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82)
나는 황급히 이현재 옆자리로 옮겨 앉아 어깨를 토닥여 줬다. 그런데, 얘는 왜 울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너무 기뻐서, 라기에는 너무 서러워 보이는데. 톡톡, 어깨를 두드리는 박자에 맞춰 머릿속이 바삐 움직였다. …아.
“고생 많았어.”
이현재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망쳤어도 아무런 잘못도 없는 건데, 현재.”
이번에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멍청한 놈이 또 어디 있어. 한국대 수준이 심각하게 낮다, 정말. 갑갑해 미쳐 버리겠어. 세상천지 어디 얘만큼 남 눈치를 보는 인간이 있을까. 아직 애답다. 어른스러워 보여도, 아직은 애답다.
띠링―!
[정말 ‘아직은’ 그런 것 같긴 합니다!]무시.
“이제 첫 번째 단계 밟았네.”
“…흐, 뭐가요?”
“나 닮는 거.”
손에 파묻고 있던 고개가 솟아올랐다. 역동적이야.
“저, 그거, 형한테 말했어요?”
응, 거의 잠결에 말했지.
“와, 세상에.”
소리 없이 수치스러움에 온몸을 비틀어 대는 이현재. 말한 줄 모르고 있었나 보다. 앞으로 놀릴 거리가 하나 늘었네.
이현재의 수능 직후, 지금은 바야흐로 시상식 시즌.
꽤나 규모가 큰 BMW(복숭아 뮤직 어워드 ― 식상함을 피하겠다고 Award에서 첫 글자가 아니라 두 번째 글자를 약자로 넣은 만행을 저질렀다.)를 시작으로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다른 말로 하면, 온갖 특별 무대 준비가 시작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흥’과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의 편곡과 기타 등등 헛짓거리를 많이 해야 한다.
거기에 다른 그룹과 콜라보를 하거나, 아니면 단체 곡에 참여하거나, 다른 그룹의 곡을 커버하는 등의 헛짓거리를 해야 할 수 있다.
“…귀찮아 죽겠어.”
무대에 서는 것도 좋고 작업하는 것도 좋은데, 콜라보는 이야기가 다르다. 낯선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는 정신적인 부담감이 뒤따르니까.
“조금 친해지고 그래 봐.”
류이든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걸그룹은 보이그룹 곡을, 보이그룹은 걸그룹 곡을 커버하는 기획 무대가 진행된다고 한다. 보통 그룹에서 하나씩 모아서 유닛을 만들어 진행한다고 하니까, 또 작년처럼 그 헛짓거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망할 파이터. 그 오글거리는 가사를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너랑 친해지고 싶어 하는 분들 많아서 콜라보하는 분들 다 좋아해 주실걸?”
대체 왜 친해지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쪽에서 별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문제다.
우리는 지금 BMW의 기획서를 읽고 있다. 그리고 문제의 ‘걸그룹 콜라보 항목’. 유닛 결성부터 연습 과정 같은 걸 촬영해서 X튜브에 올리는 걸 목표로 삼는다고 한다. 그러니, ‘친하게 지내는 척’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컨텐츠다.
“진짜, 너무 귀찮은걸.”
“형은 사람두 만나구 해야 돼요. 작업실에서만 있으면 사람이 피폐해진다니까요.”
“나 닮기로 한 건 포기했어?”
“…….”
이현재는 바로 시선을 내리깔고 글에 집중하는 척했다. 망할 과외생 제어법 확실히 하나 알았다. 이걸로 몇 달은 안정적으로 견제할 수 있겠지.
어쨌든 문제는, 그 유닛 멤버에 있겠지. 이 ‘디키’라는 문자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번 신인상은 거의 확정이네.”
“맞아요. 지난번 저희처럼 천재지변만 아니면 호핀이 타겠죠?”
“그런 신인상 유력 그룹 리더랑 같이할 생각하니까 좋지 않아, 동화 형?”
“조용.”
