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6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69화(169/343)
169.
목화에겐 비밀로 선물을 하나 마련했으니 이제 우리의 컴백만 제대로 성공하면 된다. 녹음 현장, 나는 녹음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옆자리에는 A&R 팀장님이 앉았다. 녹음 과정 중 프로듀싱을 배워보고 싶어서 요청했다.
“와… 동화, 태가 엄청 멋있다.”
채하민이 박수를 톡톡 치면서 감탄했다.
“조용.”
나 지금 새로운 거 배울 예정이니까, 집중해야 한다.
“일단 지시사항을 내리면 돼. 곡 쓸 때 애초에 어떻게 부를지 대강은 정해놨잖아?”
끄덕.
한 번 설명이 시작되니 계속해서 여러 가지 팁들이 이어졌다. 어차피 피치 조절이나 보정 같은 세부 작업은 추후 A&R팀에서 진행하겠지만, 녹음할 때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
“동화, 너가 점점 자체 제작 그 자체가 되고 있네.”
팀장님은 조금 씁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이고, 젊은 나이에 웬 고생은 다 사서……. 이거 해진이 멱살 한 번 잡아야 하나 싶어. 요즘 기획 2팀 수완 좋다고 그렇게 말이 많던데, 육 할은 동화, 네 덕분 아냐?”
“장 팀장님도 고생한 게 얼굴에 바로 보였습니다. A&R 팀원분들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애초에 홀로 성공할 수 없는 직업이 아닌가. 가장 본질적으로 기획팀의 수완이 좋은 이유는 루미너스가 우리를 소비해 주기 때문이다. 인과 관계로 따지는 건 어렵지만, 최소한 우리에게 루미너스가 필요조건이라는 사실만큼은 명확,
“아, 또 이상한 생각 중이지.”
남의 생각 멋대로 읽지 마, 망할 토끼 놈. 정말 가능한 일일까, 저게. 혹시 할머님께 뭐라도 배워 온 건 아닐까. 가능성 읽는 광기의 예언가도 있는데 정말 신기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지.
띠링―!
[없습니다, 그런 거!]조용히 해. 세상은 넓고 신비는 많은 법이야.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제 말이라면 죽는 시늉도 해줬으면서!]그 변했다는 타령은 대체 언제까지 할 셈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죽는 시늉을 한 적은 없어, 기지생.
[AI 상태일 때 해줬습니다! 고양이 흉내를 내달라고 했었는데 정말 귀여웠……]더 읽어볼 가치가 없어서 눈을 감았다. 애초에 저 당시 저 인간은 감정이 거의 없는 상태라 저런 걸 부탁했을 리도 없고. 지금은 어쩌다 저렇게 미쳤는지 모르겠지만. 부디, 저렇게 늙지 않기를.
[가능은 할 겁니다!]‘그보다 기지생.’
[네?]‘예언은 뭐지.’
[비밀입니다!]망할 놈. 나는 심호흡을 쭉 뱉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인간이 의심스러워 죽겠군.
눈앞에서 채하민이 손을 휘저었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나 보다. 그러니, 일단은 눈앞의 일에 집중하자. 어차피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다. 일로 잊으면 그만이다.
“녹음 시작하자.”
“…음, 그래.”
채하민은 넘어가준다는 얄미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를, 중지로 세게, 한 대 쥐어박고 싶은 표정이지만 참았다. 폭력은, 항상 옳지 않다.
채하민이 녹음실로 들어가고 팀장님이 녹음 준비를 시작하는 걸 곁눈질로 보며 배웠다. 대강을 알고 있어도 실무와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
* * *
이번에 녹음하는 곡은 토사묘팽이라는 가제를 가지고 있지만, 가사가 완성되고 새로이 제목을 지었다. 가사의 내용은 단순하게 요약해서 둘이 같이 죽자고 협박하는 내용이다. 원전을 충실하게 따른 가사라고 볼 수 있다.
제목은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지었다. 가사에서 느껴지는 감정 상태가 한 영화에서 나오는 등장인물과 비슷하다면서 이현재가 추천했다. 들어보니 이탈리아 영화라고 하던데, 어쩜 이렇게 장할까, 내 과외생은. 블로센스 공식 통계청을 이어서, 블로센스 공식 X플릭스까지 노리다니, 대단하다.
