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7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71화(171/343)
171.
“사랑하는 선배님을 위한 조언이었습니다.”
뜨개질용 바늘을 양손에 쥐고 분홍빛 목도리를 짜내려 가고 있는 지동화는 너무나 무덤덤해 보였다. 차라리 아까 전에-사실 아까 전인지도 불분명하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한 계속해서 지독한 두통이 이어지리라고 협박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무엇이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견뎌보려 해도 견딜 수 없었던,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통을 터뜨리려 했던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던 두통.
그리고 그 사이로, 자신이 마치 구원줄이라는 듯이 유혹해 왔던 목소리. 말투, 억양, 쉬는 타이밍까지 모든 것이 날카롭게 틈을 파고 들어왔다. 모종의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 감각보다도 편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커졌을 때쯤, 말 그대로 ‘예언을 말리겠다는 다짐’을 하는 순간에 순간적으로 고통이 사라졌다.
“대체, 뭐였냐니까, 도, 동화 후배.”
공포스러웠다. 무슨, 어떻게.
비합리적이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일이다. 마치 자신의 머리를 엄습했던 두통이 지동화가 만들어낸 것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원하는 바를 이루는 순간에 사라진 두통은 납득하기 어려우니까. 지동화가 타인을 고문할 정도로 냉혈한 인간이었나 하는 의문은 차후로 미뤄둬도 괜찮다. 지금은 해소해야만 하는 한 가지 의문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두통은, 대체, 어떻게?
“음, 이게, 설명 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지동화는 천천히 눈을 감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척하더니, 약 십 초쯤 흘렀을까.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던 준성을 향해 안타깝다는 눈초리로 입을 열었다.
“일단, 약속은 이행한다고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준성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천성이 이성적인 그였고, 일군 그룹의 리더에게 일단 필요한 것은 눈치와 어느 정도의 정치력이다. 류이든에게 사회성 특강을 해줬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분노보다는 의아함이 앞섰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거지.
“그게 그렇게 중요해?”
“중요하지 않지는 않습니다. 그럼 저도 질문 하나, 예언 선배님이 중요하지 않으십니까?”
중요하지 않긴. 연예인이라는 탈을 쓴 준성이, 유일하게 가면을 내려놓고 보는 인간 중 하나다. 멤버들 모두 소중하지만, 유독 예언은 더 신경 쓰는 동생이고, 의지하는 동생이기도 하다.
지동화는 미소 지으면서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지금은, 머리가 아프지 않으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뭔데, 젠장. 무서워. 악마냐고. 협박인가.
생각이 단발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인 일이다.
“약속한다니까, 나 진짜 화낸다, 동화 후배.”
잠시 의아한 듯 스쳐 지나가는 표정을 보고 준성 역시 의아함을 느꼈다. 자기가 하는 게 나쁜 일인 줄 모르고 행하는 어린아이를 보는 심정이었다. 협박하는 게 아닌가, 하는 순진한 반성까지 들 정도였다.
냉정해져라, 이준성! 상대는 뭔지 모를 고통으로 타인의 뇌를 흔드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는 악마 같은 후배. 여태까지 쌓아놓은 정은 무시한 냉혈한. 준성, 본인이 동화 후배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면서도. 며칠에 한 번 문자로 안부 인사를 보내고, 업계 관련 질문이 있을 때면 성심성의껏 답했고, 자신의 치부도 활짝 열었었는데.
서운함과 아주 옅은 슬픔이 준성을 휩쓸었다. 그러면서도 ‘동화 후배면 그런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지막 잎새도 마음에 품고 있다.
“절대, 비밀 지켜 주셔야 합니다.”
* * *
컴퓨터는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 애초에, 기계는 너무 어려웠다. 먼 훗날의 ‘나’는 컴퓨터 쪽 공부를 많이 했을지 몰라도, 일단 버그가 뭔지도 나는 잘 모른다.
[화이팅! 우리 버그! 사랑해요! 우리 버그!]닥쳐.
