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5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57화(157/343)
157.
촬영이 끝나고 경우 씨가 내게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동화 씨, 우리 오늘 회식하는데 같이 식사하러 갈래요?”
작업 거는 사람 같다. 사생활이 깨끗하기로 소문 난 분이라 그렇지 않았으면 바로 거절인 수준의 멘트였다.
“사실 매니저분께는 이미 허락은 받았는데, 그래도 여러분 의견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러자 뒤에서 류이든이 달려와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선배님, 저희는 당연히 좋죠!”
“아, 정말요? 다행이다. 오늘 진화랑 소영이랑 못 온다 그래서 조금 허전할까 싶었는데.”
“아, 아쉽네요. 진화 선배랑은 아직 못 친해졌는데.”
“그러게. 이상하네. 오늘 스케쥴은 없는 걸로 아는데.”
아, 재밌어라. 오늘 기분이 더러우셨나 보다. 류이든이랑 함께 가장 많이 능욕한 덕일까. 아마도 역겨운 술집에 행차하지 않으셨을까.
“어쨌든, 동화! 너! 내가, 게임은 졌지만 술은 안 진다!”
저런, 그건 저도 나름대로 자신 있는데.
“우리 동화가 또 술 하나는 대단해요.”
* * *
“아, 그럼 시작하고 룰 공유하자마자 바로 편 먹은 거야?”
“네! 동화가 저랑 편 먹는다 그러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니, 그러면 동화 씨는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을 짜고 시작한 거야? 무서운 사람이네.”
“내가 말했잖아, 저분 디텍션에서도 비슷한 짓을…….”
들리는 소리는 가뿐히 흘려 넘겼다. 눈앞에서 한호 씨와 경우 씨가 소주를 따라서 내게 건넸다.
“힘들면 무조건 그만 마시는 거야. 선배가 줘도 싫어요, 안 돼요, 꼭 말해야 해.”
경우 씨가 그러면서도 강조했다.
“그래, 너 지금 몸 좋다고 막 마시다가 내 나이 되면 훅 가요. 선배가 주는 술도 거절할 줄 알아야 돼. 술 좋아하면 안 돼, 그리고. 이유는 말 안 해도 알지?”
…류이든이 만든 작은 오해. 내가 너무 술꾼처럼 여겨졌다. 정작 나는 술을 즐기는 인간은 아닌데 말이다.
“어으, 이제 얘기 좀 해봐. 왜 자본주의에 빠진 거야.”
한 잔 마신 경우 씨가 중얼거렸다. 약간 상처 입었나 보다.
“배신당하는 거야 익숙한데, 우리 후배님이 그럴 줄은!”
이게 다 예언 때문이다. 예언이 내건 미래 개변의 조건은 금이 단 한 톨도 진화 놈 손에 돌아가지 않는 것. 내가 어줍잖게 설치다가 최종 투표에서 당선 당할 가능성을 열어둘 바에야, 이게 확실하다 싶었으니까.
그러나, 그걸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금은, 항상 좋은 투자처니까요.”
이런 소리나 주절거릴 수밖에.
“그거야 맞지.”
“그지. 불안하면 일단 금이지.”
역시 어르신들이라 그런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 주셨다.
“그래, 돈 좋아하는 게 탈도 아니고.”
“경우야, 너도 저 나이 때 돈독 좀 있었잖아.”
“형, 나 진짜 울어?”
두 분의 대화에 설핏 웃음을 흘렸다.
“두 분은, 예전부터 알던 사이셨습니까?”
“그렇지. 몇 년 됐냐, 경우야.”
“한 15년 됐지?”
“뭘 또 그걸 세고 앉았어, 징글한 놈.”
“물어놓고 또.”
다시 한 번 짠. 이분들, 역시 잔뼈가 굵으셔서 그럴까. 잔 회전 속도가 빨랐다.
“참고로, 경우 술 세다는 건 구라야. 얘는 주량이 세 병밖에 안 되거든.”
음, 그것도 보편적으로 센 편이 아닙니까.
“…그럼 선배님은?”
“나야, 뭐.”
한호 씨는 고기를 한 점 집어 먹었다.
“잘 모르는데.”
씩 웃으며 말하는 한호 씨. 원래 동양 사상에 나오는 신선들은 술을 물처럼 마시곤 한다던데, 이렇게 경험적 증거를 하나 획득했다. 신선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너도 잘 모른다며. 오늘 내가 한번 확인해 줄까?”
