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87)
“어? 나돈데!”
“저―는 없―습니다.”
나는 말없이 대기실 꼴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준비 끝나면 어디로 가서 추위를 피할지 주변 가게 리스트를 외워온 게 의미가 없어졌네. 갑자기 개과천선했을 리도 없고, 대기실을 가설로 이렇게 지으려면 꽤나 돈이 들 텐데 왜 이런 짓을 했을까.
“…설마.”
왠지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의 이름은 애써 외면했다. 정말이면 부담스러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
나는 무대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점점 의심이 확신으로 돌아서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면, 이상하긴 했어. 대체 왜 진한이 갑자기 나한테 그런 개소리를 했을까. 도움을 받는 건 좋은데, 이건 너무 큰일이잖아. 방송국에 어떻게 입김을 행사할 수 있는 건지는 몰라도 지나치게 큰 도움이다.
“와, 무대도 널찍하고 나쁘지 않은데? 괜찮았다.”
“리허설 때도 느꼈는데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음향 설비두 좋았구.”
“혹시 화해 신청 같은 거 아닐까? 우리 소속사 드디어 HBC랑 화해하나?”
공식적으로 냉전은 아니었잖아. 우리가 음악 방송 출입 밴을 당한 것도 아니고 말야. 혹시 몰라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목화의 걱정 문자 말고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없었다.
문자, 보내 볼까. 아니, 일단은 기다려 보자.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생각일 수도 있으니까. 방송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 무슨 대기업 회장도 아니고.
나는 핸드폰 창을 닫고 목화의 문자에 답변했다.
―나름대로 괜찮아
곧바로 이어지는 답장.
―와, 진한이 형 말이 맞았구나, 다행이다 걱정했어!
세상에, 화양 씨, 대체.
* * *
‘어우, 늙었더니 이렇게 비합리적인 짓도 해 버리네.’
화양은 새삼스레 자신이 늙은 것 같다는 기분을 받았다. 도와주더라도 더 확실하게 도와주는 게 맞는데, 고작 대기실 더 좋은 걸로 바꾸는 데 그 정도 거래를 하다니. 정보로 먹고 사는 지금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헛짓을 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추운 건 안 되지. 원래 난방은 확실하게 해야 하는 법이니.’
자기 밑의 사람들이 들었으면 소름이 돋아서 귀를 닦아낼 소리라는 걸 본인도 알기에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옆에 가만히 서 있던 개인 비서는 그 웃음에 소름이 돋아서 귀를 닦아내고 싶었다.
비서는 얼마 전 HBC의 예능국장과 개인적으로 담화를 나눌 때의 화양을 똑똑히 기억했다. 더러운 인간의 약점을 파고들 때의 상관은 보기만 해도 무서운 인간이다. 거기에 평소에도 실수 하나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냉철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인간이, 갑자기 웃으면 무서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이 인간, 예의주시하도록. 뒤가 구린 게 빤히 보이지?”
“네.”
그렇게 짧은 미팅이 끝나고 비서가 돌아 나갈 때, 그는 또한 분명히 들었다.
“어, 오랜만이네.”
상대방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자신의 상관이 분명 행복하다는 듯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아니, 내가 한 거라는 보장은 또 어디 있다고.”
농담하는 듯싶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아, 망할 손주 놈은 이럴 땐 도움이 되지 않네. 만나면 머리통 한 대만 후려 갈겨 주렴.”
남 앞에서는 항상 고운 소리만을 골라서 해서 더 무서운 사람이 답지 않게 비속어를 입에 올리는 것을.
‘빨리, 도망쳐야겠어.’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만나는 게 가장 큰 공포라는 말이 있다. 그는 지금 이해할 수가 없었고, 생리적인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비서가 나가고 나서 화양은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건 신경 쓰지 마라. 그냥 아, 어머니 옛 친구가 꽤나 성공했나 보다, 정도로 이해하렴.”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
제 어미랑 성격 하나는 빼다 박은 놈이니까 부담스럽니 뭐니 하겠지, 화양은 그렇게 예상하며 눈앞의 종이들을 정리했다.
―…부담스럽습니다.
그리고 화양은 이럴 때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도 오랜 반복 학습 끝에 얼추 알고 있었다.
“다 빚으로 올려둘 테니 나중에 갚으면 되지. 설마 공짜로 받아먹을 셈은 아니겠지.”
