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7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70화(170/343)
170.
규칙. 기지생과의 대화에서 언제나 강조되던 것이자, 기지생이 나를 위해 몇 번이고 어겨주었던 것. 한 집단이 유지되기 위해선 규칙이 필요하다.
추측하건대, 모종의 이유로 저놈이 일하는 직장에 새로운 직원이 필요했을 테고, 그 새로운 직원 후보로 예언이 선출됐나 보다. 그래서 미리미리 예언에게 가능성의 규칙을 학습시켜서 거기에 순응하도록 만들려는 개같은 심보가 아닐까.
여러 단서에서 도출했다지만, 사고의 비약이 심해서 그저 생각만으로 갖고 있던 추측. 더 정확히는 의심. 그러나 의심은 기지생의 침묵으로 인해 사실이 되고 말았다.
‘아… 시공간 교란 폭탄 같은 거 만들어서 내가 터트리고 싶은 기분이군.’
기지생이 예전에 그 말을 했을 때는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는데, 이제는 그 기분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동의합니다! 망할 노친네들!]그러게, 망할 노친네들. 죽은 것들이 가는 것 같던데, 한 번 더 죽여 버리고 싶어. 본인들도 한때 인간이었으면서, 인간의 인생을 대체 뭐로 본단 말인가.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서 삶에 가치가 없는 건 아니겠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모두 현재처럼 체험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현재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현재가 자신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게 아주 지루한 영화를 보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심지어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라서 감정 이입은 될 대로 돼서 고통스러운데, 그 감정이 카타르시스로 이어지지 않는 쓰레기 같은 연극.
‘엿 먹이고 싶어. 어떻게든.’
눈앞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예언을 놓아주니 뭐니 중얼거리고 있는 준성의 입에도 벽돌을 내리치고 싶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방패가 되어주기에는 무지가 낳은 역사적 비극이 지나치게 많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만 예의를 잊도록 하자.
“선배님, 제정신이십니까.”
화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낼 수 없는 인간이 있으니까, 단 한 번만, 대신.
* * *
기지생은 손을 부들부들 떠는 지동화의 모습을 모니터 너머로 관찰했다. 천천히 자율학습형 AI 강아지인 자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왈!”
“그래, 저 인간, 엄청 빡 돈 것 같네, 자와야.”
“왈! 왈왈!”
“맞아.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 우리 자와, 귀여워라. 위로도 다 해주네. 나한텐 심바보다 네가 더 소중하지.”
기지생은 미소 지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붕 떠서 자와에게만 의존한 채 살아가는 시간은 괴롭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자와의 AI가 완벽한 자율형이라 기능론적으로 개와 다를 바가 없어서 버틸 수 있었다. 자와조차 자신의 예상대로만 움직인다면, 감정을 지닌 채로 살아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동화의 추측은 꽤나 잘 들어맞았다.
규칙. 어떤 집단이든 집단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 시운관은 기본적으로 여러 차원에서 세계에 대한 높은 이해를 얻어낸 이들로 운영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새롭게 생기는 차원의 수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규칙에 순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 기나긴 삶을 가능성대로만 흘러가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의지조차 박살나 버린 효율적인 인형을 길러내는 것.
“처음에 들었을 때는, 내가 감정이 메말라서 그런가… 남일인데 뭔 상관이야 싶었거든.”
하지만 이제는 기지생도 지동화의 심정을 알 수는 있었다. 감정의 편린이 생겼으니까.
“음, 어떻게 할까, 자와야. 한 번 엿 먹여?”
“왈!”
“그렇지? ‘내’가 저렇게 분노하는데 정작 내가 가만히 있기는 조금 그렇지. 일단 시운관에 있는 초끈부터 다 조져볼까? 시설들 다 붕괴하고 재구축해야 할 텐데.”
그러고 보면 예전에 크로노스 영감한테 시달릴 때 최후의 대비책으로 만들어둔 게 있었다.
“왈! 왈왈!”
자와는 신이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폴짝폴짝 뛰었다.
