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9화(19/343)
19.
‘왜 별일 없는가.’
팀원 발표가 이틀 후 이뤄지기 때문에 갑작스레 찾아온 휴일에 숙소에서 멍하니 시간을 흘리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평화로운데, 대체 무엇이 긴급이라는 걸까.’
“동화야! 점심 뭐 먹을 거야?”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버섯이 먹고 싶은 날이야.”
…평화롭다는 말은 취소. 식판에 전쟁이 날 예정이군.
나와 채하민이 메뉴 고민을 하는 중에 이현재가 들어와서 메뉴 선정 논쟁에 참여하더니 결국엔… 닭가슴살 샐러드로 결정 났다.
“애초에 선택지가 없었네요.”
이현재의 체념 섞인 말투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버섯 넣을 수 있어서 만족해.”
미친 초식동물 같으니라고. 대체 그 물컹한 걸 왜.
“그런데 이든 형은 어디 갔어요?”
…그러고 보니.
“이든 형 아까 전화 받더니 뛰어가던데?”
…이건 좀 불안하군. 이제 곧 긴급해질 것 같으니 빨리 밥을 먹어둬야겠다.
* * *
채하민이 연습하러 떠난 와중에 나 홀로 남아 류이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게 아주 약간은 불안하다.
그리고 마침내 숙소로 돌아온 류이든의 얼굴은 예상대로 눈에 띄게 굳어있었다. 한편으론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이기도 하고.
나는 침대에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는 류이든을 보고 물었다.
“…왜 그래?”
그러자 류이든은 잠시 한숨을 쉬더니 툭 뱉는다.
“서바이벌, 하차하려고.”
…신뢰라는 게 이 말을 믿어주라는 말은 아닐 테고.
“왜?”
“인터넷에… 내 루머가 올라왔다나 봐.”
류이든은 한 단어 한 단어를 최선을 다해 뱉어내고 있었다.
“…무슨?”
“…한번 볼래?”
나는 류이든이 건네는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여기는 또 뭔 사이트야.’
…그냥 이슈 게시판 같은 곳인가. 나는 빠르게 글을 훑어보았다.
[더 넥스트 니체 류이든 연습생 폭로합니다.]저는 류이든 연습생과 같이 니체 엔터에서 연습생을 했습니다. 연습생 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손발이 떨립니다. 연습생 시절 저는 류이든 연습생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관계가 아닌 연습생 동료로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류이든 연습생이 여러 번 데뷔조에서 탈락하며 관계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후략)
이후 이어진 내용은 대강 류이든과 처음에는 형 동생 사이로 잘 지냈으나, 류이든이 거듭 데뷔에 실패하며 분풀이 대상으로 자신을 삼았다는 식이다.
마지막쯤엔 친했을 적 함께 찍은 사진이라며 류이든과 함께 찍은 사진을 한 장 올려두었다.
…이 무슨 병신 같은 글이 다 있나. 증거랍시고 있는 건 지금 나도 당장 찍을 수 있는 친목 사진인데, 이게 어떻게 폭력의 증거가 되는가.
‘갑자기 화가 나네. 기지생 얘는 내가 이딴 허접한 글을 보고 믿을 거라고 생각해서 퀘스트를 준 건가?’
“…이거 딱 봐도 거짓말이잖아.”
“…맞아, 맞는데, 여론이 그리 좋지 않네.”
나는 댓글에 눈을 돌리고 읽기 시작했다.
댓글
(전략)
―류이든 따스한 형 이미지로 빨던 애들 다 어디로 갔냐 따스한 형은 개뿔 ㅋㅋㅌㅋㅋ
―ㅅㅂ 확증도 없이 씨부리는 거 누가 못 함?
―응~ 폭력 범죄자 빠는 거 안 힘드니?
―그냥 이런 논란 터진 거 자체가 문제지 팀 피해 주기 전에 빨리 하차해라
―ㅇㄱㄹㅇ 내 새끼 데뷔하는 팀에 논란될 놈 있어서 뭐 하냐고
―와 그 몸으로 사람 치면 살인 미수 아니냐?
―ㄹㅇㅋㅋ
―지동화가 같이 운동 가기 싫어한 이유가 있지 ㅋㅋㅌㅌㅋㅋㅋ
―난 류이든 믿어
―종교인 납셨네~ 믿으면 피해자 마음 치유되나 봅니다~ 걍 빠른 하차가 답~
(후략)
흠, 시답잖은 말이 많군.
류이든이 아닌 다른 연습생의 팬들은 곧 데뷔할 팀에 피해를 주는 게 싫은 거고, 나머지는 그냥 재미인 것 같군. 이게 뭐가 재밌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나가라고 한 거야?”
그런 거면 나도 나가게.
“아니, 같이 대응해 준다고 하셨어.”
“그런데 왜?”
“…그러니까.”
…뭐라는 거야.
내가 순간 말이 막혀 가만히 있자 류이든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말한다. 절벽 위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마음을 먹은 사람과 표정이 유사했다.
“…사실 저거 누가 썼는지 알 거 같거든.”
