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6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62화(162/343)
162.
석준과 박우진의 멍청한 재회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카메라 쪽으로 눈을 돌렸다.
‘걸어서 연예인 곁으로.’
예전에 들어는 본 프로그램. 연예인 중 한 명의 곁에서 짧게 일상을 촬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이현재의 통계에 따르면 그냥저냥 할 짓 없을 때 가끔 보는 프로그램. 특색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꾸준히 팔리는 레디메이드 같은 방송이다.
‘어차피 우리를 내보내려면 최소한 회사에 허락은 맡아야겠지.’
그러면 안 내보내면 그만이다.
“와, 이런 우연이 다 있네. 나 일본에 잠시 촬영 왔거든.”
친한 척 그만. 나는 인간과 대화하고 싶지 않단 말이다. 당장이라도 동물원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러게. 서바이벌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거 같아. 더 잘생겨졌네.”
나는 석준의 옆에서 미소 지어줬다. 부디,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지성으로 ‘이만 서로 갈 길 가자’라는 신호를 받아들여 주겠니. 카메라만 없었어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을 텐데, 아쉬워라.
“…그런가? 하하하.”
“촬영 힘내.”
다시 한 번 더 올곧이 미소를 지어 주고, 등 뒤로 석준에게 사인을 보냈다. 블로센스 내부 사인으로, 이만 돌아갈 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형―님.”
“그래! 나중에 또 보자!”
박우진은 성실하게 얼굴에 미소를 달고 있었지만, 은근하게 부서진 흔적이 엿보였다.
흠, 정말, 의도를 모르겠다.
예의 바르게 깍듯이 구십 도로 허리를 숙여 박우진에게 인사하고 돌아왔다. 이렇게 굳이 친하지 않다는 티를 내는 것도 힘겨운 일이다.
“아, 걔 우리랑 친하다고 어디서 언급했던데.”
이야기를 전해들은 류이든은 답지 않게 냉소를 입에 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친해? 대체 누가.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류이든으로 돌렸다. 보통 누구랑 친하다는 말의 8할은 류이든한테서 나오는 법이다.
“아니야. 그렇게 보면 이든이 서운해.”
류이든은 곧바로 냉소를 집어넣더니 평소대로 가증스럽게 울먹이는 척했다.
“…형, 진짜 그러다가 언젠가 내 손에.”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한 나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왜 우리랑 친하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건데.”
“나도 안 친해서 잘은 모르는데. 확실한 건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언급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는 거?”
류이든은 다시 한 번 냉소를 입에 걸쳤다. 생각해 보면, 이 강아지, 피아 구분이 명확한 종이다. 아마 박우진이 우리 물려고 들면 자기 인맥 어떻게든 총동원해서 엿 먹이지 않을까.
…듬직하군.
“우리가 그럴 가치가 있나.”
나는 칵테일을 이현재 손에 쥐여 주고 벤치에 다시 앉았다. 이현재는 한 모금 빨아 마시더니 눈이 동그래져서는 말없이 계속해서 입에 끌어넣었다. 귀여운 놈.
“너는 진짜 자기 평가가 너무 박해서 문제야. 지금 신인 갓 벗어나긴 했어도, 데뷔 기간 비슷한 팀들 중에 자리매김한 건 우리밖에 없지?”
그래, 뭐. 그건 잘 모르는 영역이라 생략.
“걔도 아이돌로 데뷔한 걸 거 아냐.”
그러면 데뷔 초에 다른 그룹이랑 친한 거 티낼 이유가 있나. 득도 실도 없을 텐데. 아니지, 실은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득이 되긴 힘들 텐데.
“아냐, 걔 배우로 데뷔했어.”
그럼 대체 왜.
“신인 배우가 다 그렇지, 뭐. 어떻게 캐스팅 자리 얻어 보려면 인맥이 있거나, 얼굴이 익숙하거나, 아니면 실력이 쩔어줘야지.”
즉, 어떻게든 사람들 눈에 자기 얼굴을 박아 넣을 기회가 한 번 더 필요하다는 거군.
“흠, 왜 실력으로 승부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나는 한숨을 살포시 내쉬었다. 안 그래도 석준의 가능성에서 본 모습 탓에 선입견이 잔뜩 박혀 있는데, 도저히 얽히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류이든과 이현재가 모두 동작을 멈춘 채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뭘 봐.”
