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79)
“아… 어르신, 그게…….”
어르신이라니, 아직 그렇게 불릴 나이는 아니건만. 위치가 사람의 호칭에 변화를 준다더니, 안 좋은 점도 참 많구만.
“하하, 궁금해서 그러지. 인원 규모나, 배우는 누구를 꽂는지 말이야.”
“어…….”
“설마 내가 돈을 얼마나 넣었는데, 이상하게 운용하지는 않았으리라 믿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온 화양은 자기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받아야 할 빚이 있는 사람을 처분하고 새로운 빚을 얹어 주느라 약간 정신이 없었다.
와중에,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는 지동화의 성정을 알아보고 디오니 엔터에 작업을 맡겨 주기는 했다.
‘거기도 개판이야. 내 손자가 있는데 곡을 그 따위로 준다라……. 정보가 부족한 건지, 뭔지.’
일단 돈도 벌게 하고, 지동화의 원(願)도 이루고, 지목화와 제 손자의 커리어도 챙겨 줄 수 있는 선택이니 과거의 빚을 하나 사용했지만, 짜증은 그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둘이 한 그룹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처음에는 인연이 이렇게 엮였다는 사실이 놀랍기 그지없었고, 또한 신비로웠지만 정작 현실을 살펴 보니 짜증이 두 배가 될 뿐이었다.
자신의 친구 아들과 제 손자에 대한 디오니 엔터의 대우는 역겨웠으니까.
“…어르신께서 투자를 하셨습니까?”
“내 사람이 한 거면 내가 한 거나 다름이 없지, 뭐.”
지금은 투자금을 횡령한 이 인간에게 큰 빚을 하나 지어주고, 그를 통해 자신의 거미줄을 치는 과정을 진행하는 중이다.
거미줄이 넓으면 넓을수록 누구도 섣불리 그녀를 뭐라 할 수 없고, 적당한 이득을 지속적으로 뜯어내 큰 이득을 얻어낼 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자네 아내가 이번에 또 일을 같이 한다던데.”
횡령에 네 배우자를 넣은 건 이미 알고 있단다.
“일을 잘해서 무탈하기를 바라네.”
알아서 기어야 비밀이 유지되겠지, 역겨운 것아.
화양은 부정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알량한 정의심 따위는 아니다. 정의로운 인간이었다면 남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짓은 하지 않았겠지. 다만, 정의로운 인간을 등쳐먹는 짓을 하는 것은 역겨울 따름이다.
“그럼, 잘 지내게.”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온 화양의 핸드폰에, ‘손자’라는 단 두 글자가 떠올랐다.
“무슨 일이야, 진한아.”
―아, 할머님. 안부 인사 드릴 겸.
“싱겁네.”
손자와 나누는 대화는 꽤나 즐거운 편이다. 본질은 자신의 손자는 아니고 제 동생의 아들이지만, 그 일가가 요절하며 세 살배기일 때 자신이 맡아 기른 아이. 차마 어머니라고 부르라 할 수가 없어 할머니라고 불리는 중이다.
“그래,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얼굴 한 번을 비추지를 않고.”
―데뷔해서 바쁜 거 이미 수행원분들이 다 말해 줬으면서.
미안하지만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완전히 신경을 껐다, 손자야. 어차피 자신의 손자인 것만 소문나면 알아서 대우해 줄 사람이 많으니까.
“그래. 아, 네 그룹에 목화라는 아이가 있다며.”
―응. 있지.
“잘 대해 줘.”
―…뭐야. 나한테는 그런 식으로 다정했던 적 없잖아.
원래 자신의 집 아이는 강하게 키우는 법이다.
“그럴 사정이 있어.”
―흠, 신기하네. 할머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니. 위험한 거야? 내가 보기엔 위험한 애 같긴 해.
“너는 옛날부터 좋은 머리로 가끔 이상하게 추론을 해서 문제야.”
―그래도 구 할은 맞잖아? 최근에도 우리한테 곡 주신 분 신분을 맞혔다니까?
