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5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56화(156/343)
156.
채하민과 성적 교환을 마치고 약간 시간이 흘러, 나는 철학과생들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동화야, 다시 말해 봐.”
“…저 A+ 성적표 다 뜯겼습니다.”
나는 상심한 목소리로 답하며, 경우 씨 쪽으로 등짝을 비췄다.
그곳에는 하나의 성적표만이 붙어 있었고, 재빨리 그걸 뜯어 본 경우 씨는 ‘B-’라고 적힌 성적표를 들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희희 남매가 강제로 게임을 걸어 성적을 강탈해 갔습니다.”
“나는 진짜, 동화야. 너는 정말! 어! 부정행위자 아닌 걸 꼭 이렇게 증명해야겠니!”
“에이, 경우야. 희희 놈들한테 걸린 건데.”
역시 용서가 뭔지 아는, 배운 사람.
“아, 이래서 희가 놈들이랑은 상종하면 안 돼. 명심해, 동화야.”
“그럼 무용과가 우리보다 A+가 한 장 모자란 건가?”
경우 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호 씨는 웃으며 어깨를 돌렸다.
“그럼 나는 희희 놈들 목 따러 가야겠다~ 성적 강탈 게임 하나 찾았거든.”
한호 씨는 그리 말하며 내 등을 툭툭 쳤다.
“너도 게임 좀 찾아봐, 성적표 얻어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A+가 필요한데.
“나랑 같이 가. 내가 도와줄게. 우리 금 1:1:1로 분배해야지.”
경우 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다행이어라.
* * *
“6×6 오셀로에서 승리하는 분에게 A- 성적표 드립니다! 총 세 장 있어요!”
경우 씨와 한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소리. ‘오셀로 동아리’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이미 게임 중인 것으로 보이는 류이든은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다.
대체 무슨 동아리에서 성적을 배포해. 이런 미친 학교가 세상 어디에 있다고.
“아아! 아! 아아! 이길 수 있었는데!”
“…아니, 제작진분들이 약간 컨텐츠가 모자랐나? 뭐 저렇게 정적인 걸 예능에 넣어놨대.”
경우 씨는 류이든의 비명을 들으며 귓속말했다. 대충… 왜 넣었는지는 알 것 같긴 하지만. 아마도 부정행위자를 위해 있는 게임이 아닐까.
“이든 씨, 아쉽게도 기본 기회 삼 회는 다 소진하셨네요! 추가로 하시면 시간 초과로 감점입니다!”
“어우, 포기하겠습니다. 정말, 이런 건 동화가 하는 거라 저는…….”
아직까지 우리가 있는 걸 확인하지 못했던 류이든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우리를 보며 경기를 일으켰다.
“아! 우리 고양이가 또 이렇게 통수를 칠 준비를.”
오늘 하루 종일 나한테 당하기만 해서 그런지 경계심이 한껏 올라 있었다.
“조용, 개.”
시끄러워 죽겠어.
류이든을 밀어내고, 자리에 앉아 겸허히 오셀로 판과 마주했다.
“지동화 학생! 도전?”
“잘 부탁드립니다.”
“선후공 정해주세요.”
“후공으로 하겠습니다.”
“저런, 선빵필승을 모르는구나!”
경우 씨가 뒤에서 뭐라고 소리쳤다. 경우의 수가 정해진 게임이라면, 통계학은 항상 필승법을 탐구했다.
6×6 오셀로. 일반적 오셀로의 변형 버전으로, 판이 좁아지며 경우의 수가 확 줄어들었고, 좁아진 덕분에.
“…아, 저럴 줄 알았어. 망할 고양이. 또, 또 사기 쳐.”
한 수 한 수 두고 있을 때, 류이든이 한숨을 푹 쉬며 뒤돌아 나갔다.
“동화 씨, 승리했네요. 여기 A- 성적표입니다! A+보다는 못해도 소중히 해 주세요! 한 판 더 두시겠어요?”
“네.”
“선후공은?”
앞에 앉으신 스탭분은 눈치챘다는 듯이, 물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물어보신다.
“후공으로.”
그리고 나 역시 답이 정해져 있다.
통계적으로 6×6 오셀로는, 두는 순서만 틀리지 않는다면 후공이 무조건 승리할 수 있으니까.
* * *
눈앞에서 지동화가 제작진에게 성적을 압수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경우는 마음 한편에 커다란 의심이 샘솟았다.
‘이상한데…….’
누가 봐도 의심스러워. 그래서 그게 더 의심스러워. 방송 경력을 헛물로 들이킨 건 아니다. 누가 봐도 자기가 부정응시자라고 선언하는 것 같은 이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방송을 망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아니, 뭐지?
