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7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77-209화(177/343)
177.
[호핀, 현재 대세 블로센스와 한판승부… ‘선배님, 죄송합니다!’] 라는 기사 제목을 보고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망할, 내 마음을 모르겠는걸. 누가 1위를 해야 기쁠까. 아니지, 애초에 둘 다 1위를 해도 기쁠 것 같으니 질문 자체가 틀려먹었다.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응원하는 게 철학적으로 옳을까.
“당연히 우리지, 동화야…….”
채하민이 한껏 서운한 목소리로, 풀이 죽은 모양새로, 마치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실망이다, 인간 맞아?’라고 온몸으로 묻듯이 답했다.
“애초에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하잖아요.”
이현재는 태블릿으로 기출 문제를 풀면서 중얼거렸다. 집중해, 망할 수험생.
“뭐, 심정은 이해 가는데, 약간 서운하긴 해.”
전혀 안 서운해 보이는 표정으로 지껄이지 마, 이든.
“형-님. 위즈니 반응― 너무 좋아서, 너무 좋-습니다!”
석준이 양 볼에 생크림을 묻힌 채 행복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석준의 무사한 성우 데뷔를 축하하기 위해 케이크를 사 들고 모였다. 관객들 반응이 호평이 많다길래, 뇌 속이 가장 꽃밭인 이 친구를 위해 딸기생크림케이크로.
“사실 성우를 잘했다고 하셨다기보단, 랩이 좋다고 하셨던 거지만…….”
집중하라고, 현재. 인간의 집중력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
“어-쨌든, 최고로― 행복-합니다.”
“그래, 많이 먹어. 오늘 하루만 식단 풀어, 그냥.”
류이든의 저 말 뒤에 ‘나랑 같이 운동하면 돼’가 생략되어 있음을 알았기에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순진한 애 놀리지 마.”
“어우, 당신이 할 말인지 한 번 고민해 보긴 해야겠어, 그렇지?”
나는 내 앞에 놓인 설탕 덩어리를 보며 크림을 조금 떼어 입안에 넣었다. 세상에, 당분으로 뇌를 후려치는 기분이야. 많이 먹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런 내 앞에서 채하민이 녹아내렸다.
“서운해애.”
저런, 안타깝네. 나는 뜨개질을 손에 들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서운하다아.”
음, 여기에 루돌프 문양을 넣어야 하니까, 순서가…….
“서운해라아.”
그만, 하민.
나는 뜨개질을 내려놓았다. 채하민은 녹아내린 상태 그대로 이마를 식탁에 대고 미친 듯이 문질러대고 있었다. 어쩐지 목소리가 묘하게 떨리더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당연히 우리가 1위했으면 하지, 하민.”
내 말에 자극됐는지 고개를 불쑥 들어 올렸다가, 의심의 눈초리로 변했다.
“거짓말이 능숙한 인간이니까… 속으면 안 돼.”
저런, 눈치가 빨라.
“…일단 러닝이 몇 시간이지.”
류이든은 눈대중으로 석준이 퍼먹고 있는 케이크의 칼로리를 계산하고 있나보다. 평화로워.
“아, 맞다. 얘들아.”
“왜요?”
“OST랑 카메오 출연 제의 들어왔대.”
그거 카메오로 시작해서 조연 정도로 확장되면, 나는 관둘 거야.
“우리가 지난번에 OST 한 번 성적이 좋았잖아. 현재 손에 돈도 많이 떨어졌고.”
“아아, 맞아요. 저 그걸루 문제집 많이 샀죠.”
“그래서 그런가… ‘일단 OST 맡겨!’라는 식으로 세 군데에서 들어왔나 봐.”
그러므로 류이든은 내게 시선을 던졌다.
“…누구 나오는지 혹시 알아?”
“맞아, 드라마는 배우 누구냐가 제일 중요하다잖아.”
아, 다행이야, 아직 채하민이 그 정도로 눈치가 빠른 건 아니라서.
“주연급만 대충?”
“그럼 고르기 쉽겠네.”
멤버들 사이에서, 둘만 아는 의미로 대화하고 있자니 기분이 별로군. 나는 다시 한 번 젓가락으로 크림을 조금 찍어 먹고, 뜨개질 키트를 꺼내 들었다.
* * *
진한은 웃고 있다. 평소에 입가에 올리는 약간은 가식적인 미소보다, 훨씬 더.
알아냈다. 동화 선배가 낸 선문답을! 동화 선배가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은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했던 대사라는 것을! 드디어 친해질 수 있어! 작곡 재능 좋고, 머리 좋고, 잘생겼고, 연예계에서 인맥이 넓은 류이든 선배랑 친하고! 다 갖춘 인재!
