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81)
“형, 밥 다 돼 가요?”
음식이 거의 다 되기가 무섭게 이현재가 다가와 물어봤다.
“응.”
“제가 세팅할게요.”
다른 것들은 대체 뭐 하고.
띠링―!
[그리고, 유일하게.]뭐, 망할 기지생. 말을 왜 하다가 말아.
[음, 약간 얄미워서 심술이 나네요. 이건 비밀입니다.]절대 알 수 없는 정보를 이런 식으로 궁금하게 만들다니, 정말 못난 인간이다.
기지생은 모니터를 끄고 여우 로봇을 바라봤다.
“음, 너는 이름을 뭐로 해야 할까.”
자와(강아지), 스타(토끼), 위즈(공룡)까지는 이름을 다 지었는데, 남은 한 마리 여우의 이름을 지을 수가 없었다. 여담이지만, 자와는 처음이라 생각 없이 붙였고, 나머지 둘은 모니터링을 토대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를 골라 별칭으로 붙였다.
“끼잉?”
여우 울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막 여우. 귀여워라. 잘 만들었어.
“너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름은 엄청 중요한데.”
기르는 나무한테도 애칭을 지어주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이름은 중요하다. 나무처럼 지성이 없는 생물한테도 그런데, 인공이라지만 지능이 있는 녀석들에겐 반드시 붙여 주고 싶다.
이현재, 이현재.
유일하게 모니터 밖으로도 만나본 사람. 물론 30대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만났던 거지만. 자신의 작품을 너무 좋아해 줬던 사람. 연구랍시고 찾아와서는 말없이 차만 계속해서 마셨던 미친놈.
새삼스럽게 동경이니 뭐니 중얼거리길래, 당시 감정이 메말랐던 기지생은 냉정하게 비합리적이라고 쏘아붙였던 기억이 있다. 문학하는 사람은 비합리를 꽤나 사랑한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그러니까, 그때였나.
미칠 듯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고, 그 너머로 이현재가.
‘형, 이제 망상 그만하구 밖에 좀 나와 봐요.’
그 서울 사투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대체 시공간이 어쩌구, 저쩌구. 그러다가 죽을까 봐 무섭거든요?’
그리고 자신은 말없이 종이만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저랑 같이 사과하러 가자구요. 몇 번을 얘기해요.’
너무 시끄러워서 돌아가라고 인터폰으로 말을 건넸다.
‘아, 정말, 갑갑해 미쳐 버리겠네요. 세상천지 형만큼 멍청한 인간이 어디 있을 성싶어요? 내일 강의 끝나구 다시 올 거니까 딱 기다려요. 무슨 애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서 이현재는 문을 쾅 치고 돌아가고는 했다.
자신의 집에 있던 책을 읽어도 된다고 허락했더니, 무심결에 자신의 일기를 읽었던 이현재. 그래서 자신이 하는 연구가 어떤 의도인지도 알았던 이현재다.
그는 기지생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친구라고 부를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망가지는 게 두려워서 어떻게든 문밖으로 빼내려고 했다.
그때 이현재는 지금이랑 비교하면, 굉장히 날카로운 편이라 별 헛짓거리를 다 하고는 했었지. 아마도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부모님 손아귀에서 제힘으로 벗어나는 동안 갖은 고생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저놈도 삼십 대에 정교수 자리 오른 거 보면 제정신인 인간은 아니야. 얼마나 똑똑한 거야, 대체.
그래, 그러고 보니 이 망할 것들이 자신을 데려오려 했던 시점도.
‘그냥… 현재 말대로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이었지. 그 망할 것들, 인생에 도움이 되는 꼴을 못 보겠다. 부디 다시 돌아올 때 몸 어디 한구석쯤 제대로 안 돌아오기를.
“…그냥 너는 현재로 부르고 싶은데, 괜찮을까.”
여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도도하게 내려가, 새삼스레 기지생의 발치에 몸을 웅크렸다. 아주 똑 닮았네. 말없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지생은 네 마리의 동물이 보기 좋아서 해맑게 웃었다. 이곳에 와서는 처음으로 해맑게 웃은 것 같다.
