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7화(17/343)
17.
심사위원들에게 중간평가를 받는 날, 나와 석준은 지금까지 준비한 바를 보여줬다. 아쉽게도 아이돌판에 대해 공부할 때 멤버에 대한 공부는 하지 않았던 터라 누군지 몰랐지만, 알고 보니 유명 그룹의 리더였던 준성은 우리를 보고 물었다.
“일단 컨셉은 누가 뽑았나요?”
젠장, 드디어 나왔군. 하, 어떤 욕을 들어 처먹으려나.
“…인어공주라는 아이디어는 석준 연습생이 제안하고 제가 동의했습니다. 이후 세부적인 컨셉은 상호 논의하며 설정했습니다.”
그래, 욕을 들어먹더라도 사실대로 얘기해야지.
“그럼 작곡은요?”
“그건, 동화 형님이― 전체적인 작업을― 맡아서 해주셨습니다―”
“전체적인 작업은 제가 했지만 곡 분위기를 설정하는 데는 석준 연습생의 역할이 컸습니다.”
나와 석준의 치열한 책임 공방을 지켜보고 있던 준성은 짧게 박수를 친다.
“이렇게 무대를 잘 뽑아놓고 서로 공을 돌리는 모습을 서바이벌에서 볼 거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분도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이게 좋다고?
“무대 컨셉은 나쁘지 않았어요. 곡도 좋았고. 확실히 지동화 연습생은 작곡 쪽으로 재능이 출중한 것 같네요.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직접 편곡하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와, 진짜 탐나는 인잰데. 저 나중에 솔로 데뷔할 때 곡 하나 주시죠.”
성급한 일반화의 논리다. 작곡한 무대를 고작 두 번밖에 못 보셨지 않은가? 그리고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만약에 탈락하면 나는 이쪽 판에 발 들일 생각이 없으므로, 쉽게 넘어갈 수 있겠군.
“…만약에 데뷔하게 된다면, 물론입니다.”
“자, PD님, 이 화면 나중에 저한테 따로 좀 보내주실 수 있으시죠?”
물론 장난이겠지만, 왜 이리 진심인 것처럼 보이는지. 예전부터 타인의 감정을 읽는 덴 능숙하지 않았으니, 아닐 수도…….
“저 진심이에요, PD님.”
…그렇군.
“하여튼 곡은 좋은데, 전체적인 무대 구성이 좀 모자란 지점이 있긴 해요. 특히 동선이 지나치게 단순해서 무대가 비어 보이는 감이 크고요. 다른 팀은 세 명인데, 여기만 두 명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임을 감안해도 고치는 게 나아 보입니다.”
나는 안무 창작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옆에 있는 위즈니 덕후이자 운석 충돌 이후 최후의 생존 공룡인 석준도 랩 가사만 쓸 줄 알지, 문외한인 데는 매한가지다.
…이럴 때 채하민이 있으면 한 시간만 던져놓으면 알아서 완성해 올 텐데, 아쉽군.
피드백이 종료되고 준성이 내게 다가온다.
“지동화 연습생, 데뷔하면 곡 준다는 거 진짜인 거죠?”
…은근 집착이 심한 타입이군. 타인을 이용해 먹을 줄 아는 성격의 인간에다가, 사회적이고 외향적이다. …즉, 나랑은 상극이다.
“…진짜입니다.”
“동화 연습생은 반쯤 데뷔 확정인 것 같은데 미리 번호 교환할까요?”
“아쉽지만 제가 지금 핸드폰이 없습니다.”
“어유, 그럼 번호만 말해주세요. 제가 저장해 놓을 테니까.”
아니, 귀찮게 대체 왜. 만약에 주기적 연락으로 귀찮게 하는 성격이면 조심스레 핸드폰 번호 바꿔야겠군.
일단 석준한테 민폐가 안 되려면 여기서 적당히 받아줘야겠군.
“…핸드폰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게 내 번호가 준성에게 넘어가고, 준성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섰다.
