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86)
밥 한 숟갈을 입에 밀어 넣다가 놀라서, 품위 없게 입에서 음식이 흘러내렸다. 화양이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욕을 하려다가 말았다.
“왜.”
“직접 넣었다고?”
“그래, 딱 보니 동생한테 곡 써주고 싶어서 안달나 보이길래.”
“와… 신기해. 무슨 인연인 거야. 그분이랑은.”
“알 거 없고, 별일 없으면 됐다. 요즘 수행원들이 네 앞에 악플이 달린다길래 뭔가 싶었는데, 헛소리였나 보네.”
진한은 먹고 있던 밥을 다시 한번 뱉어냈다. 할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헛소리’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정보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한 치라도 틀린 소리를 한다면 최종적으로는 해고될 수 있다.
“…손자야, 예의 없이 굴면 안 된다고 몇 번을.”
“있어. 무슨 일 있어.”
그건 막아야 한다. 제 입으로 잘못 없는 사람을 해고시킬 수는 없다.
“아니, 우리가 이번에 가요대전을 나가는데 말야…….”
방송국 사람들 중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쯤 약점이 잡혀 있다는 사람의 귀에, 처음으로 이 사태가 들어왔다.
평소라면 별다른 문제도 아닌 일이다. 수행원들도 화양이 관심 있는 일은 돈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달리 알리지도 않을 일이다.
수행원들 중 일부는 화양이 지동화라는 개인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라 판단했기에 알리지 않았다.
커리어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며, 그 방송국 안 나가도 나갈 곳이야 많고. 연말 무대 출연 시간이 조금 짧은 건 안타까울 순 있어도 문제가 되지는 않으니까.
화양은 합리성과 효율을 몹시 중시하므로, 말해서 책잡힐 일은 만들어선 안 된다.
그러나, 그저 불합리하게 친밀한 사람이 차별받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짜증이 나는 경우가 있다.
“아아, 조금 마음에 들지가 않네, 그건.”
할머니의 분노를 직관하는 건 오랜만의 일이라 진한은 입술을 앙 깨물었다. 무서워, 할머니.
“선배, 선배는 대체 뭐 하던 사람이었어요?”
“…음, 그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는데.”
“혹시 저희 집에서 길러진 스파이 같은 거였나요?”
“…저런.”
드디어 미쳤구나.
“후배님 집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뭐 하는 집이길래 스파이 같은 걸 양산하고,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짓을 할까. 차라리 해커 같은 걸 기르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아님, 과거에 재벌 출신이었어요?”
“…나름대로 먹고 사는 정도였어.”
철학을 공부하셨던 아버지는 자본 축적에 부정적인 입장이었고, 어머니는 돈 따위로는 살 수 없는 걸 바라보며 사셨거든요. 하지만, 저는 유년기 덕분에 꽤나 자본 친화적으로 자랐습니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못난 아들이라.
“이상해요.”
네가 더 이상해, 지금. 왜 갑자기 남의 작업실에 와서 해괴한 질문을 하는 건데.
“대체 저희 할머니랑 무슨 관계인 거죠?”
진한은 납득할 수 없어 보였다. 뭐가, 뭐가 납득할 수 없는 건데. 내가 아는 할머님은 채하민네 할머님밖에 안 계신다고.
“화양이라고 하거든요. 혹시 들어보셨어요?”
“아.”
세상, 더럽게 좁아.
“역시! 저희 집에서 길러낸 최종 병기!”
뭘 준비하고 있는 집이길래 그런 걸 양성하냐고. 화양 씨가 무언가 두려운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디스토피아를 대비한 집단을 기르고 있지는 않을 거잖아.
“할머님인 줄은 몰랐지만, 어머니랑 예전에 친구분이셨다고 해.”
그러고 보니, 화양 씨 결혼 안 하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혼외자가 있었고, 그 사람이 벌써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거군. 역시 세상은 넓고 다양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다.
“하하하, 선배, 할머니한테 친구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네 할머니를 그렇게 평가해도 괜찮냐.
“뭐… 진짜 할머니가 아니긴 해도.”
논리학의 기본적인 원칙 무시하지 말아줄래. ‘X’면 ‘X’여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진한이 아닐 수 있잖아.
“친구를 둘 성격이 아닌 건 알거든요.”
“나 같은 성격도 친구가 있는데 할머님이라고 없을까.”
“음, 확실히 선배는 친구가 많을 성격은 아니긴 하죠?”
네 입에서 듣고 싶지 않은데. 네 성격이야말로 겉으로 보기엔 친구가 많아도 속으로는 내려다보고 있을 인간이잖아.
“…그래.”
“어쨌든, 거짓말 말고, 진실을 알려 주세요! 혹시 시험 봐야 알려 주시나요! 하나 내 주시면 다 해결해 올게요!”
“아니, 이미 다 말해 준 거야, 망할 놈아.”
