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88)
“네, 비밀이랍니다. 물론 저는 알고 있지만요.”
장해진 팀장님이 부러워하라는 듯이 소리치셨다.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 윗사람이 원하는 게 확실하면 대충 따르는 시늉이라도 할 것. 나는 류이든의 가르침에 따라서.
“정말 부럽습니다.”
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류이든은 순간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숙여 어깨를 들썩였는데, 진심으로 웃고 있는 것 같다.
“…그래요, 다음부턴 영혼도 좀 챙겨줬으면 해, 동화야.”
“정말 부러운 겁니다.”
“그래…….”
장해진 팀장님의 환멸로 가득 찬 표정을 보고 있으니 알 수 있었다. 배운 대로 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 현재, 더 대단해.
노랑과 분홍, 그리고 초록색으로 가득 찬 건물. 기묘한 무늬의 건축 때문에 어느 정신 나간 건축가가 지었을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곳.
그곳 앞에 우리는 덩그러니 서 있었다.
“오늘 일할 장소는 여기입니다!”
PD님이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뭐 하는 곳인가요?”
용기 있는 류이든, 칭찬해.
“아동복지센터랍니다.”
세상에, 목화는 이렇게 발전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저런 디자인이 정말 아이들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될까. 보기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충격을 받은 나와는 달리 PD님은 자연스럽게 이번 노동 장소와 목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돌보미 교실이라는 게 있는데, 하교하고 부모님을 기다리는 저학년 친구들이나, 미취학 아동들이 같이 어울려 노는 곳이에요.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되고요.”
“아아, 그러면 저희가 일일 교사 같은 건가요?”
류이든의 말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나 주제에 교사는 무슨. 지식을 전달하는 건 몰라도 아직 성장하지 않은 아이를 앞에서 이끌어 주기에는 인품이 너무 부족하다.
“교사는 너무 거창하잖아요? 막 책임도 클 것 같고. 도우미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선생님들께 여쭤봤는데, 아이들 앞에서 긴장하면 은근히 티가 나서 제대로 놀림받기 쉽다고 하더라고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같이 논다!’라고 생각하시고요.”
저런, 하민이는 큰일이네. 주요 놀림 대상으로 선정되어서 하루 종일 난리겠어.
“이곳에서 3일간 근무하는 게 우리의 목표랍니다.”
저런, 하민이는 정말로 큰일이네. 사흘 내내 놀림받을 테니까.
“그럼 우선 여러분들이 교육을 받으러 가 볼까요!”
나는 옆을 돌아봤다. 다른 멤버들이 주루룩 편하게 웃으며 PD님을 따라가는 게 보였다. 우습기도 하지, 어째서 류이든이 가장 믿음직한지 모르겠어. 이놈 말고 아동 교육에 좋을 인간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이현재는 아이들의 희망을 이해하기 힘들 것 같고, 채하민은 아이들의 어두운 면을 이해하기 힘들 것 같고, 석준은 그냥 모를 것 같다.
“이든.”
“왜, 형.”
“형만 믿을게.”
참고로 믿는다는 소리는 실수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이다. 하지만 몇 년을 봤는데도 아직 내 언어에 익숙해지지 못한 건지 류이든의 얼굴이 ‘의문―당황―감탄―애정’의 순서로 급변하는 게 보였다.
“오, 그거 좀 사랑스러운걸? 한번 안아봐도 될까?”
닥쳐, 그러니까 너한테 좋은 소리를 못 하는 거잖아.
* * *
선생님들께 행동 지침을 전달받고 나서, 우리는 복도에 섰다.
“…와, 엄청 소란스럽네요.”
“한창 놀 때잖아요. 선생님이 없으면 항상 저렇답니다.”
소란스러운 정도가 아닌데. 나는 골이 울리는 것만 같은 착각에 머리를 부여잡을 뻔했다. 버틸 수 있을까, 저 속에서.
“자아, 돌보미 교실은 학년별로 운영되거든요. 그래서 선생님들도 반을 나눠서 들어가실 거예요.”
