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7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75화(175/343)
175.
“이번엔 뭐야?”
다 잠든 차 안, 매니저님에게 들리지 않게 귀로 속삭이는 소리. 원래는 채하민이 옆자리에 앉는데 오늘 따라 힘이 들었는지 제일 넓은 뒷자리에 쓰러져 있다.
“한 다섯 달 후에 배우들 사이에서 논란이 연쇄적으로 터진대.”
빚이나 갑질처럼 한국 사회에서 예민한 문제가 펑펑 눈 내리듯이. 왜 이런 이슈는 몰아서 터질까. 하나 터지면, 조사하던 게 묻히기 전에 이슈화하려고 기자들이 터뜨려서 그런 걸까.
“와우… 명단 있어?”
“머릿속에. 형이 우리 중에 인맥 제일 넓지 않나?”
“그거야 뭐… 그렇지. 근데 배우분들 인맥은 거의 없어서.”
“음, 그 인간.”
“누구?”
“박우진.”
류이든은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인상을 곧바로 찌푸렸다.
“걔는 무슨 벌써 논란을 터뜨려?”
“그놈이 터뜨리는 게 아니라… 태풍에 휩쓸린다고 해야 할까.”
집단의 장이 아니라, 개인의 목이 걸린 사안에서, 박우진은 나름대로 자중하나 보다. 예언에게 물어보니까, 별거 없다더라. 인간적인 지성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어쨌든, 형 성격에 박우진이랑 연락은 하고 있을 거 같으니까 주의만 하면 될 것 같아.”
류이든은 들켰다는 듯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원래 적은 가까이 두는 법이라잖아.”
“…지난번에 삼국지 읽을 때 알아봤지.”
“내가 그거 읽고 얼마나 감명이 깊었는지 아니.”
조용히 해. 삼국지 얘기하면서 인생 왈가왈부하면 최소 삼십 대니까.
“하여튼, 나중에 명단 공유할게.”
류이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 연예계 생존 특강, 제 1강, 지동화랑 친구를 먹어라.
“…뭐 적어.”
“나중에 후배 생기면 조언 같은 거 물어볼 거 아니야. 일단 너랑 친해지라고 하려고.”
왜 귀찮은 일을 만들고 그래. 내 주변 챙기는 것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어려운 과제일 거 같은데.”
“그렇지? 애들이 연예계 생활 다 포기할까 봐 두렵긴 한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 자체지. 너랑 친해지면 얻게 되는 게 얼마나 많아.”
뒷자리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토끼놈이 굴에서 나오는 소리다.
“동화랑 친해지는 거 어렵진 않았는데. 동화가 엄청 착해서 다 맞춰줘. 버섯 싫어하는데 티도 안 내고.”
“그거, 너 한정이야. 나 처음에 동화랑 친해지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운동도 같이 하고, 응?”
“……그게 노력한 거면, 방향이 완전 잘못된 건데.”
류이든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채하민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부디, 류이든이 후배분들에게 그런 짓거리를 하지 않기를, 작게 소망했다.
* * *
찌익. 찌익.
나는 지금 종이를 자르고 있다. 자를 대고, 날이 잘 드는 커터칼로.
“…동화야, 그거 손으로 찢으면 안 돼?”
다른 멤버들은 내가 다가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채하민은 거실 소파에 멀찍이 앉아서 중얼거렸다.
“그러면 퍼즐 조각처럼 되는 거잖아.”
종이에 적힌 글자 모양으로 일정하게 잘린 종이조각을 퍼즐로 맞추려는 미친 인간은 많지 않지만, 손으로 찢은 종이는 ‘어? 한번 맞춰 볼까?’라는 생각을 하기는 쉬운 편이다. 그래서, 일정하게 눈으로 볼 때 차이가 없는 오차 범위 내로 종이를 자르고 있다.
“……대체 뭐길래 그럴까. 진짜 알다가도 모를 친구야.”
나처럼 이해하기 쉬운 인간이 많지 않아, 하민. 나는 네가 더 이해하기 어렵다고.
“그러고 보면, 예전에도 그렇게 자른 적 있었잖아. 나 잠깐 ‘토끼’라는 단어 하나 봤는데 보지 말라고 했던 거.”
아아, 그거.
“진짜, 뭐 그렇게 비밀이 많냐아. 나는 숨기는 게 하나가 없는데.”
그러고 나서 채하민은 계속 궁시렁대며, 디텍션에서 배신당했던 기억까지 하나하나 꺼내면서 서운하다, 서운하다 염불을 외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나는 끝없이 종이를 썰어댔다.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누가 저렇게 문을 세게 여는지, 안 봐도 공룡 놈이다.
“형, 형, 저희 음원 성적 좀 봐봐요.”