“선배, 더 욕해도 좋으니까 진실을 말해 주세요!”
“닥쳐, 제발. 존중하지만 어울려 줄 생각은 없으니까.”
진한은 순간적으로 어벙해지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진짠가 보네요. 할매한테 친구라니…….”
그러고는 들릴 듯 말 듯하는 목소리로 ‘할머니가 잔정에 휘둘릴 사람이 아닌데…….’라고 중얼거렸다. 글쎄, 내가 본 그분은 꽤나 정이 많아 보이셨는데.
“아, 혹시 목화가 힘들어 한다든가, 있어?”
“글쎄요. 무슨 일 때문에 물으시는지는 알겠는데, 목화가 남한테 쉽게 힘든 소리 하는 애는 아니거든요.”
이후로 진한은 대략적인 팀 내 분위기를 설명했다. 다들 인터넷에서 블라블라 떠들어대는 소리가 있음은 알고 있고, 또 몇몇은 상처받기도 했지만, 늘상 있는 일이니 별것 아니라고 했다.
“사실 그 정도도 못 이겨낼 멘탈이었으면 저희 팀에 없었죠.”
그리고 진한은 맑게 웃었다. 순수한 척하지 말고, 이 세상 모든 순수한 인간들에게 사죄했으면 좋겠어. 당신 때문에 인류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으니까.
“…왜?”
“멘탈에 문제 있어 보이면 다 산산조각내서 쫓아냈거든요.”
…너, 정말 미친 사람이구나. 남의 꿈을 무참히 부수고 한다는 소리가.
요즘 따라 내 시선에 담긴 의미를 읽는 기술이 많이 발전하신 진한 놈이 계속해서 순진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제 꿈이기도 해서요. 아이돌로 성공하는 거. 저 혼자만으로는 못 이루잖아요? 멤버들이랑 같이 성공하는 일이니까.”
“매정해.”
“에이, 그럴 리가요. 조금 심각하게 문제 있는 친구들만 살짝! 나머지는 다 케어해 주는 편이었죠, 당연히. 목화한테 물어보세요.”
“그래, 됐고. 곡, 이번엔 내부에서 어떤 컨셉으로 갈지 얘기 나오는 중이야?”
“아, 이거 내부 정보 유출인데요, 선배.”
히죽대는 표정을 보니까 벽돌을 가져오고 싶어, 진한아.
“오늘 내가 시간을 낸 이유는?”
“선배님이 다음 저희 앨범에도 곡 내고 싶다고 하셔서 도움을 드리러!”
“내부 정보 유출 정도는 일도 아니잖아.”
물론 나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이지만.
“하긴, 맞아요. 저도 주기적으로 할머니한테 유출 중이거든요!”
그래, 장하다, 미친놈아.
* * *
돌판에서 전쟁은 순식간에 불타오른다. 애초에 모두 하하호호 사이좋게 지내는 건 인터넷 공간에 존재하기 어렵고, 자신이 덕질하고 있는 상대방이 누군가에게 까이고 있다는 사실은 참기에는 너무 짜증났으니까.
물론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가볍게 덕질하면 스트레스도 받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발을 깊게 들였다면 온갖 스트레스를 감수하고서라도 싸움을 불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머글(덕질에 깊이 발을 들이지 않은 사람을 부르는 별칭, 마법을 쓰지 못하기도 한다)’이 가장 행복할 거라고 자조적 농담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몰랐다.
“아, 이 새끼들, 뭔데.”
아이돌 커뮤니티에서 행복하게 덕질하고 싶었을 뿐인 루미너스의 팬덤 위시 중 한 명은 오늘 핸드폰을 들었을 때 욕설을 지껄일 수밖에 없었다.
디오니 골수 팬질을 해오며, 아무래도 중소 규모 회사에서 데뷔한 그룹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해도 적당히 ‘그래… 이건 조금 시기심이 들 만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엔 지들도 떠서 성공한 주제에 지랄이 났다.
‘아니, 대체 왜 이 같잖은 걸로 문제가 되는 건데.’
처음부터 타겟팅이 잘못됐다. 방송국이 지랄 난 걸 왜 우리 애들 탓을 해.
“왜, 무슨 일 있어?”
대학에서 소문난 돌잘알이 강의를 받아 적을 노트북을 꺼내며 물었다. 깊게 친하지는 않아도 적당히 아는 사이. 덕질을 한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있어서 그런지 벽이 낮았다. 그러나 서로 어느 그룹을 덕질하는지는 모르는 정도의 거리감도 있었다.
오늘의 수업은 계절학기의 ‘비극과 희극의 비교 대조’라는 전공 강의. 둘은 수강 신청 실패로 함께 수업에 들어왔고, 옆자리에 앉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니, 내가 덕질하는 애들이 별 이상한 이유로 욕을 먹고 있어서.”
“아, 그래? 무슨 이유래?”