“형님― 멋있으십니다―”
얘는 또 뭔.
“…뭐가?”
“어떻게 준성 님 앞에서도― 기죽지― 않습니까? 진짜 언제나 생각하지만 너무 멋있습니다.”
저 사람이 무슨 신이라도 되냐? 만약에 신 앞에 서도 기죽을 것 같지 않은데, 나랑 같은 인간한테야 무슨.
“…형님― 저 결정했습니다.”
넌 되도록이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는데.
“…무엇을?”
“저는 형님이― 가는 길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카메라가 안 돌아가고 있는 게 다행이군.
드디어 찾아온 3차 경연 날, 2화가 방영되고 이틀 후에 진행되는 무대인지라, 탈락자들의 팬들까지 뒤섞인 소돔과 고모라가 펼쳐질 예정이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있는 한 여인. 손에는 ‘겨울꽃은 스노드롭이지’라는 인쇄물이 들려있다.
‘지동화, 널 보기 위해 나, 자체 공강 때렸다.’
그녀는 이전에 지동화의 두 번째 경연 무대를 보고 트위터를 깐 뒤, 깨달았다. 그녀는 지금 지동화에게 인생을 걸고 싶어졌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로 했던 아이돌판이지만, 지금 현재 그녀의 전투력은 최고조에 달해, 2화가 방영된 이후 최종 1등을 한 지동화를 향하는 날카로운 댓글에 전투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했다.
‘우리 동화는 잘난 죄밖에 없는데, 왜 지랄들인지.’
그래서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자, 이렇게 자체 공강을 때리고 지동화의 3차 경연을 보러 왔다. 들어보니 3차 경연도 4차 경연이랑 점수 합산해서 탈락자를 정한다니, 4차 경연에서도 와서 투표를 할 필요가 있겠군.
이번에는 관객석 규모가 조금 늘어 250석. 인당 제공되는 표 수는 5장으로, 한 사람에게 몰아줘도 되고, 최대 다섯 명까지 분할해서 줘도 된다고 한다. 그딴 제도가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지동화한테 다 던질 예정이니 상관없다.
그때였다.
“누구 응원하러 오셨어요?”
옆자리에 앉은 이가 말을 걸어왔다.
덕질메이트를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 지동화는 1등, 공공의 적이니 아마 쉽지 않을 거다.
“…지동화요.”
“헉!”
그러자 옆에서 환호에 가까운 탄식이 튀어나온다.
그녀는 재빠르게 눈앞의 여성의 손을 훑는다. ‘지상 최대 토끼의 아이돌 정복기’라는 인쇄물이 들려있다.
‘…채하민!’
지동화에게 유일하게 우호적인 팬덤이 아닌가!
“…채하민 팬이시죠?”
“네! 저희 하민이랑 동화 사이좋아 보이는 거 진짜 보기 좋지 않아요?”
“저도 하민이 꼭 동화랑 같이 데뷔해서 계속 친구 했으면 좋겠어요.”
“따스한 키 큰 토끼랑 차가운 고양이라니, 이미 케미 끝 아니냐구요.”
‘젠장, 이 사람… 나랑 가치관이 잘 맞잖아.’
이제 자신이 아이돌판에 들어왔음을 다시 확신한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
“…트위터 하시죠?”
* * *
무대가 시작되고 이동석 MC가 올라온다.
“…그래서 여러분들 앞에서 연습생들이 펼칠 경연의 이름은! 포지션 경연입니다.”
‘포지션 경연……? 동화는 어쩌라고.’
관객 중 지동화를 응원하는 이들은 다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약간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자, 그럼 전광판으로 포지션 배분을 보시겠습니다.”
“…동화 랩도 했어요?”
“…저도 동화랑 만난 지 2주 정도라.”
“전광판을 보시면! 지동화 연습생의 위치가 의아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VCR을 통해 그 지점에 대해 설명이 나갈 예정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고요. 사전 미니 게임을 통해 정한 순서 먼저 확인하시겠습니다.”