저런, 현재야……. 한 손에 태블릿을 들고 서서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벌컥,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야말로 공룡 놈이다.
“동화 형! 이거 봐! 미친, 우리 성적 좀 봐!”
저런, 이든아…….
석준은 이미 열린 문에서 느긋하게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신난다면서 알 수 없는 스텝을 밟으며 흥을 표하고 있었다. 그 원시 부족 기우제에서 볼 법한 스텝 좀 저리 치워.
찌익. 나는 한 번 더 커터칼을 내리그었다. 혼란한 와중에도 내가 부탁한 ‘부엌에 들어오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지켜주고 있다.
채하민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성적을 봐야 한다며 우다다 달려가 이현재 옆에 달라붙었다. 지금 시각이 약 12시. 누적 성적으로 승부되는 거니까 대략 공개된 지 6시간 정도 된 성적이다.
“와아… 뭐야, 읍.”
뭔가 말하려는 채하민의 입을 류이든이 막았다.
“궁금하지? 어? 너, 부엌을 점거한 무도한 인간아!”
무슨 학생총회에서 본부 점거한 것처럼 말하지 마. 나는 부탁한 거잖아.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몇 등인지 알려면 네 유토피아에서 나와야 할 거다! 악덕 작곡가!”
“와… 동화가 핸드폰을 안 들고 다니는 게 이렇게 발목을 잡네.”
아니, 안 잡혔어, 무슨 소리하는 거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아직 한참 남은 종잇더미를 봤다. 음, 어차피 멤버들이 보는 거면 큰 문제 아니잖아.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서 제발로 걸어 나왔다.
“이것 봐봐, 우리 몇 위 했는지.”
류이든이 들이민 핸드폰의 글자를 읽다가 나는 약간 놀라고 말았다.
“…30위대네?”
“엉. 남돌 치고 발매 여섯 시간 만에 이 성적? 이건 답이 나온다. 이번에 우리 음방 1위는 넘어가고, 음원 1위도 할 수 있을지도?”
김칫국을 시원하게 들이마시는 류이든. 까봐야 아는 일에 뭘 그렇게 설레는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이게 다, 채하민 덕분이네.”
“그렇지. 이게 다 무알코올에 취한 덕분이야.”
“그렇네요.”
“형-님, 감사합니다.”
“이제 그만! 제발! 그 얘기 좀 꺼내지 말라고. 사람에겐 누구나 숨기고 싶은 과거 하나쯤은 있다잖아!”
오오, 하민, 어휘력이 늘었는걸. 박사까지는 무리지만, 석사 토끼라고 할 만하다.
* * *
아이돌 전반에 대해 논하는 사이트들은 다양하다. 그러나 특정 사이트에서 선호하는 그룹이 따로 있거나, 공공의 적으로 취급되는 그룹이 있는 경우도 많다. 팬카페는 동질적인 이들이 모인 집합체지만, 그곳에서는 말할 수 없는 것들도 가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인터넷 유목민이 되어 특정 사이트를 점거하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이곳은 디오니 엔터에 영혼을 팔아버린 이들이 점거한 곳. 블루잭에서 최근 호핀까지의 팬들이 주로 상주하는 곳이다. 물론, 같은 엔터라고 같이 좋아해 주지는 않지만, 최소한 공존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골수 디오니 덕질러들이 모인 이곳에, 루미너스 한 명이 글을 쓰며 불이 붙었다.
[블로센스 컴백 이후 돌판 상황]1. 일단 2군으로 자리매김한 듯
2. 음원 대히트 한 방이면 1군도 가능할 듯
3. 그러면 하이식스는 일단 1군에서 내려오자
댓글
└룸넛년 하나 잡았다..^^
└└내가 보기엔 룸넛이 아니라 하이식스 까러 온 거 같은데 ㅋㅌㅋㅋㅋㅋㅌㅋ└블로센스가 ㅅㅂ 1군이 되냐 안 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이식스가 개퇴물이라는 하나의 사실만 남은 거 아니냐 └└느그 블루잭 컴백 안 해서 약간 화났니?
└└느그 하이식스는 곧 재계약 시즌이던데
[일단 블로센스 음원으로 깔 생각은 포기하는 게 낫겠다]ㅅㅂ 아무리 구리다고 ㅈㄹ해도 음원 순위 때문에 말이 안 통한다 댓글└디오니의 피가 흐르는 나…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음원 담았어요?
└이제 희망은 호핀밖에 없다 호핀이 음원으로 개찢어야 디오니 뽕을 좀 맞을 수 있을 듯 └└이건 맞다. 디오니 ㅅㅂ 일 좀 잘하라고. 애들을 저렇게 잘 골라놓고 첫 데뷔 때 1위 못한 게 말이 되냐 진짜.
