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7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72화(172/343)
172.
도망 치고 싶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 책임이므로 버티고 있다.
“예언아!”
부디, 나가서 울어 주시겠습니까.
이번엔 핸드폰 화면이 밝아졌다. 부재중 8통, 문자 40개.
하하, 조졌군. 이렇게 큰 결과를 낳을 줄은 몰랐는데. 정신적으로 나보다 어린 예언에게 친구 하나 만들어준다는 생각이었는데. 목화가 반장에 뽑혔을 때 ‘햄버거는 꽤 비싼걸’이라고 생각했던 수준과 다를 바가 없는 마음가짐이었다.
틀려 처먹었던 거군, 나는 대체.
“…선배님.”
“흐어. 으.”
저런,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니 나가서 예언 선배의 폭주를 막아주십시오. 이제 진정으로 믿을 수 있게 되었으니 잘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시 울리는 전화 소리.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사랑하는 선배님.”
류이든, 몇 번이고 믿어.
―…혹시 약을 맞으셨나요? 아니면 누가 벽돌로 머리라도 내리쳤어요?
“진심이랍니다.”
―일단… 무슨 일인지 설명 좀.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친구를 한 분 만들어드렸습니다.”
―……준성이 형은 원래 친군데.
“이제 다릅니다.”
―하, 씨. 고마워 죽겠네, 진짜.
“지금, 자신의 의지로 말씀하고 계십니까?”
―어, 지금 또 굉장히 낯설어. 준성이 형이 폰을 안 봐서 그러는데, 잠시 전화 좀 바꿔 줄 수 있어? 이게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당장 말해고 싶거든.
“그럼 대화 마치시고, 회사에 재계약할 거라고 말씀도 전하고 오시면 좋겠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준성을 흘깃 쳐다봤다. 눈물이 옅게 흘러내린 얼굴로 이쪽을 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저 상태에서 대화를 하도록 하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지만, 머리를 무리해서 썼더니 기력이 부족했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라는 채하민식 사고방식이 머릿속에 들어차며,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을 넘기고 말았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은 이렇게나 정확하다.
* * *
울고 있는 준성이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통화를 하는 동안, 지동화는 침착하게 의자에 누웠다.
―그래서, 기지생.
[네?]―너는 무슨 개짓거리를 한 거야.
[어머, 눈치 채셨다니!]―공리주의가 좋을 정도면 대체 무슨 헛짓을 한 거야.
폐허가 된 공간 위에 자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책상다리로 앉은 기지생은 활짝 웃었다.
“자와야, 어떻게 답할까?”
“왈, 왈!”
“답하지 말고 무시하자고? 주인님 마음을 제일 잘 알아, 우리 자와.”
고독 속에서 미쳐가는 기지생. 세상 밖에서 세상의 가능성에 개입하는 건 부담이 크지만, 버그로 가능성 자체가 무너져 내렸다. 예언을 토대로 세상의 규칙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었기에, 예언의 가능성에 너무 큰 개변이 발생하면서.
“아, 엿 먹였다.”
동생과 이별하고 긴 세월을 홀로 살면서, 철학은 집어치우고 과학에 모든 걸 바쳤던 세월. 사과라는 단순한 선택지를 버리고, 모종의 광기로 시간 역행의 가능성을 탐구했던 비합리의 극치였던 놈. 벌어둔 돈으로 미국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이후 교수로 일하며, 그와 동시에 학계에서는 돌아이로 불렸던 사람.
지금의 지동화와는 너무나 다른, ‘지동화’의 삶이었다. 그 삶의 끝에서 가능성이라는 걸 마주했던 심정은 어떠했는가. 자신의 삶이 역했던 모든 원인이, 고작 정해진 규칙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지동화’는 무엇을 느꼈는가.
“기억이 안 나네.”
아무것도 없는 공간. 문자 그대로 공허한 공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어떤 마음으로 가능성 개변을 꿈꿨을까. 그리고 예언과 지동화를 중심으로 가능성을 엿 먹일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마음으로 테러 무기를 만들었을까.
“감정이 기억이 안 나, 자와야.”
