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6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60화(160/343)
160.
어머니를 떠올릴 때 가장 날카롭게 회상되는 기억은, 담배.
나와 목화의 눈을 피해서 태운다고 노력하셨고, 몇 번이고 금연을 다짐하셨지만. 그분은 당신의 이름대로 가을 같은 사람이라서, 문득 찾아오는 쓸쓸함을 달래려 담배를 물고는 하셨다. 아버지는 항상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해 ‘망할 담배 좀 줄여!’라고 말했고, 그러면 어머니는 ‘너부터 애들 듣는 앞에서 망할 소리 좀 줄여!’라고 답했다.
기억력이 좋다는 건, 어쩔 때는 독이 됐다가도 또 어쩔 때는 축복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낙엽을 사랑했던 사람. 온갖 죽어가는 것들의 소리를 담아내려 했던 사람. 그게 어머니가 남긴 악보에서 알 수 있었던 어머니였다.
그런 걸 보면 낙천이 기본이었던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성격인데, 어떻게 연인이 되고 어떻게 결혼까지 이어졌는지, 아버지의 모든 일기를 읽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긴, 사랑이라는 게 어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구석이 있던가. 한 공원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가득했지만, 그래서 그런 대로 아름답기도 했다.
나는 짧은 생각을 끝마쳤다. 눈앞의 분을 너무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물어보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화양 씨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내게 악수를 청했다.
“가을이 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나, 어머니한테 친구라니. 나랑 성격이 똑같은 분이 친구를 뒀을까, 과연.
“하하, 내가 나이를 헛으로 먹지는 않았나 봐.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류이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제로 나는 무표정이었으니까.
“가을이가 친구 안 만들기로 유명하긴 한데, 나는 그 성격 맞춰 주면서 친구한 인간이야.”
화양 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비녀를 만지작댔다. 표정이랑 정황으로 추측하면,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라도 될까. 아니면 그냥 버릇이거나.
“그래, 아들이었구만. 어쩐지 작곡에서 네 어머니가 보인다 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다음 일정이 없거들랑,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나?”
나는 매니저님쪽으로 눈을 돌렸다.
“30분 여유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에 화양 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따라오라는 눈짓을 한 뒤, 작게 중얼거렸다.
“친구 아들내미한테는 뭘 해줘야 하나…….”
* * *
달칵, 커피잔이 놓이는 소리. 한적하고, 고요한 카페다. 화양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장소 선정에서부터 보여주는, 어쩌면 계산된 선택.
“말을 조금 편히 해도 될는지?”
“네, 당연합니다.”
장소는 사람을 보여준다. 방이 더러운 사람일수록 비만일 확률이 높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많은 경험적 근거가 있으니까.
…잠깐, 그렇게 따지면 내 작업실은 적은 종이와 책 말고는 다른 멤버들이 꾸민 것들밖에 없는데. 그럼 나는 대체 어떤 인간으로 보이는 거지.
“그래, 운명도 기구해. 음악이 유전되는 건지 뭔지.”
화양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우아한 자세로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미발표 곡을 편곡해서 곡으로 만들었더구나.”
대단하다. 곧바로 눈치 채시다니. 어머니의 친구라는 말은 사실이었나 보다.
“작곡가란에, 어머님의 성함을 새겨 두었습니다.”
“장해. 내 자식도 그랬으면 좋겠어.”
제가 알기로는 화양 씨께서는 자식이 없으시잖습니까.
“어쨌든, 아버지는 정정하시고?”
음. 어떻게 말해야 최대한 미안한 마음을 줄일 수 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함께 돌아가셨습니다.”
뱉고 보니 나도 고민의 결과치고는 너무 사실만을 담은 대답을 해버렸다. 그에 화양은 우아하게 들고 있던 커피잔을 툭 떨어뜨렸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잠깐, 기다려 봐라. 너, 그때 어린애였잖아.”
“네.”
법에 규정된 ’어린이‘에 속하는 나이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화양은 내 대답에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비녀를 만지작거렸다.
