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6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68화(168/343)
168.
― 어? 나는 들은 적이 없는데.
목화에게 전화해 물어보니 곧바로 답변이 들어왔다.
“그래? 음, 알겠어. 잘 지내고 있어?”
― 형, 삼 일 전에도 전화했으면서. 아주 유난이야.
서운하게도 말하는구나, 망할 동생. 소설에서 자주 봤던 서운한 아버지나 어머니의 마음이 이런 건가 보지.
― 당연히 잘 지내지. 우리 후속곡도 내고 조금 있으면 컴백도 하잖아. 연습량도 많고 엄청 좋아.
“그래. 용돈 보낸 건 받았고?”
― 맞아, 형, 돈 넘쳐 나? 무슨 용돈이 이렇게 많아.
“원래 그 정도는 줘.”
― 무슨 개소리야, 그게. 내 주변에 용돈 받는 친구들도 내 통장 보면 다 까무러칠 텐데.
돈을 쓸데가 없어서 그러는데, 너라도 잘 써주지 않을래, 망할 동생아.
― 형도 좀, 응? 책만 사 읽지 말고, 옷도 좀 사고, 신발도 좀 사고, 시계 같은 것도 좀 사고, 사치 좀 부려.
“그렇게 비합리적으로 돈을 쓰기는 좀.”
자본주의에서 돈은 생명이고, 낭비는 생명을 허비하는 짓이란다. 우습게도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낭비가 필수적인데, 그 낭비가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통해 시행된다니, 참 역설적이야.
― 형은… 허으.
요상한 한숨소리.
“뭐.”
― 정말, 어떻게 말할 수도 없고 말이야. 딱 기다려. 하민이 형한테 문자 보내둘 거니까.
“……음, 조금 버거울 거 같은데.”
― 맞아. 형 제어하려면 이든이 형이 아니라 하민이 형이 딱 맞더라. 강한 창보다 약한 바람에 더 약한 인간이라.
“어휘력 뛰어나네.”
― 해와 구름 실사판 찍으면 나그네 역으로 형이 딱인데.
진짜 뛰어나네, 망할 동생아.
* * *
목화와의 전화로 해소되지 않은 의문은 한 통의 문자와 한 번의 대화로 해결됐다.
― 돈 벌 기회를 마련해 두었단다. 날림으로 작업해도 꽤나 짭잘한 수입이 될 테니 지나치게 바쁜 게 아니라면 받고 대충 작업하면 된단다. 물론 네 성격에 이번 일을 대충하지 못할 것 같긴 하다만.
화양 씨의 문자를 보고 멍해졌다. 아니, 왜 이렇게 활동력이 좋으신 걸까. 화양 씨는 휴식기간을 제외하고는 워커홀릭이라고 업계에서 유명하다던데. 그리고 마지막 줄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대충 하려면 한없이 대충할 수 있는 게 작곡인 걸 아시면서.
뭐라고 답변을 드려야 할지 고민하던 중, 뒤이어 장해진 팀장님의 호출이 이어졌다.
“아, 동화, 어서 와.”
장해진 팀장님은 점점 더 다크 서클이 진해지셨다. 삶이 고달픈 사회인의 초상. 곧 초상을 치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조금 쉬심이 좋지 않을까. 목에 건 십자가 목걸이도 신체적 평안을 가져와 주지는 못한 듯싶다.
“어우, 너 얼굴이 왜 그래. 너 곧 초상 치러도 안 이상할 얼굴인데. 좀 쉬어. 팀장님한테 동화 도와주라고 그 난리를 떨었는데 왜 또 일하고 있어.”
저런. 곧바로 머릿속으로만 한 생각을 돌려받을 줄은 몰랐는데.
“여기 커피 사뒀으니까 마시고 싶으면 마셔.”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빼어 입에 물고 자리에 앉았다.
“여튼 부른 건 별일 아니고. 2년 차에 대체 왜 이런 일이 들어왔을까 싶기는 한데 말이지.”
그러면 별일이 맞는 것 아닌가.
“곡 작업 제의가 들어왔거든요?”
존댓말을 시작한 걸 보니 공적 모드인가 보다.
“이게… 조금 이상해요. 아무런 지시사항도 없이 곡 하나 쿨 거래인데, 현역 아이돌한테 이런 일이 오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장해진은 한숨을 한 번 푹 내쉬었다.
“거기다가, 이게 시기상 무조건 호핀 컴백 앨범에 들어갈 각이라서 역풍 맞기 드럽게 좋고.”