* * *
이현재는 가채점 종이를 내게 맡겼다.
“…직접 안 하고?”
“제가 봤을 때 멘탈 터질지두 모르잖아요. 이제 당장 연말 무대 준비 들어가는데.”
“그럼 나도 보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형이 내 성적 높구 낮다구 멘탈 깨질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러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은근 떨리는데. 내가 직접 과외한 학생이 있기는 했지만, 이현재는 단순한 과외생을 넘어섰다. 루소의 에밀에 나오는 교육 이론을 부분적으로 체험한 기분이라, 차라리 자식 같아서 그런가.
“동화야, 채점할 거야?”
“응, 저리 가.”
혼자 신성하게 진행해야 하는 의식이야.
“에이, 나도 눈치는 있지.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짐승.
어쨌든 나는 노트북을 켜서 답지 PDF 파일을 열었다. 음, 그래, 괜찮을 거야.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채점을 시작하려 했다.
“저리 가라니까.”
기웃거리지 마, 하민. 원래 이현재 성적에 별로 관심도 없었잖아. 지금도 최선을 다해서 관심 없는 척하고 있지만 다 티 났다. 너, 이번에 카메오로 연기도 들어가는데 표정 관리 제대로 해.
“아아… 궁금해.”
“현재가 나만 보랬어.”
그런 적 없지만.
“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겠다……. 나도 현재 과외해 줄걸…….”
음, 꿈은 원래 크게 꾸는 거라니까, 응원할게.
나는 채하민을 쫓아내고 다시 채점을 시작했다. …음, 뭐야. 나름대로 잘 봤잖아. 이 정도면 시험 끝나고 나서, ‘뭐지, 나만 시험이 쉬웠나’ 싶지 않나.
다 맞고, 그런 건 아니지만, 수능이라는 시험의 난이도가 요즘은 쉬운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편이 아닐까.
나는 최종 성적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한국대 가기는 글렀군. 내 수능 성적이랑 비교해 볼 때 너무 많이 틀렸어. 당시 철학과 성적이 남아돌았던 점을 고려해도 이건… 아쉽군.
하지만, 그래도 상위권 대학은 노려볼 만한 성적인 건 분명하다. 음, 그런데 이걸 말해 주는 게 맞을까, 아닐까. 어차피 성적표 나오면 조금은 실망할 텐데 차라리 예방 주사로…….
나는 생각을 관두고 가채점 표와 채점 결과를 파쇄기 ―하나하나 자르는 게 보기 안타깝다며 채하민이 선물로 줬다.―에 넣고 돌렸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되렴.
거실로 가니 이현재가 은근하게 내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쉽게도 나는 성적에 대한 어떤 힌트도 줄 생각이 없으므로 무표정을 유지했다.
“아, 진짜, 형은 가끔 보면 못돼 먹었어요. 친구 적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두 하구.”
“신랄하네.”
“저한테 신랄한 것보다는 덜하니까 괜찮을 거예요.”
“속으로는 스스로 쌍욕이라도 뱉는 거야?”
“하루에 세 번 정도는 해요.”
“오…….”
뭐라 말해야 할까, 이럴 때는. 나한테도 과외 선생님이 필요하다. 그냥 내 경험담이나 얘기해야겠다.
“하루에 세 번 정도면 양호한 편이야.”
이현재는 내 말에 입을 오므리다 열었다.
“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형.”
“나도 배워야 하는데, 책 살까?”
“음, 어른의 대화 같은 거 찾아볼까요?”
“그래.”
나는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작업실에서 컴퓨터를 만지작대다가 나는 수능의 난이도 뉴스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올해 수능 역대로 어려워……, 국어 1등급 컷 80점대, 대입 대형 변수 발생]나는 머릿속에 외워둔 이현재의 성적을 찬찬히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잘 봤잖아!’ 세상에, 어떡하지. 나가자마자 얼싸안고 함께 기뻐해 줄걸. 타이밍을 놓쳤다. 이러면 따로 언급하기 애매한데, 큰일이다. 어떡하지.
