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84)
“아, 맞아. 시스루야.”
나는 천천히 의상을 보다가 속에서 깊이 올라오는 한숨을 토해 냈다.
“이거… 이건, 바지 찢어진 부분 표시고?”
“어, 맞아.”
더욱더 깊은 곳에서부터 용솟음치는 한숨. 나, 이 직업이 싫어질 것 같아. 요즘 의상을 보면 점점 더 그럴 거라는 예상이 돼.
“와, 선배, 바지 찢어진 위치가… 허벅지에 크게 나 있네요.”
그러게. 너무한걸.
“어, 후배님, 그거 시스루 소재가 빛 통과가 잘 되는 소재라는데?”
그러면 더 너무한걸.
레드 자켓, 블랙 시스루 셔츠, 그리고 미친 듯이 찢어진 블랙 진. 아, 싫어라.
“오… 선배님……. 자세히 보니까 상의가 아주 약간 짧은 편인데요……?”
세상에, 인간이 입을 옷이 아니잖아.
“이거, 누구한테 항의하면 돼.”
“항의는 안 받을 거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어.”
망할, 내가 난리 날 걸 이미 예상하셨구나.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입혀 보겠냐고도 전해 달라시던데?”
아아. 데뷔 초 때 한 번 입고 시스루랑 다시 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더 진화해서 돌아오고 말았다.
“형, 옷이 그게 뭐야.”
BMW 백스테이지. 유니클립스용 의상을 보고 목화가 폭소했다.
“…이렇게 네 용돈이 만들어지는 거야.”
“가장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가 있네. 진한이 형이 얘기해 줘서 기대했는데 그 이상이네.”
목화의 웃음은 점점 고조되며 이제는 배를 부여잡았다.
“형은, 프흡, 이제 배 계속 붙잡고 있어야겠다. 약간 보이네.”
“…일식 후렴구 춤 알아?”
“아, 아아, 크허허.”
한쪽 팔을 올리고 리듬을 타는 부분. 한번 시험 삼아 거울을 보며 해 봤는데 배가 보이더라.
“근데 형, 십일 자는 보이네.”
“말라서.”
“아, 꿀잼이다. 바지는 또 뭐야.”
“허벅지가 잘 보이지.”
나는 동생 앞에서 수치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에, 올라오려는 욕을 꾸역꾸역 참아냈다.
“와, 나는 형이 집에서 반바지 입은 것도 본 적이 없는데.”
“…그러게.”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형 허벅지를 보네.”
너, 어렸을 적에는 같이 목욕도 해 놓고 무슨 헛소리를.
그렇게 자판기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주변에 점점 인파가 불어났다.
“숙소에서도 그래.”
채하민은 박수를 짝짝 치며 한 유닛에 들어 있는 목화에게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 사회인이 이렇게 고생한다는 거구나.”
김현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호핀에 들어가고 나서 요즘 실력이 늘었던데, 눈치는 여전히 기르지 못했는지 나를 동정 어린 눈초리로 쳐다봤다.
우리 멤버들과 호핀의 멤버들, 그리고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갓에이와 이름 모를 분들까지 뒤섞여 난장판이 벌어졌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몰래 빠져나왔다.
“우리 스탠바이 들어가란다, 동화야아.”
그리고 빠져나오자마자 예언에게 목덜미를 붙잡혔다.
“…하, 쉴 시간이 조금도 없어.”
“어? 벌써 가요?!”
김현진은 또 아쉬워 죽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 형이랑 더 대화해야 되는데.”
진한이가 시키더냐, 현진아. 그 미친 인간이라면 분명 어떻게든 인간적 정을 미끼로 내가 곡을 계속 제공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아니야, 저건 그냥 너랑 더 친해지고 싶은 거야, 작곡가 놈아.”
예언은 내 눈빛에 담긴 부정적 생각을 알아본 듯 짤막하게 귓속말을 남기곤 인파 틈에서 진한과 이지현을 꺼내왔다.
“자, 다 모였다! 무대 부수러 가자!”
주변에 퍼져 있던 사람들이 환호했다. 특히 성호가 격하게 박수를 쳐댔다. 아마도 이지현이 걱정되나 보다. 내가 윤성호였어도 이지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수시로 보고 받으며 판옵티콘을 만들었을 테니 이해할 만하다.