“…그러면 일이 더 쉬운 거지.”
명예훼손에 허위사실유포인데? 법의 철퇴가 얼마나 달콤한지 뇌리에 새겨주자, 형.
“…내가 지쳐서.”
나는 다시 한번 말문이 막힌다. 대체 뭔 소리를 하려는 걸까, 벌써부터 설레는군.
“뭔가, 내가 데뷔하는 걸,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방해한다는 게… 지쳐. 여기까진가 봐, 내가.”
음, 이거 약간 이해하기 힘든데.
그냥 등신 하나가 등에 칼 꽂은 건데, 그게 누구든 일단 옆에 돌멩이라도 주워서 머리를 두 동강 낼 생각부터 해야지, 무슨…….
“그리고, 너희들한테 민폐 끼치는 것도 싫고.”
그러곤 류이든은 애써 웃어 보이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미친 건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모습에 뭐라 말하든 역효과만 날 걸 뻔히 알아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류이든처럼 침대에 드러누운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첫째, 류이든은 무조건 이 선택을 후회한다. 예상보다 감정적인 인간이라 지금 당장은 이러지만, 채하민의 ‘가능성의 조각’에서 봤던 것처럼 후회할 게 뻔하다.
마지막 도전이라고 참여한 데뷔 서바이벌에서 탈락하는 것도 아니고 이딴 일 때문에 중도 하차라, 후회하지 않을 인간이 있을까.
둘째, 류이든은 미친놈이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대강 정리해 보면, 자신의 꿈이 엎어질 게 뻔한 상황을 만든 게 지인이라는 데서 큰 충격을 받았다는 거다.
그런데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걸로 도전을 관둘 리 없다.
셋째, 따라서 내가 류이든을 설득할 순 없다. 류이든을 미쳤다는 것밖에는 이해가 불가능한 현재로서는 설득은 글렀다. 아직도 지쳤다는 게 의미하는 바가 뭔지 잘 모르겠으니.
그러므로 결론, 류이든을 바꿀 수 없으면 상황이라도 바꿔야 한다.
‘선동에 관한 글을 읽어두길 잘했군.’
나는 결론을 내리자마자 입을 열었다.
“…이든 형.”
류이든은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저 내면에 무슨 감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미심쩍기 짝이 없다.
“…예전에 한 말 기억해?”
“무슨?”
“최소한 형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할 일은 없을 거라고 한 말.”
“…기억이야 하지.”
그런데 그게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냐는 식의 답변이군.
“그 사람 누군지 말해줘.”
“…왜?”
“되도록이면 어떤 사람인지도 자세하게.”
그러자 류이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날 노려본다.
“…왜 그러는 거냐고.”
음, 공격적인 반응이군. 방어기제다.
“…한 말 지키려는 거지.”
그리고 순간 류이든이 멍해졌다. 잠에서 깬, 개같군.
* * *
류이든은 지동화의 표정을 보고 당황하고 말았다.
‘왜 저렇게…….’
지동화는 무언가를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눈에 확신이 가득했다. 대체 무엇을 확신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확신에 찬 눈을 류이든은 마주한 적이 있다.
‘2차 경연 편곡 최종본 만들었을 때랑…….’
그때는 그렇게 신뢰가 가던 눈빛이, 지금은 왜 이리 날카롭게 다가오는지 류이든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류이든은 위축되는 느낌을 애써 떨치며 답한다.
“…한 말을 지킨다는 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형이 약속해 줄 건 딱 두 가지. 그 사람 정보 주고, 하루 동안은 관두지 말고 기다려줘.”
“…내가 왜?”
지동화가 되는대로 말한다는 생각에, 약간의 오기가 든 류이든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어쩌면 지동화의 확신에 찬 눈빛이 불쾌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동화는 류이든이 으르렁대는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의연하게 답한다.
“…자해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안 말릴 사람이 있을까.”
‘자해?’
냉정하게 내뱉는 지동화에 류이든은 무언가가 눌린 듯, 애써 제어하고 있던 분노가 터져 나온다.
“…자해라고?”
“…내가 이해가 안 돼서 형을 설득할 자신이 지금은 없는데, 내가 보기엔.”
네가 뭘 안다고, 류이든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건, 이건 자해 같은 게 아냐. 내가 데뷔할 만한 놈이 아닌 거야, 그냥. 그래서… 그래서 관두는 거고.”
“왜 아니지?”
“데뷔를, 지금 몇 번째 떨어져서 마지막 기회라고 얻은 건데, 그걸 내 지인이 망치려 든다고!”
지동화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표정으로 류이든을 차갑게 바라본다. 마치 진실을 요구하는 차가운 판관과 같은 그 눈빛에, 악에 받친 류이든은 소리치듯 말한다.
“내가! 시발, 내가 몇 번을… 실패했는데, 내가 데뷔할 만한 놈이었으면, 내 지인이 그럴 리가 있겠냐고. 그냥 세상이… 세상이 내가 데뷔하는 걸 거부하는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는 류이든은 어느새 울고 있었다. 언제나 웃으며 건강해야 함을 주장하는 류이든과는 어울리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이 당황했을 눈물.