한호 씨의 부드러운 제안. 하지만 분명 끝까지 어울려 줄 수 있는 놈이냐고 묻는 투였다. …그럴 의무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 한호 씨께는 오늘 방송 중 고마운 일이 많았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주의! 자제할 것!]…잠깐, 이건 또 뭐람.
* * *
채하민은 오늘따라 즐거웠다. 주량을 생각해서 한 잔도 마시지 않고 다른 분들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게 술이 아니라 술자리를 좋아한다는 그건가 봐.’
“오늘 하루 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저 진짜 방송에서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에이, 아껴 둬. 내 옛날 생각나서 그랬지.”
강희 선배님이 웃으며 말했다. 한때는 아이돌이었던 분. 지금은 해체하고 방송인으로 살아가고 계시지만, 여전히 그때를 많이 그리워하시나 보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나는 뭐 콩고물 노린 것처럼 들리잖아?”
“아니었어? 이 누나가 인맥이 엄청 넓어. 잘 뜯어먹도록.”
화기애애한 분위기. 반대편 테이블과는 느껴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저기는 데스매치 하는 기분인데.”
“저 오빠 술 마시는 속도를 따라가는 사람이 있네. 놀라워.”
“동화 씨랑은 오늘 대화를 많이 못 해봤네. 어떤 분이야?”
강희 선배님의 물음에 채하민은 입술을 우물댔다. 뭐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까. 동화를 칭할 만한 말은 많지만, 음.
“…제일 친한 친구?”
“그건 아무 설명도 안 되는데, 하민아.”
강희 씨와 도희 씨가 웃었다. 하지만, 이것보다도 나에게 있어서 동화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사실 제가 막 그렇게 친한 사람이 많지가 않거든요.”
“알지. 연습생 오래 했구나?”
강희 씨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생 오래 하면 친구 생기는 게 아니야?”
“…사람 나름이지. 회사 나름이고. 매일 보는 사이면, 한 놈이 물 흐려서 분위기 망칠 수도 있고. 반대로 그런 애가 있으면 버리는 경우도 있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다 보면, 주변 사람들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왕왕 존재했다. 회사 자체에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겉돌 수도 있다.
물론 채하민은 그런 류의 문제로 친구가 적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래서 그런지 멤버들이 엄청, 소중한 친구 같은 거라서……. 좋은 사람이에요, 동화!”
강희 선배님은 착잡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조금 그립네. 해체하고도 만나긴 하는데, 끈끈한 정 같은 건, 없거든.”
“…해체하면, 그런가요?”
순식간에 당황스럽고, 서글퍼졌다. 동화와 대화하며 많은 지식을 엿들을 수 있었는데, 이게 귀납법인가 뭐가 하는 그거 아닐까.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사례가, 있어. 사례가 모이면, 진실이 된다는 것.
만약 지동화가 들었으면 사례 하나로 어떻게 귀납이 성립하냐고 머리를 콩 때렸을 것이다. ‘잘 모를 때는 확신하지 마.’라고 말하면서.
“이것도 팀 나름이겠지? 우리는 그랬어.”
강희 선배님이 속한 팀이 인기가 없던 그룹은 아니었다. 다만, 강희 씨만 예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나머지는 그러지 못했을 뿐.
“저희도… 그렇게 되겠죠?”
“뭐, 그럴 수도 있고…….”
“야, 이 씨.”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도희 선배님이 잔을 들고 강희 선배님의 머리를 때렸다. 꽤 세게.
“우리 애를 울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아직 안 울었다. 집에 가서 울 예정이다.
“아, 아니. 아니지! 케이스 바이 케이스 몰라? 야, 그렇게 되긴 무슨!”
강희 선배님이 강력하게 자신의 입을 때리며 머리를 책상에 몇 번 박았다.
“괘, 괜찮은데.”
“속죄는 말보다 행동으로 하는 법.”
그렇게 말하며 도희 선배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옆에 앉은 강희 선배님의 배를 후려쳤다.
“그런! 괜찮아요! 진짜! 저희가 해체해도!”
아차, 말실수. 이렇게 급히 말하다 보니 괜찮은 포인트가 잘못 나왔다.
탁―
그런데, 무언가 위협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를 강력하게 내려놓는 소리.
채하민은 옆자리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술병이 만리장성처럼 쌓여 있는 옆 테이블을 배경으로 경우 씨는 졸린 듯 약간 뻐끔거리고 이든이 형과 한호 선배님은 당황한 눈초리를 띠고 있었다.
“…안 괜찮아, 그건.”