“…무슨 소리야, 그건 또.”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 제 손자의 멍청함에 그녀는 감탄했다. 무슨 선문답이야, 그냥 네놈 갖고 논 거잖아, 머저리 같은 손자야!
친해질 만하다 싶으면 성질머리 고약해지는 것까지 제 어미랑 쏙 빼닮은 지동화에 다시 한번 감탄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녀는 한숨을 몰래 내쉴 뿐이었다.
“그 사람한테도 잘 대하고.”
―오, 이건 확신할 수 있어. 위험한 사람이지? 내가 딱 봤다니까. 아무래도 몸을 낮추고 들어가야 한다는 직감이 있었거든.
“말 같지 않은 소리하지 말고.”
―할머니, 무조건이야. 그 사람, 사람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럼 그걸 낳은 내 친구는 뭔데, 미친놈아.
그녀는 별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안부 전화였으니. 그리고 다시 곧바로 울리는 핸드폰.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왜, 멍청한 손자 놈아.”
―…음, 언제 입양을 하셨을까요.
귓가에 울리는 지동화의 목소리에 그녀는 답지 않게 당황하고 말았다. 죽어도 도움은 안 되는 손자 같으니라고.
* * *
아무래도 손자님과 통화를 끊고 나서 내가 곧바로 걸었나 보네. 타이밍이 참 기막히다.
―실언이야.
“네.”
―그래, 어쩐 일이니. 누구 한 명 담가 줄까?
대체 왜 그런 식으로 결론이.
“아니요, 연예계 정보 혹시 아실까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아, 그래? 질문해 봐.
나는 대강의 상황을 전달드렸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이 업계에 오래 있으셨으니까, 조언을 얻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러니까, 요지는 그 가제로 제의가 온 드라마에 누가 나오는지 내부 정보를 혹시 좀 알고 있느냐, 이건가?
“네, 맞습니다.”
그런데 듣고 보니, 아무리 봐도 무리한 요청이지 않나. 음악계에서 이름을 떨친다고 드라마계에도 정보가 있을 리가…….
―뭐야, 그런 건 빨리 물어봤어야지. 딱 기다리렴.
있군. 놀라워, 연예계.
나는 예의 바르게 감사 인사를 올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초롱초롱한 눈빛이 옆에서 쏟아지는 기분. 고개를 돌리니 류이든이 꽃받침을 한 자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건, 정말 어쩔까. 누구냐고 전력으로 묻는 시선이었다.
“화양 씨.”
“예전에 듣고 알아봤는데 누나한테 듣기로는 그분 엄청 무서운 분이라고 얘기하더라고.”
“그래?”
사람을 담근다는 말씀을 하시긴 했지. 농담이라고 생각하기엔 들리는 소문이 무언가 무서운 것들로 가득하긴 했다.
“뭐 어때.”
“그렇긴 하지. 우리한테 도움 주시려는 거잖아?”
칼 든 사람이 우리 편이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잠시 류이든과 멍하니 우스갯소리나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대략 삼십 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지잉.
…뭐야.
나는 핸드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해 봤다.
―메일로 보내 두었다. 확인해 보렴.
뭔데,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설마… 벌써 온 거야?”
류이든이 내 벙찐 표정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목소리에 경악감이 뒤섞여 있었다.
“…응.”
“동화야……. 우리 위험한 사람이랑 엮인 건 아닐까?”
“그러게.”
류이든은 그러다가 곧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소파에 드러누웠다.
“근데, 조금 재밌다. 약간 짜릿한 스릴감 같은 게 느껴져.”
미친놈. 의외로 도박중독자의 소질이 보이니 옆에서 못 하게 막아야겠어.
“…그래.”
최대한, 화양 씨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최대한 미루고 미뤄야겠다는 강력한 다짐이 마음에 새겨졌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화양 씨가 준 정보를 토대로, 어떤 인간이 헛짓거리를 해서 중도 하차라는 불명예를 입을지, 그리고 어떤 작품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블루 오션을 정확하게 저격할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흘러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이거.”
“네.”
“이것도.”
“…네.”
