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80)
‘정말… 노력했어.’
지난 2년 동안, 이현재는 그 한마디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보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현재 씨, 준비 다 됐으면 출발할까요?”
매니저 형의 물음에 이현재는 자신의 목도리를 매만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흡을 할 때마다 긴장이 몰려오고, 따스한 기운이 그 긴장을 몰아내길 반복했다.
부디, 과정의 의미를 결과로 되새길 수 있기를.
수능장은 언제나 따스함에 휩싸여 있다. 추워서 시험을 망쳤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난방이 함께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은 쉽게 얼어붙는다. 특히 국어 영역을 볼 때는 첫 지문을 맞닥뜨리자마자 얼어붙은 손에 당황하고는 ‘망할, 긴장돼.’라고 생각하곤 한다.
목표가 높을수록 특히 그 첫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냐에 따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라고 동화 형이 말해 줬지.’
그 형, 아무리 봐도 긴장 안 했을 것 같은데, 체험담은 지나치게 생생하다. 십중팔구 상상으로 만든 스토리일 텐데, 그렇게 구체적이어도 될까.
그리고 울리는 예비 종, 이현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대학, 못 가두 괜찮아.’
정말 괜찮을까?
‘괜찮고 말구, 본업이 있잖아.’
그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건데?
‘허사라 하더라두 후회는 없을 거야.’
진짜로? 오늘 실수한다면, 그 실수를 잊은 듯이 살아갈 자신 있어?
‘…아니.’
2년 동안 동화 형이랑 노력한 과정을, 의미 없는 걸로 만들었는데?
‘…….’
그 사람, 피곤해 죽을 것 같아 보였어도, 네 질문에는 답변했잖아. 게다가, 네가 힘들어할 때 가장 먼저 알아채고 도와준 사람이기도 하고. 정말, 괜찮아? 그 사람의 얼굴에 네 손으로 먹칠을 해도? 민폐잖아, 그거.
‘…하아.’
이현재는 다시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하지만 머릿속의 독백은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아, 제대로 하지도 못할 애새끼가 설치고 다닐 때 알아봤지.
동화 형도 분명 실망할걸. 현재, 괜찮아. 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분명 미안함과 실망을 동시에 느낄 거라고. 자기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은 건지, 분명 성적이 오를 줄 알았는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런 사람이 아니지.’
본종이 울렸다. 첫 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하지만, 이현재의 머릿속에선 여전히 독백이 울리는 중이다.
아아, 멍청한 놈. 나가 죽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한테 민폐나 끼치고. 하민이 형은 대체 돈을 얼마나 쓴 거지? 그것도 인어공주처럼 수포(水泡)로 돌아갈 거야. 이든이 형이 해 준 응원의 말들은 다 뭐가 되는 거지? 길바닥에 나뒹구는 쓰레기처럼 무의미해지겠지.
‘첫 장을 넘기자.’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 봐, 제대로 하는 게 하나 없네. 부모님이 어렸을 때 실망했던 이유가 있지.
그 똑똑한 유전자에서 어떻게 이런 애가 나왔을까. 어머니는 의심했다고, 분명 그이랑 낳은 아이가 맞는데, 어떻게…, 라고. 밤에 전화 통화하는 거 들었잖아?
‘…독서는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모든 문제를 풀었을 때, 제대로 푼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시계를 보는 걸 까먹었다.
‘헤겔은, 변증법…….’
다음 지문은 더더욱 읽히지 않았다. 동화 형이 봤다면, 글을 뭐 이런 식으로 써놨냐고 욕을 했을 것이다.
아니지, 네가 멍청한 거지. 글 쓴 사람은 다 한국대 출신 교수님들이라고? 풀 수 있는 내용은 다 넣어 놨는데, 네가 못 읽고 있는 거잖아. 어딜 남탓을 해.
그래서야 어떻게 성장하겠어. 그래서야 어떻게 애정 결핍증이나 앓던 이현재를 극복하겠어. 아무것도 변하지 않겠네.
이현재는 잠시 수능 샤프를 내려놓고 눈을 꼭 감았다.
‘침착해, 이럴 때 동화 형이라면…….’
닮기는커녕 반도 못 따라가는 모자란 새끼.