혹시 오셀로 필승법 같은 게 어디 숨겨져 있나? 그러면 왜 자신의 눈앞에서 이걸 풀고 있는 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동화 씨, 이거 기본 상식?”
경우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기본 상식인 게 더 ‘방송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
“……음, 그렇습니다.”
마지막 A- 성적표를 가져간 지동화는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저, 강탈권 하나 사용하겠습니다.”
“……강탈권이 뭔데요, 동화 씨.”
오늘 촬영 중에 말을 놨는데도 그 미묘한 한마디에 저절로 말을 높이게 됐다.
‘오우, 약간 떨리는걸.’
“상대의 성적 한 장을, 골라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동화 씨, 저 경우예요. 오늘 하루 종일 같이 다니면서 우리 즐거웠잖아요?”
“금은 우정보다 귀합니다.”
하긴, 경제위기에 금만한 게 없, 그게 아니라…….
“아니야! 자본주의에 찌든 인간아! 우정이 금보다 훨씬 귀중해! 강탈권을 왜 나한테 써요! 우리 하나잖아! 철학과는 정의가 뭔지 아는 거잖아!”
“제가 사실 철학을 잘 몰라서. A+, 가져가겠습니다.”
“…동화 씨! 정말 이러기야? 나, 당신 가만 안 둬! 지옥 끝까지 따라가요!”
A+을 하나 받아가는 지동화에게 악에 받힌 듯 경우는 소리쳤다. 물론 예능을 위한 연기였다.
“강탈 규칙. 강탈당할 시에는 1분 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럼 이만.”
그렇게 인사하고 달려 나가는 지동화를 보며, 경우는 대체 저 인간이 뭘 하고 있는지는 감이 오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한 방은 먹여주고 싶다는 자그마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 * *
곳곳에서 악독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지동화는 어디서 어떻게든 이상한 걸 잔뜩 찾아와서는 모든 이들을 골탕 먹였다. 게임은 이상하게 다 털어가고, 해괴한 수단을 활용해서 A+를 앗아갔다.
“쟤, 뭔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동화야!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 너 추악한 승리보다 아름다운 패배가 더 낫다는 주의였잖아!”
류이든이 힘겹게 구해서 몰래 숨기고 있던 A+를 강탈당하고 소리쳤다. 지동화는 그저 웃으며 유유히 사라질 뿐이었다.
“저 사람 이상해. 여기 통로 뒤죽박죽인데 다 외우고 있나 봐. 어디서 튀어나올지 예측이 안 돼.”
옆에서 같이 허탈하게 앉아 있는 소영도 허탈하게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지동화가 공격하는 대상은 비단 적팀뿐만이 아니었다. 미친놈처럼 활개를 치며 한호와 경우 역시 지동화가 나타나면 주의해야 했다.
“…돈에 미친 거지?”
“그렇다고 봐야지. 황금에 눈이 먼 거지.”
철학과 팀과 체육학과 팀이 서로 사이좋게 C와 B만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지동화가 만들어낸, 집단을 넘어선 교류. 화기애애하다.
“동화 씨 작곡하는 거 아니었어?”
지동화에게 다시 존대를 사용하는 경우. 은근히 소인배였다.
“그리고 우리 블로센스는 승승장구 중이고! 대체 돈이 뭐가 필요해! 아 씨, 저걸 부정응시자라고 찍을 수도 없고.”
“왜요, 오빠? 그냥 부정응시자 확정 아냐?”
“쟤가 바보가 아니잖아. 부정응시자였으면 저렇게 대놓고 하겠어?”
“도리어 그걸 노린 심리전은?”
어느새 합류한 강희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머릴 부여잡고 소리쳤다.
“아, 아! 왜 가방끈이 길어서 뭐 하나 확신할 수가 없어! 이것도 계산한 거 아냐?”
“…아니, 너는 동화한테 삥도 한 번 뜯었잖아.”
“어? 뭔 개소리야, 형. 나 뜯기기만 했는데.”
“……아, 뭔데, 뭐 하나 맞는 게 없어.”
진심으로 짜증난 경우의 말에 모두들 상황을 잊고 헤실대기 시작했다.
“일단 정해야 돼. 부정응시자로 동화 투표해?”
“그래야지 않을까. 만약에 아니면 하는 수 없고, 맞으면 금 다 털 수 있잖아.”
대화를 듣고 있던 류이든은 뭔가 기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느낌이 이상하네.’
지동화 손에 농락당하는 거야 익숙하고, 또 얼마든지 당해줄 수 있지만. 지금은 느낌이 묘했다. 원래 이렇게 될 일이 아닌 것 같은. 무언가가 철저하게 숨겨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렇게 위화감을 느낄 때 전체 공지가 떴다.
