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7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74화(174/343)
174.
전주가 흘렀다. 내가 신경 써서 작성한 부분. 채하민의 즉흥곡은 어떤 분위기의 곡이었을까. 싸늘한 가을의 아침, 햇살을 맞으며 멍하니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였지. 채하민이 억세게 불러서 그렇지, 멜로디 자체는 울음을 참으면서 웃음 짓는 기분의 곡이었다.
게다가 가사도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다. 지금은 많이 바꿨지만, 원래는 같이 죽자는 뜻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같이 죽기로 약속한 사이에서,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남은 이는 어떤 마음일까. 약속을 이행하는 건 문제가 있다. 상대편이 진심으로 그걸 원할 리가 없다. 즉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로 뱉은 약속이 어디 사라질까. 그렇다면 매일 아침 일어나서 힘겹게, 오늘도 살아있는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고, 아침 햇살을 버거워하다가, 다시 웃으려 노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작성한 곡이 이번 타이틀곡인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전주는 피아노 소리를 주로 했다. 물론 그 배경으로 또 다른 라인이 뒷받침되고 있지만, 피아노 라인이 더 돋보이도록 만들 뿐이다. 쓸쓸하게 행복하다는 역설적인 문장이 연상되는 멜로디.
그리고 멤버들은 자리에 누워 서로의 다리에 머리를 대고 누운 상태였다. 그리고 중앙의 채하민이 일어나며 물결처럼 주르륵 일어났다.
새벽 공기는 약간 쌀쌀하곤 해
이슬 향기는 너를 기다리게 해
채하민이 앉아서 손짓할 때 뒤에 앉은 류이든이 나의 등을 밀어 올렸다. 불쑥 튀어 오른 나는 사이드로 걸어 나갔다. 산책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 같지 않을까.
너랑 늘 함께였던 카페에 가면,
커피 향기가 너를 떠올리게 해
구질구질한 놈. 입으로는 가사를 부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작 ‘내’가 미래에 했을 짓이 가장 구질구질해서 뭐라 할 수가 없다. 이 기분은 아마 동족혐오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뒤를 돌아보면 멤버들이 이미 대형을 맞추고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면 고개를 돌려, 마치 내가 없는 사람인 것 같은 뉘앙스가 풍겼다.
그리고 대형에 합류하면 이어지는 석준과 류이든의 브릿지.
맑은 하늘 아래 홀로 걸어가면,
문득 네 그림자가 보여
환상이라는 사실에 눈 감으면,
문득 웃음이 피어나
이현재가 직접 적은 가사다. ‘눈 감으면’이 현실 도피인지, 아니면 물리적으로 정말 눈을 감는 건지 듣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게끔 의도했다. 물론 내가 듣기엔 현실 도피로 들렸다. 환상은 달콤해서, 환상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게 되지 않을까.
그 배경에 깔리는 곡은 밝은 분위기지만, 묘하게 서글픈 신스 라인이 중심을 잡고 있었다. 석준과 류이든이 페어 안무로,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다 양옆으로 갈라지고 이현재가 그 사이에 서 있다.
매 순간이 내겐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낙엽이 떨어지듯 머릿속 네 생각도 질까
잠에 들지 못하고 깨 있는 새벽 시간
네 곁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아보고 싶다
청명한 목소리. 이현재의 목소리는 가을 하늘을 떠오르게 만든다. 언젠가 이현재의 솔로곡을 써주고 싶을 만큼, 너무 좋은 목소리다. 저 어린아이가 또 감정의 깊이는 어떻게 이해하는 걸까. 평온하게 미소 지으며 마무리 지을 때, 애써 침착하려 하는 저 표정은 너무 아름답다.
역시, 내 과외생.
The, Time
Yeah, Yeah, Yeah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파트. 채하민이 부른 멜로디를 토대로 쓴 신스와 피아노 라인이 뒤섞이며 튀어 다녔다. 영원한 관계는 없다지만,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추정 상 기반이 과거 재즈 밴드의 곡이어서 그런지, 여유 속에 다급함이 혼재된 교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Tic, Toc
Yeah, Yeah, Yeah
우리는 열을 맞춰 군무를 췄다. 내가 작업실에서 밤을 샐 때, 채하민이 연습실에서 류이든과 함께 짠 라인. 이렇게까지 가내수공업을 하는 것, 나는 반대인데, 다른 멤버들이 나만 고생시키는 건 싫다고 난리친 결과다. 이 자본주의 시대에 가내수공업이라니. 너무 반역사적이야.
