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6화(16/343)
16.
오늘은 첫 번째 탈락자가 발표되는 날. 만약 이현재가 떨어지면, 이현재 과외고 부모님과의 만남이고 다 상관없어지니 기왕이면 떨어지지 말아줬으면 한다.
들인 시간 대비 결과가 나와줘야지.
그래, 내가 탈락하기 전까지만, 딱 그때까지만 그게 누가 됐든 내 능력 안에서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주자.
…젠장, 내가 이런 역을 맡다니. 이게 4할쯤은 채하민 때문이다. 2할은 기지생 자식이고.
나는 내 옆에서 화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채하민을 약하게 쳤다. 녀석은 잠시 졸고 있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곤 화들짝 놀란다.
“도, 동화야, 갑자기 왜?”
“…벌레가 붙어있어서.”
“그래? 고마워. 동화야.”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현재가 채하민의 맹한 표정이 우스웠는지 큭큭거리다가 말한다.
“하민이 형, 벌레 없던데요?”
“…동화야, 거짓말이야?”
이런 걸로 배신당한 표정 짓지 말아줄래.
* * *
“자, 여러분, 2차 경연 이후! 처음으로 탈락자가 발표되는 날입니다. 오늘 탈락자는 총 두 명으로…….”
이동석은 시청하는 이들의 편의를 위해서인지 자세한 규칙을 소개해 주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저 망할 계단식 단상은 왜 아직 있는 거냐. 또 탈락자는 밑에 떨어져 있어야 하냐?
‘아니, 최종적으로 한 팀으로 데뷔하는 서바이벌을 이렇게 운영할 이유가 있나.’
만약에 데뷔하면 한 팀으로 데뷔해서 하나의 상품이 되는 건데, 이러면 그 상품 소비자끼리 싸우게 만드는 것밖에 더 되나.
그게 이득이 될 부분이 있나 모르겠다.
우리는 계단식 단상 앞에 일렬로 서서 가만히 앞을 바라보고 있다.
“…호명하는 순위에 따라 뒤에 보이는 단상에 서시면 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단상에 오르지 못한 두 명의 연습생은… 탈락! 하게 됩니다.”
말하는 톤이 잔인하군. 나는 잠시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가 금세 표정을 바꿨다.
“그럼 우선 1등부터 호명하겠습니다!”
그래도 이건 양심적으로 바뀌었군. 예전 방식이 과했다. 마지막 순위를 1등과 같이 세워두는 법이 어딨나. 방송국인지 엔터사인지는 모르겠는데 조금 과하…….
“계산 결과, 대중과 심사위원의 눈을 모두 만족시킨 1등은… 지동화 연습생입니다!”
…네? 잠깐.
심사위원이야 작곡 열심히 했으니 가산점 받았겠지만, 대중들은 대체 날 왜 좋아해 주시는지 그 심리가 궁금하군.
“지동화 연습생, 소감이 어떠신가요?”
나는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들었다.
“…우선 부족한 사람인데도 좋게 지켜봐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러게, 진짜. 누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 나는.
타인의 애정이라는 건 29년의 인생을 포함하더라도 다분히 낯선 말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보답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야, 말이 청산유수네요. 들리는 소문에 지동화 연습생은 한국대 입학 예정이라면서요?”
이걸 왜 갑자기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너드 이미지를 강조하기 좋은 찬스다. 나는 여전히 내가 너드임을 보여줘서 시청자분들의 오해를 해소해 주고픈 소망이 있다.
탈락을 바란다기보단, 글쎄, 진짜 나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에 가깝군.
“네, 맞습니다.”
“와아, 그러면 학교생활이랑 연습생 생활을 병행하신 거군요?”
그런 경험은 없다만, 일단은.
“…예, 그런 셈입니다.”
“와, 그럼 쉴 시간이 있으세요?”
음, 이건 내 기존 경험에 비추어서 대답해 줄 수 있겠군.
“공부는 쉰다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과목이 많아 괜찮습니다. 또 격하게 쉬고 싶으면 관련 분야 책을 읽었습니다.”
이동석은 내 대답을 듣곤 잠시 아득해지는지 멍때리다 입을 열었다.
“…혹시 저희 딸 과외 해주실 생각 없나요?”
저런. 안타깝군.
“이미 이현재 연습생 무료 과외 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촬영장 곳곳에서 의아한 반응과 웃음이 간간이 들려왔다. 웃길 만한 부분이 없는데, 이상하네.
이후 분위기가 정리되고 차례차례 순위가 불리기 시작한다. 채하민은 2등, 류이든이 4등으로 호명됐다.
‘이현재 이놈은 언제 불리려나.’
설마 탈락하진 않겠지. 그래도 기회를 얻은 직후 탈락하는 건 조금 무자비하지.
이현재는 2번 낙제생(김현진)이 7등으로 불릴 때까지 호명되지 않았다. 망할 놈, 세 시간 동안의 완전한 집중 상태에 소비된 내 정신력은 어쩔 셈인가.