그리고 지금, 가능성이 드디어 자신이 관리하는 세계에서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면서, 자신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그걸 알 수가 없어서 문제다. 세계의 진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사람 중 하나인데, 고작 자기 기분조차 알 수가 없다니. 이 바닥이 다 이 판이다.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세상을 관리한다고 설치는 곳. 한때 인간이었던 것들이 오랜 세월에 무뎌져, 자신의 위치에 심취해, 인간성을 잃어버린 세계.
다 한 번쯤, 크게 엿 먹여 보고 싶었어.
그래서 지금, 그걸 완수한 자신은 과연 어떤 기분인가.
“왈!”
자와는 갑자기 상념에 빠진 주인을 위해 아무런 침도 나오지 않는 혓바닥으로 손을 미친 듯이 핥아댔다. 기지생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미소를 흘렸다.
“…토끼, 여우, 공룡도 한 마리씩 만들어야겠어.”
인간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는 없는 세계, 유일하게 인간에 가까워져 버린 기지생은, 스스로 정을 붙일 동물들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위험한 일 한 건 아니지, 기지생.
쓸데없이 정만 많아서는, 자기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살아온 자신을 마치 형이라도 된 듯이 걱정하는 꼴이다. 기지생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자와, 저기 있는 저 인간은 나랑은 달라질 것 같지?”
“왈…….”
자와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며 답했다. 똑똑해라. 그나저나 큰일 났네. 저 인간이 여기에 올 때쯤 되면 나는 소멸하겠어.
“괜찮아. 저 인간이 또 해결해 주겠지.”
자신은 대책을 찾지 못했지만, 소멸되기 전에 데이터만 넘겨주면 어떻게든 되겠지. 시간선은 꼬일 대로 꼬였고, 이 모든 게 자신이 선택한 일이다. 애초에 지동화의 시간선에 손을 댈 때,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도 하다.
과거가 달라지면, 그 미래는 동기화되다가, 정도를 넘어서면 소멸하고 마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다. 그래서 다른 관리인들이 가능성에 그렇게 집착하는 거겠지.
어차피, 몇십 년 안으로 해결할 수는 없어서, 기지생은 그저 웃었다.
“자와야, 친구 만들어줄게.”
“왈…….”
“오, 우리 자와가 은근히 주인 생각을 많이 하네.”
자와는 계속해서 자리에 누우며 애교를 부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지생은 상념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그래, 됐다. 미련은 없어졌다.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면 될 것 같다. 이 정도면 영생을 살았지.
* * *
“동화야, 왔어?”
작업실에서 돌아오니 채하민이 얼굴에 웬 초록색깔의 기괴한 물질을 얼굴에 묻히고 나를 맞이해줬다. 뭔데, 너.
“아, 이거 피부 관리하라고 이든이 형이 나눠줬어. 너도 여기 앉아 봐봐, 해줄게.”
음, 그러고 보니 슬슬 피부 관리도 할 때가 된 것도 같다. 세수를 하고 나서 채하민의 침대 아래 양반다리로 앉자 채하민이 질척거리는 녹색 덩어리가 든 접시와 붓을 들고 왔다.
“멘탈 관리도 된대.”
“…그거 마약이라도 돼?”
대마초를 갈아서 얼굴에 붙이기라도 하나.
“어, 나도 잘은 모르는데, 무슨 향이 좋아서 안정된대.”
너 지금 쓰고 있는데 전혀 안정된 상태가 아닌데, 하민.
잡설이 길었지만, 어쨌든 채하민이 붓으로 얼굴에 녹색 덩어리를 발랐다. 망할, 질감 이상해.
“그래서, 뭐하고 왔어, 동화야?”
그러게, 나 뭐하고 왔니, 하민아.
“…준성 선배랑 대화?”
“왜 의문형이야.”
이해가 안 되지? 나도 잘 안 돼.
나는 방금 전의 상황을 떠올려봤다. 전화하러 나갔던 준성이 돌아오고 나를 껴안고 감사하다고 미칠 듯이 울부짖었던 것. 그를 진정시키고 예언의 전화를 다시 받았을 때, 그쪽조차도 울면서 감사하다고 소리치고 있었던 것.
내가 사회에 대해 잘은 몰라도, 최소한 한 사람을 협박하고 공포심을 심고 위협한 게 감사 소리를 들을 짓은 아닐 텐데. 물론, 결과론적으로 좋은 짓일지는 모르지만, 준성이 나를 멀리하는 것까지는 감수할 생각이었는데.