‘침착, 침착해져. 이렇게 나 스스로를 부정하게 될 때, 동화 형이라면…….’
아마도, 이렇게 말하겠지.
‘…비논리적이야.’
일어나지 않은 일을 토대로 자신을 비판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그건 전제 자체가 참인지 거짓인지 몰라서 의미 없는 명제일 뿐이라고. 그 형은 그러겠지.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냥 막연한 불안감이야. 대체 왜 자신은 자신에게 유독 신랄할까.
이현재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10분이, 아무 의미 없이 흘렀다. 아, 다시 신랄해질 것 같아. 멍청한 짓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현재는 미소를 입에 올렸다. 어째서인지 웃음이 짙게 새어 나왔다. 이게 다, 동화 형 때문이다. 아니, 덕분이다.
시험 제대로 치고, 집에 가서 동화 형한테 밥 해 달라고 어리광 부려야겠다.
‘음…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걸 엄청 어렵게도 설명해 놨네.’
생각해 보면 동화 형이 해 준 이야기 중에 똑같은 게 있었는데, 왜 처음에는 몰랐담.
‘어, 이것도 동화 형이 역사 얘기 해 주면서 나온 거다.’
서양 현대사 설명하다가 삼천포로 빠져서 경제 얘기 해 줬었지.
‘…뭐야, 쉬워.’
배경 지식을 조금 과하게 요구하는 느낌이긴 했는데, 쉬워. 언젠가 들어봤던 게 많아.
지동화는 이현재가 궁금한 모든 걸 알고 있는 한에서 답하려 했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함께 책을 읽었다.
자신이 검색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지동화는 재빨리 인터넷에서 책을 살 생각부터 했다. 그리하여 이현재는 온갖 잡지식이 머릿속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거기에 지동화가 가르쳐 준 기억법을 어느 정도 흡수하여, 잘 잊어먹지도 않았다.
‘…미친 형.’
생각해 보니까, 그 형, 정상 아니야. 지동화의 머릿속의 파편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나니까 이현재는 알 수 있었다. 그 인간, 정상은 아니야.
이현재는 다시 웃음을 흘렸다. 문제에 몰입해서, 글을 이해하면서, 한 문제씩 풀어나가면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제2 외국어로, 지동화가 특강해 준 독일어 시험까지 끝났다. 망할 한국대, 제2 외국어는 왜 쓸데없이 필수 응시인 거야.
중간에 동화 형이 싸 준 도시락이 맛있었던 기억만 제외하면, 시험을 어떻게 봤는지 정신이 몽롱해서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는 것 같다.
이현재가 나갈 준비를 하며 어깨에 몰린 피로를 털어내려고 한숨을 푹 내쉬었을 때였다.
“저, 저기, 그, 사인 가능할까요?”
‘아, 맞다. 나 연예인인데.’ 잠시 수험생으로서의 자아가 이현재의 모든 것을 지배해 버렸다. 표정 관리. 미소. 그러고 보면 쉬는 시간에 이러는 분이 아무도 없어서 신기했어. 하긴, 고3이 아이돌을 좋아하실 리가 없으니까……. 이분이 특이하신 거겠지?
물론 이현재 개인의 추론일 뿐, 반마다 고3인데 아이돌에 미친 사람 한둘쯤은 있는 법이다.
“네! 당연하죠.”
* * *
[수험장에서 최애 만났다](사인받은 사진)
질문 있는 사람?
댓글
―ㅋㅋㅌㅌㅋㅌㅊㅊㅌㅌㅋㅌㅌㅌㅋㅋㅌㅌㅌㅌㅊㅋㅋㅋㅋㅋㅋㅋㅋ 시험 어케 봤냐곸ㅋㅋㅌㅋ└놀랍게도, 내 최애가 나보다 시험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집중했다…
―와 씨 뭔데 ㅋㅌㅋㅋㅌㅋ 요즘 아이돌 수능 제끼는 경우도 많다던데, 안 그랬나 보네.
―얘네… 특이해… 이상한 경력이 조금 많아….
―그래서 블로센스는 학습지 광고 언제 들어오냐? 일단 한국대 보유 그룹인 것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가지 않냐(후략)
세상에, 이걸 고려한 적이 없어.