“손 모아, 손.”
밖에선 MC들이 소개를 진행하는 동안, 예언이 소리쳤다.
“자아, 우리 일회성 유닛, ‘예와동디’ 힘내서 찢어 보자!”
끝까지 좋은 팀명을 끌어내지 못했던 우리는 제일 재미없게 이름의 첫 글자를 따 데뷔 순서대로 배치하는 만행을 벌였다.
작가님의 충격에 빠진 표정이 아직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정말 그렇게 하실 건가요?’라고 간절히 묻는 작가님에게 예언은 그 간절함을 눈치 못 챈 척, 사람 좋게 웃으며 당당히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공식적으로는 ‘YYDD’잖아.”
그런 간절함을 외면하기에는 양심에 찔려서, YY가 연도 표기, DD가 날짜 표기로 자주 쓰이므로, ‘일 년 내내, 하루 내내 무대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YY와 DD의 공백에 어떤 날짜를 넣어도 무대 위에 있을 사람들이라는 느낌으로.
실제로 우리 영상은 연습 과정과 편곡 과정, 그리고 안무 구성 과정의 반복과 연속이니까 틀린 말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MM이 없는 게 너무 아쉽다. 채하민이랑 목화가 있었으면 어떻게 우겨 넣었을 텐데.
“에이, 그거 짜깁기잖아. 원래 이런 거는 진실로 승부하는 거라고.”
당신, 거짓으로 이길 수 있을 상황이면 별로 망설이지도 않을 거잖아.
“…그래.”
“어쨌든, 예와동디! 무대 잘하고 모여서 나중에 고기 먹자!”
“와아! 형이 쏘는 거죠!”
“당연하지이. 이럴 때 후배들 돈 내게 하는 게 아니야!”
정말, 저 둘은 죽이 착착 맞는다. 지겨워 죽겠어.
“찢자!”
이제 정말 이 꼬라지가 전국으로 송출되겠군. 세상에서 가장 막고 싶은 일이었는데, 시간은 결국 흐르고 말았다.
* * *
어둠 속에서 무대 대형을 잡으며 나는 ‘일식’의 편곡 작업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놀랐지, 너무 잘 써서. 핫도그 씨가 쓰셨다던데, 정말 대단한 실력이었다.
가사와 곡을 제대로 들으면, 기본적인 컨셉인 ‘짧은 만남, 강렬한 끌림’을 넘어선 게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식은 달과 태양의 교차이지만, 정확히는 태양과 지구 사이에 달이 끼어드는 것을 의미했다. 이걸 연애 관계로 해석하면, 이미 연인이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사람의 심리가 표현된 곡인 것이다.
아마도 그렇기에 조금씩 불안정한 불협화음을 곡의 군데군데 숨겨둔 거겠지.
매혹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잘 들리지는 않지만, 묘하게 위태롭고 위험한 분위기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감탄한 기억이 났다. 지구에게서 태양을 빼앗으려는 달이라니, 정말… 신기한 발상이야.
너와 나, 단 둘의, 쉿
내 목소리로 녹음한 속삭이는 소리. 조명이 터지듯 우리를 둘러쌌다. 동시에 피아노 리프. 원곡에 충실하지만, 약간 위태로운 느낌을 더했다.
햇빛이 너무 밝아, 눈을 가려줄래
말없이 그저 짧은 입맞춤으로 충분해
툭, Touch
예언이 내 어깨를 툭 치면 나는 손을 그쪽으로 뻗는다. 그 위를 예언의 두 손가락이 걸었다.
설명은 나중에, 일단 따라와 줄래
그리고 예언이 걸어 나가면, 가사 그대로 우리는 일렬로 걷다가 진한을 중심으로 대형을 맞췄다. 진한이 중심에 서서 거칠게 숨 쉬듯 상체를 느릿하게 바운스했다.
자연스러운 이끌림, 이미 정해진 순간
조금 더 어두워지게, 겹쳐진 입술
순간 우리 둘밖에 없다는 강렬한 착각
네게 왕관을 줄게, 내게는 너를
진한의 양옆으로 펼쳐진 우리는 사선으로 퍼지며 웨이브를 탔다. 순하게 잘생긴 진한은 짙은 스모키 화장과 적당한 표정 연기 덕분에 퇴폐적인 분위기가 완성됐다.
