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5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59화(159/343)
159.
“…작업이라고 말하면 나 죽어?”
해외로 가는 비행기, 옆의 이현재는 곯아떨어졌고, 류이든과 나만 깨어 있었다.
“그건 일이지, 취미가 아니라.”
“나는 쉴 때도 계속 작곡하길래, 아, 쟤는 진심이구나, 했는데.”
어느 미친 인간이 취미로 일을 해. 그게 다 우리의 성공을 위한 대비인데. 물론 작곡은 재밌지만, 일하는 게 재밌다고 인간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노동-여가 곡선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내 날카로운 시선에 허허 웃은 류이든은 말꼬리를 돌렸다.
“독서는?”
“그건 반쯤 습관 같은 거라.”
“너도 참 인생 힘들게 살아.”
나는 가볍게 동의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으면 좋지만,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잡생각도 많아져서 결국엔 ‘망할’ 상태에 돌입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자주 사용한 말인 ‘망할’ 상태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문스럽고 불명확해서 ‘망할’ 말고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책을 읽고 다른 문제로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렸고, 내 경우에는 그게 작업이다.
“근데 필요해? 그럼 지금까지도 취미는 없었던 건데.”
“…틀린 말은 아니긴 해.”
그냥,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일이 가끔 필요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눈을 감았다. 대만까진 아직까지 꽤 시간이 남았으니까.
* * *
“그냥,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일이 가끔 필요해서.”
지동화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지만, 류이든은 그럴 수 없었다.
‘아, 진짜 겁나 걱정돼!’
걱정하는 걸 티내면 싫어하는 동생이라 일부러 무심하게 툭툭 말을 건넸지만, 마음까지 그럴 수는 없었으니까.
‘전에 준이 녹음 응원하러 갔을 때부터 약간 멍해 보이더니.’
혹시 전에 말해 준 ‘망할’ 상태인가? 예전에 류이든은 지동화가 ‘망할 인생’ 뭐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길래 대체 무슨 책 제목이 그러냐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가, 제대로 탈룰라를 시전한 적이 있다.
‘이거 아버지 책이야. …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단호하게, 절대로 무시하게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지동화의 목소리는 아직도 선명했다. 그때 ‘망할’이라는 어투의 기원에 대해 배웠었다.
“아, 어떡하냐, 얘를.”
준이야 블로센스 내부 최고의 덕후라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은 운동, 하민이는 요즘 타로에 빠져 있었다. 현재야 공부 때문에 정신없지만. 평소에 인터넷에 가장 쉽게 빠지는 타입이다.
반면에 이 머저리 같은 동생이 좋아하는 건 ‘작업’과 ‘독서’라고 생각했는데.
“취미라도 찾아줘야 하나.”
아니, 그걸 자신이 어떻게 찾아주지? 취미라는 게 찾아서 될 일도 아닌데.
‘일단 운동이라도 시켜봐?’
지동화가 들었으면 멱살부터 잡혔을 생각이 들자 류이든은 잠든 지동화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일 말고도 뭔가 정붙일 데가 있으면 좋기야 하겠다. 그러나 친구를 만나는 것도 싫어해, 운동 싫어해, 미신 싫어해, 공부는 머릴 비우기에는 부적절하고, 만화는 재미없어 하고, 그나마 소설을 조금 읽는데 읽을 때마다 눈을 감고 수시로 생각에 잠기고, 대체… 적절한 취미가 있기는 할까?
“…뜨개질?”
좋잖아, 뜨개질. 생각 비우기의 정수 아닐까?
지동화가 저렇게 냉한 얼굴을 갖고 있지만, 속은 따스한 사람이니, 어찌 보면 잘 어울리기도 하고.
“좋아, 대만 가면 뜨개질 키트부터 산다.”
류이든은 그렇게 다짐하며 손을 꽉 쥐었다.
* * *
“뭔데, 이거.”
“뜨개질 키트.”
그건 내 시력이 정상 범주고 내 뇌가 제대로 작동하면 알 수 있는 정보잖아, 강아지.
“…사유.”
“네 취미! 내가 고심한 결과, 이게 최고야.”
이런 걸 말한 게… 오케이, 받아들였어. 나를 생각한 마음만큼은 알 수 있었으니 별 생각 없이 뜨개질 키트를 들었다.
“…색을 이걸로 고른 이유는?”
“핫핑크가 남자의 색이라.”
“차별적 발언.”
“아, 이걸 그렇게 받는다고?”