그 말인즉, 동화 선배가 바로 싱클레어임을 인정한 것. 애초에 자신에게 말해 주려고 그런 대화를!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까지는 생각해도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감도 오지 않지만! 퀴즈를 냈으리라는 추측을 하고, ‘혹시 그 말이 데미안과 유관하다면?’이라는 추측이 이어지고, 마침내 데미안을 읽었을 때, 초반부에 그 대사를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은!
‘아마도, 일부러 초반부 대사를 고르신 거겠지? 대충 말이 되는 듯하면서도 초반부에 있는 걸 고르다니……. 역시 기억력이 장난 아니야, 이 선배.’
예전에 체육대회에서 알아봤다. 그 퀴즈쇼, 아무리 봐도 마지막 문제들은 미리 알려준 것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 그 러시아 사람 이름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외우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건도 그것과 비슷했다. 싱클레어라는 힌트를 주려고, 즉석에서…….
…잠깐, 그럼 그 사람 즉석에서 소설 대사를 떠올려서 퀴즈로 낸 거라고? 번역본이랑 똑같이 적혀 있던데?
새삼 ‘동화 선배니까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게, 다시 생각해 보니까 인간이 할 만한 짓은 아닌 것 같은데?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한 상태잖아.
진한이 경외감에 휩싸이고, 그 경외감이 공포와 유사해질 무렵, 목화가 그에게 다가왔다.
“형, 왜 그래?”
오랜 연습생활을 함께 하느라 자신의 성격이 음험한 걸 알고 있는 동생.
“누구 담그려고, 이번엔.”
“담그긴 뭘 담그냐, 목화야…….”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네. 형, 생각 많아질 때 그 상태 되잖아. 한 명 어떻게 끝장낼지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진한은 미소를 벗어던졌다. 아아, 개운해.
“아니이이, 목화야. 내가 누굴 담가. 그냥 사람 치부를 후벼 팠다고 정정해 줄래?”
사내에서 연습생들은 모르게 차기 리더로 밀고 있던 상황. 연습생들의 내부 평가에 진한의 의견이 자주 인용됐던 건 당연한 사실. 그래서 그는 어수룩해 보이는 인상을, 뭐든 말해도 괜찮을 것 같은 인상, 마치 죄를 감싸줄 것 같은 인상을 만들어냈다. 연습생 사이에 도는 모든 소문을 듣기 위해서.
“어쨌든, 무슨 생각 중인데?”
“동화 선배는 대체 뭐하시는 분일까, 생각하고 있었어.”
진한의 얼굴은 천천히 다시 공포로 물들었다. 그건, 인간이 가질 만한 수준의 능력은 아닌 것 같은데. 훈련을 지독하게 받은 스파이도 저 정도 기억력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 사람… 인간 아닐지도 몰라, 목화야.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 같은 거 아닐까?”
“……형, 드디어 미친 거야?”
목화는 도저히 들어줄 소리가 아니라는 듯이 표정이 썩어 문드러졌다. 지독하게 냉정한 목소리. 평소에 보여주던 온화함 따위는 가져다 버린 모습이다.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지 아는 사람이라, 아이돌로서 최적화지만,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화가 나면 더 무서웠다. 사랑받는 법을 아는 사람이 사랑받기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건, 끝장을 보겠다는 뜻이다.
“아무리 형이어도 동화 형 건들면…….”
맞다. 우리 목화는 지독한 애형가였지. 공포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못했다. 목화가 화나면 자기도 컨트롤 못할 미친개라는 걸 까먹었다. 항상 분노의 이유가 정당하고 악착같이 꾹꾹 눌러 참아서 분노하기에 큰 문제는 아니지만.
이렇게 보면 형제가 조금, 음,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진짜 미안. 그런 뜻이 아니라, 그 정도로 똑똑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었어.”
그러자 목화의 분노가 누그러졌다. 도리어 헤실헤실 풀어졌다.
“하하, 우리 형이 조금 똑똑하지? 맞아, 나도 어렸을 때 엄청 놀랐어.”
저 인간도 무서워. 자신의 실수긴 했지만, 공포는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 * *
― 형, 조심해, 미친 사람이 형한테 집착 중인 것 같애.
……뭔데, 목화야, 이 문자.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하면서 언젠가 스토커가 붙을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동생에게 걱적끼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 지금 간다.
뭔데, 목화!
그리고 그때 울리는 노크 소리. 미친 사람인가 보다.