“아아, 이번 곡 특이해. 느낌이 조금 묘해.”
“동화 형이 평소에 쓰는 곡이랑 느낌이 조금 다르긴 한 것 같아요.”
녹음을 마치고 생긴 텀을 이용해서 샐러드나 씹고 있자니 주변에서 여러 소리가 들려왔다.
“맞―습니다. 그게 다― 하민이 형님 덕분―입니다.”
그래, 굳이 다 알면서 언급한 덕분에 채하민이 수치심에 고개를 숙이고 있군.
“신선한데 익숙한 기분, 묘해.”
“표절은 아니야, 40년 내로 히트 친 곡들이랑은 대충 다 비교해 봤거든.”
애초에 돈 버는 코드는 유행가처럼 불리기 마련이다. 채하민이 부른 곡은 놀랍게도 약 30년 전의 재즈 밴드의 곡과 유사한 진행을 갖고 있지만, 그조차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표절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영역이다. 아마도 채하민의 아버님이 예전에 불렀던 곡이 잠재의식 속에 잠들어 있었던 것 아닐까.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당연하지.”
그리고 그 유사함까지도 내 손을 거치면서 없애 버렸지. 완벽히 신선한 곡을 만들 수 있었다.
“그, 그렇구나.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못한 사람들은 억울해서 다 자결할 것 같은 기분이야.”
저런, 안타까워라, 강아지. 동물권 개념으로 보호해 주도록 할게.
“가사 내용도 로맨틱합니다!”
석준의 과속이 시작됐다. 이제 왜 로맨틱한지에 대해 위즈니의 예시를 들며 설명하겠지. 그보다 로맨틱이라는 단어를 알다니, 공룡의 지식 수준은 예상보다 높았다.
“근데 해외활동 끝나고 한 달 만에 준비하려니까 조금 힘들긴 하다아.”
채하민이 티 나게 말을 돌렸다. 아까 전 수치스러운 상황은 진즉에 끝났는데 이제야 헤어나와서 말을 돌리는 것 같다. 채하민은 대화의 화두를 서브했다.
“사실 곡이 완성된 상태라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기는 해.”
이어지는 류이든의 토스.
“그게 다 하민이 형 덕분이구 그런 거죠.”
그리고 이현재의 스파이크. 채하민은 그대로 얼굴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저런, 실점이네.
“무알코올 랩소디 덕분에 가능했지.”
음, 나는 확인사살 담당인가 보다. 원래 절벽 끝에 몰린 사람의 등은 툭 하고 밀어주는 게 올바른 논쟁의 태도다.
채하민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눈에는 깊은 회한이 담겨 있어 평소의 해맑음을 집어삼켰다. 좀처럼 보지 못한 모습이 귀중하니 눈에 잘 담아둬야겠다.
그러다 채하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을 손에 파묻고 휘저었다. 마치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 약간 즐거운데.
“으어! 내가 왜 그랬지! 나는 진짜! 말도 안 돼!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게 말이 되냐고!”
“어떤 측면에선 바보라는 개념에 꽤 근접한 편이잖아, 하민. 존경하고 있어.”
“…그래? 존경스러워?”
저런, 앞말은 귀담아듣지를 않았군. 채하민의 감정이 폭풍우를 만난 배처럼 뒤집혔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더니 이내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미친 사람 같았다.
“하하, 그래, 동화가 날 존경한다고? 흐하.”
“그 존경, 저는 필요 없을 것 같네요.”
“부럽―습니다.”
이현재 말고는 왜 제정신인 애가 없는 걸까. 아니지, 이현재도 가끔 나사 빠질 때가 있으니 정상은 나밖에 없는 거군.
“나도 존경해 줘!”
“닥쳐.”
이제 한 주 남았네, 컴백까지. 나는 마저 풀떼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대체 언제쯤 이 지옥 같은 식단 관리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게 다 만악의 근원인 류이든 때문이다.―사실 회사에서 건강관리 겸 내려온 식단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 블로센스에서 내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일이 있으면 보통 류이든을 집으면 답이 되겠지.
“늘 나한테만!”
“닥쳐.”