군무가 끝나고 멤버들이 몸을 숙였을 때, 석준 홀로 섰다.
Not peace on my mind, But only you
나 스스로 미워도 살아가는 이유
There’s no point of living without you.
그럼에도 나 다시 살아가는 이유
거울을 보면서 혼자 서 있을 때 제스쳐를 더럽게 연습하더니, 기도하듯 모은 손, 경건한 표정, 마치 구원을 기다리는 수도승과 같았다.
녹음할 때 ‘유일한 구원이 너밖에 없는데, 네가 이 하늘 아래 없으면 어떻게 할까. 나는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너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텐데, 네가 정작 올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품고 불러 달라고 했었다.
그걸 제스쳐와 분위기에서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노력할 정도로 연기력이 좋고, 얼굴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잘생겼는데. …그런 놈이 어쩌다 반쯤 미쳐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몸은 안무를 기억하고 있기에 나는 자연스레 센터로 나갔다.
친구와 말을 나누다 보면, 문득 네 얘기가 나와
네 추억에 파묻혀 있다 보면, 문득 웃음이 피어나
고운 선으로 춤추며 밝게 미소 짓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사람처럼 손을 털썩 떨어뜨렸다. 뒤돌아 걷는 나와 이현재가 교차하며 스쳐 지나갔다. 다른 멤버들의 안무 사이에서, 그저 두 사람이 서로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매 순간이 내겐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네 곁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아보고 싶다
아,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
The, Time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Tic, Toc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A&R팀 전부가 낯선데 왜 좋은지 의아하다던 부분. 채하민 천재 작곡가설을 일으킨 원인. 이 곡은 우연의 산물치고는 지나치게 마음에 들었다. 한 번 더 반복되는 후렴 이후 마침내 곡의 마지막. 모든 멤버들은 처음처럼 누워서 쓰러졌고, 나 홀로 가만히 서 있다.
밤이 찾아와 눈을 감으려 해도, (Tic)
천천히 다가오는 너와의 추억. (Toc)
눈을 감지 못해 이 밤도 다시 (Tic)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Toc)
무대가 어두워지기 전에, 클로즈업될 나의 얼굴은, 아마 웃고 있을 것이다.
* * *
한편 지동화의 팬은 작은 노트북 모니터로 울면서 직캠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이 지동화의 파트로 끝나면서, 그녀는 한 방울 눈물을 흘렸다.
“뭔데! 왜! 왜! 왜 이번 컴백이 하필 대박각인 건데!”
박탈감. 왜 하필 자신이 쇼케이스 광탈했을 때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팬으로서 대박각이 보이는 것도 좋지만, 그 대박각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박탈감이 더욱 컸다.
“그래, 인생 조졌다, 이거지?”
‘내가 성적을 조지는 한이 있어도 일단 현장 뛴다.’라는 작음 다짐을 하면서, 그녀는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 하민이 레전드 찍었다 ㅅㅂ 찢었다 케이팝 긴장해라 ― 춤선 말이 되냐? 아니 이거 하민이가 w앱에서 직접 짠 안무 많다던데 천재냐고 ― 하… ㅅㅂ… 내가 죽는다… 나 오늘 여기서 죽는다… 오늘 하민이랑 아이컨택했다… 질문 받는다…
― 아 너는 쇼케이스 광탈이었지?
― 아… 어쩌니 아쉬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ㅌㅋㅋㅋㅌㅋ알림이 울리길래 집어던진 핸드폰을 주워서 확인해 봤더니 다시 던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뭐라고 말할 수도 없다. 패배자의 말로는 그저 현실을 수용하거나, 아니면 부정해서 끝없이 고통받는 것뿐이다.