핫핑크 실뭉치로 목도리 뜨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쓰고 그만한 효용을 뽑지 못하면 낭비니까, 해 봐야겠군.
‘…이거, 현재 수능 때 둘러 주고 싶은데, 되려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앞에서 굼뜨게 걸어가고 있는 이현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많이 완화되기도 했고, 상담 치료도 받는 중이라지만, 그래도.
그러자 이현재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더니 중얼거렸다.
“아아… 안정되네요.”
인간 피톤치드가 된 느낌이긴 해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보다 이현재의 안정이 더 중요하므로 괜찮다. ……그런데 이현재는 어쩌다가 나 같은 인간을 피톤치드로 삼았을까. 세상은 넓고 훌륭한 이도 적지는 않은데, 안타깝다.
“많이 힘들어?”
“아니요. 괜찮을 것 같아요.”
괜찮은 척하는 버릇은 대체 누구한테 배운 거야, 또.
“…그래.”
“역시 바로 납득해 주는 건 형밖에 없어.”
장난스럽게 웃는 이현재를 보면서 나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쩌다.
* * *
해외 프로모 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이해는 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한국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은 동남아시아, 예로부터 한국 아이돌이 해외 진출 활로가 된 일본, 대만, 그리고 홍콩.
이곳에서 인터뷰나 약간의 촬영, 그리고 작은 무대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해외로 진출하는 게 일상사라는 걸 고려하면, 원어민 수준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건 좀 의아하긴 하다. 지난번에 보니까 중국인이나 일본인, 미국 교포 등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을 한 그룹에 용광로처럼 섞어 놓은 팀도 있던데.
내 말을 듣던 채하민은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더니 답했다.
“동화, 너가 있는데?”
내가 무슨 파X고라도 된다는 듯이 말하지 마, 하민. 네가 보기에는 내가 무슨 언어든 다 할 수 있는 미친 사람으로 보이나 봐.
“영어 말고 쓸데가 없지.”
그것도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다는 정도의 이득밖에 없다. 중국에 가서 영어로 방송하면 소소하게 연예 뉴스를 내 이름으로 장식할 수 있겠지.
“근데, 요즘은 우리나라 아이돌 덕질하시는 분들 중에 한국어 공부하는 분들도 많대.”
“…그러면 좋긴 하겠네.”
이곳은 일본. 일본어로 첫 번째 미니 앨범을 번역해 내놓았다. 아주 당연하게도 일본 사람들은 한국어와 영어 모두 능통하지 않다는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모든 관계의 시작점인 대화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이제 곧 들어갈 촬영에 잠시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일본어, 일상 회화밖에 모르는데.
환하게 빛을 내뱉는 조명 아래에서 새삼스레 ‘클라우디 블루’를 다시 부를 생각을 하니까 묘하게 낯간지러웠다.
게다가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내가 일본어를 잘 모르니 전문가 분에게 개사를 맡겨서 그런지 입에 안 붙어서 남의 노래를 부르는 기분도 들었고.
“(여러분들! XX 들어갈게요!)”
의미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기는 해도 아마 녹화에 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 모이자, 얘들아!”
류이든의 호출에 긴장하고 있던 멤버들까지 모여 손을 모았다.
“첫 무대니까 찢어 보자!”
찢긴 뭘 찢어, 짐승 같은 강아지야.
“오!”
석준이 류이든의 텐션을 따라하며 호응했다. 채하민은 성격상 혼자 하는 꼴을 못 보니 따라했고.
나와 이현재만 쪽팔림을 감추면서 아주 천천히 ‘와…….’라고 뱉을 뿐이었다.
* * *
프리랜서 형식으로 음악감독 일을 하고 있는 화양. 그녀는 잠시 일본에서 한 음악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무대 아래서 손을 모아 서로 파이팅을 외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며칠 전에 나눈 대화를 잠시 회상했다.
당시 친하게 지내고 있는 스태프가 말을 걸었었다.
“(화 씨, 내일 한국 애들 온다는데 혹시 아는 친구들이에요?)”
일본에서 쉬면서 감 잃지 않을 정도로만 일을 하고 있기에 쉬운 것 하나 골라잡았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한국인들을 볼 생각에 약간 설레긴 했다.
“(아뇨, 제가 아이돌은 잘 몰라서.)”
예전에는 아이돌 덕질에 미쳤던 동료가 한 명 있어서 어느 정도 알았지만.
“(블로센스? 이렇게 읽는 거 맞나?)”