“여러분 마지막 게임 종료입니다! 성적표 잘 챙기고 중앙으로 모여 주세요.”
류이든은 자신의 텅 빈 등을 한 번 쓸어 봤다. 체육학과 팀 중에서 지동화가 유독 나만 괴롭혀서, 낙제 확정이다.
‘아, 이 망할 놈.’
그는 지동화식으로 생각하며 웃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왠지 미소가 새어 나왔다.
* * *
나는 거친 숨을 정리하려 노력했다. 망할, 힘들어. 땀이 무대보다 많이 난 것 같다.
“여러분! 부정응시자 투표 시작할게요! 투표소에 들어가서 찍어 주세요!”
이 게임의 중요한 지점. 게임 결과 발표 이전에 부정응시자 투표가 끝난다는 것.
“제발 동화 씨가 부정 응시자인 걸로 해줘. 금 좀 다 나눠 갖고 오랜만에 하하호호하면서 엔딩 해봐요, 우리.”
“안 어울려, 그거.”
“아니, 아닌데.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이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순간이다!”
“타도 지동화! 제발 부정 응시자!”
“그래! 자본주의의 상징을 무너뜨리고, 우리는 승리한다!”
…무슨 위험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나는 손수건으로 땀을 눌러 닦으며 웃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같아.
“지동화한테 투표하지 않으면! 전부! 부역자야! 다 처형이야! 단두대 올려!”
강희 씨가 광기를 온몸으로 표출하며 소리쳤다. 미친 사람.
그리고 그렇게 나는 웃고 모두들 한마음 한뜻으로 타도 자본주의를 외치고 있을 때, PD님이 입을 열었다.
“네,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선 부정응시자 투표부터 말씀드릴게요!”
“들을 이유가 없다! 지동화!”
“우오!”
PD님은 재밌어 죽겠다는 듯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몰표로 지동화 씨가 투표에 당선되셨고요. 동화 씨, 부정 응시자가 맞나요?”
나는 착잡한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력, 아직 죽지 않았다.
모두들 미칠 듯한 환호를 질렀다. 인간의 승리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 자본주의도 인간의 발명품인데.
“봤어요, 동화 씨? 이게 인간의 정이고, 혁명이고, 역사의 발전이고, 복지입니다!”
경우 씨가 제일 중간에서 환호했다. 반면에 옆에서 한호 씨는 미심쩍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몰표?”
날카로워라. 역시 한호 씨는 대단한 사람이다.
“다음은 승리팀 발표입니다!”
모두들 들을 것도 없다는 표정으로 이미 게임이 다 끝났다는 표정. 나는 미소를 지었다. 추악한 승리도 꽤나 즐겁다.
“무용과!”
싸하게 내려앉는 침묵. 그 속에서 경우 씨만 툭 입을 열었다.
“…어?”
희희 남매도 서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나는 아닌데, 너냐?’라고 묻는 표정.
“그리고, 금 배분율도 말씀드릴게요. 오늘의 금은! 무용과의 나머지 두 멤버가 성적이 너무 저조해 낙제한 관계로! 학과 대표인 하민 씨가 모두 가져갑니다!”
채하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러움과 수치를 잠시 견뎌낸 채하민은 희희 남매에게 고개를 한 번 푹 숙이고는 내쪽으로 해맑게 달려왔다.
“동화야! 이겼다!”
소리치며 달려들 듯 점프하는 채하민.
예상했다, 절대 넘어지지 않.
“어.”
오늘 힘을 너무 많이 썼구나. 망할.
자연스럽게 넘어졌다. 하, 과속 토끼 규제법은 아직도 안 만들어졌어. 이 방송을 토대로 반드시 제정되길.
“왜! 어째서!”
강희 씨가 외치자 한호 씨는 중얼거렸다.
“…양도가 안 된다는 규칙이 없었네.”
말하지 않은 건, 모두 해도 괜찮다는 규칙. 잘 활용하고 갑니다.
“…그럼 처음부터 우리 팀 아니었던 거야?”
하루 동안 채하민을 챙기느라 이리저리 고생했던 희희 남매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채하민은 몸을 배배 꼬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도, 동화가 유혹해서!”
미친.
“너, 너, 이 나쁜 놈! 감히 우리 하민이를 유혹해서! 나쁜 길로 끌어들여!”
“내가 친구 잘 만나야 한다고 했지! 어?”
…아니, 무슨, 하민이 부모님이 다 되셨군.
희희 남매의 마지막 멘트에 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