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6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65화(165/343)
165.
무알코올 맥주에 취한 채하민은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웬 노래를 불렀다.
“내 유일한 친구! 우리 동화에게 바치는 세레나데!”
제발, 그만해. 듣고 있는 내가 슬퍼질 기세니까. 정말 취한 걸까? 인간이 무알코올로도 취할 수 있는 걸까? 토끼라 그런가? 망할, 구해줘. 이 지옥에서 날 꺼내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주를 병째 들이켰다. 차라리 내가 취하면 괜찮, 아, 나는 취할 수가 없잖아.
“동화야! 내가 진짜 사랑해! 우정 영원해! 나 친구 없는데! 너랑 같이 있으면 친구 있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그만해! 나는 그렇게 속으로 소리쳤다. 소리 없는 아우성.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는 깃대에 묶인 깃발이 된 나라서.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재빠르게 촬영 버튼을 눌렀다. 반드시, 내일 아침에 수치로 인한 죽음을 겪게 해 주겠어.
채하민의 노래는 어느새 울부짖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토끼 울음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볼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들을 줄은.
“다른 사람들 전부 내 배경만 봐도! 유일하게 내 얼굴을 봐주는 너!”
얼굴 보고 친구하는 거 아닌데, 미친놈아.
“이용하려고 하지 않아, 외롭게 두지 않아, 싫어도 티 내지 않아, 언제나 날 생각해 주니 그게 싫지 않아!”
라임 맞추지 마. 더 수치스러워.
채하민이 눈을 감고 그렇게 노래하다 눈을 부릅뜨고 내 앞에서 구십 도로 고개를 숙였다.
“우린 한날 한시에 같이 죽어, 일찍 죽는 건 허용치 않아.”
오, 세상에. 나는 힘겹게 침착함을 되찾았다. 내 이성을 마비시키는 놈들 중 최고는 류이든이고 그 다음이 채하민이었는데, 채하민을 1등으로 올려야겠어.
그때 문득 멜로디가 귀에 들어왔다. …뭐야, 신박해. 순간적으로 나는 코드를 땄다. 취객의 흥얼거림은 광기를 담고 있었지만, 그 광기 너머에 어떤 원석이 담겨 있음이, 어른어른 눈에 보였다.
채하민이 건들건들 몸을 흔들며 리듬을 탔다. 차오르는 광기.?
“너와 나! 한날에 죽어! 너와 나! 영원히 친구!”
후렴이 약간 정신 나간 것 같은데. 가사는 누가 쓴 거야. 현재한테 가서 다시 받아와.
나는 완벽히 침착함을 되찾고 미소를 입에 올릴 수 있었다. 그래, 다 찢어 버려. 방음 잘 되는 호텔방의 힘을 믿자.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다 보니, 박수를 소리내서 치기 힘들어 허벅지에 툭툭 박수를 쳐 줬다. 진정한 광기를 목도하는 순간. 석준을 광기라고 평가했던 과거를 폐기했다. 채하민이 오늘 여러 레코드를 갈아 치우는군.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맞먹는 영광이다.?
그리고 마침내 노래가 끝나고 채하민은 문득 표정이 어색해졌다.
“…어, 근데 왜 이렇게 제정신이지?”
채하민은 곧바로 맥주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재밌어라.
나는 미소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거, 무알코올이야, 하민.”
우뚝, 멈춰선 채하민.
서서히 손을 떨더니 맥주캔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리고 밑에 적혀 있는 알코올 함량 부분에 눈이 멈춰 선다. 읽어 내린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꾸역꾸역 눌러 참고 소주를 마셨다.
“…와, 망할.”
채하민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일본에서 내가 애교한 걸로 그렇게 놀려대더니, 내일 아침에 단체 메신저 방에 네 추태를 담은 영상을 그대로 올려줄게.
띠링, 촬영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울리자, 채하민은 평소의 내 귀보다 더 붉어진 얼굴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마도 채하민이 본 모든 미소 중에서 가장 활짝 웃을 미소를 지어줬다.
“도, 동화야. 벽돌로 나 머리 좀 내리쳐 줘.”
역시 나랑은 달리 너무 선한 토끼 놈. 내가 너였으면 눈앞에 있는 나를 내리칠 생각을 했을 텐데. 차마 친구는 때릴 수 없나 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도 그런데.
“사랑하는 친구를 어떻게 때려, 너 죽으면 한날한시에 나도 죽어야 돼.”
채하민은 내 말에 아까 전까지 불렀던 정체 모를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는지 파르르 떨리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뭔지 모를 한탄 소리를 냈다.