“이게 그, 뭐지? 마리 앙투아네트? 그거 아냐?”
무슨.
“후후, 멍청한 백성들, 데뷔에 실패했으면 능력으로 성공하면 되잖아, 뭐 그런 거지?”
“전하, 백성들은 당신과 같은 재능이 없습니다.”
류이든과 이현재의 기괴한 대화를 듣고 깨달았다.
…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 프랑스혁명기 혁명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의 일환일 텐데, 얼마나 효과가 좋으면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동은, 정말 대단하군. 그런 선동을 자유자재로 다뤘던 역사 속 사람들, 당신들은 대체.
“헛소리 하지 말고, 어떻게 해.”
“뭐… 나서서 안 친하다고 말하는 것도 그림이 조금 그렇잖아?”
“나중에 가서 사고 치면 연 끊을 구실 하나만 있으면 좋겠네.”
“하하, 걱정 마. 우리 쪽에서 한 번도 대응 언급 없으면 그만이고, 이미 하나 깔아 놨어.”
역시, 우리 강아지. 얼마나 충직한지 모르겠다.
“뭐 했는데요, 형?”
이현재도 궁금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걔가 선 좀 한 번 넘었더라고! 그래서 장난질 좀 쳐 놨지.”
개구쟁이같이 웃고 있는 류이든을 보고 있자니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보다 속이 좋지 않았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석준과 채하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 * *
박우진과의 예기치 못한 짧은 만남이 있고 난 다음 날, 나는 윤성호에게 짤막한 문자를 우선 하나 보냈다.
‘박우진 씨랑 조금 친해?’라는 물음. 그에 대한 답변은 단순했다.
―우리 팀 데뷔 초에 약간 꺾이고 나서 아는 척도 안 해 주더라. ㅎㅎ
그렇군. 인기에 미친 인간이라 이거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인간 군상을 그대로 담아낸 것 아닐까. 인맥과 인기에 미친 배우라니, 세상 어딜 가든 볼 수 있을 만한 인간이다. 나중에 헛짓거리 하는지 안 하는지 예언에게 조언을 구해야겠군.
“긴-장됩니-다.”
석준이 크흠,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었다. 오늘은 일본의 마무리 활동. 예능이라면 예능인, 토크쇼 같은 걸 한 편 촬영할 예정이다.
“토크쇼 컨셉 특이하다. 완전 한국어로 진행하고 자막이랑 성우분만 일본어로 한다니.”
“한국 아이돌이 나오는 걸 염두에 두고 짠 프로그램이라니까…….”
그러니까, 아이돌 팬덤의 시청 수로 어떻게 연명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보면, 편집도 최대한 저인력으로 하는 걸 보면, 저투자 저효율을 원하는 그런 프로그램인 듯싶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본인 분. 성함이 무사시. 강해 보이는 이름이다.
“어우, 안녕하세요! 블로센스 여러분!”
세상에, 한국어 발음이 왜 이리 유창하셔. 못 알아 듣는 경우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오늘 MC 맡은 무사시라고 합니다. 만나서 영광이에요.”
“와, 한국어 발음이 엄청 유창하세요.”
류이든이 대표로 악수하며 웃었다.
“아, 제가 한국에 유학을 갔었거든요. 사실 일본에서 산 기간보다 한국에서 산 기간이 조금 더 길어서.”
무사시 씨는 사람 좋게 웃으며 큼큼 하더니 오늘 자 대본을 꺼냈다.
“자, 오늘 할 건 별 게 없어요! 인터뷰 형식 토크 하나랑 작은 게임 쇼 같은 거 하나를 할 겁니다. 인터뷰 때, 약간 일본 팬분들이 좋아하는 코드가 들어가서 당혹스러울 수 있어요. 그래서 미리 어떤 질문 드릴지 조금 알려 드리려고요.”
꽤, 배려가, 좋아.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령, 이런 게 있어요! 가장 귀엽다고 생각되는 멤버나, 내 동생이 있다면 사귀게 주선해 주고 싶은 멤버나, 이런 류의 질문들도 있고요.”
음, 무난해.
“애교 타임이라든지.”
어우, 망할.
“그런 조금은 부끄러우실 시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파이팅!”
그렇게 소리치는 무사시 씨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국행 티켓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 * *
경고는, 경고였을 뿐이었다. 실상은 더 끔찍했으니까. 원래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몇 가지 전조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나 보다.