‘동화가 랩까지 잘해버리면… 류이든 말을 반박할 수가 없다.’
신의 ‘실수’라는 워딩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반박해 온 단어지만, 랩까지 잘하면 그녀조차도 실수임을 인정해 버리고 말 것만 같았다.
* * *
# 미니 게임 VCR 중 일부
‘자, 여러분들, 중요한 공지 사항이 있어서 제가 이렇게 연습실에 습격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동석 MC]자막 뒤로 멤버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이 지나가다가, 지동화가 예와 같은 표정으로 냉정하게 이동석을 바라보고 있는 게 잠시 잡힌다.
‘음, 혹시 동화 씨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니요, 뭔지도 모르는데 마음에 안 들어 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잠시 채하민의 인터뷰가 지나간다.
[Q. 지동화 연습생의 표정 해독 가능한가요?]‘아, 사실 제가 다른 사람 표정 같은 걸 신경 써서 보는 버릇이 있어서 가능해요! 다른 분들은 조금 어려워하시더라고요.’
[그렇다면 방금 전 그 얼굴을 해석할 수 있을까?] [Q. 이건 어떤 표정인가요?]‘이건… 놀란 것 같네요. 언제 사진인지는 모르겠는데, 네, 놀란 것 같아요. 여기 눈썹 약간 올라간 거랑 입 약간 벌어진 거 보이시죠. 동화가 놀랄 때 이런 표정이에요.’
[저희 제작진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본인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Q. 사실인가요?]‘(끄덕)’
지동화가 말없이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과 함께 [진실]이라는 자막이 먼저 떨어지고, [확인]이라는 자막이 나중에 떨어진다.
* * *
지동화에게 인생을 걸고 싶어졌던 그녀는 VCR을 다 보고 나서 깨달았다. 지동화는 인생을 걸어도 부족할 정도로 위대한 인물이다.
미니 게임으로 진행됐던 퀴즈 쇼에서 넌센스 퀴즈와 상식 퀴즈, 그리고 고난도의 퀴즈까지 거의 모든 문항을 맞히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이때까지 아이돌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꼈다.
‘저런 뛰어난 인재를… 아이돌 하게 둬도 괜찮은가 싶은 배덕감이… 너무 달콤하다…….’
학문을 했으면 학문 분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지동화가 학문의 길을 저버리고 자신의 꿈을 위해 아이돌을 하겠다는 선택을 말리지 않고 응원하고 있다니, 거기서 오는 배덕감이 그녀의 심장을 두드린다.
‘미쳤나 보다, 진짜. 별게 다 설레고 난리야, 진짜.’
한평생 바람직한 생활만 해오던 남자가 사실은 집에서 몰래 작곡 공부를 하고 있고, 부모님은 그걸 반대하시는데, 옆에서 홀로 그런 꿈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 된 기분이란… 황홀하다.
그녀가 지동화로 인한 심장의 격통에 몸부림치는 동안, 무대가 시작된다.
처음은 채하민이 있는 조의 무대.
채하민은 올드스쿨 비트가 흘러나오자 건들건들 리듬을 타며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곤 곧 비트가 쌓일 대로 쌓여 하이라이트에 올라섰을 때, 자신이 맡은 락킹 장르의 여러 동작을 빠르게 연속해서 선보일 때는 저절로 차오르는 흥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거기에 덤으로 순둥순둥한 얼굴에 신나는 표정까지.
실력이 좋아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재롱 잔치 보는 할머니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을 거다.
하지만 실력이 좋기 때문에 나오는 것은 그저 감탄뿐, 저 춤사위를 보고 있자니 춤으로도 먹고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채하민의 팬을 바라보았다.
“하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돌고래를 방불케 하는 샤우팅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채하민은 이쪽을 바라보더니 두 손으로 원을 만들어 크게 베어 무는 시늉을 하곤 하트로 만들어 쏘아댔다.