나는 류이든이 커뮤니티 실시간 인기 글이라면서 보여준 게시물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까, 현재, 아이돌이잖아. 수험장에서 막 말 걸거나, 아니면 다른 분이 피해 입거나 했으면 어떡한담.
“걱정 마. 수험생인 루미너스 분들이 어제 학교에서 이현재 만나도 침묵하기로 합의봤대.”
아니, 루미너스 가입 안 한 팬분들도 있을 거 아냐. 큰일이다. 기사라도 나면…….
“에이, 걱정도 많아, 동화야. 괜찮아. 현재가 피해 끼칠 애도 아니고. 사람들 모인다 싶으면 화장실로 달려가서 안 나올 성격인 것도 알잖아.”
잠깐, 그렇게 말하면 뭔가 이상하잖아. 화장실로 도피하는 사람이 되는데. 라고 말하기엔 나도 자주 해봤지. 음, 역시 나를 닮은 이현재답다.
나는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웬 인파가 미친 듯이 모여서 달려오기에, 대체 뭔가 싶은 심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바라봤다.
“…하민.”
“응, 왜?”
“현재는 화장실로 도피하는 성격은 아닌가 봐.”
그 인파의 중심에는 내가 준 털뭉치로 온몸을 감싼 채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걸어오는 이현재가 있었으니까.
“…류이든처럼 관심종자가 돼 버린 걸까.”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는 재빨리 류이든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애한테 무슨 악영향을 미친 거야.”
“아니, 내가 무슨. 현재한테 영향 미친 걸로 치면 일등은 너잖아!”
“나는 좋은 영향을 줬다고.”
근묵자흑, 근주자적, 두 말 모두 옳다는 사실을 이렇게 알고 싶지는 않았어.
류이든은 억울함에 입술을 움찔거리며 뭐라 말하려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멱살을 툭 놓았다.
“억울해! 나한테만 그래! 너무해!”
무시.
재빠르게 문을 열고, 이현재를 픽업할 계획이나 세워보자.
지금 거리로 따지면, 음, 약 10초 후에 운동량이… 그렇다면.
나는 타이밍에 맞춰 문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이현재를 따라오던 분들이 놀라며 환호하기에, 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드린 뒤 이현재를 안으로 들였다.
타자마자 털모자부터 벗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이현재.
“…하아, 다녀왔습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나는 목도리와 장갑을 받아주며 물었고,
“오늘은 칼로리 제한 해제!”
류이든은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너, 어차피 다 헬스장에 끌고 갈 거잖아. 이현재는 가만히 고민하더니 미소지었다.
“동화 형이 해 준 음식이요.”
“…고작 그걸로 괜찮아?”
“고작 그걸로 살아남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이든.”
“형이라고 불러 줘!”
“아, 미안. 어쨌든, 이든, 내 요리 맛있는 편인가?”
류이든은 손가락으로 코끝을 긁적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범한데.”
그러니까, 엄청 평범한 맛인데.
* * *
그러고 보니까, 새삼스럽게 궁금하네, 나는 닭볶음탕을 끓이며 생각했다. 이현재는 지난 가능성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아무래도 내가 없었으니, 서바이벌에서 중도 하차를 했을 것 같은데, 그다음엔 어떻게 살았을까.
원래 시험 끝나고 돌아왔을 때 성적을 묻는 게 아니라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묘하게 이런 건 궁금증을 자극한다. 이제 와서 중요할 것 하나 없는 이야기인데도.
아마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궁금한 것 아닐까. 세상의 비밀 같은 느낌으로.
띠링―!
역시 기지생, 눈치가 빨라. 나는 옆으로 눈을 돌렸다.
[말해 줄 것 같습니까?]저런.
[농담입니다! 대학 가서 졸업하고 석박사 이후 교수 됐습니다.]세상에, 잠깐만. 내가 창창한 애 앞길을 막은 느낌이잖아.
[관점에 따라선 뭐.]애매하게 그러지 말아 주겠니, 기지생. 양심이 아프니까.
[여담이지만, 전공은 국문학, 세부 전공은 현대 소설, 더욱 세부 전공은 장르 문학의 스토리텔링이었습니다.]오. 나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닭볶음탕을 한 모금 마시며 간을 봤다. 음, 평범해. 대체 왜 이런 걸 먹고 싶었을까, 이현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