수많은 애교 타임, 댄스 타임,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질문까지. 모든 것을 거치고 나니 뒷목에 땀이 한 줄기 흘렀다.
“자, 동화 씨! 동화 씨가 이제 대사를 읽어주실 시간입니다!”
나는 스태프분이 들고 있는 판넬을 빠르게 확인했다. 나와 같이 확인한 류이든이 벌써부터 넘어갈 듯 웃음을 흘렸다.
“…음, 정말 다 읽어야.”
“당연하죠. 우리 프로잖아요?”
나는 심호흡을 깊이 한 번 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이 들끓었다.
“누나.”
이걸, 왜 읽어야 하며, 왜 시키는 것이며, 대체 왜……. 그 모든 의문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지만, 단호하게 한 단어부터 차근차근 뱉어냈다.
“나, 이제 성인인데 왜 남자로 안 봐 줘요?”
푸흡, 류이든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귀엽기만 했던 동화는, 없다구요.”
판넬에는 ‘(흥칫뿡)’이라는 웬 근본 없는 문구가 있길래 뭔가 잠시 뇌가 정지됐다가 ‘프로’라는 하나의 단어만을 떠올리며 고개를 옆으로 훽 하니 돌렸다.
“흥.”
크흡, 이번에는 이현재가 무너져 내렸다. 석준은 훈훈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고, 채하민은 미안한지 입술 아래쪽을 꾹 깨물고 버텨내고 있었다.
그냥, 웃어. 더 비참해질 것 같으니까.
“아, 동화 씨 귀가 엄청 붉어요. 역시 카와이-한 것에 면역이 없는 얼음왕자!”
젠장. 멈춰주십시오! 수치스러워 죽고 싶은 기분입니다. 아무리 일본이라지만, 정말로 면역력이 없어지는 것 같으니까. 대체, 무슨 워딩이.
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된 충격과 공포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휴식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하하, 일본 방송의 참맛을 보고 계시네요.”
무사시 씨가 잠시 쉬는 시간에 내게 다가와서 활짝 웃었다.
“제가 한호 씨한테 오늘 블로센스 나온다고 하니까, 잘 챙겨주라고 했어요.”
아니, 한호 씨랑 친분이 있는지는 넘어서서, 이게 잘 챙겨 주시는 거면.
“일본에선 이런 게 은근히 잘 먹히니까요. 더 수치스러워 해주세요. 원래 아이돌이라는 게 귀여워 보이면 끝이라고 합니다.”
그래, 잘 챙겨 주셔서 이러신다는 거군요. 수용했습니다.
원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니까, 엿 먹이는 놈은 미워하지 않는 놈이라는 말이 되겠지, 망할.
“누나.”
“나 이제 어른이에요.”
“푸흡”
잠깐, 왜 나만 놀리는 거지. 자기들도 똑같이 역겨운 거 읽었으면서.
“크학, 흥. 흥이래. 미쳐, 진짜.”
류이든은 무너져 내리면서 세트장 바닥에서 웃고 있었다. 채하민도 옆에서 대놓고 웃지는 못하지만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사실, 한국 아이돌 방송도 이런 거 시키긴 하잖아요?”
무사시 씨도 같이 웃으면서 위로랍시고 말을 건네셨다.
“…감사합니다.”
“일본이 조금 심하긴 하지만, 흐하!”
뭔데, 위로할 건지 엿먹일 건지 하나 택일해.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이 차올랐지만, 다시 놀라운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잠시 분위기가 정리됐다. 이제, 두 시간 정도만 더 촬영하면, 되겠지. 그러면 뜨개질을 할 수 있을 거다. 내면의 안정과 평화가 내 내면에 깃들기를.
“아, 맞다. 맞다. 블로센스 여러분. 우리 게임하잖아요?”
그때 무사시 씨가 문득 떠올랐는지 박수를 짝 치며 소리쳤다.
“꼴등은 벌칙이 하나 있는데.”
그러면서 무사시 씨는 나를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방금 겪으신 수치를 조금 많이 겪으셔야 할 거예요.”
그에 다른 멤버들도 나를 바라봤다. 이거, 따돌림이잖아, 망할. 무사시 씨, 이거 이지메잖아요. 왜 주도하십니까.
“따악 한 사람인데, 누가 될까요?”
마치 너라고 정해진 듯한 눈초리가 아주 약간은 불길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