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5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55화(155/343)
155.
원래 치졸한 방법은 많다. 대부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그렇지. 제작진 쪽에서 뭐라고 하면 능청스레 답하려고 했는데, 이보다 추해지지는 않아서 참 다행이다.
“선배님, 이렇게 해 보시면.”
나는 경우 씨에게 귓속말로 내가 했던 짓거리가 통하지 않으면 쓰려고 했던 꼼수를 속삭였다.
“…그렇게까지?”
“승리엔 죄가 없습니다.”
“승부욕 강한 캐릭터인 줄은 처음 알았는데.”
사실 평소 성격 같아서는 이기면 좋고 아니면 말고지만.
“저기, 저기, 또 배운 놈이 추악한 계략을…….”
류이든이 옆에 있는 채하민을 붙잡고 다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귓속말했다.
“악독한 철학과 놈들. 아까 한호 형도 더럽게 하더니…….”
강희 씨도 도희 씨를 붙잡고 다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추악하고 악독하다니, 방송에서 권장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뿐인데.
어떻게 편집될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경우 씨가 ‘이 사람은 성별이 여성인가요?’라는 질문에 ‘의외로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으나, 깊은 탐구의 결과 그렇다고 답변하기에는 모자랄지라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의 한계를 인식하지는 않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답하고 있었다.
즉, 그렇다는 뜻이군.
필승은 아니더라도 미리 저런 대사를 준비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좋으니 조금이라도 말실수를 하면 따지고 들기에 좋다.
무난하게 승리를 쟁취하고 나서 A+라는 성적이 적힌 종이를 한 장 받았다.
“게임을 총 세 번 해서, 1등한테는 A+을 드리고 나머지는 순서대로 B, C를 드려요.”
“…B에도 + 달아줘! 왜 차별해! A만 사람이야?”
“아… 재수강하기 싫은 과목인데, 큰일이네.”
도희 씨, 소영 씨가 순서대로 중얼거렸다. 저런, A를 받지 못하다니, 게으르신 분들이군. 아마 결석하거나 과제 제출 기한이 늦으셨나 보다.
“저, 저, 배운 놈이 우습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어.”
“…타도 철학과!”
체육학과와 무용과가 의기투합했다. 첫게임에서부터 저렇게 치졸하고 추하게 연합하다니, 보기 좋지 않군.
“…을 우리가 말하면 안 될 것 같긴 하지만.”
양심에 찔렸는지 경우 씨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표현의 자유.”
“그렇지. 헌법이 인정했지.”
“아, 우린 자유가 없는 게 맞는 것 아닐까.”
그건 인정될 수 없다. 자유를 포기할 자유라는 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경우가 멘탈이 예상보다 약하네. 이래서 신사는 안 돼. 밑바닥 좀 굴러 봐야 ‘아… 이게 인생 사는 맛이구나.’하는 거지. 범죄만 아니면 뭘 하든 괜찮지!”
…아, 범죄는 안 되는 거군. 성적이 낮으면 성적표를 훔칠 계획은 있었는데. 반쪽짜리 무법지대라 아쉽기 짝이 없다.
* * *
# 방송 편집본
철학과 팀이 A+를 거의 독차지하고, 가끔씩 무용과 팀이 A+를 차지하고, 찾아온 마지막 레이스. 인문대 곳곳에서 팀별로 모여 쉬고 있던 도망치는 것들에게 짧은 영상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인문대 휴식처에서 커피를 마시던 철학과 팀은 태블릿으로 까만 인영의 사람이 보낸 편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 갑자기 도착한 의문의 영상 편지?!
‘아, 아, 재학생 여러분, 방금 전 익명의 제보가 왔습니다. 시험 도중 치팅을 준비하는 학생이 있다고요! 교수인 저는 도망학개론 시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가만히 두지 않겠습니다! 딱 기다리세요!’
“……동화야, 너 부정행위자?”
한호의 말에 지동화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경우는 의심의 눈초리로 지동화에게 어깨동무했다.
“형한테 딱 말해 봐. 솔직히.”
“제가 부정행위를 저지를 만큼 바보는 아니라서.”
