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83)
다 함께 노트북으로 유니클립스 선배님들의 곡을 감상했다. 곡의 주제는 일식. 태양이 달을 가리는 순간의 찬란함을, 짧은 만남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끌림으로 표현한 곡이다.
유혹적이면서도 세련된 컨셉과 강렬한 색채의 무대로 상반기에 인기를 끌었던 곡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러한 화려하고, 세련되면서, 유혹적인 컨셉을 해 보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TOT는 아직 퇴폐적인 컨셉을 시도한 적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
“너한테 시키면 수치스러워 할 것 같아서.”
저런.
카메라가 없으니,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개소리를.”
“아니이, 이든이한테 들어보니까, 동화가 이런 거에 면역이 없다길래, 그래서.”
“…그래서?”
“한번 연습도 시켜 주고, 너 수치스러워 하는 거 보면서 즐기려고.”
‘일석이조!’라며 엄지를 올리는 예언과 생각 없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진한, 둘 다 내리치고 싶다.
“…대체 왜, 그딴 걸 보고 싶은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가 이를 악물고 묻자 예언은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준성이 형한테 옮았나 봐. 안 좋은 건 빨리 닮는다잖아. 너만 보면 약간 놀리고 싶어져. 애가 워낙에 진지한 면이 있으니까.”
아주 선배들 쌍으로 난리 났군. 그저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하여튼, 잘 부탁해. 네 수치를 눈앞에서 직관해 줄게!”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신이 난 것 같은 분위기. 음, 다음 연습 때는 어떻게든 벽돌을 가져와야겠다.
연습을 하면서도 행사를 뛰거나 짤막한 아이돌 방송에 출연하는 등 스케줄도 소화하는 나날. 오늘은 ‘일식’ 무대 연습을 위해 모였다.
“그러니까 우리 팀명 정해야 된다니까.”
“겨울의 중간 같은 거만 아니면 찬성이라고 했잖아.”
와중에 생긴 변화는, 예언의 강력한 권유로 내가 말을 놓게 되었다는 것과 예언의 정말 강력한 권유로 형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
“아아, 우리 작곡가님 좀 봐봐라. 이 팀 결성에 핵심 중추였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그러네, 자꾸.”
“애초에 나만 튀는 이름을 하는 게 합리적이지가 않잖아. 갓에이나 호핀 팬분들이 보시면 기분 나빠하실 거라고.”
“그건 맞아.”
연습 중간 쉬는 타임에 옆에 앉아서 조잘대던 예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한데, 알면 왜 하자고 하는 거야.”
“진심으로 하자고 한 건 아니지, 당연히. 그냥 너 놀리고 싶은 거지. 중심이라든가 얘기하면 너 귀 붉어지는 건 알고 있어?”
“형, 그러다 벽돌 맞을 수도 있어.”
“와아, 이든이한테 들었던 거랑 똑같다아. 하나도 안 무섭잖아…….”
예언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는지 조금 서글픈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떡해, 더 때리고 싶어.
우리 둘의 헛소리 대전을 지켜보던 진한이 다가오더니 예언에게 예의 바르게 물병을 건넸다. 저 인간도 힘겹게 사는 인간인 것 같다.
“오, 고마워.”
자연스럽게 대화를 튼 진한 덕분에 나는 드디어 홀로 된 기분을 만끽하며 편안하게 의자에 기댔다. 아, 집 가고 싶어.
“그, 도, 동화야.”
뭔데, 또.
“과자 먹을래?”
이지현이 뻘쭘한지 어색한 자세로 서서 과자를 내밀고 있었다. 음, 저 인간의 행적을 고려해 보면, 아마 독이라도 탔겠지.
“고마워.”
일단 받고, 먹지 않는다. 주사기로 약물을 투여했을 수도 있다.
이지현은 나에게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과자를 돌리고 나선, 다시 뻘쭘하게 서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애매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정말, 문자 그대로, 애매해.
못 본 새 이지현에겐 다채로운 변화가 있었다. 우선 얼굴이 보기 좋게 변했다. 원래는 아스팔트 위에서 익은 계란을 강판으로 간 다음 지점토에 섞어서 뭉친 느낌이었다(물론 개인적인 평가이므로 사실과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훈훈하다는 말은 붙여 줄 수 있을 것 같다. 음, 골격이 변하지 않은 걸 보면, 현대 의학의 신비는 아니다.