하지만 컴퓨터를 몰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은 있다. 버그가 퍼진다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조질 수 있다는 걸. 준성이 쓰러져 있을 때 뜨개질을 하며 깊은 고민을 끝마쳤다.
어떻게 하면 기지생 제외 나머지를 모두 엿 먹일 수 있을까? 기지생에게 침묵 또는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통해 여러 경우의 수를 검토한 결과, 지금, 어떻게든 준성을 조져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기지생이 응원해 주는 이상, 이런 종류의 일에서 적이 없다.
[저도 엿 먹이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규칙 따위! 원래 인간이라는 집단은 스스로 만든 규칙 속에서만 자유가 억제되어야 하는 법입니다! 애초에 지금 가능성이 우리 사랑스러운 버그 덕분에 기진맥진했으니까 지금이 기회입니다! 한 사람한테 더 버그를 심어 봅시다! 자, 따라해 볼까요! 엿 먹어라, 가능성!]미친놈. 제발 곱게 늙어. 나는 자괴감을 들게 만드는 기지생의 역한 메시지를 무시했다. 이미 예언의 허락은 맡았다. ‘말해도 됩니까?’라는 짧은 문자를 예언을 향해 보냈으니까. 목적어는 모조리 생략했지만, 아마도 알아 듣겠지.
이후의 문자 내역은 단순했다.
―미치셨어요 작곡가님? 진심이고?
‘진심입니다.’
―믿을지는 차후로 두고 작곡가님을 미친놈으로 볼텐데?
‘믿을 만한 상황을 깔아둬서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쩐지 기억 안 나는 부분이 많다 했더니……. 사실 나보다 네가 더 똑똑하니까, 일단 믿을게 기억이 안 나니까 선택을 못 하겠거든.
“비밀을, 지켜달라고?”
“사랑하는 준성 선배님께 재밌는 이야기를 해 드리려 하는데, 시간 조금 괜찮으십니까?”
류이든, 믿는다. 내 사회성을 만들어준 네가 틀렸다면 나는 소중한 선배 한 명 잃는 거고, 너는 소중한 목숨 하나 잃는 거야.
장황한 설명의 시간, 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요약을 꽤 했기 때문에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준성은 모든 설명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보기 좋게 일그러져 있지 않을까.
“그걸 믿으라고?”
저런, 류이든, 오늘이 네 마지막 날인가 봐. 아쉽게도 블로센스는 4인 체제로 전환하는 걸로.
“그럼, 그 고통은 설명할 수가 없잖습니까.”
내가 입에 올린 진실의 범위는 0에 수렴했다. 단순한 사실 하나는, 예언이 정해진 대로만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려 할 때는 일종의 괴현상이 발생한다는 것.
“그걸 예언이가… 말해 준 거야?”
“제가 추측도 많이 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나름대로 한국대생입니다.”
이럴 때 한국 사회의 대학이 갖고 있는 학벌주의에 감사하게 된다. 대충 이상한 주장도 은근하게 들을 만한 소리로 바꿔 주는 기적의 단어.
“…왜 나한테는, 하, 못 말한댔지.”
“정확히는 말할 수는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저를 못 믿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못 믿으셨겠지만.”
나는 활짝 미소 짓고 준비해둔 말을 이었다.
“예전에, 저는 왜 예언 선배를 믿을 수 있는지 물어봤던 기억 나나요.”
“어.”
준성은 여전히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는 그 영향을 안 받아서 그렇습니다.”
침묵.
“제 계산으로는, 모든 진실을 받아들인다면, 아마도 예언 선배를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말을 잠시 쉬었다. 준성의 몸이 흠칫 떨렸다.
“아니면, 다시 그 고통을 드리러 제가 꾸준히 찾아갈 예정입니다. 시간이 될 때마다 찾아가, 오늘처럼 고통이 찾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굳게 약속해 주지 않으시면, 언제까지고, 끊임없이 오늘이 반복될 것입니다.”