동화의 목소리. 그런데 약간 낯설었다. 뭔가… 풀린 듯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동화가 나한테 다가오더니 어깨를 짤짤 흔들었다.
“안 괜찮다고. 누가 해체한대. 평생 안 해.”
동공도 약간.
……설마 취한 거야? 우리 동화 술버릇이 드디어!
“내가 제일 친한 친구면, 당연히 너도 제일 친한 친군데.”
그런데 말이 왜 이렇게 또렷하지. 원래 술 취하면 발음이 새고 그러지 않나?
자신의 술버릇과 비교해 보던 채하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취한 건지 의심스러워서.
“왜 갸웃해. 못 믿어? 토끼야.”
……잠깐만, 동화야. 그런 감동적인 말할 때 동물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줘.
“나는 토끼가 제일 친한 친군데.”
“동화야! 나는! 나는!”
이든이 형이 신난 목소리로 촬영을 하며 물었다.
“닥쳐, 개. 중요한 얘기 중이야.”
동화의 냉정한 목소리에 풀이 죽은 형은 조용히 카메라로 촬영할 뿐이었다.
취한 거 맞구나. ‘닥쳐’도 처음 들었고 이든이 형을 ‘개’라고 부르는 것도 처음 들어봤다.
“평생, 죽을 때까지, 내가 다른 차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너는 나랑 친구로 지내야 해.”
감동과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오는 이 기묘한 감각은 뭘까. 채하민은 알 수 없었다. 죽음을 벌써부터 생각하고 말하나, 보통?
“다, 당연히 그래야지!”
“약속은, 무거운 거야, 토끼. 손 줘 봐.”
동화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채하민은 엉겁결에 거기에 손을 걸고 말았다.
“누군가 한 명이 죽기 전까지, 만일 한 명이 변절한다면.”
‘동화야, 그거 저주 같은 거야?’
타로를 공부하면서 서양의 미스터리를 접할 일이 많았는데, 이거 그런 건가.
“다른 이의 손에 죽기를.”
“도, 도, 동화야! 이거 저주잖아!”
“평생 친구가 되겠다는 결의야. 저주는 미신이니까, 살인이 더 합리적이잖아.”
그러네. 생각해 보니 저주가 아니라, 연 끊으면 찾아와서 죽이겠다는 살인 예고였다. 더 심각한 거였잖아.
“부디, 함께이기를.”
새끼손가락을 꼭 부여잡은 채 기원하는 동화의 모습에 채하민은 잠시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거, 감동적인 척하지만, 협박이잖아.
“동화야, 괜찮아? 취한 거야?”
“응, 취했어.”
하나도 안 취한 말투로 말하지 마! 더 무서워!
“나는, 우리 멤버들이 좋아.”
“나, 나도!”
“나도, 나도!”
“그러니까, 평생. 죽을 때까지 하나야.”
그, 그래! 동화, 네가 원한다면! 채하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나야.”
“약속, 한 거지?”
지동화는 눈을 매섭게 뜨고 채하민에게 얼굴을 조금 가까이했다. 아까 전, 지동화가 말한 ‘약속’의 무게를 채하민은 떠올렸다.
“응. 약속했어.”
‘내가 동화를 죽일 일은 없고, 내가 연을 끊을 일은 더욱이 없으니까’
동화는 자신의 대답에 만족했다는 듯이 채하민을 꼬옥 껴안았다.
“우리 토끼, 장하네.”
죽음을 각오해야 들을 수 있는 칭찬이라니, 값져!
* * *
일어났다. 어제 있었던 일도 머릿속에 생생한 상태 그대로.
그래, 내 술버릇이 솔직함이라, 이거지. 완전히 이해했다. 옛날에 술 마시면서 거울 깬 게 다 그 버릇 때문이다, 이거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속으로 이름을 불렀다.
……기지생.
[경고했습니다. 수치라는 감정은 왜 이리 자주 학습시켜 주십니까? 다른 감정도 배우고 싶습니다!]닥쳐. 뜯어말렸어야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재밌을 것 같아서 말리는 척 부추겼습니다!]재미라는 감정도 배우고, 참 성장했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옆자리에 누워 있던 채하민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보면서 웃었다.
“그만.”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쉿, 하민.”
“토끼라고 불러줘도 되는데!”
“조용, 제발.”
“‘닥쳐’라고 해도 괜찮아! 우리 연 끊으면 살인사건 일어나니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어!”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류이든한테는 내가 뭐라고 말했지.
머릿속의 서고, 그 어디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