한호의 똥 씹은 표정이 클로즈업되고, 이후 화면은 어느 강의실로 전환돼 흑백화면을 비췄다.
누군가가 강의실에서 급하게 종이를 하나 훔쳐서 달아나는 장면. 약간의 실루엣만 비칠 뿐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의문을 남긴 영상 이후로 다시 시작된 레이스 화면이 이어진다.
“마지막 시험은 인문대 전역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기말고사’입니다!”
‘도망쳐!’에서 가장 중요한 룰이 설명과 함께 자막으로 깔끔하게 떠올랐다. 게임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받은 팀이 우승자가 되어 오늘의 승리 상품인 ‘금’을 얻는다. 미션이나 교환을 통해 다른 사람과 성적을 바꾸는 것도 허용된다. 그리고 게임 종료 시 성적이 없는 이들은 낙제,
대체 무슨 시험이 타인의 성적을 갈취하는 걸 합법화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정글 같은 도망쳐 세상, 어리숙한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데, 재밌는 지점은 성적 합산이 가장 높은 팀이 이기지만, 그 안에서 성적순으로 다시 금이 차등 배분된다는 점. 성적표가 인원수의 두 배만큼 있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을 갈등을 일으켜서 난장판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거기에 더해서 하나 더.
“치팅을 하는 몹쓸 학생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성적 바꾸기 미션이 뭔지, 어떻게 하면 쉽게 이기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치팅하시는 분은 눈치껏 잘 이기시되! 최종 투표에서 밝혀지면 금을 모두에게 환원하게 됩니다!”
한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옆에 있는 지동화의 팔을 뒤에서 부여잡았고, 그 옆에 있던 경우도 위압적으로 지동화를 내려다봤다.
“부정행위자. 말해라,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이지?”
“철학과가 승리해 소고기를 먹는 상상을 했습니다.”
“거짓말! 너는 우리 통수 칠 생각 중이지? 가장 많은 금을 얻으려고! 성적 따라 배분되는 거면, 9할을 네가 얻는 것도 가능하지!”
지동화의 무표정이 클로즈업되고 그 밑에 ‘억울’이라는 자막이 달렸다. 다만, 전혀 억울해 보이지 않아서 문제다.
“증거가 없는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게 사회의 감이란다, 가방끈으로는 길러낼 수 없지.”
“하하, 마녀사냥의 폐해를 몸소 겪어 보렴. 사회 부조리의 극치!”
“야, 태워, 일단 불태워. 재판은 됐고, 즉결처분으로.”
CG로 중세 시대 재판관 복장이 한호와 경우에게 합성되고, 지동화는 가련한 마녀 같은 복장이 됐다.
“제가 성적 떠먹여 드렸더니 이렇게 배에 칼빵을.”
“하하, 얘도 참. 원래 살다 보면 배에 칼빵 한 대 맞아 보고 하는 거야.”
― …그래요?
“통과의례지, 통과의례. 원래 이럴 땐 제일 능력 있는 사람 불태우고 나중에 애도하는 게 국룰이야.”
클로즈업되는 지동화, 양팔이 결박되고 경우에게 어깨가 붙잡힌 채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런 미…….”
컷이 잠시 잘리고 ‘아이돌의 권리 보호를 위한 편집.’이라는 흰 글씨가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 * *
어색한 침묵 속에서 철학과 팀은 화해에 도달했다.
“…나는 아직 의심스러워. 지켜 볼 거야, 범죄자.”
무죄 추정의 원칙은 강아지나 주셨습니까.
“쉿. 방송 분량 충분히 뽑았어. 지친다.”
그에 경우 씨는 서운한 표정으로 고개를 휘저으며 약하게 소리쳤다.
“형! 나한테 요즘 왜 그래! 왜 안 받아 줘? 나 진짜 삐져?”
경우 씨는 신사 같은 이미지에 가려서 광기가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나 보다.
“얘가 설마 빌런이라 해도 지가 혼자 9할을 먹겠어? 성격상 9할 먹어도 우리 데리고 고깃집 갈 거 같은데?”
세상에, 현명하다. 역시 지혜로운 사람.