전화기 너머로 한동안 말이 이어지질 않았다. 아마도 머릿속으로 계산기나 두드려 보고 있겠지. 자신이 갚을 수 있을지를.
―…갚기에는 큰 빚인 것 같습니다.
“친구 지인이니까 할인율을 조금 넣어야지.”
―음, 그럼… 알겠습니다. 지나치게 부정한 일만 아니라면, 앞으로 종종 부탁드리겠습니다.
‘오, 갚을 수 있다, 이거군. 자신감이 좋아, 아주.’
가을이, 걔는 돈 욕심이 없어서 해 줄 수 있는 게 적었는데, 얘는 돈 욕심이 약간은 있어서 더 많은 걸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 소소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군자의 선물은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을 테니, 인사과를 부리면 판을 기울이는 데는 쓸 수 있겠지. 방송국 사내 정치를 잘만 이용하면 결국 예능국장 라인을 썰어내는 것도 무리하면 가능할 것이다.
“그래, 이번에 출혈이 크니 조금 큰 빚 하나 달아둘게.”
그리고 빚은 달리자마자 삭감이다. 친구 아들한테 빚은 무슨.
* * *
“동화 형… 나 좀 풀어줘.”
노끈으로 양다리가 묶인 류이든이 중얼거렸다. 그 노끈 중간부터 다시 매듭이 시작돼 소파 다리 쪽에 묶여 있었다.
“오늘은, 총 두 곡의 피드백을 진행할 예정이야.”
“못 들은 척하지 말고, 제발. 다리에 피가 안 통해.”
“더 좋네. 다리를 못 쓸 테니까.”
“…미친놈. 미친놈이야, 너.”
“같이 고생해야지.”
나는 부러 더 얄밉게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 류이든은 분한 표정으로 악에 받쳐 소리쳤다.
“내가! 내가 어떻게든 이 독재를 부숴 버릴 거야!”
“우와… 내가 헬스장에 가서 했던 소리랑 똑같아서 역겨운걸.”
“자유! 자유는 뭐였지! 보편적으로! 뭐라고 했잖아!”
“자유가 동물한테도 있다는 관념은 최근에서야 발명된 거라, 조금 늦어도 괜찮지 않을까.”
류이든은 멈칫했다. 내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더니 깨달았는지 내 쪽을 쳐다봤다.
“…나, 동물이야?”
나는 답 없이 작업실 의자에 앉았다.
“우선, 우리 곡으로 쓴 게 세 개 정도 있는데, 자체 기준으로 두 개는 탈락시켰어.”
“아니, 형, 나 동물이냐고.”
“두 개도 들어봐 주면 좋겠지만, 체력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내가 고른 것 위주로 피드백해 줘.”
“무시하지 말아줄래. 샐러드만 먹이는 수가 있어.”
“미안한데, 비건으로도 생활 가능할 인간한테 그런 협박이 통할 것 같아?”
류이든은 좌절한 표정으로 발에 손을 뻗어봤지만, 등산용 매듭으로 묶어 둬서 당기면 당길수록 더 팽팽해질 뿐이었다. 오늘, 두 곡 완성하기 전까지는 오늘이 오늘이 아니게 되어도 상관없다.
“오늘, 밤새우고도 안 되면, 끝날 때까지 계속 깨울 거야.”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이지?”
“스케줄이 오기 전날까지, 계속.”
류이든은 표정이 점차 공포로 물들어갔다. 스릴러물의 주인공이 범인과 맞닥뜨렸을 때 보이는 모양새 그대로다.
“하… 살려줘, 얘들아! 나, 나 죽어, 여기서!”
몸을 움츠린 채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개운하다.
“형, 그렇게 소리 질러서 들릴 리가. 여기 방음 잘 돼 있어.”
“무서운 소리하지 말아줄래. 너는 농담으로 안 들리거든.”
“그리고 오늘 아무도 오지 말라고 부탁해 뒀거든.”
“…오, 으.”
류이든은 다시 한번 좌절을 맛보았다. 짙은 씁쓸함이 느껴지는 표정.
“내가 잠들었을 때 묶어 놓고…….”
“형을 힘으로 이길 수는 없잖아.”
“예전에는, 내가 놀렸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새로 돌파구를 찾아야겠네. 나는 별 생각 없이 음악을 틀었다.
“이게 일단 수록곡 후보.”
“…타이틀 곡은 아니고?”
“타이틀로 삼으면 안 돼.”
