마주 앉았다.
“페어플레이, 알지?”
“진실만을 말할게.”
“자, 팀 내 대전. 누가 먼저 질문하실래요?”
“나한테 양보해, 형.”
“…오, 씨, 뭐야, 우리 동화가 이렇게 승부욕 있는 애가 아닌데!”
류이든은 신나 죽겠다는 느낌으로 몸을 뒤틀었다.
“해!”
“그래. 내가 맞혀야 할 이 인물이 누군지 자세히 아십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류이든도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아요, 엄청.”
그리고 류이든의 질문 차례. 내가 설명해 줘야할 인물은 나폴레옹. 저런, 아쉬워라. 이걸 어쩌나.
“이 인물은 남자인가요?”
제가 나폴레옹을,
“모릅니다.”
잘 몰라서.
싸하게 내려앉는 정적. 눈치 빠른 한호 씨가 무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에이! 에이! 에바잖아! 이게 뭔데! 누가 몰라, 이걸!”
“정말 잘 모릅니다.”
거짓말은 ‘사실과 다름’이 증명되어야 하는데, 내 머릿속을 해부해서 보는 게 아닌 이상에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다고.
“아니, 한국대잖아!”
진화 놈과 소영 씨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격하게 항의했다.
“학벌이 편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말 모릅니다.”
내 뻔뻔하고 철판 깐 듯싶은 대답에 진화 놈이 답답한지 가슴을 미친 듯이 쳐댔다. 소영 씨 역시 류이든 뒤에 다가와서 뭔가를 급히 속삭였다.
경우 씨와 한호 씨가 최전선에 서서 증명해 보라고 발악을 하고, 그 앞에서 외로이 맞서 싸우는 진화 놈 사이에서, 나는 미소 지었다.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이 사람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모, 몰라요.”
류이든의 당혹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정색했다.
“거짓말.”
그러자 뒤에서 소영 씨가 불쑥 튀어나왔다. 배우 특유의 짱짱한 발성으로 소리치면서.
“증명해 봐!”
“아까 자세히 아냐고 물어봤는데 잘 안다고 했잖습니까. 생물학적 성별 정도는 알아야지 않을까요.”
“…아, 아, 이거 좀 억울한데, 아!”
“쟤 말하는 것 좀 봐. 절대 나폴레옹을 모를 애가 아닌데.”
류이든은 강희 씨의 말에 발악하듯 일어나 자신의 판넬을 확인했다.
“동화 형, 나폴레옹을 모른다고? 말이 돼? 나도 아는데! 수업 시간에 항상 존 나도 아는데!”
아쉽게도 데카르트가 말한 내적 사밀성의 영역이다. 내가 모른다는데 어쩌겠니. 일어나서 내 어깨를 부여잡고 탈탈 터는 류이든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몰라, 배 째.”
“아, 이거 진짜 쨀 수도 없고.”
“PD님, 이거 괜찮아요?”
아, PD님이 인정 안 해주면 말짱 꽝이군.
“흐하핫, 일단 이 판은 인정하고, 다음 판부터는 안 되는 걸로.”
세상에, 솔로몬이십니까.
PD님의 명쾌한 판단에도 우매한 우리 진화 놈과 류이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항의했다.
“어우, 상스러워! 아주 그냥 못 봐 주겠어! 왜 이렇게 성을 내? 법대로 하자니까?”
“이게 법이 잘못됐잖아! PD 누가 뽑았어! 선출직으로 바꿔!”
누가 들으면 민주주의 혁명을 일으킬 것 같은 대사로 소리치는 소영 씨.
“투표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와우, 개판이네. 최근 촬영 중에 생긴 논쟁 중에 제일 뜨거운걸.”
도희 씨의 말에 난 아무렇지 않게 옆으로 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 사태, 너가 시작한 거 자각은 하고 있지?”
“저는 정말 몰랐을 뿐입니다.”
“끝까지.”
채하민은 웃으면서 나폴레옹은 자기도 아는데 의외라며 귓속말했다. 정말, 내 말을 믿어주는 건 좋은데 이렇게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도 믿어주면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배운 추잡함은 확실히 질이 좋네. 배워야겠어.”
“그러게, 누나. 나도 공부 좀 더 해야 돼.”
나는 그런 둘의 대화를 무시하고 채하민에게 귓속말했다. 모른 척했을 뿐이라는 내 말에 채하민은 입을 벌리며 치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괜찮아. 이기려면 뭔들 못하겠어.”
약간 더러운 이미지 묻는 거야 나는 감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