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8화(18/343)
18.
이동석은 지동화와 석준의 의상을 바라 보더니, 한마디를 한다.
“이야, 한복이 엄청 잘 어울리시네요.”
그의 말마따나 몸 선이 드러나게 개량된 푸른 빛깔의 저고리는 실로 잘 어울렸다.
“어떤 컨셉이기에 이런 의상을 입은 건지 물어봐도 괜찮나요?”
그러자 석준은 발작 반응과 유사하게 마이크를 집어 들더니 자랑스럽다는 듯 소리쳤다. 지동화는 조심스레 그런 석준에게서 시선을 돌려 허공을 바라본다.
“인어공주입니다!”
“인어공주요?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바로 대답하려는 석준의 마이크를 지동화가 조심스레 내리곤 입을 열었다.
“자세한 사항은 무대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무대 하기 전에 소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죠. 우선 석준 연습생부터!”
“제 꿈을 실현케 해준 동화 형님께 사랑한다는 인사를 우선 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지동화가 손을 들어 한마디 하려다가 그냥 체념했는지 다시 내렸다.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이 인어공주가 됐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다음으로 지동화가 마이크를 들었다.
“…모자란 저를 봐주시기 위해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지 않으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동화의 팬인 그녀는 이미 지동화의 한복을 본 순간에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가만히 있었다.
* * *
조용히 암전된 무대 위, 화면으로 물속이라는 느낌이 드는 영상이 떠오른다. 그 위로 흘러나오는 가야금 소리가 물방울이 터지는 것처럼 울려 퍼진다. 간간이 울려 퍼지는 가야금의 물방울 소리 사이로 신스가 슥 흘러들어 와 동양풍 느낌이 나는 멜로디와 반주를 넣는다.
잠시 그렇게 흐르던 음악은 파도 소리가 흐르며 차차 사그라들고, 서서히 켜지는 푸른 빛 조명 속에서 지동화가 눈에 안대를 감은 채로 홀로 서 마이크를 잡는다.
내 품 안에서 헤엄치던 그대
단 한순간도 나를 봐주지 않네
당신이 드디어 날 봐줄 그때
그 한순간만 기다리며 오늘이 가네
파도 소리 속에서 푸른 빛에 감싸인 채 안대를 쓴 채로 랩하듯 노래하는 지동화의 모습은 묘하게 슬픈 분위기를 만들었다.
다시 동양풍의 신스가 반주로 들어오고, 시원한 분위기의 비트가 흐른다. 그리고 옆의 조명이 켜지고 석준이 마이크를 들고 랩을 시작한다.
오늘도 하염없이 파도 치던 날
흔들어, 그대에게 빠져버린 날
봐줘요, 그저 흘러가 버리던 날
그대는 다른 이를 보러 가던 날
하루를 의미하는 ‘날’과 ‘나를’을 줄인 ‘날’이 소리가 같다는 걸 이용한 가사가 리드미컬하게 귀에 들어온다.
한 벌스 동안 이어진 석준의 랩은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인어공주를 짝사랑하는 바다’라는 주제로 흘러갔다. 그리고 물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나며 가야금이 다시 울려 퍼지고 지동화의 프리코러스가 이어진다.
만일 내게도 입술이 있다면
그대에게 사랑을 속삭일 텐데
낮과 밤을 가만히 기다리며
소리 없이 속삭여 봐도 파도 소리뿐
그 순간 대금 소리가 파도치듯 흐르며 감각적인 EDM 사운드가 밑을 받쳐준다.
무대 양쪽에 서있던 둘이 교차하는 동선과 함께 동양무용 특유의 고운 춤 선이 이어진다. 흐르는 물을 형상화한 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움직임과 함께 지동화가 마이크를 든다.
소리 없이 속삭여 봐도
그저 파도 소리뿐
진짜 파도 소리가 한 번 울려 퍼지고, 트로피컬 하우스풍의 EDM 사운드가 중심을 잡는다.
소리 없이 널 불러 봐도
그저 다른 곳을 볼 뿐
지동화와 석준은 마치 바다가 사랑하는 상대와 이어질 수 없는 걸 표현하듯, 우아한 안무를 소화하면서 반복적으로 서로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손을 뻗을 때마다 펄럭이는 저고리 자락이 보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다.
후렴 부분이 끝나며 다시 흘러나오는 비트는 드럼 소리가 두드러져 신나는 듯싶다가도, EDM 반주에 가야금 소리가 사이사이 들어가 슬픈 분위기가 흘렀다.
이 속에서 마이크를 든 석준의 입에서 짝사랑하는 상대가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려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을 표현한 랩이 흘러나온다. 인어공주 이야기에 맞춰 보면,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가 연회장에서 왕자가 다른 여자와 만나는 모습을 보기 바로 직전쯤 아닐까.