“……이 쓰레기 같은 것들이, 부고 소식 알릴 때 그것도 같이 말해줬어야지.”
짙은 분노와 후회가 점철된 그녀의 목소리에 흠칫했다. 그리고 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화양 씨의 목소리에 담긴 진의는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음, 꽤 잘 지냈습니다.”
이제 와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돈이 없어 빈궁하게 살았지만, 목화와 화해하고 나니, 안 좋았던 기억은 수면 아래로 폐기되고 아이의 해맑은 미소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으니까. 그래서 위로 겸 짧게 덧붙인 것이다. 하지만 화양 씨는 툭 뱉은 내 말에 손을 더욱 강하게 떨었다.
“걔 성격에 재산은 집 정도였을 텐데.”
이전보다 더욱 짙어진 회한.
“……원래 간섭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관심도 껐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진심으로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분노와 회한을 모두 가라앉힌 화양 씨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러고는 이전보다 더 단호해진 목소리로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안 되겠군. 이자까지 쳐서 돌려줘야겠네.”
네?
“그래, 동화 너는, 작곡에 재능이 있었지.”
나는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돈 버는 곡을 쓰는 데는 나름대로 요령도 붙었지만, 어머니의 곡과 비교하면 그 수준이 너무 미천한데.
“이거, 귀국 시점을 조금 앞당겨야겠어.”
머리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세상에, 업계 경력이 30년이나 된 분이 나를 방송에 꽂아주겠다고 선언한 셈이잖아.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네 어머니랑은 사람이 조금 다르단다. 네 어머니는 남에게 관심이 지나치게 없어서, 남의 약점을 활용하는 정치에 무척이나 약했거든.”
말인즉, 자신은 남의 약점을 틀어쥐고 쥐어짜는 데 특화된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러니 기대해둬라. 실력을 증명할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
기회가 오면 붙잡아라,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 제3조다.
“음, 저보다 저희 그룹에게 도움을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그러니까 꽉 붙들어 보자. 애초에 인생은 불합리하다고 하니까 이렇게 부정한 인맥을 활용해서라도 이름값을 드높여 보자.
“그야 뭐, 가능은 하지.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즉, ’내버려 둬도 알아서 이름값이 오를 게 분명한데, 그럴 바에야 네 이름값부터 높이지 그러냐‘라는 의미였다.
“원래 젊을 때는 먹어도 배가 고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에 화양이 피식 웃었다.
“아니면, 다른 멤버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셔도 좋습니다.”
사실 이게 더 좋은 일이다. 나야 골방에 틀어박혀서 작곡 기계로 살아도 큰 불만은 없지만, 다른 아이들은 더 높은 곳을 바라봐도 될 테니까.
“이렇게 욕심이 없어서야. 아주 어머니를 쏙 빼닮았어. 자기 사람이라 생각되면 한도 끝도 없이 퍼 주는 것까지.”
한도 끝도 없지는 않습니다. 속으로 반박을 중얼거려 봤다.
화양 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비녀를 한 번 더 만지더니 결론을 내렸다.
“좋아. 나도 많이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되는 데까진 해보도록 하마.”
그보다, 최대한 표정에 뭐가 드러나지 않게 주의하고 있는데, 어찌 알아보시는 걸까. 참 신비로운 분이다.
화양 씨와의 유익한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니 류이든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인맥 형성의 기초 단계 수료를 축하해.”
드디어 류이든 아카데미에서 발을 뺄 수 있겠군. 흥겹다.
“이제 새 커리큘럼인 인맥 형성의 심화 단계로 들어가자.”
저런, 졸업인 줄 알았는데 대학원 납치였어.
“그래서 무슨 일이셨대?”
“건설적인 미래에 대해서.”
“음, 우리 누나 말로는 그분 별명이…….”
류이든은 뒷목을 긁적였다.
“거미였는데, 진짜 별 일 없었지?”
……음, 손에서 실을 뿜지는 않으시니 괜찮지 않을까.
“어머니 지인이셨어.”
내 간단한 답변에 류이든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류이든에겐 내 가족 이야기가 무조건 통하는 마법 같은 거였다.