설마 성호가 인간 개조에 일가견이 있는 건 지난번 만남으로 알 수 있었지만, 이렇게 얼굴까지 바꿀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고 보면 요즘 갓에이 팬덤이 차근차근 늘어나고 있다는 이현재의 말이 있었지. …그것도 아마 윤성호 덕분 아닐까.
“어, 그, 왜?”
내 시선이 느껴졌나 보다.
“아무것도.”
“응…….”
아, 집 가고 싶어. 친해지고 싶지 않은 인간과 둘이서 대화해야 하는 상황 따위 바라지 않는다고.
“잘 봐, 진한아아. 저기 둘을 보면 알 수 있는 게 많다고.”
“네!”
“보면, 누가 더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음… Y 선배님이죠?”
“그렇지! 그러면 누가아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동화 선배죠.”
“그래. 그럼 여기서 직감을 써야 하는 거야아. 왜 싫어 할까아.”
“…어렵네요.”
귓속말이라서, 내 귀에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직감 특강이 시작됐다. 직감 분야 일타 강사답게 참여형 수업이다. 미친 것들.
“저럴 땐 보통 둘 중 하나란 말이지이. 네 말마따나 동화가 사람이랑 친해지는 걸 싫어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지현이가 과거에 개짓거리를 해서 동화가 실망했거나. 자, 이제 직감 타임. 둘 중 뭐 같아.”
“음, 제 생각엔 동화 선배가 인간 혐오자가 아닐까…….”
“에이, 세상 사람이 다 너랑 같은 가치관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네?”
“아, 이거 숨기고 있는 거였어? 미안하네.”
나는 대화를 가만히 듣다가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어떻게 바로 알아보는 거야, 저 형은. 정말 이상한 인간이다. 예전에 거리 둬야 하는 연예인 알려줄 때, 평가가 가차 없더니, 사람 보는 눈 하나는 나보다 훨씬 날카롭나 보다.
“…와, 이상한 기분이네요.”
“진짜, 숨기고 있는지 몰랐어. 미안. 흐하.”
바보 같은 웃음을 터뜨리는 예언과 정곡을 찔려서 가면이 와장창 무너져 내린 진한. 쌍으로 지랄이 났다. 항상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둘 다 똑같다.
다만, 그 속에 기르고 있는 구렁이의 종류가 달랐다. 예언이 기르고 있는 건 사람도 먹겠지. 유해조수로 지정해서 박멸해야 해. 뉴트리아 같은 인간.
“후배 괴롭히지 마, 형.”
“에이, 내가 언제 괴롭혔어, 동화야. 원래 이렇게 비밀 공유하면서 친해지는 거라고 준성이 형이 가르쳐 줬어.”
당신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 까발리고 있는 거잖아. 본래 예언에게 가지고 있던 안타까운 마음은 사라지고, 뒤틀려 있는 내면에 대한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아마 예언은 저런 식으로 말해도 진한이 자신에게 공격적으로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저러는 거겠지. 못돼 먹었다.
…잠깐, 그럼 여기 성격 못돼 먹은 인간만 네 명이 모인 거잖아. 도덕과 윤리가 앓아눕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 * *
갓 엔터테인먼트 연습실.
형식적 리더인 이지현 대신, 윤성호가 멤버들을 통솔하고 있는 기이한 곳이다.
“지현이 왔어?”
윤성호가 사람 좋게 웃으면서 손 흔들자, 이지현은 그제야 돌아왔다는 느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주 손을 흔들어 줬다.
“진짜, 피곤했어.”
“연습 빡센가 보다. 예언 선배님이 안무 만들어 준다고 했었지?”
“응, 응. 동화, 는 계속 노트북으로 뭔가 만지작대고…….”
아직 지동화를 동화라고 부르는 게 익숙지 않은지 한 번 쉬었다 말하는 이지현. 그리고 그런 이지현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윤성호.
“이번 기회에 제대로 사과하자.”
“그럴려고. 오늘 과자 줬는데 받아줬어. 나중에 무릎 꿇고 사과하려고.”
이건 진심이다. 이지현은 진심으로 지동화에게 무릎 꿇고 사과할 계획이다. 용서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사과를 한 번도 제대로 한 적 없다는 사실이 걸렸기 때문이다.