“어우,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오늘 1위 후보에서 만났기에, 영광이라는 말씀 전해 드리려고 잠시 찾아왔습니다. 헤헤.”
미친 사람은 맞는데. 그런 방향으로 미친 사람은 아니잖아. 순하게 잘생긴 얼굴로 바보처럼 웃고 있으니까.
내 시선을 느꼈는지 진한 씨는 손에 데미안 책 한 권을 살랑살랑 내 쪽을 보며 흔들었다. ‘칭찬해 달라’라는 표정으로.
알아챘구나. 계속 고민했을 정도면 고생을 꽤나 했을 것 같다. 나는 자연스럽게 흐뭇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내게 다가온 진한 씨는 한껏 낮춘 목소리로 속삭였다.
“싱클레어 씨! 곡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제, 제가 진짜 너무 영광, 와, 어떻게 말하죠.”
발발 뛰면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모습. 조금씩 올라가는 목소리. 정말 신나 죽겠다는 표정과 의도된 행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점으로 갈까요?”
“아, 감사합니다.”
종알종알, 이번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긴장된 기색도 없이 잘 말하고 있다.
역시 토마토 주스 같은 괴이한 음료를 마시는 진한 씨.
“와아, 그래서 저 궁금한 게 있어요.”
나는 말없이 눈길만 건넸다.
“시험 의도가 궁금해서요.”
단 한마디가 뇌리에 꽂힌다. 아아, 이 사람. 그런 사람이구나.
동일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했느냐에 따라 인간의 많은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는 건, 저거 다 계산된 거구나. 저 순진한 표정. 신기하다. 류이든도 저 정도로 스스로를 꾸미지는 않는데. 애초에 무슨 시험이야, 놀린 건데.
“선배님이라면 퀴즈일 거라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맞았나 봐요.”
……잠깐, 내가 그런 성격으로 보이나.
“혹시 상품 있나요? 저는 선배님 번호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연기로 채하민 수준의 순진함을 드러낼 수 있다니, 놀라워.
“알겠습니다. 핸드폰 좀 주세요.”
“기왕 받는 김에 말도 좀 낮춰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대하기가 한층 편해졌어요!’를 연기할 수 있는 인간이라니, 대체 왜 이런 사람이 가수를 하는 거야. 박우진 대신에 연기를 하라고.
“그래, 진한.”
그러자 다시 영광이라는 빛으로 물들어가는 표정. 아, 이제 모든 게 연기로 보여, 큰일났다, 선입견은 좋지 않은데.
“진한아.”
“네, 선배님!”
초롱초롱한 척.
“이거, 다른 멤버들한테는 비밀로 해 줄 수 있어?”
“아아, 하긴 숨기시는 이유가 있으시겠죠.”
음, 그냥 동생 한 번 놀려주고 싶은 마음인데.
* * *
“이번 주, 1위 트로피의 주인공은 바로!”
“블로센스! 축하드립니다!”
MC분들의 말에 우리는 이제는 아주 약간 익숙해진 감정을 느끼면서 중앙으로 나서 수상 소감을 마쳤다. 옆에 서 있던 호핀 멤버들도 모두 환히 웃었고, 목화는 나를 끌어안으면서 축하한다고 소리쳤다.
역시, 얘네들이 1위하는 것도 보고 싶어. 1위는 좋지만, 내 곡으로 빛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작곡가의 욕심도 있으니까. 이룰 수 없는 꿈을 꾼다는 게 이렇게 마음 아픈 일이다. 팬분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1위를 해야 하는데, 작곡가로서는 호핀이 1위를 했으면 하다니. 망할 놈의 이중 심리. 역시 인간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선배님, 축하드려요, 저희가 이번에 곡이 엄청 좋아서 기대했는데, 역시네요!”
진한 씨는 또 이런 식으로 내 얼굴에 금칠하기를 좋아했다. 음, 수치스러워. 이유가 어찌 됐든 친해지고 싶은 거라면 나라는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제가 꼭! 다음에도 이번에 곡 주신 분한테 곡 받아서! 이기고 말 겁니다!”
나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예상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잖아.
“기대할게.”
호핀의 팬덤, 위시들이 모인 곳에선 아주 간간이, 가뭄에 콩 나듯 작곡가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호핀 1위 개달달하다 ㅅㅂ]솔직히 디오니 데뷔치고 초반에 인기 적었던 거 보면서… 아, 디오니 최초 망한 남돌 하나 나오냐… 싶었는데 이번 앨범으로 뽕 뒤지게 찼다. 미로… 최고의 컨셉이었다… 아직 커가는 애들 모습 묘사도 개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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