그걸 고려한 건지, 석준의 랩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은 가사로 구성돼 있었다.
돌아온 그대 눈에 흐르는 눈물
비록 위로해 줄 수는 없을지라도
내 품속에 들어와요 없던 것처럼
깨끗하게 흘려보내 줄 수 있으니
그리고 이어지는 지동화의 프리코러스, 이전과는 가사가 달라졌다.
만일 그대가 물거품이 된대도
두려워 말길 거긴 내 품일 테니
낮과 밤을 가만히 그리워하며
소리 없이 그대와 흘러갈 푸른 바다, 그 속
이전과 같은 후렴이 이어졌지만 이번엔 대금 소리가 더 부각돼 낭만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사이사이 가야금 소리와 함께 물방울 터지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울려서 인어공주의 죽음을 청중의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후렴이 잦아들며 다시 처음의 그 파도 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시 푸른 조명을 지동화가 홀로 받으며 마이크를 들어 올린다.
내 품 안에서 헤엄치던 그대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네
돌아오지 않을 그댈 따라갈 그때
그 한순간만 기다리며 오늘이 가네
이후 잠시 정적이 흐르고 조명이 툭 꺼진 상태에서 몇 번의 파도가 치는 소리만 퍼진다. 마치 바다의 울음소리처럼 들리는 그 소리만이 퍼졌다.
* * *
무대를 마친 나는 숨을 몰아쉰 후 조명이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의문을 느꼈다.
‘…왜 박수 소리가 안 들리지.’
여태껏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무대가 별로일 수는 있어도, 박수조차 쳐줄 가치가 없다, 는 건, 조금, 슬픈데.
그렇게 내가 역시 석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문제였다는 결론에 다다를 때쯤 박수 소리가 한 군데서부터 시작되더니, 곧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끝이 애매해서 박수칠 타이밍을 못 잡았나 보군. 다행이야.’
그래도 이 곡 만든다고 며칠 밤을 새웠는데, 박수조차 못 받으면 아무리 나라도 잠시지만 우울해질 수밖에 없으니.
“동화야! 내가 사랑해! 내 지갑 가져! 곡 내줘!”
박수 소리를 뚫고 흘러나오는 한 여성분의 목소리가 내 귀를 꿰뚫는다. 발성이 어떻게… 저분이 가수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순간 당황했지만 곧 조명이 들어와서 빠르게 표정을 관리했다.
이동석이 옆에서 걸어 나오며 작게 박수를 쳐주다 나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지동화 연습생, 귀가 엄청 붉어요.”
그걸, 꼭 말로 해야겠습니까?
“…무대를 하고 나면 힘이 들어 귀가 붉어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에이, 지난번 무대에서는 안 그랬는데, 그렇지 않나요? 석준 연습…….”
나를 놀릴 생각에 한껏 들떠 있던 이동석은 석준의 호응을 구하려다가 말을 우뚝 멈춘다.
왜 그러는 거지. 나는 반사적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석준이 너무나…….
“흐엉, 흐흑흐어엉.”
서럽게 울고 있었다.
…확실히 얘도 정상은 아니군. 오늘도 석준이 비정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익한 하루가 됐다.
관객분들도 당황한 사람이 절반, 그냥 상황이 웃겨서 계속 웃으시는 분이 절반이었다.
“석준 연습생, 그, 음, 어, 왜 우는 걸까요?”
“동화 형님이― 노래를― 흑, 너무, 흐억.”
…너는 대체, 하, 아니다, 말을 말자. 관객들은 키가 180이 넘는 남자가 세상이 무너진 듯 울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당황스럽다는 반응은 줄어들고 조금씩 웃는 사람이 늘어났다.
나는 당황한 이동석과 우느라 한마디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석준 사이에서 가만히 있다가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너무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연습할 땐 노래하는 도중에 우는 일도 비일비재했기에, 지금이… 확실히 발전한 상태입니다.”
“그, 지동화 연습생, 석준 연습생 왜 우는 건가요?”
“연습 때마다 달라지긴 했지만, 인어공주가 죽은 게 슬퍼서, 제가 그 인어공주를 뒤따라가겠다고 말한 게 슬퍼서, 그냥 곡 분위기가 슬퍼서 등등 많은 이유로 울었습니다. 지금은 왜 우는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흐억, 동화 형님이, 노래를, 너무, 흐억, 슬프게, 불렀습니다!”
조용히 해, 공룡 자식아.
이 혼란스럽고 멍청한 상황이 벌어진 게 내 탓이라는 듯이 말하지 마.