“선배돌보다 시간 좀 더 받았다고 지랄 났던데, 알아?”
“아…, 알지.”
아주 잘 알지. 그녀는 속으로 짓씹었다. 어찌 모르겠니. 물론 호핀의 잘못은 1도 없고, 그렇기에 본인은 완전히 입을 다물었지만, 방송국을 향한 분노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근데, 그거, 완전 소규모 애들이 난리치는 거잖아.”
“그렇지. 그런데, 짜증나잖아. 별 같잖은 것들이!”
“…같잖은 것들?”
“어. 하…, 모르겠다. 그냥 나는 한동안 커뮤 안 들어가려고. 파랑새도. 지랄 난 꼬라지 못 보겠어.”
위시인 그녀와, 루미너스인 그녀가 한자리에 모였고, 한쪽만 상대방의 정보를 모르는 상황. ‘같잖은 것들’은 분명 입이 거친 일부 루미너스를 지칭하는 것임으로 알고 있음에도 ‘만약’이라는 가정이 머릿속을 채웠다.
‘저거… 우리 애들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 이 같잖은 룸넛들이……. 지랄도 유분수지…….’
정보가 부족한 상황, 적당히 낮은 심리적 장벽과 그럼에도 아직은 좁혀지지 않은 거리. 그렇게 불편한 계절학기 첫 수업이 시작됐다.
“비극과 희극의 공통점은, 관객들이 아는 정보를 무대 위 인물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즉, 동일한 지점에서 비극의 비극성과 희극의 희극성이 출발한다는 것이죠. 가령 ‘식탁 밑에 숨은 아내’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 위에서 바람을 피는 남편’ 같은 소재는 모두 비극과 희극에서 다뤄질 수 있답니다.”
자신이 루미너스임을 알리지 않은 식탁 밑의 그녀와 그걸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본진을 모욕하는 듯한 발언을 해 버린 그녀, 그녀들의 기묘한 겨울은 이제 시작이다.
* * *
찾아온 그날. 개같은 방송국의 헛짓으로 인해 우리 무대 시간이 짧아진 날이다.
솔직히, 무대 시간이 적어서 덜 힘들 것 같아 설레는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팬분들께선 마음 아파하실 테니 막 좋아하기도 뭣하다.
그리고, 이건 또 무슨 농간인지, 우리가 야외무대를 배정받았다는 것도 아주 약간 화딱지가 날 것 같았다.
이번 가요대전에서는 특별 무대라는 이름으로 정말 추운 야외에 무대가 가설된 곳이 있었는데, 본 무대 장소보다 열악한 대기 환경 때문에 기피되는 장소였다.
신인일 때는 어차피 신인이라 대우가 좋지 않은 건 비슷해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명확하게 차별적이다. 심지어 공식적으로 항의하기에는 별것 아닌 사안이라 치졸하기 그지없다. 더러운 어른의 방식이다.
“아니, 그래, 다 좋은데, 음, 그래, 뭐.”
류이든은 어금니가 부서질 듯 씹어대면서도 미소를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누군가는 가야 할 곳, 우리가 가서 호핀이 안 갔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동생보다는 내가 추위를 더 잘 견디는 편이니까.
다만, 공정하게 제비뽑기한 게 아니라, 방송국 입맛대로 고른 건 뒷맛이 조금 더럽긴 하다. 아무래도 선정 기준은 ‘자신들이 보기에 아니꼬운 순서’가 아닐까.
“아, 스태프분들 다 같이 고생하겠네. 진짜 별로인걸.”
“음, 그렇네.”
“원래 고생은 다 같이 하는 거긴 해도, 별로다, 그치?”
“그렇지. 원래 고생은 혼자 하면 안 되지.”
녹음 완료. 분명히 고생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네 입으로 말했어, 이든.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류이든은 정직함에 죽고 사는 편이니까.
“그래도 힘내자, 얘들아. 원래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승리해야 더 멋있는 법이랬어.”
역시 저 인간은 청춘 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플롯을 좋아하나 보다. 나는 더럽고 치졸한 상대한테 똑같은 방식으로 이기는 이야기도 좋은데. 그게 더 정정당당한 느낌이라.
그래, 인생이라는 게 원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대기 환경이 열악해도 별문제 없겠지. 하루 고생하고 말 일이기도 하고.
* * *
그러나 대기실을 봤을 때, 우리는 놀라고 말았다.
“…이게 열악한 거 맞아?”
가설된 벽이긴 하지만, 꽤 튼튼해 보이는 벽과 말도 안 되는 숫자의 난방 기기. 공기 자체가 훈훈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외부 공기가 유입되는 틈이 없게 잘 막았나 보다. 의자 같은 설비나 간식 등도 제대로, 아니 제법 호화롭게 꾸며져 있다.
“뭔가 이상하네. 준성이 형이 주의하라 그래서 핫팩 엄청 챙겨왔는데.”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