* * *
[블로센스 일본 활동 총 정리본](일본 활동 타임 테이블 정리 – 무대 촬영, 짧은 예능, 인터뷰, 하이파이브회 등등 시간대 별로 분석해 놓은 자료)
홈마들이 프리뷰 올린 것들 위주로 정리하면 이런 스케쥴표임. 니체 공식 자료랑 비교 검토 완료했음.
짧은 감상 : 고작 3일 만에 이 정도 스케쥴. 애들 건강 염려. 와중에 W앱이랑 공카 들어와 주는 거 감사.
댓글
― 뭐… 그래도 일반적으로 해외 나가면 단기간에 뽕뽑으려는 거 모르고 덕질하는 건 아니긴 해…. 이해는 하는데… 조금만 쉬게 해줘…
― 이게 일본 반응이 좋다는 소식이 들리니까 블뽕이 차려다가도 약간 기분이가 그러네? 니체 머리끄댕이 함 잡아?
└우리 한 번 지랄해?
└원래 소속사는 주기적으로 머리채 좀 잡긴 해야 해
― 이게 ㅈㄹ한다고 바뀔 포인트는 아니긴 한데… 하 몰라 ㅅㅂ
└근데 저거 더럽게 많다까지는 또 아닌 거 같기도 하고 ㅇㅇ
└원래 해외 나가면 일단 머리채부터 잡는 게 룰이야
익명성이 보장된 커뮤니티에서 아이돌 팬들은 조금 거칠어지는 면이 있다. 그나마 블로스센스는 비록 처음은 서바이벌로 시작했지만, 이후 멤버들 사이가 돈독해지며 나름대로 전체 팬질하기 좋은 그룹이 되었다. 덕분에 개인 팬들 사이의 분쟁은 크지 않았지만, 그러면 공적은 소속사가 되기 마련이다.
장해진은 그런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물론 그녀도 지금 이 스케쥴이 지옥의 행군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팬분들이 소속사를 욕하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래도…, 저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윗선에서 조금 더 스케쥴을 잡으라는 걸 매니지먼트 팀이랑 기획팀이 한마음 한뜻으로 막아낸 결과가 이 스케쥴이었으니.
‘그리고 아이들이 쉴 수 있는 창구 역시 하나 정도는… 마련해뒀습니다. 죄송합니다…….’
* * *
나는 왠지 모르게 호텔에 비치되어 있던 흔들의자에 앉아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움직였다.
‘…은근히 바쁘군.’
해외 프로모 전에 장해진이 경고했던 만큼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안으로, 밖으로 실을 움직이며,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 뜨개질을 하고 있으니 조금 안정되었다. 이런 단순한 반복 노동이 갖고 있는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사이사이 텀이 날 때마다 천천히 한 코 씩 뜨고 있는데, 꽤나 생각을 진정시키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류이든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씻고 나온 채하민이 그런 나를 보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와아, 할머니 같아. 옆에 벽난로라도 하나 놔 주고 싶어.”
조용. 마음의 수양 중이란다. 많은 옛사람이 바닥을 닦거나 십자수 같은 일을 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내일 쉬는데, 뭐 할 거야?”
소속사에서 제공한 작은 휴식 시간. 물론 아침에 짧은 일정이 하나 있긴 하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음, 어차피 네 손에 붙들려서 갈 거 같은데.”
“당연하지! 아버지가 이 호텔 스위트룸도 소개해 줬잖아!”
소개해 준 게 아니라 돈을 때려 박아 주신 것 아닐까. 아버님의 인맥으로 소속사가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잡은 룸이니까. 그야말로 자본주의와 인맥주의의 참맛이다.
“…그래.”
물론 내가 원한 적은 없는데, 하민아.
“아버지가 너 좋은 데 많이 데려가라고 하셨어.”
그것도 바란 적은 없는데.
“그래서, 어디 갈 건데?”
사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다. 이곳은 일본이고, 우리 팀내에는 지독한 덕후가 한 명 있으니까.
“위즈니 랜드!”
그래, 당연한 이야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