그 하트에 맞은 채하민의 팬이 쓰러질 듯한 위기감을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채하민의 뒤쪽에서 등을 밀고 당당하게 류이든이 걸어 나왔다. 류이든이 밑을 두 손으로 쾅 내려찍으며 손으로 허공을 붙잡자 신났던 곡의 분위기가 약간 변주돼 재즈풍으로 바뀌었다.
관능적인 춤사위를 기반으로 한 어반 댄스를 선보이는 류이든은 일단 타고난 피지컬과 강렬한 춤 선 덕분에 분위기를 살리기 어려운 안무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재킷을 벗어 민소매를 입은 등을 보여주는 엔딩은 시각적 만족도가 높았다. 그에 반응하듯 류이든 팬들의 전투적 환호가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곧 이어진 김현진의 무대는 그런 류이든의 등을 천박하다는 듯이 바라보곤 손을 우아하게 휘저어 왈츠풍의 음악으로 곡을 바꾼다.
그리고 우아하게 이어지는 현대 무용은 전공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이어졌다. 삼박자의 리듬감은 살리면서도 사이사이 동작을 능숙하게 연결하는 것은 감탄을 일게 했다.
‘쟤 지난번 등수가… 7등 아니었나? 왜 이렇게 잘하지.’
그게 사실 채하민의 미칠 듯한 교육의 효과였지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김현진이 엔딩 장면으로 류이든을 안고 옆으로 넘겨 얼굴을 마주 보는 안무를 선보인다.
‘공주가 우락부락한 머슴을 휘어잡는 느낌이네.’
그녀는 그 언밸런스함이 웃겨 처음으로 지동화가 아닌 다른 이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후 곡은 신나는 파티 음악으로 바뀌어 3명의 군무와, 중간중간 재치 있는 포인트 안무로 시원하게 전개되었다.
세 명 다 잘하니 보는 사람도 덩달아 엉덩이가 좌석에서 약간씩 들썩이게 됐다.
이대로 댄스 대회를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채하민이 공중 뒤돌기를 하고, 그 밑으로 김현진이 튀어나와 다시 마지막으로 안무를 선보이며 곡이 끝났다.
‘이 정도 실력이면, 동화랑 같이 누가 데뷔해도 이상하진 않겠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생각에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동화가 데뷔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당연한 진리였다.
* * *
‘여기는… 앞 팀이랑 조금 비교가 되네.’
웬만하면 다른 연습생을 욕하고 싶지 않았는데, 두 번째로 무대를 선보인 팀은 조금 과했다.
그나마 이현재가 탈아이돌급 보컬 실력으로 다른 사람들 멱살 잡고 캐리한 격이다. 그런데 음이 불안정하고 소리가 불필요한 데서 떨려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하는 다른 이들의 연속된 실수로 무대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윤성호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원래 무대는 한 명이 조지면 다 같이 무너지는 법이다.
‘차라리 이현재가 노래를 다 하고 나머지는 코러스나 서는 게 무대는 더 볼만했겠다. 특히 박우진 쟤는… 좀 그렇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2차 경연에서 그런 이현재와 보조를 맞춰 후렴을 불렀던 지동화를 떠올린 그녀는 다시 한번 벅차오르는 마음을 느꼈다.
‘내 아이돌은 작곡, 가창, 춤 모두 실력이 좋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번 학기 자신의 학점이 C0로 통일된다 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 *
그렇게 찾아온 랩 포지션 팀의 차례. VCR이 틀리기 전에 지동화와 석준이 먼저 나와서 무대인사를 한다.
‘……!’
지동화, 입다, 한복? 갑작스러운 쇼크에 언어 능력이 퇴화한 그녀의 입은 서서히 벌어졌다.
춤추기 편하게 개량된, 약간은 긴 저고리를 입고 눈가에 붉은색 메이크업을 한 지동화의 모습은 신라의 화랑이 다시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있는 비주얼이었다.
그녀는 그 비주얼에 정화되는 감각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뜬다. 무대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눈을 감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무대가 끝나고 죽는 한이 있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눈에 담는다.’
그녀의 결연한 다짐과 함께 본격적으로 무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