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6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63화(163/343)
163.
일본 방송이 뭐가 그렇게 다를까, 나는 잠시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그런 의문은 작업실에 놀러온 준성한테 물어보면서 해소하는 게 당연하다.
“일본 방송에 출연할 예정인데, 뭔가 다릅니까?”
내 질문에 준성은 웃으면서 안쓰럽게 내 등을 쓸어내려 주곤 했다.
“네 성격에는 많이 힘들 수도 있겠다, 어떡하니, 우리 작곡가님. 일본 아이돌 방송이 약간 조금 그래. 곤란할 때가 있어서.”
하고 중얼거리면서. 예언도 같이 놀러왔었는데 눈을 감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푸흡―’ 웃음을 흘리곤 했다.
그때는, 뭐 이렇게 호들갑을 떠나 생각했지. 호들갑이 아니라 굉장히 억제된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재개된 방송에서 나는 홀로 외로이 투쟁하는 기분을 느꼈다. 모두들 한마음 한뜻으로 내가 지기를 바라는 순간, 무언가 고독했다.
“하민, 실망이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너는, 그럴 줄 몰랐어, 하민.
“허억, 미안. 그래도 너가 수치스러워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
네가 그런 소리를 하면, 나는 대체 이 세상에서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까.
무사시 씨 역시 그러한 상황이 너무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아, 게임 룰은 단순합니다. 인물 퀴즈예요! 인물이 아닌 경우도 있어요.”
무슨 소리야. 인물 퀴즌데 인물이 아니면, 국어 시험에서 영어 문제를 내겠다는 거잖아.
“어… 이거 동화 형한테 엄청 불리하구 그럴 것 같은데.”
이현재가 홀로 깨달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현재, 내가 기억력 하나는 나쁘지 않아. 역사적인 인물 이름을 까먹을 리가 없단다.
* * *
오산이었다. 망할.
스태프분이 들어 올린 사진 속 인물은, 난생 처음 뵙는 분. 스포츠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는, 계속해서 틀린 답을 내는 중이었다.
반면에 다른 멤버들은 보자마자 자기들끼리 아는 답을 먼저 말하겠다고 경쟁하고 있었고.
‘내가, TV를 정말 안 보고 살았나 봐. 젠장.’
“아아… 동화야, 저 분 엄청 유명한 배우 분이신데…….”
미국 배우 이름을 내가 어떻게 알아.
“저거 엄청 유명한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인데, 몰라?”
“와우, 동화 씨가 지기를 바란 건 맞는데, 이건 조금…….”
마치 암살자가 내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촬영장의 모두들이 나를 죽일 속셈인 것 아닐까.
“차라리, 차라리 과학자 사진을!”
나는 최후의 발악이라는 느낌으로 주장했다.
“아니면, 철학자분들도 좋습니다.”
“오, 동화 씨의 발악! 좋아요! 최후의 메아리 같은 느낌인 거죠?”
무사시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고난도로 준비된 인물들 한 번 해 주시죠, PD님!”
드디어, 드디어 반격을! 멤버들과의 게임에서 진 전적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은 냉정해졌다. 승부욕을 넘어서서 생존 욕구가 발동하고 있기도 했다.
휘릭.
종이가 올라갔다. 흑백 사진, 서양인. 그리고 파이프 담배와 중절모.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 온몸으로 소리치고 있는 사진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모두 눈을 가늘게 뜨고 누군지 파악하려 노력했다.
아, 드디어, 아는 얼굴. 원자 폭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알려진 과학자. 나는 눈을 감고 승리를 만끽하며 입을 열었다.
“정답.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무사시 씨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미친. 배우 하연수 씨는 모르면서 오펜하이머는 바로 풀네임을…….”
멤버들 역시 박수를 쳤다. 이게, 이게 승리라는 것이다. 이제, 이런 걸 몇 번만 더 맞히면.
“네, 오늘 게임의 마지막 문제를 동화 씨가 가져가면서! 꼴등을 기록합니다!”
……그럴 기회조차 없겠지, 망할.
“네, 오늘의 꼴등, 벌칙을 달게 받으시면 됩니다!”
