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7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73화(173/343)
173.
“동화 님, 혹시 힘든 일은 없으시죠?”
당신이 나를 힘들게 하는데, 부디 나가주세요.
쇼케이스장에 찾아와서 구십 도로 고개를 숙이며 커피를 건네는 예언과 준성. 대체, 너희들은 스케줄이 없냐고.
“에이, 당연히 저희 스케줄 있죠!”
표정 읽지 말고. 지금은 가능성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무슨 미래 예지를 하고 있냐고.
“그렇지만! 동화 님이 컴백을 한다는데! 음료수 돌리러 와야죠!”
그러면 음료수만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책이 되지 않겠습니까.
“경칭 좀, 어떻게.”
세상을 낮게 보라는 격언도 모르십니까. 이런 뜻은 아니긴 한데, 어쨌든 말 좀 낮춰 보십시오. 아니면 성질날 것 같습니다.
“동화 님. 제가 어떻게 그래요오!”
말을 자기 의지대로 못하시면, 제가 한 노력은 뭐가 되는 겁니까.
“요즘, 말하기 전에, 두세 번씩 고민해. 매일 아침 일어나서, 뭐부터 할지 고민하고. 그게, 진짜 신기하거든? 원래는 그냥 기억나는 대로 중얼중얼… 아무 의미도 없었는데, 신기하다고.”
아, 네.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끝내겠어어. 그러니까, 나도오! 그 정도 보답은 해야겠죠?”
그러면서 예언은 크로스백을 뒤적거리더니 종이뭉치를 건넸다.
“뭡니까?”
“내가 기억력이 너만큼 좋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건 안 되거든.”
아.
“…미래 정보입니까?”
“아, 떡상하는 주식 정보 같은 것도 알아뒀으면 좋았는데… 아쉽다.”
예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일단, 큰 사건은 많이 적어놨어. 나중에 보면서, 아, 그래도 예언이라는 인간이… 그 모든 도움을 날로 처먹은 건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 알아줘.”
그러고는 쫄래쫄래 걸으며 다른 사람쪽으로 뛰어가는 예언과, 그걸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준성. 하나 같이 모르겠다.
기지생.
[종놈 부르듯이 부르시면, 제 마음이 많이 아파요.]실수가 맞아, 원래 모든 걸 당연시하면 안 되는데. 미안, 사랑하는 기지생.
[당신 옆의 강아지가 틀린 것 같습니다! 별로 기분이 좋아지진 않습니다.]저런. 미안해. 어쨌든, 예언은 이제 자유로워진 건지, 혹시 일시적인 건지, 물어봐도 괜찮을까.
[예언을 다시 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예언은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게 인생에서 중요한 분기점이었거든요! 고독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체념하고 될 대로 되라지, 상태가 되어야 하거든요.]세상에, 악독해. 대체 너희들은 인간을 뭐로 보는 거야.
[그래서 제가 다 복수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제가 관리하는 세계! 이미 정해진 걸 되돌릴 수는 없어도, 정해진 척 속이는 것쯤은 쉽습니다.]……음, 그것도 나름대로 우리 세계의 미래가 걱정되는데. 순수하게 벌레 찢으면서 웃는 아이를 보는 기분이다.
나는 별말 없이 앉아서 예언이 준 종이를 찬찬히 훑었다. 지금 다 외우고, 파기해야지. 이런 건 다른 곳에 보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 * *
“동화…….”
짧은 셔츠를 입고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려서 헬렐레하며 의자에 앉았던 채하민은 지동화를 부르려다가 말을 멈췄다.
동화는 최근에 이럴 때가 있다. 누구도 다가오지 말라는 분위기를 폴폴 풍기는 때가.
“아, 그 상태야?”
류이든이 채하민의 어깨에 머리를 얹으며 말을 걸었다.
“응. 이게 다 형이 뜨개질 같은 거 사줘서 그런 거야.”
“어우, 너희 둘한텐 내가 북이지?”
“당연하지! 동화가 요즘 저 상태에 빠지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니까. 요즘 뜨개질 책 사서 모으더니 장갑에 눈 모양 넣고 있다고.”
“하하하, 진짜 장하네. 저렇게 좋아해줄 줄은.”
“…나쁘진 않은데! 방에 있을 때 대화를 못 해! 맨날 저 상태라고.”
