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6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66화(166/343)
166.
“안녕하십니까, 이수현 선배님. 블로센스의 동화라고 합니다.”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음, 앞으로는 배우 목록도 외워 다녀야겠어.
“하하항, 이야, 확실히 나를 모를 만도 해. 느낌 알겠다. TV 볼 시간에 일하는 타입이구나?”
인사 한 번에 그걸 아실 거라면 점집을 차리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우리 하민이 할머님이 그런 쪽으로 대단하다고 하시는데.
“그래, 이수현입니다. 같은 그룹 준이한테 랩 컨펌도 받았어요.”
“선-배님, 저는 그냥 녹음본 한 번― 들어드린 게 다-인데.”
“그게 컨펌이지, 뭐. 춘희는 못 봤어? 영화 보기 전에 얼굴 한 번 보고 싶은데.”
오우, 정말 충격적인 이름이야. 몇 번을 들어도 새로워. 가출을 감행해도 두세 번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이름이다. 이 현대에 그런 이름을 짓는 부모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나는 네스퀵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도저히 저 상황을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타인의 가정사에 관심을 쏟는 건 이현재나 채하민 정도로 충분하다. 내 인생도 잘 모르겠으니 내 인생에 들어온 영역이 아니면 신경 끌 예정이다.
“아! 수현 님! 수현 님! 제가 왔답니다!”
“오! 오오! 우리 춘희!”
“본명 부르지 마, 언니!”
“아니, 나는 네 이름은 춘희로 불러야 쓰겠다!”
아니, 아버님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뽐내며 주변을 냉각시켜야 할 분이 왜 여기…….
저런.
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봤다가 쓸쓸한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는 어르신과 눈을 마주쳤다. 아아, 채하민의 아버님과 같은 눈이군. 마음이 아파라.
“어머, 저기 어르신, 여기 회장님 아니니. 원래 이런 자리에 오실 분이 아닌데.”
해맑게 네스퀵과 대화를 나누던 수현 씨도 뒤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우리를 돌아봤다.
“혹시 뭐, 저 분 아드님이 있는 걸까?”
그렇게 한 명씩 바라보던 수현 씨는 박수를 짝 치더니 채하민을 공손하게 손바닥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딱 봐도 귀한 집 자제분이네. 맞죠?”
와… 말 자체는 정답이다. 어떻게 저게 가능할까. 나는 약간 경이로운 기분이 들었다. 망할,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혹시 예언처럼.
[아닙니다!]그래, 수용했어. 그냥 화양 씨 같은 사람인가 보다.
채하민은 당황한 표정으로 입술을 오물거리다 힘겹게 답했다.
“네? 아, 저, 음, 귀한 집 자제는 맞는 것 같긴 한데…….”
나는 터지려는 웃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저 미친 지상 최초 황족 토끼 놈. 솔직하게 대답할 필요는 없잖아. 류이든도 웃다가 혼잣말로 ‘아, 이걸 동화를 안 고르시네.’라고 중얼거렸다. 음, 칭찬인 걸로.
“어, 그래요? 그건 좀 부럽네.”
수현 씨도 약간 당황했는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하지만 입꼬리가 약간 파르르 거리는 게 보였다. 네스퀵 씨도 어색하게 서 있다가 채하민의 말에 입을 가리고 몸을 들썩거렸다.
“어쨌든, 도망쳐 나온 거 잘 봤어요. 최근에 조금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긴 했는데… 혹시 불똥 튄 건 없어요?”
걱정스럽게 물어봐 주시지만, 높은 확률로 ‘당신들과 친분을 쌓아 두는 게 괜찮습니까?’라고 물어보는 절차인 것 같다.
“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별 문제없었어요!”
류이든도 어련히 그런 눈치를 챘겠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답변했다. 새삼 재밌는 건, 방송이 나가고 2주 정도 후에 진화 놈의 추잡한 사생활이 도마 위로 올라왔다는 것. 예언이 말했던 것보다 한 달 더 일찍 터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다 예상대로 되기만 하면 재미가 있을까,
[맞습니다! 더럽게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재밌습니다!]응, 너는 재미가 뭔지도 이제 배우는 중이면서 혓바닥은 잘 놀리네.
“에이, 영화나 보러 가요. 나쵸 콤보 가능한가?”
네스퀵이 생뚱한 소리를 하며 걸어 나갔다.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와 치고 박고 싸우는 걸 보여주기는 싫나 보다.
“아, 여튼 반가웠어요. 우진이한테 얘기도 많이 들었거든요.”