“어떤 역풍인가요?”
“말투 바꾸는 거 꾸준히 연습하는 거 보기가 좋아요. 어쨌든, 딱 알잖아요? 썩어도 준치라고 데뷔 성적이 엄청 좋지는 않아도 디오니란 말이죠? 디오니에 모든 걸 바친 아이돌 팬덤이 은근히 있어요. 만약에 성적이 조금 안 좋다? 회사는 당연히 머리채 싸잡히는 거긴 한데, 작곡가 명단에 ‘지동화’ 석 자가 딱 적혀 있어 봐요.”
아아, 이해됐다. 아이돌 생태계는 언제 들어도 새롭게 배울 점이 화수분처럼 넘쳐나는 곳이다.
“탓하기 딱 좋잖아요? 게다가 호핀은 개인 팬덤 규모가 큰 편이라… 목화 씨가 욕먹는 일도 있을 수 있고 말이죠.”
저런. 그건 정말 큰일인데.
“음, 이건 제 의견이지만, 차라리 그냥 쓰레기 같은 곡을 보내고 컷 당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는 하네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작곡가 이름을 따로 쓰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
장해진 팀장님은 이후에도 여러 방안을 제시하며 최대한 ‘안전한’ 방향을 제시했다. 동의할 만한 일이다. 내가 한 팀에 속했으니 멤버들을 위해서라도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는 법이다.
“솔직히 나쁘지는 않죠, 커리어상으로는? 나중에 개인 활동할 때 다른 팀한테도 곡을 써준 이력은 분명 도움이 되기는 할 거예요. 음악 쪽으로 길 닦기도 좋을 거고.”
장해진은 예시 계약서와 제안 문서를 톡톡 정리하고는 내게 건넸다.
“제가 고려할 사항은 다 말씀드렸으니까 한 번 읽어보고 하실지 말지, 정해주시면 돼요.”
그러나 생태계에서 동물은 늘 만일을 대비하는 능력을 키우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게는 취미가 없다는 아주 강력한 장점이 있고, 그렇기에 항상 작업실에서 생활했다. 마지막으로, 목화의 쇼케이스를 보러 갔던 날 나는 이미 반쯤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써 뒀습니다.”
내 말에 장해진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이 표정을 찌푸렸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이를 알아냈나 보다.
“…취미, 없어?”
공적 모드까지 풀어버리는 말이었나 보다.
“네, 없습니다.”
“아니, 그래, 뭐. 이런 일이 있을 걸 예상한 거야?”
“언젠가 쓸 일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하아, 얘를 진짜 어쩌지. 좀 쉬어야 하는데. 이든이한테 부탁해서 감금이라도 해야 하나 봐. 그렇게 일만 하다가 결혼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돈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게 된다?”
음, 이미 그런 상태인 것 같습니다. 제가 비혼주의자라. 나중에 동물 관련한 일을 배워서 심바나 그 자식과 여생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름 정도는 예명 하나 만들자. 다른 그룹 곡 만들 때 역풍 피하려는 최소한의 조치는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음, 뭐가 좋을까. 어차피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이름이니 아무렇게나 하나 지어도 되겠지.
“나중에 팬분들이 알았을 때, ‘헉, 이런 떡밥을 뿌려놨었네!’라는 느낌이면 좋겠지?”
그런 재주가 안타깝게도 나한테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작업실로 돌아와 이미 예전에 작업을 끝내 둔 작업물을 메일에 첨부하며, 계약서 사본도 작성했다. 그리고, 찾아온 고민. 이름 란에 대체 무엇을 기입해야 할까.
독일어로 빈터(Winter) 정도로 지으면 괜찮으려나. 아니지, 의외로 쉽게 티가 날 것 같다. 차라리 금서 느낌도 들고 독일, 철학 같은 키워드랑도 맞으니까 마르크스라고 지을까. 아니지, 이건 밝혀졌을 때 화형대에 걸릴 것 같다.
“음, 예명이라…….”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으니 이것도 골머리를 썩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빠르게 예전에 이미 만들어둔 곡을 손보고 있었다.
“음, 어차피 저쪽도 내 이름 밝히기를 원하는 건 아닐 테고…….”
자기들도 역풍 맞기 쉬운 짓을 굳이 하지는 않겠지.