└아니 지동화 걔는 뭐 니체에서 키운 전략병기냐 무슨 성능이 ㅅㅂㅋㅋㅋㅋㅋ└└솔직히 남이 해 주는 거 아니냐 까고 싶다가도.. 작업하는 거 보면 아.. 얘는 진짜구나 싶더라…
└목화 프사라 지동화 보고 있으면 좀 정이 가
└└ㄹㅇ로 ㅋㅌㅋㅋㅋㅌㅋ 아이돌 안에서 형제 보는 건 뭔가 느낌이 색다르긴 해└└ㅋㅋㅌㅋㅌㅋㅋㅋㅌㅋㅋ 블로센스 보고 있으면 걍 아… 형제니까…
타이머와 블루투스의 전쟁은 유구한 역사를 갖는다. 그러다 보니, 대개 니체 엔터와 디오니 엔터의 팬덤 사이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고는 하는데, 갑자기 각 그룹의 멤버들이 형제 관계로 등장한 것이다. 적대국 사이였기에 사랑을 인정받지 못했던 로미오와 줄리엣과 달리 유전자 단계에서 증명하는 가족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핀의 팬덤, 위시들은 바라고 있었다. 묘하게 겹친 컴백. 형제 그룹이 1위 자리를 놓고 다투리라는 건 너무나 명백해 보이는 사실. 그렇기에 그들은 귀족, 진골, 권문세족, 선비, 금수저 등의 단어로 역사 속에서 달리 불려왔고, 아이돌판에서는 ‘디오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 이들은 날 때부터 태생이 다르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다고, 위시들은 바라고 있었다.
[호핀 컴백 티저 봤냐]일단 나는 봤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댓글
└ㅅㅂ 이번에 작곡가 누구 뽑았냐 초반부만 틀어준 것 같은데 이렇게 힘들어도 되냐 ㅈㄴ 좋다 진짜 내 케이팝의 리듬을 빼앗긴 기분이야 └└그게 뭔 기분이야 ㅋㅋㅌㅋㅋㅋㅋㅌㅋ└(영혼만 남은 댓글입니다.)
└그래 이거지 1위하자 각이 보인다
└└그런데 짜잔! 실물을 까봤더니 이해할 수 없는 컨셉과 이해할 수 없는 곡으로 중무장했답니다!
└└그날 이영현 대가리 내 손에 깨지는 거임.
└작곡가 갈았네
└└외국 곡 받아왔다고 본다 나는
└└뭐가 됐든 이제야 일을 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리고 며칠 뒤, 실제 MV와 쇼케이스가 공개되고 나서, 호핀 팬덤은 폭발했다. 긍정적인 의미로.
[디오니 짬바 좀 되는 분들에게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싱클레어 사는 방향만 좀 가르쳐 주세요. 절 좀 하게.
댓글
└첫 작 실화냐고. 이건 디오니가 길러온 최종 병기라고 봐야 된다.
└일단 나보다 애들 목소리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게 보여서 패배감 느껴짐. 아… 나는 어쩔 수 없는 일반인이구나…
└└편곡에 싱클레어 이름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신, 우리 애들 컨셉도 신경 써 주신 겁니까…?
└다음 중 가장 잘한 사람은? 1. 일을 열심히 하는 디오니 2. 그냥 자고 있는 싱클레어 └└22222222222└와… 근데 개 신기하긴 하다…. 외국곡도 아니고… 디오니 정도 규모 회사가 신인 작곡가 곡을 타이틀로 써 버리네…
└└정답 : 수록곡과 퀄리티 비교시 이해 가능
* * *
“둘, 셋!”
내 앞에서 디키, 아니 진한 씨가 우렁차게 외쳤다.
“We the hope! 안녕하십니까, 호핀입니다!”
그렇게 예의 차릴 일입니까. 우리 사전적인 의미에서 형제 그룹이잖아.
“어우, 안녕하세요!”
류이든이 디키 씨와 대화를 시작할 때, 나는 의상을 빠르게 점검했다. 다행이야, 정말. 디오니 역대 그룹들 의상이 괴랄할 때가 많던데, 최소한 지금은 정상처럼 보여서.
김현진과 우리 목화가 눈을 초롱거리고, 그보다 심각하게 진한 씨가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말 좀 걸어달라, 그러면 자신이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 나가겠다’라는 의지가 너무 강렬해 보였다.
그러나 내 성격에 진한 씨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너무 귀찮기에, 말 없이 호핀 멤버들 손에 미리 사둔 쿠키를 하나씩 손에 쥐어주고 미소 지었을 뿐, 말은 걸지 않았다.
그렇게 뒤돌아서 자리에 앉아 쉬려고 할 때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서, 선배님!”
아아, 당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