좌절감. 배신감. 회한과 우울. 어느새 나 홀로 남은 세트장, 그 반대편엔 멤버들이 웃으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벌칙은, 애교 15종 세트입니다.”
뭡니까, 그건 또.
“저희가 준비한 애교 총 열다섯 종류를 카메라 앞에서 홀로 해주시면 됩니다. 이제 캡처할 시간도 있을 예정이니까, 다들 기대해 주세요.”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눈앞에 스태프분이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떤 판넬을 잘 보이게끔 들어올렸다.
‘(고양이를 흉내 내며) 야옹, 밥 주세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고개를 천장으로 들어올렸다.
띠링!
[아…, 저는 잠시 연결을 끊도록 하겠습니다! 두 눈 뜨고는 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눈을 감아도 보이는 기지생의 능욕 메시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이 살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은 자존감 아닐까.
‘오늘… 멤버들 머리통을 한 번씩 벽돌로 내리치면, 괜찮지 않을까.’
어디선가 울리는 핸드폰 영상 촬영음.
눈을 뜨니 류이든이 나를 촬영하고 있었다.
‘저 핸드폰도, 벽돌로 한 번 내리치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손을 주먹을 쥔 채 들어올렸다. 고양이 흉내의 가장 기본은 그루밍이라고, 결론을 내렸으니까.
‘모두들, 죽이면, 될 거야.’
그리고 나도 같이 죽어 버려야겠어, 젠장.
* * *
매출, 매출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중요한 개념이다. 해외에 나와서 프로모션을 돌리는 일의 핵심은 구매력 있는 소비자를 최대한 늘리기 위한 것. 죽은 앨범이라도 다시 한 번 되팔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어쨌든, 반응이 나쁘지 않대요.”
이현재가 공부하다가 쉬면서 태블릿을 봤나 보다. 일본을 떠나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도 반응을 확인하고 있나 보다.
“그래?”
류이든과 채하민도 어느새 관심이 생겼는지 옆에 살포시 앉아서 경청한다. 괜히 통계청이 아닌 이현재.
“네. 일본 스케줄 끝내고 나니까 앨범도 팔린다고 하고…….”
신기함, 세 글자가 머리를 가득 채웠다. 대체 우리가 뭐라고 타국인에게 애정을 쏟는 걸까. 진지하게 탐구할 만한 영역이다.
“약간, 느낌 이상하다.”
채하민이 내 어깨에 팔을 걸면서 중얼거렸다. 팔걸이로 쓰지 마.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얘가 또 바보 같은 소리를.
“…네가 노력해서.”
“어?”
“어떻게 오긴. 네가 노력해서 온 거지.”
이것들은 내가 작업에 미쳤다고 뭐라고 중얼거리지만, 지들도 똑같이 미친 것들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매일 안무 선생님께 가서 아이디어를 내는 채하민이나, 통계에 뇌가 절여져 버린 이현재나, 멤버들 사소한 것 하나하나 그리고 주변 소문 하나하나 일일이 신경 써서 확인하는 류이든이나, 위즈니에 미친 석준이나, 다 똑같다.
……잠깐, 준, 너는.
어쨌든, 서서히 올라가는 위치, 그 밑바닥에는 각자가 쌓아올린 노력이 있겠지.
내 단호한 한마디에 채하민의 눈망울이 서서히 흔들리는 게 보였다. 당연한 소리에 감동 받는 건 정말 수용하기가 어렵다. 늘 생각하지만, 지구가 자전한다는 소리에도 감동 받을 거냐고.
“동화야아.”
채하민이 내 어깨에 건 팔을 펼치더니 목덜미를 강하게 쥐었다. 세상에, 죽일 속셈인가. 강하게 조여지는 목구멍에 호흡이 가빠질 것만 같았다.
“그, 목, 풀어. 미친 토끼 놈아.”
생명의 위협 속에서 생각이 그대로 목구멍으로 튀어 나갔다. 옆에서 똑같이 감동받은 눈초리를 하고 있던 짐승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채하민을 말리기 시작했다.
“야, 하민아, 그러다 동화 죽어. 그러면 우리도 다 같이 죽어야 돼.”