화양은 아무 생각 없이 태블릿에 블로센스라는 네 글자를 검색했다. 가장 위에 올라온 영상인 ‘루미너스’를 틀고 잠시 귀 기울이고 있을 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뭘까, 이건.”
옛 동료가 자주 쓰던 음계, 화성, 분위기.
화양이 대학교에서 처음 만난 사람. 클래식에 전념하는 줄 알았는데 뮤지컬판에는 왜 왔냐는 물음에 분유 살 돈 벌러 왔다고 시크하게 한마디 했던 여인. 경제적으로 성공이 보장된 자리를 제안했는데도 마다한 채 자신의 곡만 썼던 작곡가. 얼굴에서 따스함이라고는 찾아본 적 없었는데 아들 사진을 볼 때는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이 미국에 있을 때 부고를 받아 장례식장에도 찾아가지 못한 친구.
어째서 이 곡에선 아직 선명한 그녀의 무표정이 떠오르는 걸까.
“흠, 설마 도용은 아니겠지?”
화영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친구와 그 남편은 돈에 미친 인간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에 풀칠할 정도만 벌고 음악과 철학에 몰두했던, 자본주의적으로 멍청했던 내외다. 그러다 보니 발표하지 않은 곡도 더럽게 많았고.
갑자기 입에서 튀어 나온 한국어에 앞에 있던 스태프가 고개를 갸웃하는 게 보였지만, 무시했다.
“(화 씨,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아니,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화영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팀 안에 작곡가를 둔 아이돌 팀이군. 세상에, 설마 얘가 작곡한 건가, 저걸? 사진을 눌러 얼굴을 확인했다. 약간 괘씸한 마음, 그리고 미칠 듯한 의문.
찬찬히 얼굴을 바라보니, 참 요즘 것들 잘생겼다 싶다. 자기 때는 남정네들 꾸며놔도 상판떼기 달고 다니는 의미가 무의미한 놈도 많았는데.
‘잘생겼네. 고양이 같고.’
화양은 그러다가, 문득 이 얼굴이 익숙함을 깨달았다. 자신의 친구인 박가을의 남편, 이름도 잘 모르고 몇 번 마주친 게 다지만.
회상을 끝마쳤다. 이제 물어봐야지. 저 인간이 도용한 게 아니라면, 가을이의 아들내미라는 거니까. 화양은 자신의 하얗게 센 머리를 다시 비녀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개량 한복의 옷고름을 동여맸다.
그래도 혹시 몰라, 아들내미면 첫인상 좋게 남아야지. 오십 대가 되면서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새겨졌지만, 그녀가 풍기는 우아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도리어 세월의 잔해가 그녀에게 녹아들어 고귀한 인상을 줬다.
그리고 시작된 무대 아래서, 그녀는 아이가 작곡한 곡이 자꾸만 가을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신기하지. 분명 분야가 다른데, 어째서일까. 세상을 보는 눈이 제 어미를 닮아서일까.
영원한 잿빛 속에서 너만을 믿을게
기적이 있다면 그걸 너라고 생각해
‘음, 한국인이라 그런지 한국어 가사가 더 마음에 드는구만.’
마지막 소절이 끝나고, 화양은 음향에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무대가 끝나고 백스테이지로 가는 멤버들을 보며, 관계자분에게 우선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십니까, 여기 음악감독 맡고 있는 화양입니다.”
선명한 한국어 발음에 흠칫한 관계자분은 이름을 듣고는 ‘아!’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럴 때는 음악판에 나름대로 경력이 있는 게 너무나 좋구먼.’
* * *
“안녕하세요, 화양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유명하신 분이잖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뮤지컬이나 기타 음악을 활용한 여러 공연, 그리고 방송국까지 가리지 않고 일을 해내는 분. 지금은 휴식기로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일하고 계실 줄은. 음악 공부할 때 많이 참고했다.
그런 분이 어쩐 이유에선지 예의바르게 인사하는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으시다는 게 이해는 가지 않지만.
‘…음, 하긴 내 얼굴이 첫인상은 좀 그럴 수도 있긴 하지.’
“그래요, 동화 씨죠?”
“네, 맞습니다.”
“어우, 이거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모르겠네.”
화양 씨는 약간 쑥스럽다는 듯 코를 긁적이더니 흰 머리를 한 번 뒤로 넘기며 물었다.
“혹시, 어머니 성함이 박가을?”
……고민의 결과치고는 꽤나 직설적이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