“그렇지. 그렇지. 세상의 규칙 따위 알 바 없지? 내 시설만 남아 있으면 조금 이상하게 보일 테니까 몰래 공간 조금 접어 두고.”
“왈왈!”
“어디까지나, 사고인 거야. 그렇지, 자와?”
‘나는 아무것도 안 한 거란다.’라는 뜻을 담아 기지생은 미소 지었다.
자와는 자랑스럽게 몸을 펴더니 입에 기지생이 만든 테러 병기를 입에 물었다. 작동하면 3분 내로 시운관 시설 전체를 파괴할 테러 병기다. 어차피 죽지도 않는 관리자들은 알아서 잘 생존하겠지만, 아마도 지구 기준 일주일은 기절해 있겠지.
“가동시키고 30초 내로 돌아와야 돼. 그래야 다른 놈인 척 누명 씌울 수 있거든.”
“왈!”
우리 자와는 주인 닮아서 성격 꼬여있는 것까지 똑같구나!
기지생은 미친놈처럼 웃었다. 아, 그래, 한 번쯤은 뒤집어엎고 싶었어. 미리 준비해둔 덕분에 누명 씌우기도 딱 좋다. 아아, 설레라. 누구를 엿 먹일까.
한동안 우리 버그가 자신의 세상의 가능성을 다 조져놔도, 기지생 본인도 일주일간 기절한 척하면 그만이다.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우리 버그가 예언을 돕는 동안 새로운 사람을 하나 정해서 실험체로 쓰면 그만이지만, 우리 버그는 그런 걸 원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우리 버그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동안 시운관 전체를 마비시켜 버리자. 최소 한 달, 길게는 일 년 정도. 정리가 끝나고 나면 상황은 이미 끝나 있을 거야.
그래, 너무 이성적으로만 살면 안 돼. 가끔은 감성이 이끄는 대로.
* * *
준성은 내 짧은 물음에 사고가 멈춘 듯이 굴었다. 이럴 때일수록 이성적으로, 침착해야만 한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은 걸러내되, 사실에는 벗어나지 않게,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목적은 이룰 수 있도록.
한마디, 한마디 주의깊게.
“탈퇴를 말하는 게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도 그러실 겁니까?”
“…보통 그런 중한 사항은 자기 의지대로 말하지 않나?”
“혹시 모릅니다. 선배님도 주변에 가끔 원치 않는 선택을 하는 인간을 많이 보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많이 봤다. 세상의 밑바닥에 있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돈이 없다는 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그나마 나은 것’조차 없어서, 원치 않아도 선택하는 경우는 흔하다. 예언과는 경우가 다르지만, 이 정도 논리적 오류는 범해도 좋다.
“…그렇지. 가끔 있지.”
꽤나 영민한 우리 TOT의 리더님이 멍청이 같이 구는 것도 다 지랄 맞은 저 윗분들 때문일까. 아니라면 벽돌이 시급하다.
준성은 표정이 굳어갔다. 무언가 고통스럽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저런, 하필이면 이렇게 파고들기 좋은 순간에.
“뜯어말리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도 떠난다면 그건 자신의 뜻이겠지만.”
준성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 왜 이렇게 아까부터 머리가 아파.”
“뜯어말리셔야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으으. 윽.”
고통의 이유야 예언의 경우에서 확인했다. 그러나 고통 따위, 준성이 나중에 겪을 후회랑 비교하면 가볍지 않으려나.
“뜯어말리시겠다고, 부디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어차피 고통에 정신이 몰려 있는 상황. ‘왜 네가 그렇게까지 해?’라는 의문이 들 시간은 없을 거다. 가능성의 세부적 규칙 따위는 모르지만, 내가 버그라면, 그리고 그런 버그와 약속한 거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고작 이딴 걸로 가능성이 뒤틀릴 거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최소한 예언의 편이 하나쯤은 있어야 옳게 된 세상 꼬라지일 것이다.
“아, 자, 잠깐만.”
“예언 선배는, 선배님이 말려 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예언의 생각인 척 말하고 있지만, 내가 지어낸 거짓말이니까 거부감 따위는 없을 거다. 준성은 머리를 다리 속에 구겨 넣었다.