한 선생님의 말에 나는 속으로 경악했다. 부디, 혼자 배정되는 일만은 없게 해 주세요.
[누구한테 기도합니까? 혹시 저?]닥쳐.
[불손하지만 소원은 들어 드렸습니다.]그냥 예측한 거잖아, 생색 내지 마.
[서운.]“초등 저학년이랑 미취학 아동, 요렇게 두 반으로 나뉘는데, 고양이반과 강아지반으로 부르고 있어요.”
병아리반과 토끼반이 근본이지 않을까요, 선생님.
“오, 이미 누가 들어가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에요.”
채하민이 헤실거렸다. 당연하게도 시선은 나와 류이든에게로 옮겨 붙었다.
“네, 그렇죠? 여러분들의 얼굴을 참고 많이 했답니다. 그래서 고양이반에는 하민 선생님이랑 동화 선생님이, 이든 선생님, 준 선생님, 현재 선생님은 강아지반으로 배정했어요.”
“세상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심정인 나와 달리 채하민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괜찮겠지. 큰일 없겠지. 내가 부디, 참을성이 있기를.
“저, 준이 형이랑 같은 반에 배정되면 아이들에게 비교육적인 장면을 많이 보여 줄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두 분이 친한 거, 저희가 다 확인했습니다!”
이현재는 선생님의 답변에 당차게 들어 올렸던 손을 슬며시 내렸다. 아마도 방송국에서 내려온 지침이라 바꿀 수 없다는 걸 예감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속에서 올라오는 깊은 좌절감은 어쩔 수 없었는지 눈을 질끈 감고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맞―아. 현재. 우리 둘이 너무― 친해서 애들이 보고 배울까 봐 겁―나.”
아니야, 준. 현재는 애들 앞에서 네 머리를 내리찍지 않을 자신이 없는 거야.
“제발, 평정심을 가질 수 있기를…….”
선생님 두 분은 해맑게 웃으며 두 명의 대화를 보다가 박수를 짝 쳤다.
“그럼 가 보실까요?”
“얘들아, 학부모님들께 컴플레인 들어오면 바로 나한테 말해야 돼.”
류이든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것도 내 쪽을 넌지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저 짐승, 내가 걱정되는 걸까. 그래도 목화를 기른 경력이 있는데 말이다.
“형은 두 명이 싸우면 힘으로 현재부터 붙잡아야 해. 석준은 싸운다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으니까.”
“에이, 그건 나도 알지.”
“여러분, 들어가시면 그런 걱정할 틈이 없으실 거예요.”
선생님 두 분은 흐뭇하게 우리를 보다가 한마디 던졌다.
“체력이, 싸울 만큼 남지 않을 테니까요.”
불길한 예언,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들의 얼굴은 마치 앞날을 훤히 내다보는 듯이 초탈한 얼굴이었다. 붓다가 환생했다면 저런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 * *
기지생.
[네.]기도할게, 구해 줘.
나는 양쪽 팔에 매달려서 알 수 없는 말을 미칠 듯이 쏟아내는 아이 두 명에게 반사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기지생에게 SOS 신호를 보냈다.
[저는 예측할 뿐이라.]사과할게, 구해 줘.
반대편에선 채하민도 아이 두 명에게 파묻혀서 웃고 있었다. 저 놈, 진짜 웃고 있어. 미친 토끼 놈.
[엿이나 드십시오! 하하하]선생님은 우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아, 여러분, 이제 그만.”
“네에!”
뭔데, 내가 그만하라고 말할 때는 안 들었잖아. 너희들, 벌써 권력이 뭔지 알고 있는 거야?
“여러분, 여기 두 분은 앞으로 삼 일 동안 여러분들 공부를 도와 주실 선생님들이에요.”
“와! 저 TV에서 봤어요!”
“그렇지, 혜지야! 잘생긴 오빠들이 도와 주니까 공부할 맛이 나지 않나요?”
아니요, 얼굴과는 무관하게 얘네들은 공부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놈들, 분명히 저희를 죽이는 게 목표일 겁니다.
“네! 열심히 할 거예요!”