여러 이름을 생각해 봤지만,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원래 이럴 때는 선례를 따르면 상당히 안전한 법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안전하면서도 팬분들이 나중에 알고 나면 ‘지동화, 저놈이라면 이런 짓을 할 법해.’라고 생각할 만한 이름이 하나 있다.
‘싱클레어’, 단 네 글자만 적고 송신했다. 신분 감추기의 원조인 헤르만 헤세 선생님, 이름 좀 빌리겠습니다.
* * *
디오니 엔터의 A&R팀의 팀장. 디오니 프로젝트가 그녀의 손에서 태어나는 만큼 디오니 내부에선 꽤나 입지가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한 거미의 위협에 휩싸였다. 원래 사람의 약점을 손쉽게 파고들고 자신의 제안을 관철하는 걸로 업계에서 유명한 거미가, 그녀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으며 곡을 하나 받아서 사용하길 바란다고 부탁해 왔다. 물론 말이 부탁이긴 하지만.
“…아, 인생.”
그렇다고 거미를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업계에 쳐진 거미줄이 지나치게 넓기에, 어떻게 보복이 돌아올지도 몰랐다. 거기에 거미는 사람을 쥐고 움직이는 법을 잘 알아서,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부탁은 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다.
“하, 기왕이면 실력 있는 작곡가니까 꽂아 넣는 거라고 생각하자…….”
물론 아이돌 그룹 멤버가 자작곡 좀 끄적였다고 해서 처음부터 좋은 곡을 토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본이 어떻든 편곡을 죽어라 하면 어떻게든 들어줄 만한 수준으로 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진짜, 내가 왜 그랬지. X발, 했어도 그 여자한테 걸리면 안 될 일인데.’
클래식, 뮤지컬, 음반 제작 같은 음악 예술의 전반에 걸쳐서, 작업물이 아니라 정치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간한테 약점을 잡힌다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르겠다.
‘……아니, 근데 그런 분이 왜, 고작.’
납득할 만한 상황은 아니긴 하지만, 일단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해야겠지.
그리고 문득 눈에 들어오는 메일 알림. 계약서 사인과 기타 등등이 포함된 메일이었다. 그럼, 한 번 들어볼까,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헤드폰을 찼다.
재생.
데모 녹음까지 어느 정도 되어 있는 곡. 꽤나 듣기 좋은 목소리로 허밍하며 단순하고 정확하게 음만 짚어 놓았다.
말없이 천천히 듣던 그녀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어떻게든 흠결을 잡으려고, 나중에 편곡할 때 멤버들의 피치나 음색, 그리고 컨셉에 맞게 어디를 고쳐야 할지 고심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 집중하면 할수록, 이 파트는 누구를 위해 작성됐구나, 라는 깨달음만 얻게 되는 걸까. 그녀만큼이나 호핀 그룹 멤버들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다. 맞춤 양복처럼 각 멤버들에게, 그리고 호핀이라는 그룹 자체의 색깔에 들어맞았다. 동시에 대중성을 놓치지 않고 유행을 비틀어서 제식대로 만들어 놓은 곡.
음악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재빠르게 메일을 보낸 작곡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싱클레어’라니. 데미안을 감명 깊게 읽기라도 한 걸까. 그녀는 이 메일이 누구의 손에서 작성된 건지 알고 있다.
‘배려해주는 건가. 아니지, 자기보호에 더 가깝겠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곡을 왜 굳이 신분을 숨기고 발표하겠다는 건지, 그녀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감사합니다, 화양 님…….”
낙하산이 아니라 구명줄이라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최근 디오니의 곡을 담당했던 핫도그가 프리 선언을 한 덕분에 호핀 앨범에 곡들이 조금 나사 빠진 기분이었는데, 마지막 한 조각을 이렇게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 악행도 이렇게 선행으로 보답할 줄 아는 인간이 되자. 화양 님을 본받자!’
그녀는 빠르게 화양 님께 현 상황에 대한 설명과 감사를 문자로 보내자 곧바로 답변이 돌아왔다.
― 미안하지만, 악행에 악행으로 보답하려 했던 거니, 굳이 감사할 필요는 없네.
* * *
메시지 알림.
나는 연습실 한구석에 앉아서 숨을 헐떡이다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 누가 그 사람 아들 아니랄까 봐, 아주 깜찍한 이름을 쓰는구나.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데미안을 엄청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었지. 곧이어 하나의 메시지가 더해졌다.
나는 옅게 웃으며 짤막한 감사 인사를 보내고 메시지창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