그리고 그다음은 나. 안타깝게도 안무가님의 평에 따르면 이번 컨셉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간이 나라고 한다. 이런 컨셉에 어울리고 싶지 않은데.
작게 울리는 사이렌과 큼직하게 라인을 이끌고 가는 매혹적인 신스와 피아노 리프. 영화로 따지면,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질 때 울려 퍼질 법한 곡이다.
안무가님이 강조한 퇴폐적 표정 연기를 하며,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기울였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도록, Hug
내 온몸을 너로 물들여 줘, 검게
내 가슴께부터 내 목 근처까지 손을 거칠게 올려붙였다. 하늘을 바라보듯 고개를 끌어올렸다.
세상은 사라지고, 찬란한 우리만
그래, 너와 나, 단 둘의
고개를 내리며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모든 소리가 잦아들며, 아마도 방송엔 내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을 것이다. 대체 어떤 몰골을 하고 있을지 벌써부터 멤버들이 놀릴 게 걱정됐다.
쉿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목화 용돈을 위해서니까. 부디, 꼴불견만 아니기를.
이번엔 후렴구. 짧은 가사만 있고, 휘파람 같은 리듬이 울려 퍼지는 부분이다. 워낙에 잘 쓴 부분이라 별다른 편곡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일식처럼 짧게 끝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해하는 심리를 드러내고 싶어서 조금 더 무거운 느낌이 들게 바꿨다.
이해할 수 없는 심리라 녹음하는 데 작업이 어려웠지.
오늘 낮만이라도
비록 순간이라도
마치 밤이 되듯이
마치 네 것이듯이
유려한 무용 같은 안무였지만, 이번 무대에선 박자를 조금 더 잘게 끊어 우리가 추더라도 어색해 보이지 않게 신경 썼다.
원래 이런 특별 무대는 짧게 시간이 배정되는 법이라, 이지현의 랩 파트와 한 번 더 반복되는 후렴으로 끝이 날 것이다.
그러면, 최소 십 분은 혼자 대기실에 숨어 있을 계획이다.
* * *
여기, 큼직한 TV 화면, 퇴폐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그 화면을 바라보며 별안간 소리치는 여인이 있다.
“미친! 지동화! 존나! 사랑해!”
그리고 여기, 아이돌에 별다른 관심이 없음에도 시청각적인 만족감이 큰 무대 때문에 시선을 빼앗긴 한 여인도 있다.
“닥쳐 봐, 눈 호강, 귀 호강 다하는 중인데 방해되잖아!”
“아아! 여며야 하는데! 아니야! 이것도 좋은데! X발!”
“아, 제발 좀, 야, 편곡 들어야 된다고!”
지동화의 팬과 아이돌 덕질에 진심인 그녀를 위해 늘 자신의 자취방을 제공해 주는 친구의 대화였다.
“아, 아아, 아!”
현재 그녀는 이성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상반기에 나온 여돌 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을 자기 최애가 부르고 있다는 것부터 미치게 기쁜 상황이지만, 심지어 최애한테 너무 찰떡이라 더 미칠 것 같았다.
심지어 원래 가사를 그대로 불러서, 자신에게 왕관을 씌워준다고 하지를 않나, 여유로운 척 절박하게 매달리지를 않나, 난리다.
국문학과에 다니고 있는 인간답게, ‘금환일식을 이런 가사로 풀어내다니!’라고 생각하는 이성은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다. 논리적 분석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무대가 끝나고 다음 무대가 시작될 무렵.
“이거 대충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가사가 좀 윤리적으로 문제 있네.”
그녀의 친구는 이성이 불타오른 상황은 아니므로 이성적인 분석에 들어갔다.
“바람인 거잖아, 그냥.”
원곡자인 유니클립스가 불렀을 때는, ‘화려하다’ 같은 분위기가 전부였는데, 이렇게 불안한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는 곡인지는 몰랐다. 편곡 과정에서 불안함이 부각되게 바꾸는 덕분에, 숨겨져 있던 게 드러난 셈이다.
“바람이라니. 드디어 운명 만난 거지!”
그렇지만 이 사람은 지금 최애가 부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윤리를 잠시 잊고, ‘인정할 만하지!’라는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