“그럼 일단, 가 보자. 이기면 그만이지. 우리 성적 중에 제일 낮은 게 지금 B 두 장이잖아. 이걸로 무용팀 A+ 노리면 되겠지.”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인문대 1동에서 출발해 강의실 곳곳을 들여다봤다. 룰 상으로는 강의실 안에 스태프들이 있어서 찾아가면 미션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던데.
“…여기서 갈라져서 다니는 게 유리하긴 한데.”
경우 씨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나를 흘깃 바라봤다. 믿음과 신뢰로 돌아가던 사회는 무너져 내렸군.
“의심이 과하면 독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 그렇지. 말이야 맞는데, 믿음에 발등 찍히는 게 더 화나잖아?”
“그건 맞지. 의심해서 독 먹는 게 더 낫지.”
설득당한 한호 씨가 경우 씨와 함께 노려 보길래, 나는 무시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타인의 시선이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은 옳기 짝이 없다.
“어, 어, 저 부정행위자 놈!”
이 학교의 인문대는 건물과 건물 사이가 연결이 잘 돼 있어서, 처음 오는 사람은 미로 같은 구조라고 생각하기 쉽다.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 헷갈리는 건물이다.
나는 카메라 스탭분을 이끌고 슥, 하고 사라졌다.
“도망쳐 봤습니다.”
방송물을 조금 먹었으니 나는 작은 목소리로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 학교 인문대는 구조가 특이해서, 어느 정도는 건물 안에서 다른 건물로 계속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옛날 지식이 쓰일 줄은 몰랐는데. 어이가 없어서, 원.
이 게임의 기본 규칙은 스태프가 준비한 게임에서 이기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등을 터치해 성적 교환을 신청해서 최고의 성적을 얻는 것. 공부해서 성적 맞을 생각은 하나도 없는 낙제생들의 몸부림 같아서 은근히 즐겁다. 살면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경험이야.
…음, 발소리가 들리네.
나는 조심스레 계단 뒤편에 숨어 누가 지나가는지 지켜봤다. 스쳐지나가는 분홍색 머리칼. 슬쩍 나가서 등에 달린 성적표 봉투를 빼앗았다.
“흐아악!”
토끼 치고는 소리가 크구나.
“도, 동화야! 그거, 안 돼!”
“성적 교환하자.”
채하민은 그 말에 얼굴을 풀썩 떨어뜨리고는 중얼거렸다.
“……아, 망했다.”
채하민은 봉투에서 성적 부분이 보이지 않게 성적표를 꺼내 내밀었다.
“…두 장 중에 뭐로 할 거야?”
시험 삼아 내 기준 왼편에 있는 성적표를 잡아 보니, 채하민이 세상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옮기니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입꼬리가 들썩거렸다.
“…티나, 하민.”
“으, 응? 뭐가?”
채하민은 모른 체하지만, 조금 귀엽다. 양심에 찔리는 짓을 하면 저렇게 티가 난다.
왼편에 있는 걸 붙잡았다.
“잘 가져갈게.”
그리고 나는 채하민에게 내 성적표를 건넸다.
“계획대로만 되길.”
내 말을 들은 채하민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해맑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성적을 교환 당한 것치고는 참 해맑구나, 하민아.
이제 다시 A+를 끌어 모아야겠다. 옛날 생각나고 참 별로군.
* * *
채하민은 성적표를 챙겨 등에 두 장을 붙이고, 한 장은 주머니에 넣었다.
“…아, 잘 도망쳐야 하는데, 큰일이다.”
뒤쪽에서 걸어가는 지동화는 등에 성적표를 단 한 장만 붙이고 있었다. 기본 규칙 1번, 성적표가 2장 이상이라면 반드시 2장은 등에 붙이고 있어야 한다.
“여러분, 동화가 약가안, 사악한 것 같아요. 평소에는 엄청 착한데, 게임할 때는 꼭 저래요. 예전에도 저 배신한 적이 있는데… 오늘도 그러면 제 손으로 직접…….”
채하민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달려갔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모두를 속일 생각을 하는지, 채하민으로서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 아침에 동화가 여기 숨기 좋은 곳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방송 분량은 내야 하니까 계속 숨어 있을 수는 없어도, 잠시는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