그리고 그걸 확인했을 때, 이어지는 노크 소리. 소리에 민감해져서 그런지 이제는 누구인지 쉽게 예측된다. 오늘 수능을 본 과외생이다.
“형, 오늘 밤샘 예정이에요?”
“응.”
그런데 안 자고 여기서 뭐 해. 우리 숙소가 회사랑 가깝긴 해도.
“오랜만에 커피 타임이나 해요. 숙소에선 못 하니까.”
이현재는 소파에 앉으며, 커피 머신을 이리저리 만지작댔다. 이현재가 첫 정산 때 산 물건으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는 했지만, 아무리 봐도 자기만족용 물품이다.
“…성적, 안 말해 주는 거, 낮아서 그런 거예요?”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커피가 쏟아져 내리는 걸 가만히 보며, 이현재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지켜준 거지.”
커피잔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 음, 맛있어. 역시 밤샐 때는 커피가 최고다.
“형 성격에, 제 성적 잘 나왔으면 약속 따위는 개나 줬을 텐데요.”
“이든 형한테 왜 줘.”
이현재는 헤실헤실 웃더니 천천히 잦아들며 기분이 푹 내려앉은 것처럼 풀이 죽었다.
“어쨌든, 그냥 그러려니 하려구요. 성적 잘 나오길 바라는 건 양심 없긴 하잖아요. 노력하긴 했어두, 다른 수험생분들만큼 한 건 아닐 테니까…….”
양심 없어, 너.
“사실… 말두 안 되긴 하니까.”
말도 안 돼, 너.
“그렇죠?”
“그러게.”
다 맞는 말만 했네, 현재. 양심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인간이야, 너.
이현재는 커피를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언제 말해 줘야 하는 거지. 조금 어려운걸. 은근하게 미소를 지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저 살면서 처음으로 제 뜻으로 공부한 거거든요.”
말하면 말할수록 기만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얼른 멈춰야겠다. 나중에 W앱에서 저런 발언을 했다가 성적이 늦게 공개되면 논란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현재.”
“네.”
“같은 대학 다닐 예정인데, 소감이 어때?”
“하하, 형두 참. 개소리를.”
이현재는 웃으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침묵이 짙게 내리깔렸고, 그 위로 이현재가 천천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경악이 서서히, 물에 푼 물감 한 방울처럼 얼굴에 번져 나갔다. 그래, 놀랄 만한 이야기겠지.
“잠깐만요. 진짜예요?”
“정확히는 몰라도, 합격할 만한 성적 같던데.”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이현재가 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마도 기뻐서 환호하거나, 예상했다는 듯이 웃거나, 아니면 안심해서 한숨 쉬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겠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는데도 저쪽에서 별다른 리액션이 돌아오지 않았다.
음, 뭐라도 말해, 현재.
예상과는 달리, 한 십 초 정도 어색한 정적이 작업실을 가득 채우니 아무리 사회성을 류이든(개)에게나 준 나라도 견디기 힘들었다.
눈을 돌리니, 이현재는 자세 그대로 굳어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뭘 봐, 여우 놈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커피잔을 들어 올려 이현재의 얼굴을 내 시야에서 가렸다.
“…흐아.”
음, 울음소리네. 누가 울고 있나 보다.
…잠깐, 울음?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 너머로 드러난 이현재의 얼굴. 그곳에는 서바이벌 때 이후로 처음 보는 이현재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 울어, 현재. 사람 눈물에 대처하기에는 내 사회성이 부족하다. 위로는 전공이 아니라.
“흐어, 흐, 이, 좀, 일찍 말, 해 주지.”
몰랐어, 나도. 망한 줄 알았다고.
“밤새, 걱정만, 엄청 하, 흐어, 다가, 형한테 미안해서 온 건데!”
망쳤어도 미안할 일은 아니잖아,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