“자, 이제 세 분이 남았습니다. 이 중에서 한 분은 8등으로 이후 서바이벌에 참여할 수 있고, 나머지 두 분은 서바이벌에서 하차하셔야 합니다.”
그딴 걸 모르는 놈 없으니 했던 말 또 하지 말고 얼른 발표해 주길. 저거 봐라, 이현재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 깨물고 있잖은가.
“자, 마지막으로 다음 서바이벌에 진출할 단 한 명은… 이현재 연습생입니다!”
이현재는 순간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기회라는 부담감과, 부모님이 전해 오는 압박 탓에 첫 무대를 망친 게 문제지, 실력 자체가 8등 할 애는 아니니.
이현재는 감정을 추스르곤 소감을 말하기 시작한다.
“우선, 어,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 전하고 싶고… 저 계속 노래할 수 있도록 해준 동화 형한테도 진짜 고마워요.”
음? 말이 약간, 과장이 섞여있는….
“동화 형 아니었으면 두 번째 무대도 좋지 못한 모습 보여드렸을 거예요.”
…그러니까 과하다고. 논리적 비약이 있잖아.
“다음에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탈락한 아이들의 소감 발표가 진행됐다. 나였으면 탈락했으니 그냥 대충 말했을 것 같은데, 울면서도 꾸역꾸역 단어들을 뱉어냈다.
‘…안타깝긴 하군.’
저 친구들도 절실한 꿈이자 기회였을 텐데.
* * *
“다음 3차 경연은 포지션 경연입니다.”
…그게 뭔데.
“여러분들은 각 포지션별로 모여서 경연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니, 프로듀싱 포지션은 나밖에 없다며. 그럼 나는 혼자 준비하냐?
“포지션은 댄스, 보컬, 랩, 이렇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각 포지션은 댄스 팀 3명, 보컬 팀 3명, 랩 1명입니다. 유일하게 프로듀싱 포지션을 지원한 지동화 연습생은 랩 포지션 팀에 소속돼 편곡 또는 작곡을 해주시고, 보컬 역할 역시 수행해야 합니다.”
노동 강도가 상당하군. 그나저나 랩 포지션이라면 석준이겠군.
내가 석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약간 작게 고개를 숙인다.
저걸 무슨 상이라고 하더라. 공룡 같군. 얼굴만 보면 매사에 진지하게, 무덤덤할 것 같은 사람이다.
* * *
“하민.”
나는 씻고 나오며 뱀 인형을 끌어안고 내 침대에 누워있는, 잠시만.
“…왜 거기 누워있어?”
“그게… 2층까지 가기 너무 힘들어서.”
“…왜?”
“그, 오늘 탈락할까 봐 엄청 긴장했더니 다리가 후들거려서… 지금 올라갈게!”
약간만 생각해 봐도 정황상으로 자기가 탈락할 리가 없다는 걸 알 텐데. 사서 고생하는 건 언제쯤 고쳐질는지.
“…됐어.”
나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고 올랐다.
“나도 엄청 떨려서 지금까지도 다리가 후들거리더라.”
류이든 씨, 당신 다리는 후들거리기엔 지나치게 튼실한데 말입니다.
이후 채하민이 10분 정도 자리를 바꿔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조용히 하라고 일갈하자 입을 다물었다.
“근데 동화야, 너 이불 되게 짧은 거 쓴다.”
안타깝게도 나한텐 딱 맞는 거란다, 키 큰 녀석아.
“그러고 보니 동화는 키가 몇이야? 사실 내가 나보다 키 작은 사람은 몇일지 예측을 잘 못해서.”
“…먼저 형은?.”
“나? 185 정도였을걸.”
그럼 당신은 남의 키를 예측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겠군. 최소한 인구의 90%는 당신보다 키가 작을 테니.
“…178.”
“와, 동화야, 예상보다 엄청 작네!”
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 키가 커 보인단 뜻인가, 아니면 키가 작다고 욕하는 건가. 류이든은 감탄하고 있는 채하민을 보며 물었다.
“하민아, 너는?”
“음, 183이었나?”
“근데 생각해 보면 연습생 중에 동화가 제일 키 작지 않나?”
세상에, 178이 어디 가서 작다는 소리 들을 키가 아닐 텐데. 이 판에선 흔한 일인가 보군.
“어쩐지, 동화 어깨에 손 올릴 때 엄청 편하더라!”
닥쳐, 토끼 자식. 내가 네 팔걸이라도 된다는 듯이 지껄이지 말겠니?
“동화야, 그게 다 잠을 제대로 안 자서 그래.”
쉿, 건강한 인간. 비정상 틈에 유일한 정상인인 내가 힘들 수밖에 없군.
* * *
석준과 나는 작업실에서 첫인사를 나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기소개는 예전에 했지만, 그건 그냥 지나가는 인사였으니.
“준이라고 부르면 됩니까?”
“예― 편하실 대로― 불러주세요, 형님―”
음, 나른한 말투군. 굉장히 느릿한 말투야.