귀찮을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엄습했다. 이 친구, 지난번에 보니까 속이 구렁이 같은 사람이던데, 그런 사람과 컨텐츠를 찍어야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 *
“선배님, 오랜만이에요. 저 기억하시죠? 선배님의 귀여운 후배, 진한이!”
닥쳐요, 후배님. 인간이 그런 식으로 자길 소개할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누가 제 입으로 그런 소리를 합니까.
“당연하지.”
“보셨죠, 여러분, 진짜라니까요. 동화 선배님이랑 얼마나 친한데요.”
우리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와, 설레라.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촬영될 생각을 하니, 기뻐 죽어 버릴 것만 같다.
“그리고, 여쭤보니까 애초에 친할 것 같은 분들로 유닛 짰다는 설이 있어요.”
진한은 피식 웃었다.
“여담인데, 선배는 누구랑 친한지 몰라서 골치 아프셨다네요.”
그렇겠지. 이현재 피셜로 ‘공식적으로 알려진 친구가 가장 적은 아이돌’을 꼽으면 보통 내가 언급된다고 하니까.
끼익.
“그래서 나도 왔지이. 친구 없는 작곡가님 기 살려 주려고오. 오랜만이네, 동화야?”
“…예언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절대 오랜만 아니다. 며칠 전에도 내 작업실에 와서 커피 사주셨다.
“원래 이런 거,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그룹이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카메라에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알아서 컷해 주시겠지.
“그야 그렇지. 원래는.”
예언은 씨익 웃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데도 거리낌 없다는 목소리 크기가 일품이다. 내 배려를 쓰레기통에 쑤셔 박다니.
“하지만, 내가 하겠다고 난리 피웠어. 회사에서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었지.”
소문에 따르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된 예언은, 정말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걸 한단다. 거기에 준성까지 ‘무조건 예언 편’이라는 입장이라 하나 있던 브레이크까지 고장 난 트럭이라고 볼 수 있다.
“꽤 중요한 기회잖아. 평생의 은인이랑 같이 한 무대 서볼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고. 겸사겸사 나 나오면 동화, 너도 조회수 좀 받고. 상부상조!”
“그렇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기 가만히 앉아 있는 우리 후배님은 뭔가 지독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해명 좀 부탁드립니다. 그 망할 은인이라는 단어 때문에 애가 ‘역시 다른 사람한테 빚을 지워주는 전략!’ 같은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잖아.
“그래서, 우리 총원 네 명이라며. 남은 하나는 누구래애?”
“…기획서 안 보셨나요?”
“응, 네가 이 팀에 있다는 사실만 보고 왔지. 그것만 알면 그만이라아.”
미친 사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아아아아, 안다. 갓에이!”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하하, 이지현까지. 무슨 유닛이 과거나 현재에 한 번쯤 이상한 관계였던 것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방송국에서 나를 암살하려는 계획의 일환 아닐까, 망할.
“…그, 저, 아, 안녕?”
안녕하지 못해. 너랑 같이 일할 생각하니까 속이 조금 쓰리거든. 이지현이 어물쩡거리며 내 쪽으로 작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텅 빈 위장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오랜만이네.”
정말, 오랜만이야.
둘러앉은 우리.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어색한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건지 예언만 연습실 바닥에 눕듯이 앉아 속없이 웃고 있었다.
“우리, 팀 이름 정하자. 나는 ‘지동화와 친구들’ 정도로 하면 어떨까 싶은데에.”
“…촬영되고 있어요.”
“하하하.”
혹시 작은 오해를 토대로 저를 매장하고 싶은 겁니까, 미친 인간아. 누가 보면 내가 선배를 쥐 잡듯이 잡아서 부려 먹는 것처럼 보이겠다. 부디, 편집되기를. 상식이 있는 편집자라면 편집하겠지.
예언의 헛소리에 이지현과 진한 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호응했다.
“제가아 볼 때는 우리, 동화를 어떻게든 유닛에 넣긴 해야 하는데, 얘가 친한 애가 없으니까 짧게 언급이라도 된 애들 다 끌어 모은 것 같아요. 그죠?”