십벌지목(十伐之木)이라는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라는 문장은 인디언식 기우제랑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될 때까지 하면 될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시도하다가 죽을 수도 있고, 그 전에 파산한다든지 제어 불가능한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진실을 외면하는 것 중, 최소한 인간은 전자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고통은 살에 새겨지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기절할 정도의 고통을 맛봤다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차피 당신이 이 정도로 영향을 끼친 이상, 가능성이 준성도 오류로 인식해서 건들지 못할 텐데 말입니다!]하지만, 말로 어떤 의지를 표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내가 말해준 것과, 준성이 자신의 입으로 ‘믿는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종교인들이 뱉는 기도문은 그 자체로 신앙심을 끌어 올린다.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인간은 혼잣말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는 하는데, 그로 인해 죄책감이 누그러드는 경향이 있다. 괜히 수많은 철학자가 ‘언어’에 집착한 것은 아닐 터이다.
비록 가짜 위협을 통해 뱉은 말이라도 여러 고민이 준성의 머릿속으로 기어들어올 틈을 언어로 만든 벽돌이 막아 줄 것이다.
[너무 비인도적입니다!]결과론적으로 선하잖아. 예언이 겪을 고통을 생각해 봐.
[그렇다고 준성을 수단으로 삼다니! 칸트가 울 겁니다!]대신 벤담은 나를 사랑해 주겠지.
[세상에! 사실 저도 공리주의를 좋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지금 한 짓을 합리화할 수 없거든요. 아아, 죄책감이 사라지는 기분입니다.]안 느꼈잖아, 그딴 거.
[…눈치가 빨라서 재미가 없어졌습니다.]잠시 멍하니 허공을 보다 고개를 내렸다.
“믿음을 약속해 주는 것이 더 나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아, 양심이 아파라. 어머님이 보셨다면 고개 숙이고 실망하실 것만 같군. 예언, 당신을 위해 참 많은 헛짓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준성이 이상했다. 고개를 파묻은 채 가만히 있던 몸이 천천히 떨리고 있었다.
‘아, 망할.’
공포가 커지면 울음이 나오지. 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몸둘 바를 모르겠다. 손을 올렸다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았다. 위로할 수도 없고, 어떡하지. 사람을 공포로 울린 건 살면서 처음인데.
살면서 처음으로 뇌가 일하기를 멈췄다. 회귀했을 때도 이 정도로 멍청해지진 않았을 텐데.
“…예언아.”
울음 속에서 들리는, 단말마 같은, 신음 소리에 차라리 가까운 한마디.
“예언아…….”
아, 공포로 우는 게 아니구나.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장 아파, 망할. 이현재랑 책 읽고 싶어. 성정에 안 맞는 짓을 해 버렸다. 예언과의 계약을 명목으로, 실질적으로는 예언에 대한 안타까움을 기반으로 이런 짓거리를 해버렸지만.
나는 타인을 찍어 누르는 데에는 별로 재주가 없나 보다.
[잘하시던데요?]재능과 지향이 불일치 하나 보네, 망할 기지생아. 어머니의 악보에 적힌 메모로 판단해 보면, 어머니가 물려준 재주고, 어머니가 물려준 지향이다.
“예언이가…….”
준성의 울음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아마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예언의 모든 인생에 대한 연민이 차올랐지 않을까. 어쩌면, 가장 가까웠던 자신이 알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차올랐을 수도 있고. 후회, 분노, 자괴감, 연민, 그 모든 감정의 총체가 준성을 뒤흔들고 있겠지.
아, 일단 목표는 완수한 것 같은데, 뒤처리가 문제다. 저걸 어쩐담.
일단 기지생.
…결과 브리핑.
[3초 후쯤에 문자 한 통 올 겁니다.]저런.
그리고 3초 후, 문자가 아니라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어머, 가능성이 뻗어버려서 예측에 실패!]뭐야, 왜 이렇게 연약해. 나보다 체력 부족한 거 같은데.
[당신보다 강하지만, 당신 주먹이 예상보다 훨씬 세서 그런 겁니다!]쉿. 알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