“스물두 살 먹는 동안, 한 건 연습생 짓인데, 지쳐. 지친다고. 사람들이 저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것도, 그 거짓말을 내가 아꼈던 동생이 했단 것도, 그냥, 다 지쳐. …관두고, 싶어.”
그리고 어쩌면 그 눈물은 류이든이 늘 짓고 있는 웃음을 통해 스스로 억눌러 왔던 감정이 농축되어 있었다.
언제 데뷔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그 불안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부모님을 자신이 괴롭게 하고 있다는 죄책감.
그 모든 감정이 한 방울의 눈물마다 질척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지동화는 여전히 예전의 그 시선 그대로 류이든을 바라본다.
그렇게 한동안 류이든의 울음소리와 무거운 정적만이 맴도는 방 안.
그러곤 류이든의 울음소리가 조금 멎자 입을 열어 문장을 툭툭 뱉는다.
“감정은 정신을 좀먹는 경우가 많아. 밤에 하는 선택을 후회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말을 멈추고 아주 잠시 류이든을 바라보던 지동화는 다시 입을 연다.
“…그러니까 고개 들고 진정해 봐.”
지동화는 류이든이 고개를 들 때까지 계속해서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다. 그러다 류이든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우선, 정리하면 형은 자기가 데뷔할 만한 사람이면 이런 일을 겪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맞아?”
류이든은 순간적으로 그 말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까까진 분명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데… 지동화의 입에서 나오니, 비논리적이라는 티가 났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무언가에 홀린 듯이 류이든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아끼던 동생이 배신 비스무리한 짓거리를 한 것도, 자기가 문제라서 그런 것처럼 느끼는 거고… 이것도 맞아?”
류이든이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몇 가지 질문. 첫째, 걔 학폭 논란으로 서바이벌 참가 못 한 두 놈 중 하나야?”
“…어떻게 알았어?”
“…그럼 다음. 둘째, 그 사람 나갈 때 뭐라고 해줬어.”
그리고 불현듯 잊고 있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너가 잘못한 건 뉘우치는 게 맞다고.”
“셋째, 걔는 뭐랬는데.”
“…화냈지.”
사실은 화냈다고 말할 만한 수준은 아득하게 넘어섰지만, 류이든은 조용히 뒷말을 숨겼다.
“넷째, 아끼는 동생이라고 했는데, 상대방도 그렇게 여기는지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데 동의해?”
“…응.”
“그럼 결론, 걔가 등신인 걸까, 아니면 형이 문제인 걸까.”
순간 류이든은 머리가 멍해진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답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걔는, 애초에 자기만 그렇게 되는 게 싫어서… 내가 자기한테 그렇게 얘기한 게 고까워서…….’
“…걔가 등신인 거지.”
그러자 지동화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우리는 걔가 형에 대한 질투심과 자신이 망하면 남도 망해야 한다는 옹졸한 심성을 지닌 등신이라는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했어.”
류이든은 지동화가 한 말이 순간 우스워서 웃었다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나도 잠시 까먹고 있던 걸… 어떻게 알고 도리어 나한테 깨닫게 한 거지.’
“…어떻게 안 건데, 그래서.”
“그건 일단 됐고. 그러면 걔가 등신처럼 군 게 형 문제야?”
그제야 류이든은 이 문답이 어떤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러자 류이든도 허탈하게 한번 웃곤 답했다. 드디어 뇌가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아니지.”
“…그러면 데뷔할 자질이 없다는 말에 근거가 없잖아.”
류이든은 유쾌한 이 문답이 퍽 재밌었는지 질문까지 해댄다.
“그건 왜 그런 건데?”
“형은 분명 ‘내가 데뷔할 만한 놈이면, 걔가 그랬을 리 없다’라고 말했는데…….”
“걔는 그냥 질투심 같은 것 때문에 그런 거니까 내가 데뷔할 만한 놈이든 말든 상관없다는 거네?”
“그렇지.”
“그럼 데뷔할 만한 놈이었으면 몇 번이고 데뷔조에서 떨어졌을 리 없다는 건? 어떻게 반박할 거야.”
“…….”
“너 이건 생각 못 했지?”
* * *
젠장, 거의 다 성공했는데!
류이든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설득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시도해 본 건데, 지금 난관에 봉착했다.
딱 한 부분,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숨겨둔 부분을 비집고 들어오다니, 제법이다.
5년 전의 류이든에게 적용한 논리를 지금의 류이든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려면, 이 둘 사이의 동일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 전제가 의심스럽다고 하면…….
젠장, 이건 내가 봐도 헛소리인데.
내가 잠시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걸 류이든이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웃으며 답한다.
“이건 넘어가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자비롭군. 결론엔 내 욕심을 약간만 섞자.
“걔 이름, 간단한 신상 정보, 그리고 형은 소속사와 함께 대응할 것.”
“마지막은 이해되는데, 걔 이름이랑 신상 정보는 왜?”
“왜긴.”
선동엔 진실이 필요하니까.