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6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67화(167/343)
167.
“와아, 우리 중 제일 성공한 준이다!”
관계자분들에게 모두 인사 드리고 돌아오자 채하민이 소리쳤다.
…아니야, 나야, 하민. 내 통장 잔고가 증명해.
“제일 인기 있는 영화에 출연한 몸! 한 끼 쏘자!”
아직 개봉도 안 했는데 현재형 시제가 맞을까, 하민. 그리고 형이 된 몸으로 동생한테 얻어먹으면 안 돼.
“저도! 저도 쏘고 싶습니다! 오늘은 프루츠 월드 특식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게, 뭔데. 이름부터 불안해, 망할.
“제가 오늘 뵌-분 중에, 프루-츠 월드식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분이 계셔-서 배워왔습니다.”
그건 쏘는 게 아니라 만들어 주겠다는 거잖, 잠깐, 준, 너.
“너, 요리해본 적 있던가.”
“아주 예전에 몇 번 해봐서 불안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레시피는 전부 다 적어왔습니다!”
요리라는 게 레시피를 안다고 맛있게 만들어지는 거면 미슐랭 심사위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모두 실직했겠네. 마X터 셰프 코리아 같은 프로그램은 기억력 대회가 됐을 테고, 내가 이겼겠다, 그치.
“그래. 맛있겠네.”
그래도, 만들어주겠다는데. 류이든이 황급하게 내 목을 팔에 끼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니, 잠시만, 동화 형, 너 어디 아파?”
“하민이 만드는 것보단 낫잖아.”
채하민에게 안 들리게 조심스레 답변해줬다. 채하민은 요리를 처음 해 보는 석준에게 기대를 걸게 할 만큼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오우, 안 되겠다. 그냥 내가 사와야…….”
“포기해, 형. 준이가 너무 설렜어.”
저편에서 이미 행복회로가 과열돼 머리에서 연기가 나는 것같은 공룡 한 마리가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석준을 막을 순 없어. 생태계의 순리대로 공룡이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
“아, 아아, 큰일이네. 오늘 혀로 인체 실험 당하는 날이구나.”
“…내일 아침 당번은 내가 할게.”
“하아, 감사합니다, 동화 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류이든을 뒤로 하고 나는 소화제를 하나 사갈 계획을 세웠다. 채하민이 만든 음식을 먹을 때 남지 않게 꾸역꾸역 넣어야 했었으니까, 아마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채하민이 요리에 재능이 없음을 인정하고 포기해서 이제 괜찮을 줄 알았는데, 큰일이다.
* * *
그날 밤.
“우선, 프루츠 월드는 아니지만! 베이컨과 계란프라이입니다. 식전 요리!”
뭔데, 왜 비주얼 괜찮아. 나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왜 먹음직스러워. 왜 요리 못하는 게 아닌 거지.
이어서 곧바로 여러 요리가 쏟아졌다. 뭐지, 얘 왜 잘하지. 과일을 기반으로 한 화려한 요리가 세 접시 정도 놓였다. 절인 무화과로 데코레이션한 샐러드-식전 요리로 샐러드가 옳지 않냐는 의문은 넘기기로 했다.-와 라임 주스를 졸여 소스로 곁들인 스테이크, 그리고 블루베리 크림으로 아이싱한 케이크.
“…다, 만든 거야?”
“케이크만 사왔습니다! 보세요, 형님! 엄청 아름답죠! 저희가 지난번에 먹은 칵테일도 엄청 예뻤는데!”
“이야, 우리 준이는 거의 뭐 요리 천재네.”
“나 사진 찍어서 X위터에 올려야겠다. 팬분들도 보시라고.”
“…음, 이거 막 이상한 재료 들어간 건 아니죠? 프루츠 월드에 깻잎 주스 같은 거 나오던데.”
멤버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지만, 나는 눈앞의 요리에 시선이 빼앗겨 제대로 듣지 않았다. 낯설다. 요리에 재능이 있는 걸까, 아니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감탄하는 멤버들을 뒤로 하고 조용히 포크를 들었다.
한 입, 샐러드를 먹으니 맛있다. 고기를 썰어 소스에 찍어 먹어 보니 역시 맛있다. 감탄 섞인 숨을 뱉어냈다. 그제야 멤버들이 나를 약간 신기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준.”