원래 극약처방은 고통을 수반하는 법. 아픔도 약으로 쓸 수 있으면 나쁘지 않다.
“약속, 해주셔야 합니다.”
나는 천천히 준성의 등을 두드려 주며 속삭였다. 고통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다. 지독한 고독 속에서 인간은 솔직함을 얻기 마련이다.
“예언 선배를, 아끼지 않는 겁니까? 말리지 않고 싶으신 걸까요?”
속삭이는 소리가, 반발심을 자극했다. ‘아끼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부정은, 뒤이어 오는 질문인 ‘말리고 싶지 않느냐’라는 의문에도 부정을 답하게 유도한다. 질문 두 개가 하나로 엮여 그 모든 것에 반발심이 든다.
가능성이 강제하는 것에 얼마나 저항할 수 있을까. 되도록 인간의 비합리적인 충동과 반발심,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 놈이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소리에 대한 분노가 가능성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기왕 존재 자체가 버그인데, 잘 활용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예언 선배.
“언제는 가장 아끼는 동생이라더니, 혓바닥만 놀리는 재주가 있으신 겁니까.”
준성은 머리를 부여잡다가 소리쳤다. 악에 받쳐서, 머리를 가득 채운 고통을 치워내기 위해서.
“그만해! 아낀다고! 뜯어 말리면 될 거 아냐!”
놀랍게도 그 말을 뱉어낸 순간 준성을 위협하고 있던 고통이 사라졌는지 풀썩 쓰러지듯 소파에 누웠다.
망할, 이렇게 선후배 관계 하나를 파탄냈군. 입안에 씁쓸한 맛이 맴돌았다. 데뷔 초부터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인데.
“…음,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다른 사람은 이런 적이 없어서, 이렇게 고통스러워할지는 몰랐다. 아마도 예언이랑 얽힌 일이라 이런 거겠지. 어쨌든, 비록 예상치 못했지만, 때마침 찾아온 고통에 인간의 정신이 유약한 틈을 파고들기 좋아 보였다. 그러나 너무 비인도적인 처사 아니었을까. 도덕적으로 이게 옳은 일은 아닐 텐데.
쓰러진 준성을 보자니 마음이 조금 심란해졌다. 양심의 통증은 꽤나 심각한 일이다. 목적이 아무리 선해도 그 수단이 선하지 않으면 헛짓거리라는 칸트의 말이 양심 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기분이다.
일단 예언 쪽으로 문자나 한 통 보내 볼까. 그쪽도 고통에 쓰러졌을 확률이 높아 보이지만.
나는 준성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망할, 뜨개질이나 해야겠군.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실 컴퓨터 앞 편안한 의자에 몸을 누이듯 앉았다.
목도리는 꽤 긴 시간 동안 떴지만, 한 코씩 신경 써서 뜨느라 구십 퍼센트 정도밖에 완성되지 않았다.
비록 이번 일로 준성과의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더라도, 나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기에 달게 받아들일 것이다. 관계를 맺고 끊는 데는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지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목도리를 뜨고 있자니,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여쭤 봐도 될까요?
‘음, 소중한 선배 한 명을 잃었습니다.’
나는 아무 답장도 보내지 않고 그저 핸드폰을 닫았다. 내가 연락 두절되는 일은 갑자기 내리는 여름철 소나기보다도 잦은 일이니까, 괜찮겠지.
뒤척이는 소리. 그리고 옷깃이 이불과 스치는 소리. 아, 때가 왔나 보다.
“…동화 후배?”
망할.
“네, 선배님.”
나는 준성 쪽을 바라보지 않고 계속 뜨개질을 할 뿐이었다.
“……대체, 뭐였어?”
“사랑하는 선배님을 위한 조언이었습니다.”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 심화편 16강. 상대적으로 친한 상대방한테 실수했다 싶을 때는 일단 ‘사랑한다’라는 말을 덧붙일 것.
안 통하면 류이든 머리에 벽돌 내리치러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