“…그러겠습니다.”
“말도― 낮춰주시죠―”
“…그래.”
세상에나, 너무 느리군. 어떻게 이런 애가 리드미컬한 랩을 한단 말인가. 나의 편협한 사고가 낳은 편견인가?
“…어떤 분위기의 곡을 하고 싶어?”
“저는―동화적인 분위기―의 곡을―하고 싶습니다.”
동화적인 분위기라면… 나 같은 분위기? 아니면…….
“Fairy Tale?”
“예―”
“…대체 왜?”
“그, 약간은― 부끄럽지만은―”
서두가 지나치게 느리다.
“사실― 좋아합니다, 동화를―”
…이상한데. 얘도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게 만나는 사람마다 나만 유일하게 정상인인 건지.
“…준아.”
“예―”
“…어떤 동화를 좋아하는데.”
“그게― 음― 사실, 위즈니 동화들― 다 좋아합니다.”
와아, 세상에, 이렇게 내가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줄은. 다 큰 성인 남성이 위즈니를.
“…그중에서도?”
“인어공주요―”
“그래서, 그런 인어공주 컨셉의 무대를, 해보고 싶다는… 뜻이야?”
“네―”
나는 잠시 멈칫하곤 손바닥에 고개를 파묻었다.
내가 아무리 할 수 있는 한으로 이들의 데뷔를 도와주겠다고 다짐은 했다지만, 이걸 들어주는 게 과연 얘 데뷔에 도움이 될까.
하, 그래, 될 대로 되라지.
최선을 다하고 망하기에 이만한 기회도 없긴 하지만,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잖은가.
탈락해도 행복하게 탈락할 수만 있다면야.
“…너도 어느 정도 작곡은 가능하다고 했지?”
“네―”
“오늘 내로 네가 생각하는 인어공주 곡 샘플링 떠 와. 나는 네가 하고 싶은 분위기 따라서 할 테니까, 같이 작업하자.”
“…진심이십니까?”
왜 갑자기 말이 빨라지고 그래, 두렵게.
“…그럼 거짓일까.”
그러자 석준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끌어안곤 소리쳤다.
“우와아아아아!”
얘 좀 무서운데. 이것 좀 놔줄래?
“꼭 하고 싶었는데, 세상에, 너무 기쁩니다! 동화 형님은 천사시군요! 너무 멋있습니다! 제가 위즈니 좋아하는 것 때문에 어떤 형님이 저 싫어한 적도 있는데! 저는 형님을 사랑합니다!”
…확실히 얘도 정상은 아니야.
* * *
# 랩 포지션 팀 VCR 가편집본
[Q. 석준 연습생은 어떤가요?]지동화는 잠시 생각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답한다.
‘미친 것 같습니다.’
[Q. 어째서?]‘…가끔 어떤 광기는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서, 아쉽게도 제가 말로 설명드리긴 힘듭니다.’
[Q. 무슨 뜻인지?]‘…상상을 초월한 미친놈이라는 뜻입니다.’
이후 화면은 전환되더니 석준이 나온다. 눈가가 빨간 게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 눈 밑 눈물점 탓에 더 그렇다.
[Q. 지동화 연습생은 어떤가요?]‘…제 꿈을― 실현케 해준 은인―입니다.’
[Q. 어째서?]‘어디서부터―설명드려야 할지… 제가 예전부터 인어공주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정확하게 짚어선 곡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가사 쓰는 것도 많이― 도와주셨고. 덕분에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채워졌습니다―’
[Q. 어떤 컨셉의 무대인지?]‘아! 그건 제가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저와 동화 형님이 (삐이―)라는 컨셉입니다.’
다시 화면이 전환되더니 지동화가 등장한다.
[Q. 컨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그러자 지동화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연다.
‘방송에서 적절한 표현인진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이 무언가에 심취하면 얼마나 기괴해질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는 컨셉입니다.’
[Q. 무슨 뜻인지?]‘돌려 말하려 노력했지만 물어보셨으니, 석준 연습생의 짙은 광기가 담겨 있는 컨셉입니다.’
[Q. 좋은 의미인가요?]‘…묵비권이 제게 존재하나요? 있다면 행사하겠습니다.’
* * *
음, 예상보다 곡 자체는 좋게 뽑힌 것 같군. 전반적으로 시원한 바다에 있는 느낌이 강한 곡이다. 후렴 부분은 바람을 맞는 느낌이 들 정도고.
생각보다… 인어공주를 패러디하겠다는 생각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군.
가이드라인이 녹음된 1차 편곡본을 듣던 석준이 곡을 잠시 멈춘다.
“형님, 이 부분은 조금 더 몽환적으로 바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드디어 파악했다. 얘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해선 빠르게 말하는 거군.
“…물거품 소리라도 넣어볼까?”
“…형은 제 이상형이십니다.”
닥쳐, 공룡 자식아. 멸종했어야 할 놈이 왜 걸어 다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