“네, 형님.”
“엄청 잘 만들었네.”
“……감-사합니다.”
수군수군.
“내가 성호한테 들었는데, 저게 T 유형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칭찬이래.”
“와, 동화 형이 웃으면서 뭐 잘했다고 말하는 거 처음 보는 거 같긴 한데.”
“저한텐 자주 해줬구요, 형한테는 안 한 거죠.”
그렇지, 기특한 과외생한테는 원래 칭찬을 아끼지 않는 법이다. 그보다, T 유형은 무슨 소리지.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먹을 수 있으니,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또, 감동입니다.”
석준은 울먹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저 눈물점만 빼면 애가 조금 덜 울 텐데. 저렇게 잘난 얼굴을 달고 눈물이 너무 헤프니 눈가가 붓는 일이 많아서 문제다.
“그러고 보면 동화 형은 준이 형한테 약간 약한 모습 보이고는 하죠?”
“맞아, 나한테는 쌀쌀맞고 매몰차고 개 취급까지 하는데.”
“그건… 아니예요.”
“이든 형, 동화가 그렇게 매몰찬 성격은 아니지 않아?”
채하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묻는 질문에 류이든은 무언가를 깊이 고찰하더니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나한테만 매몰찬 건가?”
무시. 그리고 식사. 이 맛있는 음식들 앞에서 나눌 만큼 가치 있는 대화는 진행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고기, 잘 구웠다.”
“…그렇습니까.”
석준은 부끄러운 듯 류이든과 비슷한 덩치로 몸을 베베 꼬았다. 그러지 마, 너 성인이잖아.
“어? 그러고 보니까 준이 아직 술 안 마셔봤지?”
“네- 아버지가 어른-한테 배워야 한다고 하셔서, 배-우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 조금 귀여운데.”
“나는 첫 술이 동화랑 먹은 거였어. 내 인생 최고 자랑 중 하나.”
글쎄, 나한텐 인생 최악의 고통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정말 버리고 가고 싶었거든.
“빨리 부모님한테 배우고 나서, 우리랑도 마셔야지. 술버릇 흑역사 콜렉션 한 명씩 다 만들어야 하거든. 나중에 우리 더 성공하면 팬분들한테 풀어버리게.”
“…그 추태를?”
경악스러워서 사고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내가 멤버들 하나하나 붙잡고 예고 살인하는 모습을 보시면 적잖이 충격 받으실 것 같은데.
“당연하지. 내가 영상 편집도 해서 올릴 거야. 돈 써서 고퀄로.”
“그러구 여전히 저희 좋아해 주실까요?”
류이든은 자신의 가슴팍을 당당하게 툭툭 쳤다. 당연하다는 듯이, 믿어보라는 듯이 말하는 모습이 참 믿음이 가지 않았다.
“당연하지. 일단 동화 프사로 해 놓으신 분들은 갤러리에 영구 소장하고 하루에 세 번씩 보실걸.”
그건 조금 무서운데. 그리고 그 정도 되면 영상 내용이 전부 외워질 텐데 보는 의미가 있나. 그냥 뇌 속에서 재생하면 되잖아.
* * *
잠들 준비를 마치고, 자라는 잠은 자지 않고 침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석준을 나는 광기라고 불렀지만, 광기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붙이는 이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는 석준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석준에게 광기 말고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그건 동심. 오늘 영화를 보면서, 보고 나서, 이후 영화에 나오는 음식을 먹으면서 진심으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어린이의 세계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체 어떻게 저 나이를 먹도록 어린이의 세계를 유지했을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어렸을 때 이미 아버지의 철학서적을 읽는 버릇을 들여서, 만화보다는 소설이, 소설보다는 철학이 더 친숙한 유년을 살았다.
어머니는 ‘아이는 아이다운 걸 바라봐야 한다’라며 동화책 같은 것도 사주고는 하셨지만, 아버지가 길을 잘못 들여서 그다지 재밌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동화책에 나오는 교훈보다는 철학책에 나오는 딜레마가 더 흥미로웠으니까. 물론 그때까지도 아이다움은 어느 정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다만 부모님의 이른 죽음은 내게 아이다울 시간을 앗아갔고, 사회와 맞서기 위해서는, 최소한 목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이의 세계 속에 머무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석준을 광기라고 부르면서도, 멤버들 말마따나 따스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져보지 못한 것 같은, 아마도 평생을 보내도 다시 가질 수는 없을 그 세계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꽤나 아름답게 보여서.