“맞아요, 형. 저희 한날한시에 다 같이 죽는 걸로 동화 형이 저주 걸었잖아요.”
그런 적 없다. 내 머릿속 서고에서도 불태워 버린 기억이니까, 분명히 그런 적 없는 일이다.
“동화야! 우리 더 성공해야 해!”
그런 와중에도 채하민은 목 조르기를 멈추지 않고, 더욱더 힘을 줘서 나를 죽음의 문턱에 가깝게 인도하고 있었다.
‘…목화가, 보고 싶어.’
죽기 전에는 늘 가족 생각이 난다던데, 이렇게 확인할 줄은.
류이든이 마침내 채하민을 떼어 내고 나는 벤치에 털썩 주저 앉았다. 저 미친 토끼 놈. 이렇게 사람 하나를 골로 보내려고 하다니. 예전에 류이든 암살 계획에 동의할 때 알아봤지.
켁켁, 몇 번 기침을 토해내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도 채하민은 여전히 홀로 감동의 물결 속에 있는지 내 손을 꼭 붙잡고는 위아래로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내가! 진짜! 동화, 너한테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어! 나중에 우리 아빠 회사 가져 주라!”
나는 충격에 휩싸인 채 류이든에게 시선을 던졌다. ‘왜 이런지 아냐’라는 의문을 한껏 담아서.
“와아, 하민이가 반쯤 미쳤네…….”
류이든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안 미쳤어. 진짜로, 진짜 고마워서 그래.”
나는 다시 의문이 차올랐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고마워서 이러는 걸까.
“…나도 너처럼 노력한 것밖에 없는데.”
“그게 고마운 거지!”
“그러면 나도 너한테 고마운 거잖아.”
“그렇지!”
채하민은 뭐가 그렇게 기쁜지 제자리에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러면 회사를 줄 필요가 없잖아. 등가교환, 이미 한 셈이니까.”
멈칫. 채하민은 내 말에 뇌가 정지된 듯 천천히 말을 곱씹어 보는 것처럼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런, 가?”
“그렇지. 네가 고마운 만큼 내가 고마우니까.”
“…아닌데. 분명 내가 더 고마운 거 같은데.”
“날 믿어, 하민. 등가교환이야, 이미.”
자본주의의 기본 아니겠니.
* * *
비행기에 타서 나는 뜨개질을 시작했다. 이거… 은근히 재밌어. 류이든한테 패배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무수한 상념들. 하나하나 곰곰이 살펴봤다.
첫째, 예언의 일. 아직까지도 예언은 자신을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에 대해서 별다른 설명을 해 주지 않고 있다. 아까 전만 해도 사소하게 박우진이 어떤 인간인지 좀 아느냐고 문자로 보냈었는데, 자본주의 원칙에 따라 제대로 도와줘야겠지.
둘째, 어머님의 친구였던 화양 씨. 어떻게 도와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나도 도와주실 겸 목화도 도와주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채하민은 대체… 왜 저러는지 잘 모르겠다.
넷째, 다섯째,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차오르지만, 뜨개질을 계속 하고 있자니 거기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손을 움직여 어느새 두 뼘 정도로 짜진 핫핑크 목도리를 잠시 바라봤다.
그래, 이렇게 한 올 한 올 엮여서 나아가는 거겠지. 순간순간의 노력이 모이고 모여서 목도리라는 결과로 나오는 거겠지.
나는 옆에서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잠든 채하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내 옷자락을 꼭 쥐고 자고 있는 이현재를 보았다.
음, 기분이 묘하다. 멤버들이 내게 의존하듯, 나도 의존하고 있을 테니까. 그 망할 술버릇으로 나왔던 저주 섞인 약속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아, 수치.’
나는 의자에 머리를 한 번 콱 박았다. 이럴 때는 기억력이 조금만 안 좋았으면 좋겠어.
창문 너머로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이 보였다. 예전에 도망치듯 독일로 갔을 때와는 다른 기분. 앞으로 약 3주, 해외 프로모션이 다 끝났을 때는 또 어떤 기분일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음, 꽤 행복해.’
이 정도면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