“그런 것 같긴 해요. 저는 동화 선배 말고 두 분 초면이라.”
“저도…….”
진한은 예의 바르게, 그리고 이지현은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말로 하면, 동화를 중심으로 모인 팀! 즉 ‘겨울의 중간’으로 합시다! 의역하면 지동화 중심이라는 뜻으로.”
“선배.”
나는 말리려고 입을 열었지만, 거의 동시에 진한 씨의 커다란 목소리에 묻혔다.
“오, 저는 좋아요. 멋있는데요? 겨울의 중간, 무슨 소설 이름 같기도 하고!”
구렁이 같은 놈이 아부를 떨었다. 좋긴 뭐가 좋아, 팀명을 나를 중심으로 정하다니, 감투 쓰기가 싫어서 반장 선거에도 나가 본 적 없는 인간한테 너무 가혹한 처사다.
“저, 저도 좋아요!”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 벽돌이 필요해.
“…나중에 정하는 게 어떨까요, 예언 선배.”
“그래애. 좋지이.”
예언의 미소, 아마도 진심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도한 것은 아닐까. 어차피 셋은 서로를 모르고, 나만 서로 아는 사이니까, 이런 식으로 나를 놀려대서 어색한 기운을 풀려고 한 거겠지.
그래야만 한다. 겨울의 중간 따위 유닛 이름으로 하고 싶지 않다.
* * *
숨 막히는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이 끝나자 촬영팀 분들이 오셔서는 작은 통을 건넸다.
“여러분들, 그럼 선곡 촬영 들어갈게요!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볼 중에 하나 뽑으시면 돼요.”
“네에.”
가장 연장자인 예언이 앞으로 가 통을 뒤적였다.
“올해 걸그룹 곡들이 엄청 많이 나왔는데, 뭐 나왔으면 좋겠어?”
“오오, 저는 에스테틱 선배님들 곡 해 보고 싶어요. 강렬한 느낌!”
“다 좋은 곡뿐이라 하나 골라잡기 아쉽습니다.”
“맞아, 맞아. 다 좋은 곡밖에 없지이.”
예언은 통을 뒤적이는 걸 멈추고는 씨익 웃었다.
“그래도, 나는 데뷔 동기인 유니클립스 곡 커버하고 싶네.”
말이 끝나자마자 들어 올린 공. 예언은 망설임 없이 뚜껑을 까서 안의 종이를 꺼내 들어 우리 쪽으로 보여 줬다. 보통, 자기가 먼저 확인하지 않나.
나는 잡생각을 집어치우고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유니클립스 ― 일식(日蝕)’
세상에. 나는 서서히 입이 벌어지며 예언을 바라봤다. 아마도 내 눈빛엔 당황, 놀라움, 그리고 걱정이 뒤섞여 있겠지. 혹시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봤어? 이게 직감이라는 거야.”
비현실적인 상황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경악했다.
“와! 뭐예요! 저도 배울래요! 어떻게, 와…….”
진한은 과장된 액션을 취했고, 이지현은 아무 말없이 놀라고만 있었다. 나도 입이 간질거렸지만, 차마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사안이라 입만 끔뻑거렸다.
“안 봐도 알겠다.”
자기도 종이를 확인하더니, 예상대로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예언. 대체 뭔데, 다 끝난 일이잖아.
[다 끝난 게 맞습니다. 우연입니다.]우연적으로 이게 가능해, 기지생? 종이 보여 줄 때, 저 인간, 확신에 차 있었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신기합니다! 이게 놀라움이라는 감정! 처음입니다.]“원래 내가 좀 세상의 사랑을 받지이.”
헤실헤실 웃고 있는 예언. 정말, 대단해.
* * *
“그래서, 왜 이거 하고 싶으셨습니까.”
카메라가 꺼진 틈, 우리는 친해질 겸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물론 나는 친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예언과 진한의 의견이 강력했다.
“아,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