와우, 그 인간은 인맥이 꽤나……. 류이든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그저 답없이 웃기만 했다.
“우진이 말로는 동화 씨랑 제일 친하다던데.”
…아니, 잠깐, 진짜 왜? 나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 미친 인간의 머릿속을.
[동감입니다!]그렇지?
[애초에 주변에 동물들로 가득 해서 그렇지 않겠습니까?]감히 내 멤버들을 짐승 취급하다니. 기지생, 무례해.
[……그래요! 이 미친 인간아!]나는 잠시 기지생과의 담소를 끝내고 나도 류이든처럼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말없이 웃었다.
“아, 아아, 오케이. 이제 알겠다. 미안했어요.”
내 미소를 가만히 분석한 수현 씨는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어우, 걔는 연기 연습이나 더하지, 무슨.”
고개를 저으며 네스퀵 씨를 따라 어디론가 떠났다.
“…설명이 필요한데, 리더 님.”
“아, 그럴 줄 알고 나도 분석을 조금 해 봤는데 말이지. 모르겠는데?”
“친구잖아. 뭐 어떻게든 해석 좀 해 봐.”
나는 도저히 알 재주가 없으니 인간관계의 스페셜리스트인 당신의 지식을 나눠줘, 류이든.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가 언어를 통한 지식의 공유라잖아, 강아지.
“…혹시, 니가 배우분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나?”
“음, 개소리.”
“나 상처받아, 자기야.”
“닥쳐, 개.”
자기는 뭔 자기야. 지구자기장이 뭔지도 모를 짐승이.
“뭐지? 아아주 약간 짜증나네.”
류이든은 말과는 달리 환한 냉소를 지었다. 역설적이게도, 누가 보더라도 환하지만, 내 눈에는 분명한 냉소였다.
“…살인 같은 건 안 돼.”
“에이, 나처럼 바른 생활하는 사람이 또 어딨어?”
그래, 바른 생활. 류이든은 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사람을 잘 믿는 타입이지만, 적에게는 가차 없는 타입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서바이벌 때나 연습생 시절, 모두의 ‘형’이라는 포지션에 모두에게 믿음을 나눠줬을 뿐이지,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바라본 류이든은 믿음이 헤픈 사람은 아니었다. 믿는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믿을 뿐. 난 예전에 이지현이 나를 밀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간 싸늘해졌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러니까, 너무 개 같다. 좋은 의미로.
어쨌든,
* * *
류이든을 필두로 한 관계자 인사를 끝마친 뒤, 객석에 들어가기 전에 이현재와 함께 영화관에서 무료로 제공해 주는 버터오징어를 공짜로 받아왔다.
“역시, 영화관은 버터오징어죠, 형?”
“음,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데.”
“형은 문화생활을 조금 할 필요가 있, 다기에는 책을 많이 읽네요…….”
돌아오니 바로 눈에 들어오는, 양손에 팝콘 한 알씩을 들고 위로 들어올려 비교하고 있는 석준.
…뭐 해, 저 새는. 무슨 모이가 더 큰지 비교하나.
“오, 이제 공룡 아니고 새예요? 준이 형이 새랑 닮았… 나?”
내가 밖으로 말했나 보군.
“새가 공룡이야.”
“음, 그렇구나.”
이현재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버터오징어를 뜯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새가… 공룡이야?”
채하민이 충격받았는지 입을 크게 벌렸다. 몰랐는데, 쟤 은근 입이 컸군. 맨날 입술을 오물거리기만 해서 몰랐다.
“응.”
“…새가 어떻게 공룡이야? 물리면 죽어?”
공룡의 분류 기준이 ‘물어서 인간을 죽인다’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 저기 듣는 공룡 기분 나쁘겠어. 저기 있는 공룡은 내 눈앞의 너만큼이나 무해하단다.
“아니, 근데, 새는, 귀여운데!”
공룡도 새끼는 귀여울걸. 그게 생존의 비결이라고 한다. 우리가 귀엽다고 부르는 여러 속성은 대부분 4세 이하의 아이들이 갖고 있는 속성인 경우가 많다는 걸 보면, 그럴듯하다. 우리 심바, 너무, 귀여웠어. 우리 목화도 그렇고.
나는 말없이 채하민을 바라봤다. 해부학적인 공룡의 정의 따위를 설명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진 않아서, 그저 내 말이 옳다는 확신을 눈빛에 담아서 쏘아 보냈다. 그러자 채하민이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걸 지켜보는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라도 된 것처럼 좌절했다.