멤버들끼리 규정한 ‘상태’는, 지동화가 지독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집중을 깨면 안 될 분위기, 도미노를 하나하나 쌓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상태. 툭 치면 무언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건들 수가 없다.
“뭐 어때. 우리 방 놀러 오면 되지. 현재 방이나.”
“형 방에 들어가면 위즈니 교육 받아서 조금 그렇고, 현재는 요즘 공부에 집중하고 있어서…….”
“하긴, 현재 수능 코앞이지, 이제?”
쇼케이스까지 두 시간 남은 시점, 나름대로 경력이 쌓여서인지, 이제는 이런 식의 농담 섞인 대화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번 컴백도 동화가 자기가 고생 많이 할 테니까 수능 전에 공백기간 가지려고 이렇게 잡힌 거니까…. 동화 진짜 대단해.”
그리고 놀랍게도 지동화는 이런 상황에서도 두꺼운 종이뭉치만 바라보고 있었다. 들리지도 않나 봐, 아주 서운해. 예전에는 막 인삼차 같은 거 타와서 나눠주고 그랬는데, 이제는 아주 집중력 최고야.
그래서 채하민은 아버지가 챙겨 준 꿀인삼차를 꺼넸다. 아버지가 직접 아는 심마니분께 부탁해서 사왔다고 하니까, 아마 긴장도 풀고 건강에도 좋겠지!
채하민은 조심스레 한 잔씩 따라서 멤버들에게 나눠주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지동화 곁에 앉았다.
자세도 변함없고, 표정도 변함없고, 변한 건 종이의 쪽수밖에 없었다. 채하민은 어쩔까 고민하다가 아주 조용히 잔을 지동화 앞의 탁자에 올려 두고, 포스트잇에 ‘맛있게 마시기!’라고 적어두었다.
그리고 그걸 잊을세라 찍으러 온 자체 백스테이지 카메라.
“아, 멤버들한테 선물 주는 중이에요! 꿀인삼차.”
카메라를 든 스태프 분은 카메라를 지동화 쪽으로 돌렸다. 아, 저거 못 볼 텐데.
채하민은 조심스레 두 개의 손가락을 펴 종이 허벅지를 콕 찔렀다.
지동화는 기나긴 환상에서 깨어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더니 채하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하민?”
“이거! 내가 사온 인삼차!”
채하민이 급히 잘 올려둔 잔을 올려서 지동화에게 건네자, 지동화는 말없이 눈만 빠르게 굴려 상황을 파악하더니 미소 지었다.
“예전 기억나네.”
호로록거리며 한 모금 마시고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곤 천천히 다시 마시는 지동화. 아마도 그 안에 들어간 꿀에 감명을 받은 것 같다. 과하게 단 거 안 좋아하면서 적당히 단 거는 엄청 좋아하는 게 눈에 딱 보였다.
아, 힐링 돼. 용돈으로 산 석청을 탄 의미가 있다.
* * *
삶은 무엇이고,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동화의 팬은 눈물을 흘렸다. 그래, 개 같은 인생. X같은 인생! 삶은 블로센스고, 인간은 지동화로 사는 법인데, 어째서 자신에겐 삶이 허용되지 않았을까.
개강이 얼마 전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학점은 모든 걸 결정짓지 않는다. 하지만 쇼케이스 광탈은 지옥과도 같은 분노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X발 나는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지.”
단콘 티켓팅 광탈도 아니고, 쇼케이스 광탈? 아이돌 덕질 경력이 얼만데, 대체 이 무슨 수치란 말인가.
그녀는 모든 걸 포기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SNS로 실시간으로나마 소식을 전해 받고 싶었고, 최소한 직캠이라도 빠르게 보려고.
―행복하니?
그녀는 채하민의 팬에게 DM을 보내며 웃었다. 인간은 분노가 극에 달할 때, 울음보다는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렇게 깨닫는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삶은 블로센스고, 인생은 채하민으로 사는 것.
‘제길, 내가 만든 캐치프레이즈를 뺏어 가다니!’
원래는 자신이 기만질을 할 때 쓰던 말인데. 흐하하, 그래, 이게 다 인과응보라는 거겠지. 고전 소설에서 그런 결말 구조를 가지게 된 게 괜한 일은 아니다, 그거겠지.