“음, 뭔가, 감사를 받을 짓을 했나봐.”
혹시 모르지. 고통을 즐기는 편이실지도. 나는 그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성을 지니고 있다.
“와…, 동화, 너는 계속 대단한 일만 하네.”
“너도 대단한데.”
“에이, 낯간지러우면 꼭 빈말하더라.”
“낯간지러운 건 맞는데.”
네가 펴 바르고 있잖아, 망할 덩어리를. 낯이 간지러워.
“빈말은 아니야.”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왜 잘 모를까. 이러니 내가 너나 다른 멤버들을 바보라 부르는 거 아니겠냐.
채하민이 마지막 붓질을 하다가 당황해서 말없이 멍하니 있을 때, 벌컥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며 새어나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지동화 나와!”
사채업자가 한 명 찾아왔네.
“예언 선배님, 어쩐 일이십니까.”
일군 아이돌이면 일군답게 좀 바빠 주시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 봅니다.
“계약 완수했으니까, 감사 인사 전하러 왔다!”
예언 뒤에 멋쩍게 서 있는 준성도 얼핏 보였다.
“사랑해애, 지동화!”
꺼져.
달려와서 나를 꽉 껴안는 예언. 미약한 저항의 손짓은 곧바로 무시당했다. 채하민도 대체 무슨 상황이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오, 재계약할 거라고 회사에 선포하고 왔어.”
예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죄송한데, 제가 지금 얼굴에 초록 괴물의 진액 같은 걸 잔뜩 바르고 있으니까, 좀 꺼져!
“이젠, 기억도 안 나는 것 같아. 이해는 안 되는데, 네가아 도와준 거지?”
거기, 준성 선배님. 흐뭇하게 쳐다만 보지 말고.
“내 인생 다 바쳐서 갚을게. 진짜, 진짜 고마워.”
내 시선을 느낀 준성이 드디어 말릴 생각이 들었는지 다가왔다.
“나도, 고마워. 인생 절반 정도는 바칠 생각 있어.”
…아, 다 꺼져 주십시오. 고통을 즐기는 인간이랑 대화를 나누기엔 내가 너무 합리적이야.
* * *
이현재는 SNS를 보면서 내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형, 형, 선배님들이 단체로 홍보해 주고 계시는데요……?”
나도 몰라, 그 망할 것들.
오늘 쇼케이스 이후에 곧바로 음원도 공개될 텐데, 어떻게든 들어 보라고 홍보 중이다. 저게, 맞나? 저래도 되나? 타이머(TOT 팬덤 이름) 분들께서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와…, 신기해요. 또 의외로 이번 저희 컴백 기대하고 계신 분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커뮤니티에 글 숫자가…….”
나는 옷을 가다듬었다. 흰 셔츠에 갈색 멜빵에 빵모자라니. 이 무슨 영유아들의 옷차림인지. 항상 아이돌 일을 하면서 의상은 불만투성이였는데, 정말 믿을 수가 없다. 차라리 초커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겠어.
지나가던 스타일리스트 님이 내 반응을 재밌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의상 마음에 안 들면 다음엔 조금 벗을까?”
세상에. 어떻게 그런 말씀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고.
“이번엔 난 이든이 정도는 조금 노출시켜 보고 싶었는데 컨셉이 너무 아련해서 아쉬워. 다음 곡은 좀 섹시한 거 어때.”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절대 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이미 하셨잖습니까.
옆에서 의상을 입는 류이든이 보였다. 등판에 무슨 짓거리를 하셨는지 세로로 갈라져서 등골이 보이고 있었다. 내가 쓴 곡에 저런 의상이 어울릴까, 라는 생각은 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반대편에 채하민. 팔뚝에 뭔 짓을 하셨는지 갈라져서 팔꿈치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상의는 조금 짤막해서 격하게 움직이면 배가 보일 듯도 싶고.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이… 저런 느낌인가?”
아닌데. 기본적으로 아련함과 신남 사이 어디쯤에 있는, 가을 햇살 같은 곡인데. 가을에 저런 식으로 옷 입고 다니는 미친 사람이 있을까. 여름이어도 풍기 문란으로 신고당할 감이다.
“아니요. 저런 옷차림보다는 훨씬 다소곳하죠?”
“……그렇지?”
다행이야, 멤버들을 저 꼴로 만든 게 최소한 나는 아니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