저 아이, 벌써 가면을 쓰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영악하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사회성이 나보다 더 좋은 게 틀림없어.
다른 아이들도 혜지라고 불린 아이와 마찬가지로 교실을 찢을 기세로 소리쳤다.
“자, 좋아요. 그 전에! 우리 선생님들 자기소개도 들어봐야겠죠?”
수치스러워.
선생님 옆에 일렬로 선 우리. 채하민은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손을 흔들며 해맑게 웃었다.
“반가워요, 여러분! 여러분이랑 같이 공부할 귀염둥이 토끼 하민 선생님이에요.”
경악스러운걸, 하민. 지금 대본이라고는 없는 이 방송에서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 사실이야?
“반갑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공부할.”
“고양이.”
“지동화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하민, 지금 무슨 짓을. 자기소개 중간에 한 단어를 끼워 넣다니, 심지어 그것도 내 말버릇상 한 번 숨을 고르는 부분을 정확히 노려서 끼워 넣다니.
그러나 채하민은 내 시선을 피한 채 웃음을 꾹 억누르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귀가 빨개요!”
“어디 아파요?”
혜지와 그 옆에 천사처럼 생긴 아이가 물었다. 아, 이 아이들, 순수해서 남을 칼로 찔러도 모르는 타입이구나. 수치심을 두 배로 만들고 있어.
“선생님들이 자기소개도 했으니, 자유 시간을 드려야겠죠? 선생님들한테 질문도 하고, 같이 놀아달라고 부탁도 하고! 아시겠죠, 여러분!”
“네!”
“대신 힘들게 하면 안 돼요!”
“네!”
선생님, 아이들한테 힘들게 하라고 시키신 다음에 그러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 저희는 어느 장단을 따라야 합니까. 지금 살인을 의뢰하신 다음에, 그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고 말씀하신 셈이잖습니까.
그러나 이 상황이 버겁게 느껴지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지 채하민은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아이들에게로 달려갔다.
“얘들아! 뭐 할까!”
“쌤, 쌤, 저 이거, 색칠공부 같이 하고파요!”
“우와아, 엄청 재밌겠다. 근데 친구는 이름이 뭐야?”
친화력. 행동력. 외의 모든 사회성이 나의 몇 배라니. 그렇구나, 상대방이 나쁜 마음을 먹지만 않으면, 채하민만큼 사회적인 짐승도 몇 없을 거야. 상대방이 아이니까 정말 순수하고 해맑게 사회적일 수 있는 거구나.
류이든의 걱정 어린 시선이 내게 꽂혔던 이유를 조금씩 깨달아 갔다.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은 더럽고 추악한 속내가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어른을 상대로 할 때나 유용한 것이지, 이곳에서는 쓰레기나 다를 바가 없었다.
목화는, 조용한 아이였는데. 유일한 무기인 경험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 수능장에서 신분증을 안 가져온 걸 깨달은 심정이 이런 것 아닐까. 큰일이야.
“쌤, 쌤, 혹시 피아노 치실 줄 알아요?”
한 아이가 피아노 교본을 들고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이거, 엄청, 엄청 어려워요.”
탈출구 발견.
“음, 악보 있으면 제가 한번 쳐 드릴까요?”
아이는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네, 네! 피아노, 피아노!”
그래, 오늘 내 역할은 주크박스인 걸로. 채하민이 아이와 놀아주고, 나는 피아노를 칠 거야.
* * *
그러나, 아이들은 주크박스도 사랑할 수 있는 생물이라는 걸,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끊임없는 곡 요청과 피아노 소리에 몰려든 인파. 그 중간에서 오직 나 홀로 피아노를 치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했다.
“쌤, 쌤, 이것도!”
한 아이가 악보를 올리면, 나는 적당히 치고, 다시 악보가 올라오고, 치고, 결국엔 누가 먼저 악보를 올릴지로 내기가 걸리고, 아이들이 싸우고, 울고, 달래고, 다시 피아노를 치고.
주크박스, 때려치고 싶어.
“동화야, 내가 맡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