그녀는 모든 걸 포기하고 SNS에 글이 쌓일 때까지 고전 소설의 이해라는 강의의 정리본을 작성하면서 분노를 타이핑으로 풀어냈다. 그리고 꽤나 기나긴 시간이 흘러,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채하민 절반 정도 크롭티
세상에, 잠깐만.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을 실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치상 컨셉은 공유되므로, 지동화가 유사한 의상일 확률은?
사실 선공개 컨포에서 이번 앨범이 전반적으로 따스한 계열의 색감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뽐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실제로 류이든의 컨포는 욕조 안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으니까.
그러니까, 보수적 인재인 지동화의 비밀을 발견하는 순간이 될 수 있을까. 아니야, 지동화, 여며. 너는 여며야만 해! 지동화는 냉한 대학 선배 컨셉이 어울리는 만큼 여며야만 한다. 이해할 수 없다면 최소 블알못이다.
그리고 현장에 오지 못한 팬들을 위해 올라온 현장용 컨셉 필름. 그녀는 황급하게 영상을 클릭했다.
그러고 보면, 세계관 덕질을 한동안 안 했지. 아마 대강 해석본을 보면, 이현재가 범인이라는 느낌이던데. ‘흥’ 필름에서 이현재한테 떡밥 있다는 뉘앙스가 폴폴 풍겼다. 대체 이현재가 뭐길래 과거 같은 공간에서 멤버들을 만났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며, 그녀는 눈앞의 영상에 집중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한 집에서 홀로 앉아 있는 이현재. 굉장히 귀족적인 복식을 입고 거대한 식탁 앞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다.
텅 빈 눈동자로, 텅 빈 탁자를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지동화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식탁에 앉아 해맑게 웃고, 식사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지동화가 똑같은 귀족 복식을 한 채 방에 들어와 똑같이 앉았다. 모든 멤버들이 각자 웃고 있지만, 지동화는 무표정했고, 이현재는 억지로 미소 지었다.
지동화와 이현재의 눈이 마주칠 때, 이현재의 굳은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카메라의 앵글은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이현재를 중심으로 다시 드러난 주변의 모습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빈 탁자, 빈 의자만 있을 뿐이었다.
떠오르는 자막. 유려한 필체로 작성된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그 너머로 이현재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저거 뭐야.’
꽤 아름다운 영상미에 감탄하며 보고 있던 그녀는 눈에 들어온 작은 조각에 몸을 흠칫 떨었다.
‘왜 사람이 저기 쓰러져 있어?’
손 한쪽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바닥에.
…아니, 뭐지. 우리 블로센스 X나 희망찬 세계관 아니었나. 나름대로 힐링하는 그런 건줄 알았는데. 이현재한테 뭐가 있긴 해도 트라우마 정도고, 치유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스릴러였나?
그녀는 본래 목적-지동화가 과연 ‘여며’를 지킬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잊고 그저 충격에 휩싸일 뿐이었다.
지잉. 핸드폰 진동 소리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재빨리 알림을 확인했다.
―지동화 착샷.
―(사진)
세상에. 이게 뭐야.
멜빵. 빵 모자. 그리고 약간 헐렁한 셔츠. 제기랄! 이걸! 고작 이 화질로 봐야 한다니! 인간에게 가장 발달된 기관 중 하나인 자신의 눈을 두고, 이 조명 때문에 약간 화질이 깨진, 후보정도 없어서 그저 픽셀뭉치로 보이는 이딴 사진으로!
지동화는 여몄지만, 자신의 멘탈은 챙기지 못한 그녀.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 * *
무대에 오르기 직전, 나는 숨을 잠시 가다듬었다. 뜨개질, 가져올걸. 그러면 조금 더 편안하게 올라갈 수 있을 텐데.
“엄청 바빴던 만큼! 후회 없이!”
류이든이 멤버들의 중앙에 서서 소리쳤다. 그런데 그 소리조차도 무대 밖의 설렘에 떠는 목소리에 비하면 작기 그지없었다.
하, 배우들은 저런 걸 못 들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류이든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예언이 가르쳐 준 교훈, 모든 순간이 소중할 수도 있다는 것을 되새겼다.
“와아아아! 현재야, 떨려!”
“형, 저두 떨리니까, 좀!”
쓰잘데기 없는 대화를 나누는 채하민과 이현재, 그리고 옆에서 눈을 감고 가사를 떠올리고 있는 석준.
나는 이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