나는 법적으로 어린이였을 시절부터 어린 왕자에 나오는 구절처럼 숫자를 좋아했나 보다. 어렸을 적의 내 삶은 어느 소설에 나온 것처럼 산수로 가득했으니까. 복잡한 수학 없이도, 하루에 얼마를 써야 할지, 또 얼마를 썼고, 현재 얼마가 있는 지만이 중요했으니까.
그래서 고작 가지고 있는 꿈이 가족, 그리고 멤버들과 행복하게 여생을 마치기 정도니까 할 말이 없다.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민에 빠지는 걸 보면, 이 고민도 언젠가는 그냥 막연한 불안감 정도로 변하겠지.
“동화야, 뭐 고민 있어? 내가 타로 봐 줄까?”
미친 소리가 들려서 상념이 깨졌다. 지상 최초 점성술 토끼가 또.
“…타로 공부 끝냈나 보네.”
“하하하, 이제 우리 팀 망해도 작은 가게 하나 정도는 낼 수 있지.”
“아니, 너는 망하면 아버지 밑에서 후계 공부해야지.”
“에이, 그건 너로 확정됐잖아?”
“…확정이야?”
대체 언제.
“나는 회사 같은 거 운영할 만한 사람 아닌 건 목화도 알겠다. 아버지도 불만 없으실걸. 나랑 제일 친한 친구 손에 회사 맡기면 둘 다 좋은 거지.”
해맑게 웃으면서 아버님이 들으면 우실 소리는, 아니지…, 어쩌면 안 우실지도 모르는 소리는 그만해 줄래.
“어쨌든, 고민 있는데 털어놓고 싶을 때 언제든 나 불러. 내가 너가 말한 대로 토끼라 귀가 크잖아.”
옳은 소리.
“내 부끄러운 모습도 다 봤으니까, 너도 보여줘야지.”
내 인생 흑역사의 8할은 네 옆에서 일어난 일일 텐데, 뭘 더 보여줘야 할까, 이 망할 토끼 놈아.
* * *
작업실에서 막바지 편곡 작업을 A&R팀원들과 함께 마무리하고 있을 때였다. 곡 자체는 완성됐지만, 이후 어떤 컨셉으로 할지 고려하며 세밀한 조정 작업만 남은 상태였다.
“와아, 이거 곡 좋다. 동화야, 이거 하민이가 즉흥적으로 부른 거 기반으로 작곡한 거랬지?”
한 팀원분의 물음에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점성술 토끼라서 별의 기운을 받아 신의 멜로디를 얻어왔나 보다.
“괜찮아. 클블 때도 듣기 좋았고, 시작도 좋았고, 흥도 좋았는데, 이게 제일 기대된다, 성적.”
“음원 사이트 1위 한 번 하면 동화가 회식도 쏠 수 있겠다.”
“아, 그러고 보니까, 그 얘기 들었어?”
어느새 작업 동지-라고 쓰고 노예라 읽는다. 대학원생과 같은 의미이다.-로 지내며 꽤나 친해진 덕분인지 쉽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동화 앞으로 곡 하나 받아볼 수 있냐고 요청 들어왔다던데.”
“엥? 진짜? 아니, 어느 회사가 현역 아이돌 곡을 받아 쓰겠다고 그래? 자기 연예인에 다른 연예인 묻으면 그건 좀.”
“그치? 나도 듣고, 조금 당황스럽긴 하더라. 동화, 너는 어때? 들어오면 할 거야?”
“음, 지금 체력이 부족해서 손이 떨리고 있습니다.”
“그렇지?”
내 앞가림도 못하겠는데 남의 앞을 닦아줄 체력이 있을 리가.
“그래도 조금 아쉽긴 할걸. 그 회사 꽤 크거든.”
아쉽게도 저는 회사의 크기에 굴복하는 자본주의적 인간이 아닙니다. 병사하지 않기 위해 건강을 더 중시하는 토속적인 원시인이라 목숨에 지장만 없으면 더 큰 돈을 바라지 않습니다.
“어디길래?”
“디오니 엔터라더라고.”
……목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