지동화는 이지현이 선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겉으로만 그런 척할 뿐, 인성은 과거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지동화가 놓친 부분은 바로 윤성호의 인간 개조 실력이 정말로 뛰어나다는 것이다.
윤성호는 선함의 수준에서 채하민과 겨뤄 볼 만한 인간이며, 동시에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의 지독함과 악착같음, 그리고 철저함은 작곡할 때의 지동화를 연상해도 될 수준이다.
한 사람에게 외부의 정보를 차단하고 사흘에서 나흘 동안 한 가지 정보만을 제공하면 일종의 세뇌가 가능하다는 연구가 있다.
윤성호는 모든 멤버들과 지독한 면담을 하며, 하루에서 이틀 정도, 어떤 때는 밤을 새면서 설득을 이어 나갈 정도였다.
즉, 갓에이에서 호연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윤성호에 의해 ‘착한 세뇌’를 당한 상태인 것이다.
그 세뇌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이지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지현은 현재 아버지와 의절한 상태. 마약 브로커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부도덕한지 윤성호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깨달음을 당한 것이다.
즉, 이지현은 선하다고 할 만하다.
“진짜, 늘 고맙다, 성호야.”
이지현은 이제는 익숙하게 감사를 입에 올릴 수 있었다.
“어? 뭐가 고마워.”
“덕분에… 바로잡을 수 있는 거잖아.”
평화로운 대화를 통해 이 정도 화목함을 만들어 낸 윤성호를 지동화가 보았다면 아마 무서운 인간이라고 평할 것이다.
“염병.”
호연은 그런 광경을 보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연아.”
윤성호는 눈으로 단호하게 그러지 말라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이 그룹에서 유일하게 윤성호와 맞짱 뜰 수 있는 호연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척하잖아, 또.”
역겹게 착한 척한다는 소리다. 더 자세히는, 너를 그렇게 고생시키고 이제 와서 저러는 게 역겹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안.”
그리고 이지현은 놀랍게도 이 정도 대우는 자신의 과거를 생각할 때 마땅하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상태에 이르렀기에. 그저 사과할 뿐이었다. 감사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사과 역시 익숙해진 것이다.
이렇게 호연의 으르렁거림에 바로 풀이 죽는 이지현의 모습은, 하룻강아지를 연상케 했다.
“착한 척이 아니라니까.”
윤성호는 자랑스럽게 소리쳤지만, 호연은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애들도 봐. 이제 다 열심히 하고, 얼마나 좋아!”
“너야.”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윤성호가 노력한 덕분이라는 소리다. 정상적인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화법이지만, 윤성호는 호연의 말을 해석하는 데 정통했다.
“물론 나도 열심히 했지만, 너나 다른 멤버들도 다 열심히 한 거지.”
진정한 리더는 스스로를 가장 낮은 위치에 두고, 다른 이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임하는 존재라고 주장했던 학자가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지만, 윤성호는 그런 리더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요즘 팬들이 차근차근 불어 가고 있어서, 최소한 팬덤이 한 줌은 넘어 망돌 테크는 어떻게 피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룹, 갓에이.
그러한 평가의 배경에는 윤성호와 호연의 고군분투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 * *
인격에 하자가 있는 인간이 네 명 모여서 커버 무대를 준비하는 것치고는 과정이 순조로웠다.
놀랍게도 진한과 예언은 코드가 통했는지 급속도로 친해졌고, 이지현은 여전히 애매했지만 나름대로 함께 연습하는 데 익숙해졌는지 자세가 조금은 당당해졌다.
다만, 자꾸 과자를 주면서 암살을 시도하기 때문에 경계심을 늦추지는 않았다.
“아, 맞다. 의상 시안 나왔대.”
우리 유닛에서 실질적 리더를 맡고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정보는 예언의 입에서 먼저 전파되고는 했다.
“오, 진짜요! 보고 싶어요, 형.”
“저도!”
예언은 가방에서 L자 파일을 꺼냈다.
“스타일리스트분들이 모여서 의상 만든대애. 멤버들 별로 하나씩 주셨어.”
나는 별 생각 없이 의상 시안을 받았다. ‘일식’은 유혹적인 게 컨셉이지만, 애초에 의상은 조금 화려한 파티를 연상케 하니까, 정장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전혀 문제가 없지.
“…이거 그물 무늬, 시스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