“이것도.”
“…형, 일 안 하구 뜨개질만 했어요?”
털실로 이뤄진 것들로 온몸을 둘러싸인 이현재. 내가 몇 개월에 걸쳐서 직접 짠 것들이다. 중간에 시행착오를 겪은 것도 많았지만, 최대한 따스한 것들로 끌어 모았다.
수능 날의 추위는 손을 얼어붙게 하고 긴장감이 몇 배로 들게 만드니까, 따스하기를 바라는 내 마음의 표현이다.
“봤잖아.”
“아닌데, 내가 본 건 형이 일하는 모습밖에 없었는데요.”
오전 6시 반. 일찍 일어난 멤버들이 모두 함께 이현재에게 아침을 먹이고 배웅을 해 주고 있었다.
석준은 눈을 비벼댔지만, 어쨌든 채하민은 자기가 더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고, 류이든은 초콜릿 같은 것을 한껏 챙겨주고 있었다. 아마도 수능이 끝나고 돌아온 이현재와 함께 운동할 생각에 신난 듯 보였다.
“이렇게 또 아이돌 최초 타이틀 하나 더 따겠다.”
류이든의 장난스러운 말, 나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지. 사실 나는 기지생과 함께 사기 친 것이랑 다를 바가 없으니까, 이현재가 최초가 될 수도 있다.
이현재의 목도리를 한번 더 꼼꼼하게 감싸 줬다.
“따뜻하겠네.”
힘내라는 말은 부담이 되기 쉽다. 기대는 긴장한 사람에겐 독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관심이 있다는 사실만을 단순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네.”
이현재는 맑게 웃었다. 호흡이 약간 떨리는 걸 보니, 긴장한 게 분명했다. 음, 걱정돼.
“우리 현재, 긴장되면 내 얼굴 생각해!”
채하민이 이현재의 털모자를 연신 쓸어대며 꼬옥 끌어안았다. 음, 네 얼굴 생각하면 긴장이 대체 왜 풀릴까, 하민아.
“네. 다녀올게요, 형들.”
* * *
이현재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훈기에 숨을 바투 뱉었다.
“…너무 따뜻해.”
조금 버겁게 느껴질 정도의 따스함. 가족들에게선 기대할 수 없는 따스함이었다.
가정이 불화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 가정이 따스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현재는 이 따스함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멋진 형들.
그중에서도 제 과외 선생은 유독 대단한 사람이다.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의 기억력이나 며칠을 밤을 새고도 억지로 버티는 정신력, 자신이 맡은 바 늘 최선을 다하려는 책임감. 그리고 무엇보다 기똥찬 작곡에 관한 재능.
재능과 노력을 모두 갖췄는데도 자기가 대단한 인간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게, 기만인지 겸손인지 헷갈리는 인간이다.
이현재는 지동화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닮고 싶은 사람이 처음으로 생겼다. 인간적으로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객관적으로 보면 조금 오글거리는 말이었는데도 멋있게 들렸던 건, 아마도 그 자기 확신이 부러워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동화는 언제나 자기 확신과 자기 의심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자기 스스로를 의심하면서도, 타인에게는 절대로 휘둘리지 않을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동화 형한테 처음으로 대학에 간다고 말했을 때, 학문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지만, 그건 아마도 핑계.
문학이 재밌는 건 사실이지만, 대학에 가고 싶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동화 형을 일말이라도 닮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다.
‘…정말, 노력하긴 했던 것 같아.’
잠자는 시간을 한계까지 줄였다. 쓰러질 것 같을 때도 있었고, 실제로 코피를 몰래 쏟아낸 적도 있었다. 눈앞이 핑 돌 때마다 다른 멤버들이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아마 논란이 됐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민이 형은 언제나 값비싼 보양식을 사다 주며 따스하게 응원해 줬다. 이든이 형은 언제나 건강과 멘탈 관리를 도와줬다. 준이 형은 낙천적인 소리로 웃음을 잃지 않게 해줬다. 동화 형은… 동화 형의 은혜는 갚을 수 있을까 싶을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