“그, 으허, 쪽팔, 르아.”
내가 마시고 있는 소주병을 빼앗아 가서는 병째로 들이켰다.
“하민, 그러다 죽어.”
놀라서 병을 빼앗아 왔는데, 그새 두 모금 정도 마신 채하민이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흘깃댔다.
“내가아아, 내가아아아, 이렇게 진지하게에에에 평생 친구해달라고 마알하아는데에, 어떻게에에, 그르냐아아!”
그렇게 소리치고 나서 채하민은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 * *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팀장님은 입을 손으로 가리고 최대한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계셨다.?
“웃으셔도 됩니다. 제가 나중에 W앱으로도 다 밝힐 예정입니다.”
“크흡, 프, 프브흡, 아니, 근데, 그래서, 이 곡이랑 그 얘기는 뭔 상관이야.”
“그때, 하민이가 부른 노래가 조금 영감을 자극해서 만든 곡이 이겁니다.”
팀장님은 다시 무너져 내리면서 입을 부여잡았다.?
“아니, 그러니까 무알코올 주정뱅이가 즉석에서 만든 곡이, 아이돌 타이틀 곡 예정이라고?”
그렇게 들으니 이게 굉장히 불건전해 보이지만, 분명히 ‘무알코올’ 상태에서 ‘우정에 취해’ 부른 노래니까, 사실 위즈니 OST로 넣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꿈과 사랑의 노래다.
“아니, 히힣, 그게, 아니잖아, 크흡.”
팀장님은 한껏 웃으시고 나서 진정됐는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나는 왠지 흥겨워져서 핸드폰에 저장해 둔 영상까지 보여드렸다.
지금 한창 만지고 있는 라인이 채하민이 부른 노래와 닮은 듯 달라서 팀장님은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렸다.?
듣고 있는 나도 어이가 없었다. 저 무근본, 작곡에 대한 지식이 0인 채하민이 어떻게 저런 라인을 당연하다는 듯이 뽑아내는 걸까. 사실 작곡 천재 토끼인 거 아닐까.
채하민이 부른 라인은, 굳이 표현하자면 쓸쓸한 가을, 밤거리를 거닐며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곡이다. 대체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무알코올로 뽑아냈는지, 대단해.
“그래서, 이거 곡 제목이 일단 뭐라고 했지? 가제 붙여놨다며.”
“아, 맞습니다. 궁금하시죠.”
나는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웃었다. 내가 지었지만 참 듣기 좋은 가제다.?
“토사묘팽(兎死猫烹)입니다.”
“그거, 쓸모없어지면 버린다는 뜻 아니야?”
“그건 토사구팽(兎死狗烹)입니다. 저는 구 자를 고양이 묘(猫) 자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토사묘팽.”
“그래서 무슨 뜻인데?”
“토끼가 죽으면 고양이도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실제 곡으로는 쓸 수 없지만, 채하민에게 설명해 주면서 괴롭히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크흡.”
채하민이 불렀던 ‘너와 나! 한날 한시에 죽어!’라는 가사에서 따온 제목이다.
“아니히히힉.”
의외로 웃음이 많으신 타입이었군. 처음에는 엄청 진중한 스타일일 줄 알았는데, 같이 작업해 보니 그저 성격 좋은 아저씨다.
“아, 오랜만에 많이 웃었네. 확실히 너희가 있어야 한다니까.”
“TOT 선배님들도 계시잖습니까.”
“거기는 곧 재계약이라 그런가. 마냥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느낌은 아니지. 그리고 회사에 있는 시간도 너랑 비교하면 말도 안 되잖아?”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특별한 거 같은데.”
“그건 그래. 해진이한테 부탁해서 너 장비나 새로 맞춰줘야겠어.”
아직 쓸 만한데, 낭비다.?
“라고 생각하지 마. 이게 다 투자야. 그리고 원래 자본주의는 그렇게 돌아가는 거 너는 잘 알잖아?”
하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쓸모가 다할 때까지 물건을 사용했다면 자본주의가 이렇게까지 발달하진 않았겠지.
그리고 다시 찾아온 작업 시간.
달칵거리는 소리와 헤드셋에서 울리는 음악만 한창 듣다가, 드디어 끝날 시간이 됐다. 팀장님은 기지개를 한 번 크게 켜고, 언제 사오셨는지 내게 커피를 한 잔 내밀며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일정이 뭐야?”