“…제 잘못인가 봅니다.”
내가 체념한 듯 한마디를 던지자 관객석에서 웃음이 크게 터져 나온다. 아까의 슬픈 분위기는 어디 가고, 우리가 원했던 여운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과하게 발랄한 분위기의 사람들 속에서 나만이 무표정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석준은 슬픈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이건 공룡이니까 논외로 치자.
그렇게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 앞 무대를 망쳤던 윤성호와 박우진, 그리고 홀로 독보적으로 빛났던 이현재가 우리를 반겨 준다.
“형들! 진짜 멋있었구, 저 엄청 감탄했어요!”
이현재가 달려와선 소리친다. 옆에서 서 있던 윤성호는 나와는 어색하지만, 석준과는 친한지 석준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쓰다듬어주고 있다. 서로 경쟁하는 처지치고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반면에, 박우진은 표정이 약간 어두워 보인다. 분노 같은 감정도 눈에 서려 있는 듯싶고. 아무래도 지난 무대를 망친 것이 그렇게 마음 아픈가 보다.
“동화 씨도 너무 멋졌어요! 나중에 꼭 무대 같이 해요!”
어색한 사이인데도 친화력에 스탯을 몰아줬는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는 윤성호. 나는 기가 빨리는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채하민과 지동화의 팬인 두 명은 투표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며 서로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카페 갈래요?”
채하민의 팬이 먼저 입을 열었고…….
“…네.”
지동화의 팬이 대답했다.
카페에 들어선 둘은 다시 침묵했다. 채하민의 팬은 침울한 얼굴이었고, 지동화의 팬은 죄지은 듯한 얼굴이었다.
“…솔직히, 이건 반칙 아닐까요?”
먼저 입을 연 채하민의 팬의 말에 그녀는 흠칫했다.
“…지난번 지니 편곡 때도 그렇고.”
다시 한번 지동화의 팬은 흠칫한다.
“동화가 있다, 그러면 그 팀이 승리한다. 이게 공식 같지 않아요?”
물론 아직 어느 팀이 포지션 경연에서 승리했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견제 표 때문에 다른 팀이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여론적으로 누가 이겼는지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동화는 하민이랑 팀이 안 되는 건지… 하민이도 스포트라이트 한번 씨게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녀의 한숨과 같은 말에 지동화의 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동화는 보컬이나 댄스가 딸리지도 않으면서 작곡 실력이 엄청나선 좋은 곡을 턱턱 내놓고 컨셉도 덕후들이 좋아하는 걸 내놓으니, 확실히,
‘이건 반칙이긴 하지…….’
인어공주를 짝사랑하는 바다를 표현한 동양풍 무대? 세상에, 그녀는 아직도 심장이 설레서 가라앉지를 않는다.
‘하민이랑도 무대 한번 했으면 좋겠다.’
그녀는 채하민의 팬에게 채하민 무대의 킬링 포인트를 짚어주며 속으로 생각했다.
* * *
투표 결과 채하민의 팀이 우승하고, 우리 팀이 2등을 하며 3차 경연은 마무리됐다. 일단 우리 팀이 2명밖에 되지 않았으니, 구조적으로 불리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2등이라는 성적도 만족할 만한 성적이다. 최소한 석준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은 되겠지.
“자, 그럼 다음 경연을 소개하겠습니다. 다음 경연은 2차 경연과 유사하게 4 대 4 팀전으로 진행됩니다. 지난번 2차 경연이 여자 아이돌 커버 경연이었죠? 이번엔 과거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돌 선배분들의 곡을 커버하셔야 합니다! 팀 배분은 내일 하루 동안, 보고 싶은 팀 조합을 팬분들께 설문 조사하여 이틀 후 공개하겠습니다.”
오, 이번엔 약간 방식이 다르군.
이전과는 달라진 방식에 내가 감탄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알림음이 울렸다. 갑자기 왜? 이번 경연에는 퀘스트 주지도 않더니.
[긴급 퀘스트 ‘신뢰’ 발생!당신은 현재 새로운 시공간에 잘 적응하며 주변에 동료를 하나둘 늘려 가고 있습니다. 그런 동료들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퀘스트 완료 조건 : 류이든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여줄 것
보상 : ???]
…이건 또 뭐냐, 기지생아.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믿어본 적 없는 나한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
그리고… 대체 왜 이딴 게 ‘긴급’이라는 명칭을 써야 한단 말인가. 혹시, 류이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나?
무대를 마치고 기분이 들떠 있었는데, 기지생 이 자식 때문에 기분이 나락을 찍었다. 망할 놈.
[주의! 지속적인 모욕적 언사를 멈춰주시길 바랍니다.]진짜 옹졸한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