“받아들여라, 나. 굳세어라, 나.”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늘 하루 동안 핸드폰을 제대로 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드는 그녀였다. 아마 기뻐하면서 웃다가 이걸 못 봤다며 울고, 다른 팬들에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분노까지 뒤섞일 테니까.
* * *
“형, 나 왔다!”
쇼케이스에서 팬분들과의 소통 시간까지 마치고 나자, 목화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바쁠 텐데, 어떻게 또 왔네.”
“아, 오늘 연습 자율이라… 하하.”
그러니까 농땡이 친 거잖아, 동생.
목화는 멤버들에게 줄 음료를 나눠주고 나서 내 옆에 조용히 앉았다.
“형, 형. 작곡가분들 많이 알고 있지?”
“친하진 않지만.”
알고는 있지. 그분들 작업물이랑 겹치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하거든.
“형은 진짜 이든이 형 옆에 꼬옥 붙어서 사람들 좀 만나고 다녀야 하는데…….”
그러면서 딸기맛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목화는 말을 꺼낸 목적을 밝혔다.
“…싱클레어?”
“응. 아니이, 우리가 이번에 타이틀곡을 받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지난번 앨범이랑 후속곡은 뭔가 나사 빠진 기분이었단 말야.”
저런, 지나치게 자기평가가 정확하구나. 적당한 망상은 멘탈 관리에 도움이 될 텐데.
“그런데?”
“그런데, 이번에 타이틀곡 온 게 너무 좋은 거야.”
고맙네. 근데, 타이틀곡으로 쓴대? 내가 보낸 거 알면서, 대체 왜? 혹시 화양 씨가 힘써주신 걸까. 경쟁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경쟁에서 승리하게 도와주신 거라면, 조금 문제인데.
“그래서 궁금한 거지. 찾아봐도 아무것도 안 나와. 검색했는데 소설 얘기밖에 없더라. 사운드클라우드에는 혹시? 하면서 그것도 들어가 봤는데 아무것도 없고.”
“목화야, 스토킹은 법적으로 금지인데.”
“에이, 현대 사회에 이 정도는 스토킹 축에도 못 끼지. 내가 뭐 SNS 염탐을 했어, 아니면 집 위치를 알아냈어.”
너 내 SNS 염탐하고 내 숙소 위치도 알고 있잖아.
“어쨌든, 혹시 형은 아는 분이야?”
“잘 알지는 못하는데, 알기는 해.”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류이든은 ―궁금해하길래 내가 얘기해 줬다.― 어이가 없다는 눈초리로 나를 노려봤다. 뭘 봐. 원래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없잖아.
“와아… 형이 엄청 멋있어 보이는걸? 나 이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게 좀 해줘. 곡 주셔서 감사하다, 다음에도 또 써달라 무릎 꿇고 빌어야 될 것 같애.”
“음, 그분 은근 바쁘셔서 될지는 모르겠는데, 알겠어. 자리 한 번 만들어볼게.”
“나 형 잘 뒀다. 나도 이제 인맥 같은 거 만들어서! 작곡가분한테 곡도 받고 성공할 거야!”
“좋은 야망이네. 근데 그 작곡가분 성격 좀 별로던데, 괜찮겠어?”
“…어?”
목화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왜 그래, 못 들을 거 들었다는 듯이.
“형이 남 흉 볼 성격이 아닌데… 이상하네.”
저런, 이럴 때만 눈치가 빨라서는. 나는 미소 지으며 목화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원래 동생 걱정되면 그렇게 되는 거야.”
“음, 일단… 뭔가 미심쩍은데, 뭐가 미심쩍은지 모르겠으니까 참을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돌아갈 때까지 목화의 의심의 눈초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목화가 가고 퇴근길, 류이든이 피식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동화 형, 목화한테 꼭 숨길 필요가 있나?”
“그게 재밌을 것 같아서.”
“너도 가끔 보면 성격 좀 짓궂을 때가 있어.”
“아, 형.”
“왜, 형.”
“사건 하나 터질 것 같던데, 연 끊어둘 사람 있는지 확인이나 좀 해 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속에 품은 종이 뭉치를 어떻게 파쇄할지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