* * *
연습 기간이 빠르게 흐르다 보니 조금 정신이 없었다. 그러므로 연습이 잠시 비어서 시간이 붕 뜨는 때에는 뜨개질을 하며 심신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
“아! 오랜만, 동화 후배!”
젠장.
나는 뜨개질하던 것을 내려놓고 눈앞을 바라봤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기분인 준성이 양손에 커피를 들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지나가는 김에 인사나 할 겸 왔지. 들어보니까 여기에서 쉬고 있다길래.”
쉬고 있다고 들었는데 들어오는 건… 망할, 나랑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거군. 휴식의 범주에 대화를 포함해 놓은 지독한 사회적 인간이다.
“혼자 있으면 잡생각도 들고, 그러잖아.”
나는 말없이 커피를 받아들고 삐딱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 심화편 3강, 맥없이 대화가 시작되면 일단 안부 인사를 하면 알아서 상대방이 근황을 털어놓을 테니 안심하라.
“아아, 그러게. 잘 지내야 하는데.”
어우, 벌써 뭔가 일에 휘말린 기분이군. 어느 정도 무엇과 관련 있을지 예측도 된다.
“…예전에 말했던 이야기, 기억해?”
준성은 억지로 미소 짓는 표정으로 읊조렸다. 저런, 무슨 일이람.
“그래서 제대로 못 지내.”
그, 정말 죄송한데, 선배님, ‘그래서’라는 접속 부사가 들어가기엔 사이 맥락이 더럽게 많이 생략된 건 알고 계십니까. 꼬일 대로 꼬여 있는 성격이라 생각이 이리저리 럭비공처럼 튀어다녔다.
“예언이가… 탈퇴하려나 보더라고.”
저런, 예언 씨. 뭔가 언질 좀 주지 그러셨습니까.
“그냥… 심란하고 그래서, 우리 동화 후배는 어른스러운 면이 있잖아. 조금 칭얼거릴까 싶어서.”
‘우리’는 집어치워 주시겠습니까. 멤버들이나 목화 아니면 듣고 싶지도 않은 단어인데.
“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래도, 계약했으니 대화는 해 보자. 예언 덕분에 류이든이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걸 막은 것도 있고, 이후 사고칠 연예인 명단도 예언에게 뜯어냈다.
“글쎄. 잘 모르겠어. 요즘 예언이가 멤버들 보는 눈이 조금 슬퍼 보여서.”
“그러면 아닐 겁니다. 예언 선배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눠 봤는데, ‘제’가 보기에는 분명히 선배님 곁에 있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예언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으니 어떻게든 내 생각이어야만 한다.
준성은 멈칫하더니 내 눈을 들여다봤다. 저렇게 실없이 행동해도 나름대로 일군 아이돌의 리더니, 진위 파악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러게. 이상해. 나도 이상했어.”
준성은 몇 초간 내 눈을 보더니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러니까. 예언이가 날 떠나기는 힘들 것 같거든.”
단어 선정이 참 아름다우십니다. 무슨 삼류 연애 소설에 나오는 성격이 엿같은 남주인공처럼 말씀하시네요. 몇 페이지 지나가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걸!’이라고 후회하는 역겨운 장면이 나올 것만 같다. 예전에 잘못 산 책이 아까워서 읽다가 구토할 뻔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쨌든 기지생.’
[하아, 정말 저를 이렇게 불러 대시면 곤란합니다.]‘예언은 네놈들이 하는 일에 도움이 돼서 저런 꼴이 됐어?’
답이 없었다.
‘혹시 나중에 너처럼 시공간을 관리해야 해서, 가능성의 규칙을 미리 학습시키는 건가?’
답이 없었다.
‘…망할,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예언을 저 꼴로 만드는 데 너가 일조했어?’
[아닙니다.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줄곧 해왔던 고민을 끝냈다.
소파 위에서 앓는 환자처럼 끙끙 소리를 내고 있는 준성. 나는 한 가지 묻고 싶었다.
“혹시, 예언 선배가 나가겠다고 선언하면, 받아들이실 생각입니까.”
기나긴 침묵.
준성은 내 질문에 한껏 고심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하, X발, 대체 가능성이 뭐길래 이 지랄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