“아, 이제 멤버들이랑 같이 위즈니 랜드 신작 감상하러 가야 합니다.”
“아, 시사회 전에 관계자 가족분들끼리 모여서 잠시 보는 거야?”
“네. 그래서 사진 찍힐 일도 없이 조금 추레하게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에이, 그래도 연예인들 좀 올 텐데, 꾸며야지.”
원래 가장 맛있는 음식은 조미료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뽐내는 거라고 했다. 너무 무례하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작업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이미 다들 한껏 차려입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채하민은 홍콩에서의 일이 있고 나서 나를 보면 약간 흘겨보곤 했는데, 오늘은 그것도 까먹을 정도로 신났는지 들어오자마자 달려와서는 폴짝폴짝 뛰어 다녔다.
“동화야! 빨리 가자. 나 영화 엄청 오랜만에 봐!”
“하긴, 죽기 전에 많이 봐둬야겠네. 둘 중 한 명 죽으면 따라가야 하니까.”
“…흐어.”
채하민은 내 말에 석준의 뒤로 가 고개를 파묻었다. 유일하게 석준만 영상을 보고 웃지 않아서 채하민이 찾는 토끼굴로 석준이 선정됐다. (참고로 석준은 영상을 보고 리듬이 장난 아니라며 칭찬했다. 광기는 광기를 알아보는 법이다.)
“옷 갈아입어. 내가 세미 정장 준비해 뒀어.”
…뭔 정장이야.?
“우리 기자분들 뵈러 가는 거 아니잖아.”
누가 들으면 영화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연회라도 즐기러 가는 줄 알겠다.?
“에이, 그래도 엄청 큰 배우님 한 분 오신다잖아. 사회성 특강 심화판이야.”
아아, 사회성. 그 빌어먹을 능력.
“아, 형-님. 그분이 오십니다. 형-님이 일-본에서 못 맞혔-던 분.”
알게 뭐람.?
나는 류이든이 준비한 캐쥬얼한 스타일의 세미 정장으로 갈아입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분도 우리 일본 방송 보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동화 형이 죽을려구 하지 않을까요?”
“어, 그럼 안 돼. 동화 죽으면 나도 확정이야…….”
나는 채하민의 어이없는 헛소리에 웃음을 흘렸다. 아, 저 망할 토끼가 요즘 내 웃음을 너무 자주 자극해서 볼이 아플 지경이다.
* * *
“오, 헬로, 블로센스.”
영화관 근처 주차장에 내리자, 타이밍 좋게 버스에서 내린, 어김없이 드레스를 입고 있는 네스퀵이 손을 흔들었다. 저 옷을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용기다. 존경스러워.
“아, X발. 오늘 아버지 오신다던데, 개조졌다.”
네스퀵은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버님이……?”
“엉, 이 영화 국내 배급하는 회사 회장님이 누구게~”
저런, 이렇게 한국 사회의 혈연 중심주의를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거, 나 보러 오는 느낌이란 말이지. 젠장, 수현 님만 안 왔으면 나도 도주하는 건데, 하필.”
수현 씨는 내가 일본 예능에서 틀렸던 배우 분 중 한 명으로, 여우주연상도 탈 정도로 실력 있는 분이다. 류이든이 말하길, 제인 씨가 선정한 존경할 만한 몇 안 되는 선배 중 한 분이라고도 하고.?
그렇게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슬며시 다가왔다.
“그래서 내가 춘광이 모가지를 잡고 목젖을 후려쳤는데…….”
“…그 천박한 말투는 좀 어떻게 할 수 없겠냐, 춘희야.”
근엄한 목소리. 듣기에도 품위 있어 보여서 그 내용을 지적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네스퀵은 오랜만에 불린 본명에 짜증이 슬며시 올라왔는지 이마를 몇 번 긁적이고 뒤로 돌았다.
“어으, 생물학적 부친 씨, 오랜만.”
세상에, 아버지라는 쉬운 단어를 저렇게 표현하는 것도 대단한걸.
“딸 얼굴 한 번 보기가 어렵구나.”
“에? 나 딸이었어? 기업가끼리 묶어주는 밧줄 아니고?”
와우, 신랄해.
나는 재빠르게 냉각되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곧바로 뒤로 빠졌다. 저런 회장님께 찍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을 듣지 않아도 선행학습 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
그렇게 도망치듯 빠져 나오자, 다른 멤버들이 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분은.
사람 좋게 인사를 받아주시던 그분이 내 시선을 느꼈는지 순간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어? 내 얼굴 몰랐던 후배네.”
음,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