“왜? 엄청 좋은데.”
순응이 빠른 류이든은 고개를 까딱이다가 천천히 그 위에 목소리를 입혀 봤다. 아무래도 지동화가 강제로 작업실에 앉혀 놓은 기간이 길다 보니, 이제 그도 어느 정도 어느 파트에 누구를 염두에 두고 곡을 썼는지 예상이 가능한가 보다.
“…어?”
나는 살포시 웃었다.
“이거, 현재 개인곡이라.”
공부를 끝마친 기념 선물로, 직접 가사도 쓰게 할 생각이다. 원래 공부가 끝나면 새로운 공부가 시작되어야 하는 법이니까.
* * *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휴식기 들어가기 전에 스케줄이 하나 잡혀서 알려 드리려고 모았어요. 물론 여러분들 성격에 쉬라고 해도 작업물을 내놓을 것 같은 예감은 들긴 하지만… 2주 정도 일정이 없는 건 오랜만이니까 푹 쉬었으면 하고요.”
“이의 있습니다.”
장해진 팀장님의 설명을 듣던 류이든이 반쯤 죽어가는 표정으로 손을 슬며시 들어올렸다.
“네, 이든 씨.”
“여러분들 성격이 아니라, 동화 혼자 그런 거니까, 쇠사슬로 침대에 묶어 두는 걸 동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틀 동안 밤을 새운 나와는 달리 중간중간 쪽잠도 잤으면서 뒤끝이 길다.
“독 짓는 노인 한 명 때문에 이든 씨가 고생한다는 건 들어서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소를 희생해 대를 취하는 것이니, 부디 동화 씨 옆에서 계속 고생해 주시고요.”
류이든은 과장된 몸짓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잘게 떨리는 어깨까지, 우는 사람을 연기하고 싶었나 보다. 채하민은 진지하게 당황해서 류이든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형, 내가 동화 어떻게든 말려 볼게. 목화가 그러는데, 동화가 내 말은 어느 정도 들어준다고 했어.”
“하민아, 너만 믿을게. 저 인간은 노동청에 신고해도 어떻게든 법을 악용해서 피해 갈 인간이거든. 우리 아빠도 동화는 철석같이 믿고 있어서 도움도 못 받아.”
“와…, 그렇게 말하니까 동화가 진짜 악인 같다, 형.”
“악인이야! 악인이라고! 내가! 내가 화장실 간다고 하니까! 밧줄 길이가 딱 화장실에 닿는 길이였다고!”
음, 이번 해는 정말, 지랄 농사가 잘됐네. 아주 풍년이야. 그보다 경찰이신 아버님이 나를 믿어주신다니, 나중에 누구 무고(無故)하게 신고할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여러분, 잠시 진정해 주세요. 어쨌든, 이번 연도 마지막 스케줄은, 어디론가 가는 것입니다.”
와, 살다 살다 무슨 일을 하는지 감도 안 오는 건 처음입니다. 어디론가 가는 건 언제나 하는 거잖습니까.
“별 건 아니고, 지난번 직업 체험 기억하세요?”
심바야, 보고 싶어. 요즘 사진으로 보니 정말 커졌던데, 날 알아보지 못해도 보고 싶어.
“그 방송이 꽤 반응이 좋았나 봐요. 특히 준이랑 이든이가, 크흡, 헛짓거리하는 게요.”
“아, 그 코끼리랑 싸워서 진 거.”
이현재의 말에 류이든이 껄껄 웃었다.
“마지막엔 비등비등했지.”
그 순간에서 이미 진 거야, 너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잖아.
“준이 형은…, 음, 그때 제가 자제력이 있었다는 사실에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살구 있어요.”
‘정말 죽이고 싶었는데 참았다’라는 말을 가장 우아하게 돌려 말하는 법을 새롭게 알게 됐다. 똑똑해, 현재.
“나도―, 현재랑 함께라서― 하루하루 감사―해.”
그리고 돌려 말하기는 상대방이 눈치채 줄 수 있을 때나 의미가 있는 법이다. 아마 석준은, 반어법으로 칭찬하면 감동하지 않을까.
“어쨌든, 그때 나름대로 반응이 좋아서, 한 번 더 나오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참 고마운 분들이죠? 방송 초창기에 나갔는데 이후 시청률이 꽤 나온 뒤에 다시 챙겨 주시려는 거니까.”
“이번에도 무슨 일을 하는지는 비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