“공룡이… 새였어.”
주어랑 술어 위치가 바뀐 것 같은데, 하민아. 그때, 서서히 조명이 어두워졌다.
“아, 이제 영화 시작한대. 감상하자.”
* * *
아, 줄거리가 뭐였더라. 락 음악만을 강제하는 미친 것들에게 반대해서 힙합 레지스탕스를 결성하고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나. 다시 들어도 조금… 기괴한 기분이 드는 줄거리다. 제목도 ‘프루츠 월드: 마이크, 그 리듬 속에서!’라고 번역됐다.
화면 속에서는 주인공이 홀로 랩을 하다가 ‘1984’의 빅 브라더가 수행했던 것과 같은 중앙 독재 정부의 감시 체제에 걸려 ‘반역자’로 규정되어 연행되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조부모와 살고 있는 소년은 자신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당에 붙잡혀 가는 걸 보면서 소리쳤다. 안타까워라, 그러니 범죄를 저지를 거라면 애초에 들키질 말았어야지.
― 조용하거라. 리듬감시부에 가서 떠들도록.
그렇게 영화 시작 5분만에 주인공이 죽나 싶을 때쯤-이것도 나름대로 개성 있고 괜찮지 않나 싶다- 네스퀵과 석준이 담당한 ‘코기토’와 ‘에르고’가 등장했다.
― 하하! 여기 또 힙합에 미친 애가 한 명 있는데? 에르고!
― 시끄러워. 코기토. 닥치고 마이크나 들어.
그리고 그 둘은 마이크를 들고-무기라도 꺼내듯이 마이크를 드는 장면에서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랩을 시작했다.
― 답이 없지, 힙합하는 것들. 달리 업신, 여겨지는 것들.
― 건들건들, 거들떠보지 않지. 다른 음악하는 것들.
오우, 세상에. 리듬이 좋아. 가사의 수준은 차후에 두더라도 일단 정통적인 붐뱁 비트가 들려오니, 5분 동안 줄기차게 흘렀던 일렉 기타 소리가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앞에 락 음악을 그렇게 틀어댔군. 조금 물린다 싶을 때 듣는 힙합 음악에 청량감을 느끼라고.
그렇게 구출된 주인공과 가족은 레지스탕스 지부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힙합을… 배웠다.
― 코기토 형…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 좋은 질문, 두 귀 열고 잘 들어.
석준의 진지한 목소리 때문에 이입이 되지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초반부의 킬링 트랙에 해당하는 넘버인 석준과 네스퀵의 듀엣곡, ‘운율과 농담의 행진곡’이 시작됐다.
코기토와 에르고는 각자 들고 있던 삽과 망치에서 앞의 쇠를 빼 마이크로 만들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 타오르는 혁명과 마이클 든 너와 나, 굶주리던 남매의 움츠러든 입가에서, 툭.
― 붕붕 떠올라, 쿵쿵 뛰는 심장에 차올라, 뱉어내, 운율, 믿어, 내 운을, 쇠가 앞에 쌓이고 그들의 손에는 마이크 한 자루만 들려 있었다. 그 뒤로는 TV에 선전용 방송이 송출되고 있었다.
― (락 음악을 들어야 합니다! 공영방송국에서 보내드립니다.) 걔네 입에서는 악취, 무기를 들 타임― (다른 음악을 듣다 발견될 시 여러 제약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막아 버려, 그 귀, 고흐처럼, 마치.
저걸 의역하면 락 음악만 듣는 것들 귀를 고흐처럼 잘라버리자는 의미다, 언제 들어도 어린이 영화에 어울리는 대사인가 싶지만, 뭐, 그래, 괜찮으니까 상영되고 있겠지.
나는 그저 맑게 웃을 뿐이었다. 어차피 영화 상영이 더 잘 된다고 석준이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돈 받았으면 그만이다.
길고 길었던 영화 상영이 종료되고, 조금은… 개성적인 결말의 의미를 곱씹다가 포기했다. 아이들의 세계를 다 큰 내가 철학적으로 분석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거… 자유 화소가 엄청 특이한 게 들어갔구 그런 느낌인데, 맞아요, 형?”
이현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 해괴한…….
“흐어허, 흐으, 흐어!”
뭔데, 공룡 울음 같은 소리가.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진짜 공룡이 울고 있던 거였군. 나는 납득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감동! 감동입니다! 제 목소리가! 제 목소리가 나와요! 프루츠 월드에! 흐어!”
미친놈.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는 수치를 견딜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